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 *
이혁진 실장의 안내에 따라 몸을 날려 건물 코너를 돌자 며칠 전 보았던 반짝반짝한 원숭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가장 가까운 곳의 원숭이에게 몸을 쇄도하며 마그네타 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은빛 원숭이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몸이 두 동강이 나버렸다.
"이 실장님, 코인 들어왔어요?"
- 네, 대표님. 0.05NXT 채굴되었습니다.
1억5백만 원 벌었다.
"좋아! 쓸어 담아봅시다!"
원숭이들 한가운데로 몸을 날린 나는 가까운 곳의 원숭이부터 마그네타 검으로 차례차례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강화도로 검술 사범을 한 분 모셔 틈틈이 검술을 연마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원숭이들을 다 처리하자 드론 영상으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이혁진 실장이 다음 채굴지로 안내했다.
- 대표님! 시청 건물 뒤편으로!
"오케이, 갑니다!"
폭 10미터 정도의 도로를 한 번의 점프로 뛰어넘은 나는 시청 뒤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엔 커다란 거미같이 생긴 괴수들이 사냥감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몸을 굴려 가까이 있는 거미 밑으로 들어가 기다란 다리를 몇 개 베어 버리자 중심을 잃은 괴수의 몸이 휘청이며 내 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나는 다시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려 기울어지는 몸통도 그대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 실장님, 이건 얼마예요?"
- 마찬가지입니다. 0.05NXT요.
전부 다 0.05NXT인가?
이러면 생각보다 효율이 안 나오는데.
어쨌든 시작한 사업이니 열심히 해봐야지.
나는 주변의 거미 모양 괴수들을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리하면서 보니 거미처럼 생기긴 했지만 다리가 10개였다.
그럼 이건 거미야, 오징어야?
하긴, 원래 지구에 있던 괴수들도 아닌데 굳이 이런 걸 따질 이유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미들을 다 처리한 후 이 실장에게 다음 목적지를 물었다.
"이 실장님, 다음은?"
- 지금 대표님 쪽으로 한 무리의 괴수들이 날아가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날아와?
괴수가?
하늘을 두리번거리자 이혁진 실장의 말대로 열댓 마리의 은빛 잠자리가 나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아, 날아다니는 건 좀 쉽지 않겠는데?
나는 원숭이와 거미를 상대할 때보다는 조금 긴장한 채 검을 잘 꼬나 쥐고 날아오는 스테인리스 잠자리들을 노려보고 섰다.
어쨌든 저놈들도 나를 공격하려면 아래로 내려와야겠지.
한번 해보자.
그런데 내 위로 날아온 잠자리들은 공격할 마음이 없는지 내 머리 위를 빙빙 돌고만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이혁진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표님! 검은색 괴수 하나가 대표님 계신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른 놈들보다 훨씬 큽니다!
잠자리를 올려보고 있던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커다란 괴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네. 나도 보여요."
지금껏 상대했던 놈들보다 두 배는 큼직한 검은색 개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멈춰 서더니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색은 검지만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금속 재질인 듯했다.
앞의 놈들이 스테인리스라면 저건 강철쯤 되는 건가?
별 의미도 없는 잡생각을 얼른 지워버린 나는 다가오는 검은 개를 향해 마그네타 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잠시 나를 노려보며 거리를 재는 듯하던 검은 개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도약했다가 땅에 발이 닿자마자 다시 방향을 틀어 내 왼쪽을 덮쳐왔다.
정면에서 자신을 겨누고 있던 마그네타 검을 의식한 빠르고 영리한 움직임이었다.
반면 나는 검은 개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자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껴 바로 몸을 뒤로 튕겨냈다.
간발의 차이로 바로 눈앞에 검은 물체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아마 저 공격을 그대로 맞았을 것이다.
이놈은 다르다!
나는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다음 공격을 대비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다시 방향을 틀은 개가 이미 거대한 이빨을 보이며 덮쳐 오고 있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피할 방향도 찾지 못한 나는 급하게 수직으로 높이 점프했고 쾅!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던 곳의 땅이 검은 개와 부딪히며 깊이 패 버렸다.
나는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린 후 물구나무를 선 자세로 검은 개의 몸통을 향해 마그네타 검을 찌르며 내려갔다.
하지만 검은 개는 다시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벌리며 마그네타 검을 손쉽게 피해 냈고 내 검 끝은 허무하게 바닥을 폭 찌르며 멈춰 버렸다.
얼른 개가 있는 방향을 향해 검을 다시 들어 올린 나는 다급히 외쳤다.
"이 실장! 지금 바로 신체 능력 강화 각각 세 개씩!"
- 네!
강화도 전략실에 있는 이혁진 실장이 내 휴대폰과 연결된 태블릿으로 'BUPA(신체 능력 강화)' 메뉴의 상품을 구매했는지 순간 전신의 근육이 훨씬 팽팽하게 당겨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다시 붙어보자!"
나는 마그네타 검을 왼편 허리에 위치시킨 채 검은 개에게 달려들며 오른팔로 온 힘을 다해 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갑자기 달라진 기세와 속도에 놀랐는지 검은 개가 얼른 옆으로 몸을 날려 내 공격을 피해 냈다.
나는 크게 회전하고 있는 검을 두 손으로 다시 꽉 붙잡은 후 관성을 무시한 채 검의 방향을 틀어 내리쳤다.
언제나처럼 베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마그네타 검에 맞은 개의 허리가 그대로 두 동강 났다.
검은 개가 죽고 나자 머리 위에서 둥글게 날고 있던 잠자리들이 갑자기 나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공격하기 위해 검이 닿는 범위까지 내려온 잠자리들은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마그네타 검에 속절없이 도륙당하고 말았다.
"이혁진 실장님, 조금 전엔 급한 마음에 반말해서 미안합니다."
- 아닙니다, 대표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시잖아요.
"그럼 전투 중에만 좀 양해 부탁합니다. 신체 능력 강화 상품은 세 개씩 더 산 거예요? 몸이 엄청 가볍네요."
- '힘, 체력 강화'는 세 개 샀는데 '운동 신경 강화'는 두 개만 샀습니다.
어라.
프로게이머 출신인데도 생각보다 손이 느리네.
나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 세 개, 두 개. 그럼 1,600NXT 어치네요. 그런데 왜 '운동 신경 강화'는 두 개밖에 못 샀어요?"
- 영상으로 대표님과 괴수의 움직임을 봤을 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물론 여차하면 추가로 더 구매할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강화 효과가 계속 누적되는 대신 살수록 비싸지는 'BUPA(신체 능력 강화)' 상품 특성을 고려해 필요한 만큼만 구매한 이혁진 실장의 판단 덕분에 640NXT은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얼마 채굴했죠?"
- 4.7NXT입니다. 현재 시세로 98억입니다. 그 검은 괴수를 잡았을 땐 그래도 한번에 0.2NXT가 채굴되었습니다.
"쓴 돈은 1,600NXT니까 3조3천억이네요?"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학 강사 출신이라고 암산을 유독 빨리하는 내 머리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 네. 그렇지만 코인을 투자한 만큼 앞으로 채굴 효율은 더 올라가겠죠. 대표님도 더 안전해지시고요.
몸과 지갑은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무거워졌다.
이 사업이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날이 오긴 올까?
"다른 곳 상황은 어때요?"
- 이제 막 도착한 군인들이 전투를 시작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저곳에서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위치 알려주세요."
- 힘들지 않으세요, 대표님? 조금 전에 죽을 뻔하셨는데.
"체력이 한 번에 여덟 배나 강화되고 나니 아주 쌩쌩합니다. 군인들이 제일 고전 중인 위치 알려주세요. 어서 도와줘야죠."
* * *
다음날, 메타디펜스 임시 본사 회의실.
홍보팀 직원들과의 회의를 시작했다.
"대표님 영상이 지금 SNS에 퍼져서 완전히 난리가 났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찍어 올린 SNS 속 내 영상과 사진들을 대충 훑어보며 홍보팀장에게 물었다.
"뭐, 곧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긴 합니다. 댓글이나 반응들은 좀 어때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나타났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인플루언서 출신 홍보팀 SNS 담당 직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특히 대표님 검은 검과 회색 코트가 너무 멋있었다는 댓글이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대표님 너무 잘생겼다는 의견도요. 호호호."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제 촬영한 드론 영상들을 편집해 회사 홍보 영상을 제작해 주세요. 홍보 영상은 회사 공식 계정에 올려주시고, 영상 말미에 구인 광고도 넣어주세요."
"구인 광고요?"
"네. 넥시트코인으로 구매한 무기를 가지고 있거나 구매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한다고 하세요. 아무래도 혼자 채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좀 더 조직적으로 움직여야겠어요."
"메타디펜스가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회사가 되는 건가요?"
"그래요. 행성073인지 뭔지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놈들은 앞으로 전부 우리 회사에서 처리해 버리도록 하죠."
SNS 담당 직원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디펜서! 디펜서 어때요, 대표님? 행성073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 메타디펜스사(社)의 디펜서."
"음……. 뭐 그건 홍보팀에서 알아서 하세요. 어쨌든 하루빨리 홍보 영상을 퍼뜨리고 영웅이든 디펜서든 모아보도록 합시다."
* * *
홍보팀에서 제작한 홍보 영상의 효과는 대단했다.
홍보 영상이 업로드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회사로 각종 문의와 제휴 전화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람에 급히 홍보팀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했고 수많은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정작 디펜서로 지원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작년부터 넥시트코인을 들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 와서 현금으로 코인을 매수해 N마켓의 무기를 구입하는 건 어지간한 재력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N마켓에서 가장 싼 무기인 평범한 단검의 가격도 50NXT, 현재 시세 기준 한화로 1,000억이 조금 넘었다.
수천억 자산가가 뭐 하러 이런 걸 사서 외계 괴수 사냥에 지원하겠는가.
인사팀에서 1차 검토를 마친 디펜서 지원자 파일을 살펴보았으나 실제로 N마켓의 무기를 구입해 채굴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지원자는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지원자 파일을 살펴보고 있는데 최수영에게 전화가 왔다.
"네, 수영 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 TV를 보니 수호 씨 회사 얘기로 온 나라가 난리네요? 근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한텐 연락 한번 없더니.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어요?
"사업을 좀 급히 준비한다고 너무 바빴어요. 미안해요. 수영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아, 괜찮으면 이번 주말에 같이 식사할까요?"
- 아니요.
이런, 너무 급발진이었나.
"아… 약속 있어요? 그럼 언제가 괜찮아요?"
- 그런 게 아니고. 나 지금 수호 씨 회사로 가고 있어요. 이미 강화도 들어왔어요.
"네? 오고 있다고요? 미리 연락 하지 그랬어요. 내가 서울로 갔을 텐데."
- 나 그거 할 거예요. 디펜서.
"네? 갑자기 무슨."
- 나도 N마켓에 벌써 코인 5,280개나 썼어요. 그러니 디펜서에 지원한다고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최수영보다 넥시트코인에 더 많은 투자를 한 디펜서는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애초에 5,000NXT 이상 투자한 디펜서가 나타날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이런 위험한 일을 같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런 마음 때문에 일부러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수영 씨 직접 봤잖아요. 그 금속 괴수들."
- 도착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만나서 얘기해요. 아무튼 실망이에요, 수호 씨. 나 단단히 삐쳤어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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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8,062개]
[단가 21억 원]
[평가 금액 37조9천억 원]
김수호 N마켓 구매 내역
[마그네타 검 20,000NXT]
[힘, 체력 강화 6단계 1,260NXT]
[운동 신경 강화 5단계 620N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