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18화 (18/200)

18화

* * *

회의를 마치자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고 나는 디펜서들과 함께 인근 돼지갈빗집에서 회식을 했다.

요즘은 또 라울이 돼지갈비와 소맥에 한창 꽂혀 있었다.

소맥을 기가 막힌 비율로 네 잔을 만 라울이 자신이 탄 소맥을 우리에게 한 잔씩 나눠주었다.

"레이디 퍼스트. 샤넬 여신 님, 받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오렌지 탱커 님."

라울은 끽끽 대고 웃으며 나와 박강훈에게도 술잔을 건넸다.

"우리 그림자 검객 님도 받으시고, 연참 딜러 님도 받으세요."

술잔을 받은 박강훈이 짠을 위해 높이 잔을 치켜들며 물었다.

"아니, 근데 왜 우리는 탱커고 딜러인데 왜 수영 씨만 여신인 거야?"

"하하핫. 박 상사님, 질투 나세요? 그야 제 미모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그런 거 아닐까요?"

"오우, 수영, 뭐 좀 예쁘긴 하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라울은 지나치게 솔직한 인도인이었다.

"뭐예요?"

지금 서로를 부르고 있는 별명들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어준 우리 네 디펜서의 별명이었다.

디펜서 수트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샤넬 스타일로 요구했던 최수영은 자신의 영상이 퍼지면서 실제로 샤넬에서 협찬도 들어오고 화보 촬영도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 샤넬 여신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샤넬 본사에서 디펜서 수트 제작 참고용으로 사용될 계절별 신상품 디자인을 우리 회사로 직접 보내주고 있을 정도이니 그런 별칭이 생길 만도 했다.

화려한 오렌지색 수트를 입고 항상 맨 앞에서 커다란 방패를 들고 싸우는 라울은 오렌지 탱커로 불렸고, 큼지막한 벌목도로 아무리 큰 괴수라도 한 번 내려찍은 곳이 잘려나갈 때까지 계속 같은 곳을 내려찍는 박강훈은 연참 딜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새까만 검을 들고 검은 잔상만을 남기며 이곳저곳을 베고 다니는 나에게는 그림자 검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물론 최수영 외에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유치한 별명을 딱히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박강훈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영상 하나를 틀어 보여주었다.

"대표님, 이 영상 보셨습니까? 미군 슈퍼 솔저요. 화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영상 속 슈퍼 솔저는 마치 로봇처럼 생긴 두꺼운 철제 갑옷을 장착한 채 양팔과 등에 엄청난 화력의 무기들을 달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우리 네 명의 디펜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마도 넥시트코인으로 신체 능력만 강화한 후 갑옷이나 무기들은 미군의 기술력으로 개발한 것들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반 사람이라면 하나도 들기 무거워 보이는 중화기들을 몇 개씩 이곳저곳에 달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괴수들에게 화력을 퍼붓는 모습을 보니 마치 어렸을 때 보았던 로봇 만화의 주인공 같았다.

심지어 등에서 불을 뿜으며 잠시 날기까지 했다.

영상을 보여주던 박강훈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우리도 총기를 사용하게 해주면 훨씬 그놈들을 빨리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지금 같으면 40밀리미터 기관포 정도는 한 손으로 들고 쏠 수 있을 거 같은데. 기관포로 반병신 만들어 놓고 이 벌목도로 막타만 치고 다니면 지금보다 훨씬 빨리 해치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표님, 아직도 총기 사용 허가는 어림없답니까?"

"네. 몇 차례 요청을 해봤지만 아예 말도 통하지 않아요. 그리고 허가가 떨어진다 해도 사용해야 할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총기를 사용했다가 민간인이 다치기라도 하면 당장 우리 회사의 채굴이 금지될 거예요."

영상을 유심히 보던 라울이 말했다.

"미스터 킴 말이 맞아요. 저건 대 괴수전을 위해 미군에서 특별히 만든 화기들 같아요. 일반 화기를 사용했다간 우리도 한국 군인들처럼 전투할 때마다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몰라요."

갑자기 박강훈이 나에게 물었다.

"대표님, 대표님은 저 미국 슈퍼 솔저랑 붙으면 이길 자신 있으십니까?"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 강철 로봇을 뒤집어쓴 인간 병기랑 굳이?

"아휴, 저런 걸 제가 어떻게 이겨요. 저 봐요, 지금 등에서 뭐 미사일 같은 거 나가는데요?"

"지난번에 탱크가 실수로 대표님 쪽으로 쏜 포탄을 검으로 갈라버리는 거 다 봤습니다."

"운이 좋았죠, 뭐. 사람이 탱크가 쏜 포탄을 어떻게 검으로 갈라요."

최수영이 박강훈의 말을 거들었다.

"나도 수호 씨가 포탄 자르는 거 똑똑히 봤어요. 처음엔 그대로 맞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다고요."

"운이 좋았다니까요. 하하하. 고기 타요! 얼른 고기나 드세요."

그제야 다 익은 돼지갈비에 젓가락을 가져가는 박강훈과 최수영과는 달리 라울은 이미 큼지막한 쌈을 입에 넣고 씹으며 웃고 있었다.

"한국에 오길 너무 잘했어요. 미스터 킴과 미스터 박과 수영과 함께하는 내 두 번째 인생은 정말 최고예요!"

라울은 처음엔 최수영도 미스 최라고 불렀으나 그 의미가 우리나라에선 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최수영만 이름으로 불러주고 있었다.

* * *

다음 날.

오후에 수도방위사령부 지휘관들과의 회의가 있어 점심때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수방사 본부로 향했다.

박강훈과 최수영이 동행을 요청했지만 갑자기 침공이 일어나면 세 명의 디펜서라도 바로 출동해야 하기에 나 혼자 차를 몰고 관악구로 향했다.

회의 때문에 나선 길이지만 오랜만에 혼자 차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재작년만 해도 이런 고급 차를 대리운전해 주며 밤마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었는데 지금 웅장한 엔진 소리를 뽐내며 달리고 있는 이 G바겐AMG는 이제 여러 대가 된 내 차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2022년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괴수들에게 칼질을 하다가도 그 다음 날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청와대에 드나든 것도 벌써 수차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닌 사람들도 누구나 나를 대표님이라고 불렀고 이젠 그 호칭도 너무 익숙해졌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 환경만 바뀐 것 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아, 그대로가 아니라 힘, 체력, 운동 신경이 128배나 강해졌구나.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현실감이 없다고 해서 학원 강사와 대리운전을 하던 때가 딱히 더 실감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너무 다른 두 상황 속에 있다 보니 내 두 가지 모습이 모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침공 신호였다.

급히 이어폰을 꽂자 이혁진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표님! 연결되셨습니까?

"네. 침공이 시작됐나요? 위치는요?"

- 강서구 마곡지구입니다!

마곡?

지금 나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식물원 인근을 지나고 있고 조금만 더 가면 발산으로 나가는 출구가 나온다.

"제가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먼저 출동할 테니 다른 디펜서들은 바로 이곳으로 이동하세요!"

이어폰 너머로 박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대표님! 그쪽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최수영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갈 때까지 조심하세요, 수호 씨.

올림픽대로를 빠져나간 후 발산역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마곡역 방향으로 핸들을 틀자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비행 물체가 두 개 보였다.

오늘은 또 몇 조각으로 갈라지려나?

요즘 들어 갈라지는 조각의 숫자가 적어지고 대신 각 조각의 크기가 커져 가고 있었다.

그만큼 안에 타고 있는 괴수의 크기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날은 해체 전 비행 물체가 네 개 다섯 개씩 나타나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두 개밖에 없는 걸 보니 일단 그리 큰 규모의 침공은 아닌 듯싶었다.

마곡역 사거리 도롯가에 차를 세운 나는 마그네타 검을 집어 들고 도로 위로 걸어 나왔다.

조각들이 갈라지고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가장 큰 조각을 노리고 그대로 점프해 그 비행 물체부터 반으로 갈라버릴 생각이었다.

잠시 후 비행 물체가 여느 때처럼 조각조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사방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가장 큰 조각은 아직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저 높이까지 한 번에 점프할 수 있을지 거리를 재보고 있는데 공중에 있던 그 조각의 뚜껑이 열리는 듯한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실장님, 비행 물체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뚜껑이 열렸다는 이야기가 있나요? 바로 검색 좀 해주세요."

- 네! 대표님!

잠시 후 이혁진 실장이 말했다.

- 아직 그런 뉴스나 SNS 소식은 찾지 못했습니다. 기획실 다른 직원들을 시켜 지금 사례를 더 찾아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대표님? 공중에서 비행 물체 뚜껑이 열렸어요?

"네. 공중에서 뚜껑이 열렸는데 거기서 지금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네요?"

아직 까마득한 높이였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시력도 월등히 좋아진 탓에 나만 홀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평소처럼 대피 장소로 이동해 철문을 굳게 걸어 닫느라 바빠 보였다.

몇몇 시민들이 대피소로 뛰어가다가 나를 발견하고 박수를 치거나 파이팅을 외쳐줄 뿐이었다.

한참을 그 비행 물체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기분 탓인가? 저 사람들 지금 나랑 눈 마주치고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그 사람의 얼굴이나 눈까지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서 있는 방향이나 모습이 마치 나와 마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이어폰으로 내 목소리를 들은 라울이 다급히 말했다.

- 미스터 킴, 뭔가 상황이 이상해요. 위험할 수 있으니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어디 피해 있는 게 어때요? 아직 한 번도 없었던 상황이잖아요.

- 그래요, 수호 씨. 우리 곧 도착하니 혼자 움직이지 말고 어디 피해서 기다려요. 아무래도 좀 불안해요.

나는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늦었어요."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마그네타 검을 수직으로 들고 나직이 말을 이어 갔다.

"저놈들, 이쪽으로 곧장 날아오고 있어요."

하늘에선 세 명으로 보이는 사람 형체가 뚜껑 열린 조각에서 뛰어내려 나를 향해 직선으로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내 앞에 세 사람이 내려섰다.

분명 사람이긴 한데 멀리서 보여서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내 앞에는 키가 4~5미터는 돼 보이는 강철 인간 셋이 서 있었다.

하나는 마치 중세 시대 기사 같은 갑옷과 투구를 입고 거대한 방패와 검을 들고 있었고 또 하나는 그보단 얇은 갑옷에 자신의 머리통만 한 철퇴를 두 개 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뒤에 서 있는 강철 인간은 이상한 지팡이를 들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그냥 몸도 스뎅 같은데 쇳덩이로 된 갑옷을 또 걸치고 있네?

가장 앞에 선 검과 방패를 든 기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

행성073 지적 생명체와 지구인과의 첫 번째 조우(遭遇)였다.

"이 실장님, N마켓 'Etc' 메뉴에 있는 그거 있죠. 통역기. 그거 하나 구매해 봐요."

- 통역기요?

"네. 뭐 그런 상품을 봤었던 것 같은데? 저놈들이 지금 나한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 아! 동시 통역기! 맞아요! 있습니다! 바로 구매하겠습니다.

[상품명 : 동시 통역기]

[가격 : 200NXT]

[행성073과 행성062의 모든 언어를 자동으로 통역합니다.]

마그네타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에 조금 큰 녹음기같이 생긴 물체가 하나 쥐어졌다.

자, 8천4백억짜리 상품을 또 사버렸다.

어디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둬.

* * *

2023년 2월 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9,642개]

[단가 42억 원]

[평가 금액 82조 5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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