6화
【 침공 】
"수호 씨! 이거 봐요!"
최수영이 보여준 휴대폰 속 넥시트 코인의 차트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양을 보여주며 움직이고 있었다.
차트 속 넥시트코인의 가격이 실시간으로 쉬지 않고 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급하게 지금이라도 매수하려고 하겠죠. 파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이 상황에서 순순히 들고 있던 넥시트코인을 매도할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자연히 넥시트코인은 기존의 차트 공식 따위는 모두 무시한 채 오로지 수직으로 위로 상승하고 있었다.
"코인도 코인이지만 이 세상이 정말 메타버스 속 가상 현실인 걸까요, 수호 씨?"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뭔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는 아닐 것 같긴 하네요."
최수영은 자신의 두 손을 들어 빤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어쨌든 TV에 나온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가 시스템 속 캐릭터라는 건가요? 사람이 아니라?"
"그렇지만은 않을 거예요. 분명히 우리는 우리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걸요. 뭐가 현실이고 뭐가 메타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쨌든 수호 씨 말이 맞았네요. 2022년에 무슨 일이 일어나긴 일어났네요……."
"그러게요. 이젠 이 상황에 잘 대처해 봐야죠."
세 시간 정도 바뀔 세상에 대한 얘기를 나눈 나와 최수영은 곧 호텔을 나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전 세계가 혼란스러울 지금, 일단은 가족들부터 챙겨야 했다.
와인은 고작 몇 모금 마신 게 다였고 시간도 꽤 지났으니 우리는 각자의 차를 타고 가족들에게 향했다.
최수영은 강남 역삼동으로, 나는 인천 간석동으로.
집에 도착할 즈음, 신호 대기 상태에서 휴대폰을 보자 치솟던 넥시트코인의 가격이 이제 조금 안정이 되어가는 듯했다.
시스템의 공지가 있은 후 다섯 시간.
넥시트코인의 가격은 개당 8천 원에서 1억5천만 원까지 오른 상태로 횡보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넥시트코인 4만 개의 현재 가치는 6조 원이 되었다.
개인 자산 6조 원이면 우리나라 재계 서열 5위쯤 될 텐데?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 저 왔어요."
"수호 왔니? 아니, 수호야.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안 그래도 어머니 걱정돼서 왔어요. 성희는요? 어디 나갔어요?"
"친구들하고 새해 파티한다고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지."
"세상이 이 난리가 났는데 아직도 안 들어와요?"
"응. 안 그래도 이제 오고 있다고 전화 왔다. 밥은 먹었니?"
"성희 오면 다 같이 먹죠, 뭐."
소파에 앉아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N마켓.
시스템의 공지대로 휴대폰 첫 화면에 N마켓이 깔려 있었다.
간단한 개인 인증을 마친 뒤 N마켓을 둘러보았다.
N마켓 앱은 다섯 가지 메뉴로 나뉘어 있었다.
[QOL], [BUPA], [WFC], [HT], [Etc]
우선 'QOL' 메뉴를 눌러보았다.
'Quality of Life(삶의 질)'라는 메뉴 설명과 함께 다양한 상품 리스트가 나타났다.
다양한 상품 중 두 가지 정도가 특히 눈에 띄었다.
'젊음 회복'과 '질병 치유'.
'젊음 회복'의 가격은 5,000NXT, '질병 치유'의 가격은 3,000NXT.
한화로 각각 현재 7천5백억, 4천5백억이었다.
상품 상세페이지에 들어가자 간단한 한 줄 설명이 나왔다.
[젊음 회복 : 구매자의 신체 나이를 20년 전으로 되돌려드립니다.]
[질병 치유 : 구매자의 가장 큰 질병 하나를 무조건 치유합니다.]
대박.
넥시트코인 5,000개면 20년 젊어질 수 있다고?
3,000개면 불치병도 고칠 수 있고?
그렇게 N마켓의 상품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최수영에게 전화가 왔다.
"네, 수영 씨. 가족들은 모두 만났어요? 다들 괜찮으세요?"
- 네, 수호 씨. 근데 지금 뉴스 보고 있어요? 중국 부동산 재벌 루왕웨이가 넥시트코인을 쓸어 모아 N마켓에서 상품을 샀대요!
"네? 뭘 샀다는데요?"
- TV 틀어보세요. 지금 난리에요. N마켓에서 '젊음 회복'을 샀고, 진짜로 젊어졌대요! 그리고 그 뉴스 나오자마자 지금 넥시트코인 가격이 다시 엄청나게 올랐어요.
TV를 틀면서 휴대폰을 확인하자 집에 올 때쯤 개당 1억5천이었던 넥시트코인이 그사이 5배 넘게 뛰어 지금은 8억을 넘어간 채 횡보하고 있었다.
이제 누군가 '젊음 회복'을 사려면 넥시트코인 4조 원어치를 매수해야 한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7천5백억 원이면 살 수 있었던 '젊음 회복'의 가격이 이제 4조 원이 된 것이다.
아무리 젊음이 좋다 한들 4조 원을 들여서 이 상품을 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곧 TV에서 또 다른 속보가 나왔다.
방금 전 투자의 전설 워렌 머핏이 넥시트코인을 대량 매수해 '젊음 회복'과 '질병 치유'를 모두 구매했다는 뉴스였다.
현재 시세로 두 상품의 가격은 합쳐서 6조4천억 원.
건강해서 아직도 매일 햄버거를 먹는다더니 어디 병이 있었나 보다.
워렌 머핏이 매일 간다던 그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이번 일로 좀 타격이 있겠는데?
그나저나 '4조 원짜리 상품을 살 사람이 있을까?' 했던 건 역시 나 같은 소시민 상상력의 한계였던 것 같다.
방금 6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젊음과 건강을 얻은 워렌 머핏의 자산을 검색해 보니 115조 원.
뭐 6조 원 정도는 충분히 자신을 위해 쓸 만한 돈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루에 10만 원도 안 되는 돈 더 벌자고 남들 다 자는 시간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대리운전을 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입 안에 씁쓸한 맛이 돌았다.
* * *
소파에 앉아 뉴스 속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자산은 32조가 되었다.
32,000,000,000,000원.
믿어지지 않는 숫자의 향연에 오히려 머릿속이 차가워지며 조금 냉정하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 자산 32조면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재계 서열을 따질 수도 없는 수준이다.
워렌 머핏이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 부자 순위 10위였지?
그럼 난 이제 40위 언저리쯤 되려나.
더 이상 넥시트코인의 차트는 들여다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유명인이 또 넥시트코인을 매수해 N마켓 상품을 사서 사용하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이 코인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차가워진 머리 덕에 나는 다시 소파에 차분히 앉아 N마켓의 상품을 하나씩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 당장 살 것은 없더라도 상품들이 무엇이 있는지 유심히 봐 둘 필요는 있었다.
어쨌든 '행성073 메타버스와'의 결합이 시작되면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하겠지만 현재의 일상은 유지가 된다고 했다.
어떻게든 이 세상은 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돌아가겠지.
아마 지금 내로라하는 나이 많은 재벌들은 앞다투어 넥시트코인을 매수해 '젊음 회복'부터 구매하려고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건 젊음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 그들이 못 가진 젊음과 넥시트코인을 모두 가진 나는?
이제 재벌로 사는 일만 남았다.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그리고 완전히 이 부(富)를 대대손손 누릴 것이다.
반드시.
* *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넥스트코인은 개당 12억이 되었다.
더 오르긴 하겠지만 일단 이 정도면 오를 만큼은 올랐다.
나는 코인 지갑에서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넥시트코인을 우선 20개만 꺼내 거래소로 옮겼다.
시장가 매도 터치.
거래 체결.
240억의 현금이 생겼다.
금수저, 아니 넥시트수저 라이프 시작이다!
나는 서둘러 방 밖으로 나와 어머니와 동생을 불렀다.
어제도 어디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는지 성희가 부스스한 머리와 퉁퉁 부은 얼굴로 나타났다.
"성희 너 지금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또 나갔다 왔어? 적당히 돌아다녀. 메타버스네 가상 현실이네, 이런 소리에 사람들 가치관이 흔들릴 수도 있어. 아마 범죄율도 엄청 올라갈 거야."
"아이고, 어쩌니 수호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정말 이러다 무슨 큰일 나는 거 아니니?"
"오빠는 뭐 달라진 것도 하나도 없고만 뭘 또 잔뜩 무게 잡고 밖을 나가라, 마라야. 근데 그 방송은 진짜 신기하긴 했어. 그치 오빠?"
한 가족인데도 같은 상황 속 반응이 이렇게 다르다.
행성073의 미지의 존재들보다도 어쩌면 지구의 인간들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구질구질한 집에 계속 모여 살 필요는 없지.
"성희 너 독립하고 싶다고 했지? 당분간만 좀 얌전히 지내면 오빠가 독립시켜줄게. 일단은 우리 식구 모두 같이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머니, 성희야. 오늘 당장 다 같이 집 보러 가요."
"수호야, 돈이 어디 있다고 갑자기 이사를 가?"
이제는 가족들에게 얘기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100퍼센트 다 오픈할 필요는 없겠지.
"그 TV에 떠들썩한 넥시트코인. 그거 제가 몇 개 갖고 있었어요. 오늘 당장 집 계약하고 내일이라도 이사 가요. 성희 너는 카드 하나 만들어 줄 테니까 당분간 오빠 말 잘 듣고 좀 얌전히 지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성희가 대답했다.
"내가 언제 오빠 말 안 들은 적 있어? 헤헤헤."
"어서 준비들 해요. 강남까지 가야 하니까."
"강남? 오빠 우리 이제 강남 살아?"
"응, 그러자. 우리 세 식구도 비싼 집에서 한번 살아보자. 성희 너는 홍대 근처에 살고 싶다고 했지? 당분간만 좀 얌전히 있어. 상황 좀 더 보다가 괜찮아지면 합정에 오피스텔 구해 줄게. 오늘 당장 차도 한 대씩 사고. 아무래도 대중교통 같은 건 당장은 좀 위험할 수 있겠어."
"차? 차도 사준다고 오빠?"
"그래. 얼른 준비해."
아침 일찍 집을 알아보러 떠난 우리 가족은 작년 말 완공되고 새로이 국내 최고가 분양가를 갱신해 화제가 되었던 청담동 고급 빌라 더벤트하우스를 한 채 계약했다.
매매가는 160억.
주택을 알아볼까도 했지만 혹시라도 세상이 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경비 시스템이 확실한 이런 고급 빌라가 나을 것 같았다.
세 식구가 타고 다닐 차도 한 대씩 계약하러 근처 수입 차 매장을 몇 곳 방문했는데 가급적 튼튼하고 큰 차를 사라는 내 권유를 무시하고 성희는 기어이 미니 쿠퍼를 고집했다.
더 비싼 차를 사줄 테니 크고 튼튼한 걸로 하자는 내 말에도 나중에 바꾸더라도 지금은 이 차를 꼭 타야겠단다.
자기 24년 평생 드림카라나.
결국 우리는 미니쿠퍼 라인 중 그나마 조금 더 튼튼해 보이는 컨트리맨으로 합의했다.
그리고는 다른 매장에서 계약한 어머니와 내 차의 가격을 보더니 성희는 그제야 내 팔을 스윽 잡아끌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타보고 나도 큰 차로 바꿀게, 오빠……."
그렇게 어머니는 레인지로버, 나는 G바겐을 계약했다.
두 대 다 성희가 계약한 차보다 4배도 넘게 비싼 차들이었다.
* * *
1월 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9,980개]
[단가 12억 원]
[평가금액 48조 원]
1월 2일 최수영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8,130개]
[단가 12억 원]
[평가 금액 9조4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