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 *
박강훈과 합을 맞추며 빠르게 괴수들을 처리해 나가던 라울이 말했다.
"확씰히 트레이닝의 효과가 있써요. 저번 채굴 때보다 움직임이 훨씬 가벼워졌써요."
라울의 방패에 막힌 검은 개의 목을 벌목도로 반쯤 베어 버린 박강훈이 다시 같은 부위에 벌목도를 강하게 내리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향상된 신체 능력이 훈련들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습니다."
"라울하고 전 이런 것도 연습했어요. 하하핫. 한번 볼래요? 라울!"
최수영이 라울에게 소리치자 라울이 몸을 반쯤 틀어 방패를 최수영 쪽으로 비스듬하게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수영이 화살 한 발을 라울의 방패를 향해 날렸고 그 화살은 라울의 방패를 스치며 방향을 틀더니 내 쪽에 있는 검은 개의 등에 날아와 꽂혔다.
"하하핫! 성공!"
나는 갑자기 등에 화살이 꽂혀 어리둥절해하는 개를 마그네타 검으로 두 동강 내버린 후 말했다.
"라울, 수영 씨. 멋지긴 한데, 그냥 바로 쏘는 게 더 쉽고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트레이닝 해두면 언젠가 써먹을 날이 있지 않겠써요?"
"맞아요. 라울이 먼저 제안한 거예요. 뭐든 연습해 두면 좋다면서."
훈련 시간에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저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향상된 운동 신경 탓에 아마도 이 샷을 성공하기까지는 서너 번 연습해 본 게 전부였을 테니까.
박강훈과 라울의 말대로 우리 네 명의 디펜서는 매일의 트레이닝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힘과 운동 신경을 갖춘 네 명의 디펜서는 검술, 창술, 격투술 등 모든 분야의 교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도로 훈련을 흡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총기를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은 지참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각종 화기류의 사격 훈련도 진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번보다 확실히 빠르고 순조롭게 채굴이 진행되었다.
근처의 괴수가 거의 처리되었을 때쯤 이어폰을 통해 이혁진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공중에 남아 있던 비행 물체 세 개가 일제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딘가요? 가장 가까운 착륙 예상지점은?"
- 그게……. 비행 물체 세 개 다 지금 계신 곳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이혁진 실장의 말대로 세 개의 비행 물체가 정확히 우리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젠 아무 데나 떨어지지 않고 타깃을 정하고 움직인단 말이지?
좋아, 붙어보자.
눈으로는 하늘을 쳐다보면서도 벌목도로는 괴수의 몸통을 계속해서 내려치고 있는 박강훈이 말했다.
"저것들이 지금 우리를 노리고 이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건방진 놈들. 본때를 보여줘야겠습니다."
"네, 박 상사님. 아주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죠. 하지만 항상 조심하세요. 안전이 우선입니다."
나는 빠르게 점프해 바로 옆 상가건물 옥상으로 올라섰다.
"저도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연습을 해두었으니 한번 써먹어 보겠습니다."
"Mr. Kim도 따로 연습한 거 있써요?"
"물론이죠. 먹히면 좋을 텐데요.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요."
나와 가장 가까운 비행 물체가 내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까지 내려오자 나는 온 힘을 다해 비행 물체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마그네타 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검 끝이 비행 물체에 닿을 수 있을 때쯤 그대로 비행 물체를 수직으로 베어 버렸다.
쩌저적!
마그네타 검은 비행 물체의 극히 일부분만을 베어내며 지나갔지만 비행 물체는 마치 거대한 칼에 두부가 썰리듯 반으로 썰려 나갔다.
물론 안에 타고 있던 거대 괴수도 땅에 발도 붙여보지 못한 채 비행 물체와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Mr. Kim! So amazing!"
라울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이게 되네?"
놀란 것은 거대 비행 물체를 통째로 베어 버린 나도 마찬가지였다.
괴수들과 싸울 때 괴수의 몸에 검이 박히는 깊이와는 상관없이 검이 지나가는 방향대로 모두 두 동강이 나버린 점에 착안해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거대한 비행 물체에도 그대로 먹혀들어 갔다.
[상품명 : 마그네타 검]
[가격 : 20,000NXT]
[우주의 중성자별 중에서도 가장 밀도가 높고 가장 높은 자기장을 내뿜는 '마그네타 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입니다.]
[마그네타 금속은 내뿜는 자기장이 너무 강해서 반경 수천 킬로미터 내 모든 물질을 찢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 '마그네타 검'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베고자 하는 사용자의 의지가 닿는 물질에만 한정되어 반응합니다.]
상품 설명에 나와 있는 '안정성을 고려해 사용자의 의지가 닿는 물질에만 한정되어 반응한다.'는 설명은 검의 위력을 제한한다는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사용자의 의지와 함께 검이 닿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대로 베어 버린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반으로 갈라진 채 땅에 처박혀 있는 비행 물체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최수영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수호 씨, 그 검 20,000NXT 씩 할 만하네요."
"내 벌목도가 초라해지는군. 그래도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지. 라울! 저쪽에 떨어진 괴수는 우리 둘이 한번 처리해 봅시다!"
"좋아요, Mr. Park. 우리 둘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보여줘요."
라울과 박강훈이 가까운 곳에 떨어진 비행 물체에서 기어 나오고 있는 거대 개미에게 달려가는 사이, 또 다른 비행 물체에서는 다리가 수십 개에 달하는 거대한 문어가 한 마리 기어 나왔다.
나는 문어의 머리통을 한 번에 베어 버리기 위해 높이 점프하며 날아들었지만 내 몸을 쳐내기 위해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수많은 다리들에 가로막혀 다리 몇 개를 베어내고 다시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거대 문어는 옆에 있던 자동차를 한 대 들어 올리더니 나를 향해 집어 던졌다.
피하기엔 너무 빨리 이어진 공격이었기에 나는 검을 들어 날아오는 자동차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하지만 그사이 다른 다리 하나가 바로 이어서 공격해 들어왔고 그 다리는 내 옆구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윽!"
문어의 다리에 옆구리를 맞은 나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한참 떨어진 건물까지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수호 씨! 괜찮아요?"
최수영이 빠르게 몸을 날려 내 옆으로 와 하얀 장갑으로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 몸을 틀어 어깨부터 충돌하지 않았더라면 머리를 부딪쳐 이번 공격 한 방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 강철 문어 자식. 다리를 전부 베어 버리겠어."
잠시 개미 쪽을 바라보자 라울의 방패로 개미의 불기둥을 잘 막아내며 라울, 박강훈 2인조가 개미를 상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호 씨, 저 문어 상대할 수 있겠어요?"
"잠깐 방심했던 것뿐이에요. 집중해서 잘 피하면 저깟 문어 다리 공격은 전부 피해 낼 수 있어요. 수영 씨는 지난번처럼 저쪽 개미 눈알을 공략해 줘요. 이 문어는 제가 처리합니다."
"알겠어요.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바로 신호해요."
"수영 씨도요."
치료를 마친 최수영이 다시 몸을 날려 개미 쪽으로 떠난 사이, 가까이 다가온 거대 문어가 다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검을 고쳐 쥐고 일어선 나는 문어에게 달려들며 차근차근 다리를 하나씩 베어내기 시작했다.
비행 물체를 반으로 갈라버린 후 마그네타 검의 위력에 취해 성급하게 문어의 머리통을 바로 노렸던 것이 실수였다.
서두르지 않고 날아드는 다리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집중하자 거대 문어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 내며 다리를 하나둘씩 베어 나갈 수 있었다.
다리가 절반 넘게 잘려 나가자 문어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빈틈이 보이는구나."
좌우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문어의 공격을 피해 낸 나는 그 다리를 그대로 밟고 뛰어 올라가 문어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문어를 해치운 후 개미 쪽을 바라보자 아직 완전히 해치우진 못했지만 두 눈에 수십 발의 화살이 꽂힌 채 다리가 모두 잘려 나간 개미를 세 명의 디펜서가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도 곧 끝나겠네. 이 실장님, 다음 타깃은요? 어디가 상황이 제일 안 좋아요?"
- 탄천 넘어 판교 쪽 상황이 안 좋습니다. 이미 상당수 괴수들이 건물 안까지 침투해 들어갔어요.
"헬기 이쪽으로 보내세요. 헬기로 이동합니다."
근처 건물 옥상에 있던 헬기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아왔고, 거대 개미를 마저 처리한 네 명의 디펜서는 헬기 아래로 늘어져 있는 로프를 잡은 채 그대로 공중을 날아 판교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로프를 놓고 뛰어내리자 사람들을 찾으며 도로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던 괴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고맙게도 알아서 모여드는 괴수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 디펜서들에게 말했다.
"정문이나 전면 유리가 심하게 부서진 건물들 보이죠? 그곳들로 괴수들이 일부 들어간 것 같아요. 위험할 순 있지만 지금부터 각자 한 건물씩 맡아서 들어갑니다. 사람들의 안전부터 확보하세요.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신호하고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오세요."
네 명의 디펜서는 정문이 가장 많이 훼손된 건물들을 찾아 빠르게 이동했다.
그 와중에 어떤 건물의 1, 2층 모든 문과 창문에 강철 문이 덧대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MB게임즈라는 간판이 건물 외벽에 크게 새겨져 있는 게임 회사였다.
괴수들로부터 직원들을 지키기 위해 미리 설치해 두었던 건가?
누군지 몰라도 뛰어난 혜안(慧眼)을 가진 대표나 책임자가 있는 회사네.
난리 통의 중심에 있는 건물임에도 그 게임 회사 건물만은 괴수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건물들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저 건물을 공략할 필요는 없었겠지.
나는 괴수의 침공을 사전에 방비한 게임 회사에 감탄하며 그와는 달리 1층 통유리가 거의 다 깨지다시피 한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로비에는 수많은 사람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고 2층으로 달아나려는 사람들을 괴수들이 뒤쫓았는지 2층으로 올라가는 커다란 계단도 거의 다 부서져 있었다.
부서진 계단 중간중간을 밟으며 두 걸음 만에 2층으로 올라가자 더 이상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한 괴수들 십여 마리가 2층 로비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곳엔 1층보다 더 많은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빠르게 괴수들을 베어 넘긴 나는 바로 다음 건물로 이동했다.
괴수들의 덩치가 큰 만큼 에스컬레이터가 있거나 넓은 폭의 계단이 있는 건물의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나 좁은 비상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그 피해가 1층에서 끝나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인구 밀집 지역에 짓는 건물들의 건축 양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근 건물을 거의 정리해갈 때쯤 이어폰으로 이혁진실장을 불렀다.
"이 실장님, 근처 건물들은 다 정리가 된 것 같아요.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는데 인근 격전지가 어딘가요?"
- 야탑역 인근에서 군부대와의 충돌이 있습니다. 인근 괴수들도 더 이상 해칠 사람들을 찾지 못하고 그쪽으로 다 몰려들고 있습니다.
"헬기 다시 보내주세요. 이번에도 헬기로 이동합니다."
* * *
2월 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8,102개]
[단가 29억 원]
[평가 금액 52조5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