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14화 (14/200)

14화

* * *

2월 4일, 메타디펜스 회의실.

그럴 필요 없다는데도 정보기술팀 김 과장까지 나서서 카메라와 스크린을 점검하며 화상 회의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국무조정실에서 열리는 '073행성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하는 날이다.

아직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정치인들이 그렇게 고압적(高壓的)이라고 하던데, 과연 회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다.

세종시에서는 이미 회의가 진행 중에 있었고 나에게 질문할 차례가 되면 스크린으로 알려준다고 하였다.

그전까지 나는 무슨 회의가 진행 중인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빈 스크린을 쳐다보고 기다려야만 했다.

회의 시작 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나자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세종시에 가서 회의에 직접 참석을 할 걸 그랬나.

아, 그렇게 했어도 어디 빈방에 지금까지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있었겠군.

두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갈 때쯤 드디어 곧 회의에 참여하게 되니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잠시 후 비어 있던 화면에 회의실 전경이 비치며 우측 하단엔 조그맣게 나의 모습도 보였다.

화면 구석에 보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회의 진행자가 간단히 내 소개를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메타디펜스 대표 김수호입니다. 저희 회사에서 진행 중인 디펜서 활동과 관련해 물으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 이렇게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인물이 가장 먼저 자기소개를 하였다.

- 안녕하십니까. 한민국 국무총리입니다. 괴수 처치에 대한 귀사의 목적과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어 회의 참석을 요청드렸습니다. 직접 대면하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렇게 화면으로 뵙게 되어 아쉽습니다.

정중한 말투로 참석 거부에 대한 불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도 작년까지 말발로 먹고살던 사람이다, 이거야.

"송구합니다. 서울 한복판에 괴수들이 처음 출연하고, 이 괴수들이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을 노린다는 소식을 접한 후 언제라도 괴수들에게 달려갈 수 있도록 아직 한 번도 수도권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화상 회의를 요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에 비친 사람들 중 방금 내 말을 듣고 누가 인상을 찌푸리는지 훤히 다 들여다보였지만 그들은 내가 어딜 보고 있는 줄 모르겠지.

현장에 있었으면 대번에 눈이 마주쳐버렸을 것이다.

군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 가장 인상을 구기고 있는 저 두 사람이 합동참모의장과 수도방위사령관이겠군.

아니나 다를까 그 둘 중 한 사람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 합참의장이오. 괴수들이 출몰할 때마다 나타나 그것들을 처리하는 목적이 코인 채굴이라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맞습니다. 메타디펜스는 영리를 위한 기업으로 괴수들을 처리함으로 채굴되는 넥시트코인이 주 수입원입니다."

- 국민들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괴수들을 돈벌이 상대로 여긴다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작부터 세게 들어오네.

"괴수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며 동시에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유익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홍보팀에서 매일 체크하고 있는 SNS 반응을 통해 대부분의 국민들도 저희의 활동이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미리 짜놓은 각본이 있는지 아직 합참의장과의 대화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이 말문을 열었다.

- 수도방위사령관입니다. 디펜서들의 활동으로 인해 군사 작전에 지장을 초래하진 않을까 하는 여론이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뭔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저렇게 뻔뻔하게 내뱉을 수 있지?

"죄송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홍보팀 직원들이 매일 모든 SNS 매체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런 여론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SNS? 그게 여론이란 말입니까?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 여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채널을 알려주시면 저희도 참고하겠습니다."

이제 확실하군.

국방부에서는 우리가 디펜서 활동을 못 하게 막을 생각이구나.

"우리 메타디펜스는 이미 괴수들과의 전투 중인 군인들을 수차례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없었다면 군에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것입니다. 미국에선 이미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넥시트코인을 매입하여 슈퍼 솔저를 양성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메타디펜스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니 군대에도 좋은 일 아닙니까?"

합참의장이 테이블을 쾅 치며 말했다.

- 군을 도와준 게 아니라 코인인가 뭔가를 채굴하기 위해 공을 가로챈 것 아니오! 여론을 떠나 이는 실제 군사 작전을 방해한 것으로 엄중히 처벌될 수 있는 건임을 알고 계시오?

화면에 비치지 않는 곳에 앉아 있던 이혁진 실장과 홍보팀장이 바삐 노트북을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나에게 노트북을 돌려서 화면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이 영상을 보여주세요, 대표님."

눈빛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잠시 화면으로 영상 하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길지 않은 영상이니 잠시만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보팀장이 바로 내 얼굴 대신 노트북의 영상을 국무조정실 회의실로 송출했다.

드론이 촬영한 듯한 영상에는 총에 맞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괴수들로 인해 당황한 군인들이 뒤로 물러서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앞쪽에 있던 군인 몇 명이 괴수의 앞발과 이빨에 쓰러져 나가기 시작할 무렵 우리 회사의 디펜서 네 명이 나타나 괴수들을 베어 넘기며 군인들을 구해 냈다.

굳이 길게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 그쯤에서 영상을 멈추고 다시 내 모습을 송출했다.

"저 때 저희 회사가 공을 가로채지 않았다면 저곳의 군인들이 몇 명이나 더 순국(殉國)하게 되었을까요?"

합참의장이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국방부에서는 우리 활동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럼 여기 모인 정치인 중에 우리 편은 없는 건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런 말씀까지는 죄송하지만 지금 질문을 주신 두 장군님들과는 달리 저 화면 속 청년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군에 징병된 장병들입니다. '정부'에서 저 젊은이들의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우리 회사의 활동을 꼭 막으시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저희도 더 많은 국민의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이 일에서 물러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는 국방부와 얘기를 했지만 이번엔 '정부'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어 말했다.

이제 다들 입장을 밝혀 보시지.

- 행안부 장관입니다. 회의가 너무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으니 모두 잠시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안부에서도 김 대표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기업이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도 지켜줄 수 있으니 이러한 활동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앞선 두 군인 보다는 차분한 목소리로 행안부 장관이 말을 이어 나갔다.

- 하지만 지금은 범국가적인 재난 상황입니다. 정부, 기업, 국민 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이때 굳이 군, 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며 독자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더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정부와 유기적으로 움직여줄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급박하고 정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틈도 없이 괴수들이 출몰해 왔던 것뿐입니다. 급한 마음에 회사 차원에서 괴수들을 물리칠 준비를 한다는 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국민의 안전을 더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저희 메타디펜스는……."

삐 삐 삐.

한창 말하고 있는 와중에 회사 경보 시스템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오? 마침 타이밍 좋은데?

나는 화상 회의 카메라에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 회의 참석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으므로 저희 회사는 일단 기존 방식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이 실장님! 어딥니까?"

"분당입니다!"

"바로 출동 준비하세요!"

다급히 일어나 회의실 문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직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합참의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사령관! 어떻게 민간 회사에서 침공 사실을 먼저 알 수 있나? 어서 수방사 관제실 연결해!

얼마 전 뉴스에서 괴수들이 탑승한 비행 물체가 우주 멀리에서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대기권 상층부에서 갑자기 생겨나 지상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NASA에서도 아직 사전에 탐지해 낼 수 있는 방법을 못 찾았다고 했다.

아직은 30만 수도권 택시 기사의 제보가 군 경보 시스템보다 빠른 모양이다.

정보기술팀 김 과장, 추가 인센티브 지급 확정.

* * *

분당으로 가는 헬리콥터 안.

박강훈이 물었다.

"그런데 왜 이놈들은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만 나타나면서 한 번에 오지 않고 이렇게 뜨문뜨문 나타나는 겁니까?"

처음엔 나도 의문이었던 점이다.

하지만 저들도 우리처럼 시스템이 제시하는 조건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 답은 간단했다.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스템이 지구에 한정된 넥시트코인을 지급했듯이 저들도 지구를 침공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는 게 아닐까요?"

"Mr. Kim의 말이 맞아요. 저들도 지금 채굴 비슷한 걸 하고 있따고 생각해요."

라울의 말을 들은 최수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더 강해질지 모르는 저들의 공격을 대비하는 게 우리의 채굴 목적이라면, 저들도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채굴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말이네요?"

"그럴 수 있겠죠. 본진이 지구로 넘어오기 위해 넥시트코인 같은 무언가를 채굴하고 있는 거라면 곧 저런 괴수들이 아닌 지적 생명체가 넘어오는 날이 오겠죠."

우리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를 악물어 안 그래도 각진 턱이 더 각져졌던 박강훈이 창밖으로 보이는 분당 시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저 괴수놈들을 빨리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이군."

헬리콥터가 서현역 상공 30미터 정도 위치까지 내려가자 우리는 미리 헬리콥터에 메여 있던 로프를 바닥으로 집어 던진 후 일제히 로프를 타고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네 명의 디펜서가 바닥에 내려선 후 각자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철제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자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드론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서 창밖으로 괴수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 중 몇몇이 우리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디펜서다!"

"메타디펜스 파이팅!"

"괴수들을 쓸어 버려요!"

라울과 최수영이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 두 사람…….

관종이다.

"훈련대로 대형 유지하고! 채굴 시작합니다! 라울! 박 상사님! 왼쪽! 저는 오른쪽! 수영 씨는 후방 지원!"

우리는 빠르게 괴수들을 베고 찌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난번 침공 때와 다르게 이번엔 더 크고 강한 검은 괴수의 비율이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역시 침공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이 실장님, 지난번 개미 같은 거대 괴수는 아직 안 나타났나요?"

내 목소리가 전략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자 여러 개의 대형 모니터로 우리의 활동과 정찰 드론들의 영상을 보고 있던 이혁진 실장이 마이크에 대고 답했다.

- 네!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착륙하지 않은 비행 물체가 세 개 공중에 남아 있습니다.

"거기서 뭔가가 나오겠군요. 잘 주시하다가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 * *

2월 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8,072개]

[단가 29억 원]

[평가 금액 52조4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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