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 *
다음날 세종시 국무조정실, 행성073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합동참모의장이 테이블을 쾅 치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 디펜서인지 하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잔 말입니까! 이미 군의 위신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영웅 놀이 하는 작자 몇 명 없어도 우리 군에서 그 괴수들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단 말입니다!"
재난관리실장이 차분한 톤으로 합참의장의 말을 끊었다.
"총알도 잘 먹히지 않는 괴수들입니다. 우리 군의 화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시민들이 있는 도심 한복판에 포격을 퍼부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실상 메타디펜스사의 활동이 앞으로 시민들의 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참의장에게 물었다.
"도심 상공에 도착하기 전에 그 비행 물체를 격추하는 건은 어떻게 검토되었습니까?"
재난관리실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시 큰 소리를 지르려던 합창의장은 애써 숨을 한 번 크게 쉰 뒤 장관의 물음에 답했다.
"불가능합니다. 비행 물체가 워낙 커서 폭파된 잔해가 도심으로 추락하게 되면 괴수들이 나타나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럼 결국 지금처럼 괴수들이 나타난 후에야 병력을 출동시켜 적들을 섬멸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 군에 데프콘 2단계를 발령해 둔 상태입니다. 그 정도 괴수들은 군 병력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당장 디펜서들의 활동을 중단시켜 주십시오."
국방부와 행정안전부의 팽팽한 대립을 지켜보고 있던 국무총리 한민국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메타디펜스사의 디펜서들이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탓에 군보다 더 빠른 기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접전 중인 지역에도 나타나 고전 중인 군대를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국민 한 명이라도 더 괴수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면 굳이 그들의 활동을 막을 필요가 있을까요?"
국방부장관이 조금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총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에 상응하는 상황입니다. 어느 때보다 국민들이 정부와 군을 의지하고 따라야 할 이때 그런 영웅 놀이 때문에 국민들의 판단력이 흐려져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던 한민국 국무총리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당장 오늘 결정하기는 힘든 사안일 것 같군요. 당분간은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정말 이 나라에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제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다음 주 정기 회의 때 그 메타디펜스사 대표가 참석할 수 있도록 출석 요청을 보내도록 하세요. 메타디펜스의 공식 입장도 들어봅시다. 자,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 * *
같은 시각 메타디펜스 기술개발실.
황동민 기술개발실장이 뿌듯한 표정으로 행어를 하나 밀면서 들어왔다.
"대표님, 디펜서 수트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황동민 실장이 끌고 들어오는 행어에는 어두운색 정장 한 벌,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주황색 정장 한 벌, 트렌치코트와 청바지, 군복이 각각 걸려 있었다.
디펜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수트 개발 시 내가 안전보다 더 강조했던 것이 바로 모양새였다.
절대로 몸에 쫙 붙는다거나 무슨 갑옷같이 생긴 그런 수트는 입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때문에 다소 안전성을 포기하더라도 꼭 각자 원하는 의상으로 수트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그 요청에 따른 수트가 오늘 완성되었다.
모두 모인 디펜서들은 탈의실에서 각자의 수트를 입고 다시 모였다.
나는 검은색에 가까운 진회색 정장을 입고 나왔고 최수영은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트렌치코트를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라울은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주황색의 화려한 정장을, 박강훈은 군복을 택했다.
모두가 자신의 수트의 핏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황동민 실장이 한껏 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잘 어울리네요. 평범한 옷의 질감을 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입고 계신 수트는 스테인리스 와이어에 고강력 폴리에틸렌사를 피복한 섬유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존하는 특수 섬유 중에는 가장 높은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또 이 메탈 섬유는 1천 도가 넘는 온도에도 방열 기능을 잃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오우. 만족함니다. 우리 인도에서 주황색은 용기와 희생을 말해요. 너무 마음에 듬니다."
잠깐이나마 '혹시 카레색?'이라는 의문을 품었는데 다행히 라울이 알아서 주황색의 의미를 설명해 준 덕분에 저 옷을 볼 때마다 카레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좌우로 몸을 돌려보던 최수영도 수트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다.
"두께에 비해 좀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말씀드린 옷 모양대로 나와서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최수영 씨 코트는 특히 콕 집어 말씀하셨던 샤넬의 작년 F/W 시즌 코트 모양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이 수트를 입은 영상이 유명해지면 짝퉁 만들었다고 고소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하하핫. 그 정도로 제 영상이 유명해지면 반대로 협찬이 들어올 수도 있겠죠. 이러다 나 샤넬 모델 되는 거 아니에요?"
이런 대화들을 나누는 사이 이름표까지 박음질 되어 있는 자신의 군복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곳저곳 만져보던 박강훈은 갑자기 뒤를 돌더니 급히 소매로 눈 주변을 훔쳤다.
설마, 우는 거야, 지금?
* * *
사무실로 돌아오자 비서가 미리 출력해 둔 공문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예요? 출석 요청서?"
"다음 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시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공문을 훑어보다가 비서에게 물었다.
"발신처가 국무총리비서실? 설마 세종시로 오라는 건 아니죠?"
"맞습니다, 대표님. 세종시로 오시랍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서울도 아니고 세종시로? 안 간다고 하세요. 괴수라도 출현하려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국무총리비서실에서 직접 보내온 출석 요청인데 안 가신다고요? 그냥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답변을 보내면 될까요?"
"그냥 안 간다고 하긴 좀 그렇고. 정 그러면 회사 업무가 바빠 화상으로 참여한다고 하세요.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거기 모여서 그러고들 있는 건지. 나 원 참."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아무렇지 않게 국무총리비서실의 공문을 무시해 버리고 대표실에 들어온 나는 의자에 앉아 잠시 멍해졌다.
잠깐만, 내가 지금 국무총리의 출석 요청을 개무시한 건가?
작년의 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물론 작년의 나였으면 그런 중요한 회의에 불릴 일도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벌벌 떨고 있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었겠지.
돈이 위치를 만들고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수십조 자산을 가진 재벌이 된 지는 이제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렇게 고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돈과 명예가 좋긴 좋구나.
* * *
아직 많은 데이터가 누적된 건 아니지만 괴수들은 보통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 그리고 사람들의 활동이 많은 낮 시간에 나타났다.
어차피 우리 디펜서들도 24시간 내내 대기하고 있을 순 없으니 퇴근 후엔 회식도 하면서 유대감을 높이는 것도 팀워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퇴근 후 디펜서들과 함께 인근 삼겹살집에 왔다.
"삼겹살 너무 마싰써요. 이 쐄장 최고예요."
라울은 연신 삼겹살을 찬양하며 불판에 있는 고기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오늘 회식에서 삼겹살을 해치운 기여도를 나눈다면 단연 라울이 1등이다.
쌈 하나에 소주 한 잔 원칙을 착실히 지키고 있는 라울을 보며 최수영이 물었다.
"그런데 라울, 힌두교는 금주 아니에요?"
"금주 마자요. but 지역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달라요."
"어? 그럼 라울은 소도 먹어요?"
"No! 소는 절대 안 돼요. 소는 안 먹어요. 그런데 Korean 삼겹살 너무 마싰써요. But 쏘주는 아직 좀 적응이 필료해요. 써요."
최수영과 대화를 하면서도 한 쌈 크게 싸서 입에 넣은 라울은 소주잔을 들어 짠을 청했다.
문득 라울의 대화에서 점점 영어가 줄어간다는 것을 느낀 나는 라울에게 물었다.
"라울, 한국말이 엄청 빨리 늘었어요. 공부 열심히 하나 봐요?"
"하하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써요. 나 이미 다섯 개 나라 말 할 수 있써요. 한국말까지 완전해지면 이제 여섯 개예요."
깜짝 놀란 박강훈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물었다.
"라울! 5개 국어를 한다고?"
라울은 놀란 박강훈을 쳐다보며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Bien sûr. J'ai travaillé avec des gens partout dans le monde."
"응? 라울, 갑자기 뭔 소리야 그게?"
"어머! 그거 프랑스어 아니에요, 라울? 하하핫. 근사하다."
"마자요, 프랑스어. 나는 전 세계 사람들과 같치 일했써요. 라는 뜻이에요."
주황색 옷을 입고 어눌한 한국말을 하며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 라울의 모습에 익숙해진 탓에 깜빡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라울은 전 세계를 누비며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100조 원대 자산가가 된 사업가였다.
문득 라울에게 이 사업의 미래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진작 물어보지 않았지?
"라울, 사업적인 측면으로 냉정하게 우리 메타디펜스의 미래는 어떨 것 같아요?"
그런데 내 질문을 들은 라울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거꾸로 나에게 물었다.
"Mr. Kim? 저 괴물한테서 사람 살리기 위해 메타디펜스 차린 거 아니었써요?"
"겸사겸사요. 굳이 솔직히 말하자면 돈 벌겠다는 생각이 먼저요."
"Oh my goodness. 몰랐써요. 난 Mr. Kim이 좋은 사람이라 자기 돈 써가면서 좋은 일 하는 줄만 아랐써요."
하긴, 내 영상을 보고 감동받아 하던 사업 다 접고 한국에 왔다고 했지.
근데 이 반응은 뭐야?
내가 하는 일이 거의 자선 사업에 가깝다는 말인가.
라울 정도 되는 사업가의 말이라면 결코 허투루 들을 순 없는 의견이다.
내가 애초에 사업 구상을 잘못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초기 자본금이 좀 과하긴 했지.
갑자기 진지해진 라울이 속사포처럼 물었다.
"이거 다 생각한 거예요? The exchange value of money? 그리고, Did you know the alien invasion was gonna intensify?"
갑자기 복잡한 얘기를 하려니 한국말로는 힘든 건 알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젠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돈의 가치 교환……? 아! 화폐 교환 가치? 그리고 뒤의 말은, 외계 침략이 뭐라고 한 거예요?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듣겠어요."
"Yes, right! 화폐 교환 가치. 뒤의 말은, 공격 강해질 거라고 이미 생각했는지 물은 거예요."
영어로 속사포처럼 물을 때와는 달리 다시 느리고 어눌해진 라울의 한국어를 듣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영어 울렁증은 죽을 때까지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러니까, 화폐 교환 가치를 고려했는지, 외계 침공이 거세질 거라는 걸 미리 알았냐는 건지 물은 거죠? 둘 다 맞아요. 그러니 이 회사를 만들었죠. 어때요? 라울이 보기엔 자본금만 너무 많이 들었고 미래는 전혀 없어 보이나요?"
내 잔에 소주를 따라준 라울은 짠을 권하며 말했다.
"나는 Mr. Kim이 단순히 좋은 사람인 줄만 알았써요. 나중에 아주 큰돈이 생기겠지만 그건 좋은 일 했쓰니까 Mr. Kim이 받게 될 보상이라고 생각했써요. but 이제 보니 You are the best businessman 이었써요. 천재 사업가!"
소주를 한 잔 쭉 들이켠 라울이 말을 이었다.
"이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Mr. Kim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거예요. 나 라울이 보증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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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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