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새로운 국면 】
다음날 오전, 각 부서의 모든 관리자급 직원들이 대회의실에 모였다.
오늘 아침 수방사에서 강철 인간의 심문 영상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심문 영상은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어 왔는데 하나는 무편집본 16시간짜리 영상이었고 하나는 한 시간짜리 편집본 영상이었다.
심문 내용을 가감 없이 보내주는 조건으로 강철 인간을 군에 양보했기에 무편집본도 따로 보내온 모양이었다.
무편집본은 전략실에서 따로 검토하기로 하고 지금은 편집본 영상을 같이 시청하기 위해 모든 관리자들이 대회의실에 모였다.
동시 통역기를 돌려가며 심문을 진행한 것을 보니 국방부에서도 넥시트코인 200NXT을 매수해서 N마켓 상품을 구매한 것 같았다.
비싸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최초로 외계 인간을 생포했으니 그 정도 투자는 할 수 있었겠지.
영상 화면에는 철퇴쟁이가 사방이 강철로 둘러쳐진 방 안에 앉아 대형 모니터를 통해 우리 쪽 심문관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 이름이 무엇입니까?
- 내 이름은 가스파르이다. 시엠브레 왕국 제4 기사단 소속이지.
- 지구에 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보낸 전투 동물들이 너희 왕국에서 유독 힘을 못 썼기 때문에 확인차 방문하였다. 막상 와보니 괴물 같은 놈이 있더군.
- 여기는 왕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입니다. 당신들이 보낸 괴수들로 인해 1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괴수들을 지구로 보낼 계획입니까?
- 그렇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군대가 이 지구로 넘어올 것이다. 너희들은 결코 우리 군대를 당해 낼 수 없다.
- 행성073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죠? 이곳으로는 어떻게 넘어오는 겁니까?
-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우리도 잘 모른다. 큐브에 마력이 쌓이면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는 차원의 문이 개방된다. 그리고 시스템인가 하는 곳에서 하늘을 나는 배를 제공해 주지.
- 큐브에 마력은 어떤 방식으로 쌓이는 거죠? 그 하늘을 나는 배는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 거기까지 너희들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다.
- 좋습니다. 우선은 신사적으로 대화를 풀어보도록 하죠. 하지만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우리 쪽에서도 다른 대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 천한 것들이 감히 지금 나 가스파르를 겁박하는 것이냐? 무슨 말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정한다.
- 일단은 좋습니다. 그럼 결국 그 큐브의 마력을 모아 우리 지구를 침공해 인류를 멸종시키고 당신들은 이곳에 정착할 계획입니까?
- 그렇다. 큐브의 마력 없이도 우리가 자유롭게 이곳에 넘어올 수 있었다면 이미 이 지구는 우리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 그동안 넘어온 괴수들과 이번에 넘어온 당신들은 모두 금속으로 된 몸을 가지고 있는데 행성073의 모든 생물들은 이렇게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 미개한 천민들이여. 우리는 이미 오래전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완성했다. 현자의 돌은 우리 몸을 금속으로 전환해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준다. 너희들에게 그동안 보낸 전투 동물들도 그렇게 만든 후 정신 지배 마법을 걸어 너희에게 보낸 것이다.
- 그럼 그 현자의 돌로 금속 신체를 만들기 전엔 우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까?
- 그렇다. 그 쉽게 늙고 약해빠진 몸뚱어리 조직도, 아무 경쟁력 없는 신체 크기도 모두 너희와 비슷했다. 지금 우리 행성에도 현자의 돌의 축복을 받지 못한 수많은 천민들은 너희와 같은 모습을 한 채 우리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지.
- 메타디펜스의 김 대표님에게 무언가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 전쟁이 일어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 쪽의 피해도 있을 터. 그것을 줄여보기 위한 몇몇 원로들의 의견일 뿐이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기사들은 그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
- 그 의견이란 게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 너희 지구인이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이고 우리와 협력한다면 그 남은 지구인들에게 현자의 돌의 축복을 나눠주고 지구에서 함께 공생한다는 의견이다.
- 현자의 돌의 축복을 나눠준다는 말은 그러면…….
- 그렇다. 너희도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단,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이고 우리에게 협력했을 때 말이지.
- 개체 수를 줄이라는 말은, 뭐 얼마나 줄였을 때를 말하는 겁니까?
- 우리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수의 인구만 지구로 이주할 계획이다. 나머지 천민들까지 다 데리고 올 계획은 없다. 그리고 너희도 우리와 같은 결정을 내릴 거라면 마찬가지로 소수 인원만 남아야겠지.
소수 인원만 남아라.
그럼 불멸의 축복을 나눠주겠다.
말도 안 되지만, 위험한 제안이다.
"잠깐 멈춰주세요."
나는 영상 재생을 잠시 멈추게 했다.
"홍보팀장님, 지금 바로 홍보팀 직원들을 총동원해 전 세계의 저명한 인권운동가나 언론인, 정치학자……. 아무튼 저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표명할 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찾아 그 영향력 순으로 리스트를 작성해 주세요."
"네. 대표님."
"리스트가 작성되는 대로 저에게 보고해 주세요. 우리가 모든 비용을 지원해서라도 그들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영상물을 하루라도 빨리 제작하고 유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걸로 세계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나면 곧 국제 기구의 각종 협약이 진행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하지만 홍보팀은 이대로 바로 움직여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영상마저 시청하시죠."
다시 재생한 영상에서는 그들의 생활상이나 과학 기술을 묻는 질문이 반복되었다.
아마도 직접적으로 그들의 전력을 묻기보다는 이런 질문을 통해 그들이 가진 무기의 화력 수준을 가늠해 보려는 심문인 것 같았다.
- 주로 이용하는 탈것은 무엇입니까? 그곳엔 비행기도 있습니까?
- 비행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물체 말입니다.
- 곤충이나 새를 금속화시키고 크기를 조절한 다음 정신 지배를 하면 손쉽게 타고 다닐 수 있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다른 물체가 필요한가?
하지만 대화는 심문관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은 무엇입니까?
- 워프.
- 워프요?
- 당연한 것 아닌가? …오늘은 그만하지. 너희의 쓸모없는 질문에 답해 주기도 지쳤다. 더 묻고 싶은 것이 있거든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해라.
이렇게 허무하게 한 시간짜리 심문 영상은 끝이 났다.
* * *
트레이닝 센터에서 오후 훈련을 마칠 때쯤 홍보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네, 팀장님."
- 대표님, 일단 1차 리스트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트레이닝 센터에 계신가요?
"아, 네. 이제 곧 훈련 마칠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씻고 홍보팀 사무실로 직접 가겠습니다. 거기서 회의하시죠."
- 네, 대표님. 회의 준비해 두겠습니다.
라울이 내 옆으로 와서 어깨를 툭 쳤다.
"미스터 킴."
"네, 라울."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미스터 킴, 지금 세상 걱정 다 짊어진 사람 같아요."
"그렇죠? 너무 걱정할 필요 없겠죠?"
"네. 그리고 영상 보다 말고 홍보팀에게 지시한 그 일. 정말 대단해요. 미국 정부에서 외계 인간을 처음 만났어도 이렇게 빨리 국제 협약을 위한 대안을 내놓진 못했을 거예요. 섣불리 국제 협약을 제시하지 않고 뒤에서 여론을 움직여 자연스럽게 협약이 이뤄지도록 하다니요."
"우리끼리 싸우는 건 막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미스터 킴,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에요. 리스펙트."
"전 지시만 했을 뿐인데요, 뭐. 아직 리스트를 보진 못했지만 저도 홍보팀에서 이렇게 빨리 리스트 정리를 마칠 줄 몰랐어요."
"미스터 킴. 이건 내 비즈니스 비밀인데, 특별히 알려 줄게요. 직원들은 대표의 능력을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라울은 엄지를 척 올리고 윙크를 해 보이며 아직 수리를 마치지 못해 뜯겨나간 채 방치되어 있는 트레이닝 센터 문을 통과해 샤워실로 향했다.
* * *
홍보팀과의 회의를 통해 선별한 전 세계에 영향력이 있으면서 그 제안이 얼마나 터무니없음을 강하게 표명할 만한 인물들에게 전화, e-mail, DM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뜻을 전달했다.
외계 종족을 처음 만난 지 불과 이틀도 지나지 않아 진행된 일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 방송, 뉴스, 개인 SNS 등을 통해 외계인들의 터무니없는 제안과 우리가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수많은 의견이 세계 곳곳에서 표명되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함께 흥분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행성073의 강철 인간들과 최초로 조우한 인물이 메타디펜스의 대표임이 알려지고 심지어 단신으로 그 강철 인간들을 모두 베어 버렸다는 것이 밝혀지자 얼마 전 상장한 메타디펜스의 주식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재무팀장과 주식 동향 관련 대화를 나누던 중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대었다.
침공 신호였다.
"팀장님, 침공이에요. 내일 다시 얘기하시죠."
"네, 대표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나는 바로 귀에 무선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에 연결한 후 이혁진 실장을 찾았다.
"이 실장님, 어딘가요?"
- 관악구 상공입니다!
"관악구 상공? 수방사! 수방사예요!"
- 수방사요?
"그 강철 인간을 구하러 온 게 틀림없어요. 우린 바로 수방사로 출동합니다. 이 실장님, 지금 바로 수방사에 연락하세요. 부대로 침공이 시작될 거라고!"
- 네! 대표님.
네 명의 디펜서는 바로 헬리콥터에 타고 수도방위사령부로 향했다.
"미스터 킴, 정말 그놈들이 동료를 구하러 온 걸까요?"
"아마 맞을 거예요. 분명 돌아간다고 말을 했었거든요. 그럼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왔다는 말인데 제가 두 강철 인간을 죽여 버려서 못 돌아간 게 분명해요. 그럼 이제 구하러 올 차례겠죠?"
박강훈이 벌목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온 거라면, 꽤 정예 멤버가 왔겠군."
"뭐가 왔든 간에 한번 붙어보죠. 특히나 그놈들 목적이 동료 구출이 맞는다면 이번엔 인구 밀집 시가지가 아니라 군부대 한복판으로 침공하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 없이도 수방사에서 그놈들을 완전히 압도할지도요. 호랑이굴에 걸어 들어간 셈이니."
어쩔 수 없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군에서 저들을 압도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자 특전사 출신 박강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몸이 강철이든 키가 5미터든 어쨌든 칼이나 철퇴나 들고 넘어오는 놈들 아닙니까."
"미스터 팍. 그렇게 단정할 수도 없어요. 우리 미스터 킴 실력 알잖아요? 포탄도 검으로 갈라버리는 미스터 킴도 감당이 어려워서 신체 강화 상품을 또 구매하게 만든 놈들이에요."
"그건 또 그렇네. 어쨌든 가서 붙어봅시다!"
"그래요. 가서 붙어보죠."
* * *
2월 9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9,572개]
[단가 42억 원]
[평가 금액 40조 2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