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 *
차 세 대의 계약을 모두 마친 뒤 나는 학원으로 향했다.
"원장님, 김수호입니다."
"아, 수호 쌤. 들어오세요."
학원에 가자마자 원장실에 먼저 들렀다.
예전에 한창 논술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가 지금은 강의는 하지 않고 학원만 세 개를 운영하고 있는 원장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수호 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걸까요? 벌써 당분간 애들 학원 못 보낸다고 전화한 학부모가 여럿이에요."
"워낙 놀랄 일이니 당분간은 다들 상황을 좀 지켜보겠죠. 곧 다시 보낼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긴 대치동이잖아요. 하하."
"그렇겠죠? 그건 그렇고 메타버스라니, 세상에. 지금 수호 쌤하고 대화하고 있는 이 방의 공기도 냄새도 다 이렇게 생생한데? 난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아요. 세상을 뒤에서 움직인다는 그 일루미나티인가, 거기서 이제는 대놓고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 생활이 좀 바뀌게 될 거고, 하지만 우리는 전처럼 일상을 유지할 거라는 거죠."
"역시 우리 수호 쌤은 냉철해. 그래요, 결국 일상은 유지가 되겠지. 그런데?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
"죄송하지만 저 학원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서요. 다음 선생님 구해질 때까지는 강의 차질 없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빨리 구해 주셨으면 해요."
"수호 쌤 좋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요? 다른 학원에서 연락 왔어요? 수호 쌤 인물에 실력이면 그럴 수 있지. 자, 커피 한잔하면서 천천히 얘기를 좀 나눠봐요."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강남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논술 일타 강사 출신이다.
당연히 적당한 조건과 유려한 말솜씨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무슨 말로 설득을 하려고 해도 결국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이 방을 나가게 될 테니 이 대화에 불필요하게 긴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었다.
"작년에 제가 장난삼아 넥시트코인을 몇 개 사두었었습니다."
원장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이에요, 수호 쌤? 몇 개나?"
"많지는 않아요. 하하하. 하지만 당분간은 좀 쉬면서 사업 구상이나 해볼까 해요."
"한국사 박은수 쌤이 그렇게 넥시트코인, 넥시트코인 떠들고 다니더니 정작 조용히 사놓은 사람은 수호 쌤이었네? 호호호. 축하해요. 그럼 이거 내가 잡을 수는 없는 상황이겠네요. 다음 선생님은 빨리 알아볼 테니 애들한텐 먼저 말하지 말아줘요. 알죠? 우리 송별회 날짜도 잡아야겠다."
그때였다.
똑똑똑.
"원장님, 저 최수영입니다."
송별회 날짜를 잡겠다고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달력을 들여다보던 원장님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늘 무슨 일이야? 왜 다 원장실로 출근 도장을 찍는 거예요?"
"그럼 전 나가보겠습니다. 원장님."
"그래요, 수호 쌤. 그동안 잘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조금만 더 부탁해요."
"네, 감사합니다."
원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 바로 최수영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 최수영이 먼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수영과 달리 눈웃음을 지을 줄 모르는 나는 대신 입에 살짝 미소를 띠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원장님하고 얘기 마치면 1층 커피숍에서 잠깐 봐요."
* * *
1층 커피숍은 제법 시끌시끌했다.
이곳저곳 테이블에서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많은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다.
어제 일로 다들 혼란스러워하고 있겠지.
잠시 기다리자 커피숍 안으로 들어와 음료를 주문한 최수영이 내 앞자리에 앉았다.
"호텔에선 경황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 수호 씨는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고 이 코인을 안 팔겠다고 했던 거예요?"
나는 최수영에게 간단하게 허염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 같으면 끝까지 못 믿었을 거예요."
"나도 그랬어요. 그냥 도박이었죠, 뭐."
"수호 씨, 그 N마켓은 좀 둘러봤어요? 무슨 무기들도 있던데, 그건 어디다 쓰는 걸까요? 21세기에 칼과 방패 같은 걸 팔다니. 심지어 제일 비싼 검은 20,000 넥시트코인이던데요?"
"그러게요. 그 검 지금 원화로 24조예요. 난 죽어도 검 하나에 24조는 못 태워요. 하하하."
"이게 현실인지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젊음 회복'은 벌써 열 개 넘게 팔렸대요."
"벌써요? 잠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왜요, 수호 씨?"
행성073과의 결합을 시작하며 시스템은 지구에 넥시트코인 40만 개를 먼저 지급했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이제부터 채굴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한정된 자원.
문득 '사람들이 이 코인을 이렇게 펑펑 사용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 회복'이 10개가 넘게 팔렸으면 이미 팔분의 일이 넘는 넥시트코인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꺅! 저게 뭐야!"
"운석인가?"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커피숍은 금세 당황한 사람들의 다양한 외침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건물 밖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고 나와 최수영도 창가로 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가벼운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제기랄."
저 멀리 하늘에서 세 개의 운석이 이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영 씨! 지하 주차장으로!"
나는 최수영의 손목을 잡고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수영 씨! 차 키 있어요?"
"네. 가방에 있어요."
내 차 키는 교무실에 있는 외투에 있었던 탓에 우리는 일단 최수영의 차로 향했다.
"건물 안도 위험할 것 같고, 저게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니 일단 큰 도로로 나가 봐요."
"네, 수호 씨. 수호 씨가 운전할래요?"
"그래요."
나는 혼란에 빠진 사람들로 인해 도로에 더 차가 많아지기 전에 저 운석들이 떨어지는 반대쪽으로 차를 몰고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나메라의 액셀을 거세게 밟자 역시 자신은 평범한 세단이 아니었음을 이제라도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이 굉음을 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어?"
무작정 운석이 떨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며 룸미러로 뒤쪽을 확인했는데 믿기지 않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떨어지던 운석이 땅에 부딪히지 않고 그리 높지 않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에 내려와 있는 모습을 보니 운석도 아니었다.
뭐랄까… UFO? 우주선?
넓고 편편한 그 물체는 크기나 모양이 꼭 축구장이 통째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확실한 건 군데군데 보이는 저 각진 모습들은 분명히 자연물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고 있던 최수영이 물었다.
"수호 씨, 저게 도대체 뭘까요? 외계인 우주선일까요?"
"시스템에서 행성073 어쩌고 했으니 아마 거기서 온 게 아닐까 싶네요."
정면에서 전투기 몇 대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성남에 있는 서울 공항에서 출격한 전투기인 듯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수영 씨. 전투기도 이미 출동했네요. 군에서 어떻게든 해주겠죠."
"수호 씨는 정말 언제나 냉철하고 침착하네요. 듬직해. 하하핫."
"웃음이 나와요, 지금? 대단해요, 수영 씨."
"억지로 웃어보는 거예요. 계속 벌벌 떨고 있으면 뭐 해요. 우린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이렇게 계속 달리나요?"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저 둥둥 떠 있는 축구장들로부터 최대한 멀어져 봐야겠죠?"
"축구장이요?"
"꼭 축구장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어? 그러네요. 하하핫."
그때였다.
공중에 떠 있던 세 개의 축구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십 개로 갈라진 축구장 조각들은 갑자기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몇 조각은 달리고 있는 우리 차를 앞질러 우리가 달리고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아, 망한 것 같은데 이거."
그중 한 조각이 바로 앞 50미터 정도에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그 조각과 부딪힌 도로 위의 차들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펑 펑 터져 나갔다.
급히 차를 세운 나는 떨어진 조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뒤에도 차들이 정차해 있으니 이제는 차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
잠시 후 조각의 지붕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커다란 원숭이 같은 것들 수십 마리가 튀어나왔다.
'저 정도 크기면 원숭이가 아니라 고릴라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축구장 조각에서 뛰쳐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원숭이들의 몸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금속?
온몸이 무슨 스테인리스 같은 매끈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듯 보였다.
"수호 씨, 저것들은 뭘까요? 로봇일까요? 이제 어쩌죠?"
"잠깐만 지켜보죠. 아, 혹시 모르니 휴대폰으로 N마켓 앱 미리 켜서 'BUPA' 메뉴에 들어가 놔요."
N마켓의 'BUPA' 메뉴.
'Build Up Physical Ability(신체 능력 강화)'라는 설명이 쓰인 메뉴에는 간단하게 두 가지의 상품이 들어 있었다.
'힘, 체력 강화'와 '운동 신경 강화'.
각각 가격이 20NXT인 두 상품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었다.
[구매자 근육 조직의 밀도를 개선해 힘과 체력을 2배로 증가시킵니다.]
[전두엽과 신경계의 민감도를 향상시켜 운동 신경을 2배로 증가시킵니다.]
[구매 시마다 신체 능력이 2배씩 증가되며, 상품 가격도 2배로 늘어납니다.]
처음 살 때는 가격이 20NXT이지만 두 번째 살 때는 40NXT이 되는 그런 방식을 말하는 것 같았다.
구매 시마다 신체 능력도, 가격도 2배수로 늘어난다.
혹시 저것들이 공격을 시작하면 이 두 상품을 몇 개씩 사야 할까.
3개씩 사면 총 280NXT가 들고 힘, 체력과 운동신경이 지금보다 8배가 좋아지는 건가.
280NXT면 한화로 3천억이 넘는 돈이지만 최수영과 내가 각자 가지고 있는 넥시트코인의 수량 안에서는 이번 목숨값으로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양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 앞에 보이는 스테인리스 원숭이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큰 팔로 차 지붕을 뜯어 버리며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했고, 또 다른 놈은 차를 통째로 들어 집어 던져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놈들은 그저 두 팔로 사람들을 찢고 집어던지고 마구잡이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수영 씨! 'BUPA(신체 능력 강화)' 메뉴 상품 두 가지 모두 세 개씩 지금 당장 사요!"
"네? 네!"
나와 최수영은 미리 들어가 있던 'BUPA' 메뉴에서 '힘, 체력 강화'와 '운동 신경 강화'를 각각 세 개씩 구매했다.
예상대로 첫 번째 구매가 끝나자 가격이 40NXT로 바뀌었다.
그다음은 80NXT였다.
"이제 차에서 내려서 반대로 뛰어요!"
차에서 내린 최수영과 나는 뒤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으악!"
"꺅!"
채 네다섯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우린 둘 다 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지나치게 향상된 신체 능력 탓에 몸의 중심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운동 신경도 함께 향상시킨 우리는 이내 달라진 신체 능력에 적응하고 엄청난 속도로 처참한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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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9,700개]
[단가 12억 원]
[평가 금액 47조6천억 원]
1월 2일 최수영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7,850개]
[단가 12억 원]
[평가 금액 9조4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