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 *
야탑역 부근에 도착하자 이미 그 일대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소총의 공격에는 쓰러지지 않는 괴수들을 처리하기 위해 군에서 동원하는 무기의 화력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그러한 격돌은 시가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네 명의 디펜서가 군 진영 한가운데 내려서자 순식간에 우리 주변을 소총을 든 군인들이 포위했다.
심지어 총구도 우리를 향해 겨눈 상태였다.
뭐 하자는 거야, 이거?
"메타디펜스에서 나온 디펜서들입니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왔어요. 총을 거둬주세요."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군인 중 한 명이 한발 앞서 나오며 대답했다.
방탄모에 대위 계급장이 새겨진 군인이었다.
"수방사 대위 김수철이오. 어떠한 민간인이라도 군과 괴수 간의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소. 이곳을 떠나거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체포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으로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포?
우리를?
저 앞에서 지금 탱크 포신을 물어뜯고 있는 검은 괴수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일 텐데.
결국 이렇게 나온다는 말이군.
"저 앞에 포격으로 부서져 가는 건물들이 안 보이십니까? 저 안에 무고한 시민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미 전차 몇 대도 괴수들에게 찢겨진 것 같은데 그 안의 군인들은요? 길을 열어주면 우리가 더 빠르고 안전하게 괴수들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김수철 대위가 다시 굳은 표정을 한 채 답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괴수와의 전투에 절대로 민간인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사령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십시오. 이곳은 우리 군에서 지켜낼 것입니다."
나와 김수철 대위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십여 명의 군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박강훈이 화를 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군인이라면 전시에 국민의 안전부터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가 도울 수 있다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박 상사님, 지금은 민간인이시지만 20년 가깝게 군 복무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상부의 명령이라는 게 뭔지 더 잘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돌아가 주십시오. 경고입니다."
김수철 대위는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드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군사 작전 지역으로 지금 상공에 떠 있는 저 드론들도 모두 바로 철수시키지 않으면 격추하겠습니다."
박강훈이 벌목도를 들고 있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의 철수 결정으로 몇 명의 사상자가 더 늘어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니 다음 활동을 위해 오늘은 물러서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 이 모습은 드론으로 모두 촬영이 되고 있다.
어디, 이 영상이 퍼지고 나서도 그따위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좋습니다. 철수하겠습니다. 이 실장님, 디펜서 본사로 복귀합니다.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헬기 이동시켜 주세요. 박 상사님, 라울, 수영 씨. 오늘은 이만 복귀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양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라울과 칼끝의 흔들림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박강훈을 데리고 나는 야탑 전투 현장을 빠져나왔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최수영이 물었다.
"어이없네, 진짜. 그런데 수호 씨, 우리가 이대로 물러나면 여기 사상자가 엄청나게 발생할 텐데요?"
"어쩔 수 없어요. 다음 활동을 위해서라도 오늘 영상을 언론과 SNS에 뿌리고 여론의 힘을 얻는 수밖에요. 다음번 재난대책회의에는 내가 직접 세종시에 가서 참여하겠어요."
건물 옥상에서 드론을 모두 회수한 우리는 군인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괴수들을 남겨둔 채 헬리콥터를 타고 강화도로 복귀했다.
* * *
다음날 예상했던 대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야탑역 일대에서의 대규모 전투로 발생한 사상자만 800여 명.
그 와중에 우리 쪽에서 공개한 디펜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의 영상은 온종일 모든 방송사의 뉴스에 첫 번째 보도 화면으로 사용되었다.
TV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메타디펜스 활동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거친 토론을 이어 나갔으나 각종 기사의 댓글과 여러 커뮤니티의 의견은 대부분 군을 지탄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메타디펜스가 돈벌이 수단으로 괴수 사냥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 회사의 활동을 반대하는 의견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대다수의 여론은 우리를 지지해 주는 듯했다.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디펜서의 활동을 막아 800여 명의 추가 사상자를 낸 군 관계자를 모두 처벌하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하루 만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대표님, 국무총리비서실에서 073행성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시라는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일정은요?"
"내일 오전 10시입니다."
"이번엔 직접 참석하겠다고 회신하세요."
"그리고 대표님……."
"네?"
"군사 작전 지역에서의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한 죄로 곧 검찰 출석 요청이 있을 예정입니다. 지금 영장 심사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법무팀 의견으로는 현재 비상계엄 중이기 때문에 바로 군사 재판에 회부되실 수도 있다고 합니다."
"네. 충분히 예상하던 일이에요."
군사 작전 중인 지역의 영상을 멋대로 유포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향후 우리 회사의 활동을 위해서는 여론의 힘을 등에 업고 어떻게든 국방부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 * *
다음 날, 세종시.
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발견한 수도방위사령관이 주변 장관과 의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곧 군사 재판에 회부될 범죄자를 굳이 오늘 회의에 참석시킨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절차에 따라 조만간 군법재판소에서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입가에 비웃음을 띄운 채 나를 바라보는 수방사령관에게 말했다.
"준장님. 준장님을 처벌하라는 국민 청원이 40만 건 이상의 동의를 얻어 곧 국방부에서도 이에 대한 대국민 답변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수도방위사령관이 테이블을 탕 치며 일어서 소리쳤다.
"이 작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우리 군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 지금 비상계엄 상태인 거 몰라?"
"군이 우스워 보이는 건 아닙니다."
"뭐야?"
수도방위사령관이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으나 한민국 국무총리가 우리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진정들 하십시오. 국가 재난 사태에 대한 회의입니다. 차분히 의견을 나눠보시지요. 정 장관님, 4차 침공 관련 브리핑해 주세요."
정유석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번 분당 침공 관련 브리핑을 했다.
"분리 전 2개, 분리 이후 총 30개의 비행 물체가 분당, 판교 일대에 착륙했고 약 800여 마리의 괴수가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사상자는 2,348명, 추정 재산 피해액 약 650억 원입니다."
행안부 장관의 브리핑을 들은 한민국 국무총리가 말했다.
"정말 큰일이군요. 그런데 메타디펜스에서 보내주신 자료에 의하면 디펜서가 아예 관여하지 않았을 때 예상 사상자가 9천 명이 넘는다고 나와 있네요? 김 대표님, 이 자료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다행히 한민국 국무총리가 우리 회사 전략실에서 사전에 보내주었던 자료를 검토해 본 모양이다.
"자료에 나와 있듯 현재까지 출현한 괴수들을 5개 등급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펜서와의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그 괴수들이 등급별로 1분당 몇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는지 통계를 내었습니다.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내기엔 데이터가 많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현재까지의 지표로 통계를 내면 그 정도 수치가 나옵니다. 군 투입 이후의 1분당 사상자 통계와 군과 괴수의 전투 시간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회의 두 시간 전에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에만 따로 자료를 보내두었으니 국방부에서는 지금 처음 보는 자료일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황급히 책상 위의 브리핑 자료를 들춰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우리 자료를 나름 분석한 의견을 발표했다.
"통계를 낸 방식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김 대표님 말씀대로 아직은 통계를 위한 데이터가 많이 부족해 예상 사상자 9천 명이라는 결과는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메타디펜스사의 활동이 분명히 사상자를 대폭 줄였다는 것 또한 사실임엔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자료를 급히 다 훑어본 듯한 합참의장이 의견을 냈다.
"단기적으로 메타디펜스사의 활동이 사상자를 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차 말씀드렸듯 지금은 전시에 상응하는 국가 재난 사태입니다. 고작 네 명의 영웅 놀이에 국가 안보가 좌지우지된다면 그건 우리나라가 충분히 괴수들의 침공에 대항할 수 있음에도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가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입니다."
자주국방이라.
그럼 뭐 메타디펜스는 외국의 전력이라는 건가?
"합참의장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군사력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디펜서들의 활동이 없어도 물론 저런 무쇠 괴물들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내는 데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결코 부족함이 없죠. 하지만 저희 메타디펜스 역시 한국의 회사입니다. 외국의 전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끼어든다고 해서 그것이 자주국방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나라가 어려울 땐 언제나 민병(民兵)들이 함께 외세에 맞서지 않았습니까."
미리 약속했던 대로 지금쯤 함께 세종시에 내려왔던 박강훈이 내 검이 실려 있는 차를 타고 이 회의장에서 멀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검이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내 말을 듣던 합참의장이 대답했다.
"김 대표도 방금 우리 군이 충분히 괴수들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만 전쟁은 군에 맡기고 빠지십시오. 그럼 군사 재판 회부도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어떻게 저렇게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가 있지?
그때 내 옆에 갑자기 마그네타 검이 나타났다.
박강훈이 회의장에서 충분히 멀어진 모양이다.
갑자기 나타난 새까만 검을 본 회의 참석자들의 눈의 휘둥그레졌다.
회의장에 있던 군인과 경호원들이 급히 총을 꺼내 들어 나를 겨누기까지 했다.
설마 쏘는 건 아니겠지?
강화 수트를 입고 왔으니 꼭 쏴야겠다면 머리 말고 몸을 쏴주면 좋겠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께 실물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N마켓에서 판매 중인 상품 중 가장 비싼 마그네타 검입니다."
나는 왼손으로 볼펜을 들어 올리고 마그네타 검으로 볼펜을 그어 보였다.
물론 볼펜을 벨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마그네타 검은 얇은 볼펜조차 베지 못하고 그대로 볼펜의 표면을 긁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미 많은 영상에서 보셨듯이 그 커다란 비행 물체가 땅에 닿기도 전에 반으로 갈라버렸던 그 검입니다. 하지만 제가 베고자 하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이 볼펜 한 자루도 베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과학 기술로 이런 검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나는 국방부장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국방부장관님, 죄송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리나라 올해 국방비 예산이 57조 원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신기하다는 듯 검을 바라보고 있던 국방부장관이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답했다.
"맞습니다.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겁니까?"
"이 검의 가격이 오늘 시세 기준 60조 원입니다. 우리나라 1년 치 국방비보다도 비싼 이 검은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게 되팔 수도, 양도할 수도 없죠."
검을 볼펜에서 떼어낸 나는 내 앞에 있는 테이블에 검 끝을 살짝 가져다 대었다.
이번엔 베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채.
검 끝이 테이블에 닿자마자 테이블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국방부나 정부와 척을 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검으로 그저 소중한 국민과 군인들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애국이 아니겠습니까? 애국, 자주국방, 자국민 보호, 가고자 하는 길이 같은데 굳이 이렇게 계속 반목할 필요가 있을까요. 부디 저희 회사의 뜻과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을 잘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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