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 *
네 명의 디펜서는 주말 동안 출국 준비를 마치고 월요일에 전용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공항으로 이동했다.
미리 일본으로 출국했던 정보기술팀 직원들이 도쿄에 서버실을 마련해 둔 덕에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굳이 일본에 오지 않고 강화도 지휘 본부에서 드론과 이어폰을 통해 전투 지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으로 가는 전용기에서 박강훈이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하필이면 일본 놈들을 살려주러 가야 한다니. 이참에 괴수들한테 싹 다 죽었으면 했는데 말입니다."
"놈들은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타깃으로 삼고 있어요. 지금은 우리나라는 공격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이 혹시라도 정리되면 아마 그 공세는 그대로 한국으로 이어지겠죠."
최수영이 내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박 상사님. 수호 씨 말대로 다음 공격 대상이 다시 우리나라가 될 거라면 차라리 일본 땅에서 그놈들이랑 싸우는 게 우리 국민 피해도 없고 더 낫죠."
"음. 그런가? 어쨌든 뭐 괴수랑 강철 인간놈들 잡으러 가는 거니 일단 가 봅시다."
하네다공항에 도착하자 일본 육군자위대 통합사령부 육상총대(陸上總隊)에서 활주로까지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육장 계급장을 달고 있는 나이 지긋한 군인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환영합니다. 육상총대 사령관 쿠라타니 후지로입니다."
"반갑습니다. 메타 디펜스 대표 김수호입니다."
후지로 사령관과의 인사를 마치자 옆에 있던 보좌관이 우리에게 인사를 한 후 일정을 안내해주었다.
"신주쿠구에 있는 이치가야 주둔지로 모시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푹 쉬시고 내일 아침에 상황 브리핑받으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근방 호텔을 이미 예약해 두었습니다. 오늘 일정이 없다면 호텔에서 편히 쉬고 내일 아침 주둔지로 들어가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묵으실 호텔을 알려주십시오. 내일 아침 일찍 호텔로 차를 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 *
우리는 예약해 둔 신주쿠의 유명 초밥집 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박강훈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육상총대가 뭔 줄 아십니까?"
"육상총대요? 뭐, 우리나라로 치면 육군 총사령부 같은 곳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전범국 아닙니까. 과거 군국주의 시절 일본의 육군참모본부는 2차 세계 대전의 주범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짓밟은 건 물론이고 강력한 군부 권력을 바탕으로 일본 내부 정치까지 좌지우지했었죠. 근데 이놈들이 그런 기관을 2018년에 육상총대로 부활시킨 겁니다."
라울이 물었다.
"미스터 팍, 그럼 그 전엔 일본군엔 사령부가 없었어요?"
"일본은 전범국이라 법적으로 군대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육해공 자위대 조직을 운영 중이죠. 자위대는 본토 방어 목적만 가진 제한된 조직입니다. 해상, 항공자위대는 혹시 모를 외세의 침입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통합 지휘 기관을 갖고 있었지만, 육상자위대에는 그런 조직이 없었습니다."
"공격의 목적을 가질 수 없으니 육군, 아니 육상자위대는 통합사령부가 필요 없다는 말이네요. 그런데 2018년이면 행성073의 침공이 시작되기도 한참 전이잖아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육상자위대에 통합사령부를 설치한다는 건 육상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겠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육상총대가 신설되고 일본은 바로 육상형 이지스를 배치했습니다. 이지스 구축함의 미사일 요격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을 떼어내 육상에 배치한 거죠. 그리고 여기에 우리 한반도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를 설치했습니다."
최수영이 물었다.
"박 상사님, 예전 군국주의 때는 그 육상총대 같은 조직이 일본 정치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힘이 강력했다면서요? 그럼 일본 정부에서도 그런 조직을 만드는 건 꺼렸을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뭐 전범국의 반성 이런 이유를 빼고라도 내부의 정치적인 이슈만으로도 일본은 수십 년간 육상총대 신설을 꺼렸습니다. 그런데 2018년에 그딴 조직을 또 처 만든 겁니다."
"역시 반성을 모르는 나라답네요."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신주쿠 시내를 한 바퀴 돌며 구경하려 했으나 우리가 들고 있는 커다란 무기들 탓에 거꾸로 신주쿠의 수많은 사람이 우리를 구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몇몇 사람들이 함께 사진 찍을 것을 요청해 오더니 이내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우리는 시내 구경을 서둘러 마치고 호텔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급히 호텔로 돌아오는데 최수영과 라울의 얼굴에 약간 아쉬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과연 국제적 관종들이다.
* * *
같은 시각, 행성073 시엠브레 제국 마법사의 탑 접견실.
제1 기사단장 가엘이 수행원 몇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마법사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부쩍 여길 자주 찾는군?"
사무엘이 접견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요즘은 대마법사님의 계략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재미난 일이 없으니까요. 대륙 간 정복 전쟁의 승리 이후 이 지루한 날들이 이어진 게 400년이 넘었습니다."
"그땐 참 하루하루가 뜨거운 나날이었지."
"대마법사님은 요즘도 그런 나날을 보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계획대로 그 '강한 인간'은 함정에 몰아넣으셨습니까?"
"하하하. 곧 함정에 빠뜨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안 그래도 오늘 그 인간의 생체신호가 일본이라는 나라로 옮겨진 것을 확인했다네."
"대단하십니다. 가서 볼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외계 행성과의 전쟁인데 그곳에도 대마법사님의 계략이 통한다니요?"
"이런저런 계략을 뿌려봤을 뿐이고 그중 하나가 맞아떨어진 것뿐일세. 난들 가 본 적도 없는 그 행성을 상대로 어떻게 완벽한 계략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때 한 마법사가 접견실로 들어오며 가엘에게 예를 표했다.
"제1 기사단장님 오셨습니까. 왕궁 마법사 안드레스 인사드립니다."
"오, 경이 바로 행성062 인간 포섭에 성공했다는 그 마법사이시오? 대단한 일을 하셨구려."
"부끄럽습니다. 제가 지구인 포섭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마법사는 맞습니다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이 안드레스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며 말했다.
"가엘 자네가 워낙 흥미로워하기에 내가 불렀네. 안드레스, 가엘에게 행성062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게나."
"예. 얼마 전 지구라 불리는 행성062에 정찰 업무를 띄고 갔을 때입니다.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두 분께서 눈여겨보고 계신 그 '강한 인간'이 사는 곳의 바로 옆 나라였습니다."
지구인과 같은 모습을 한 시중 두 명이 커다란 금속 잔을 두 손으로 들고 들어와 자신들의 키보다 높은 티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안드레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먼저 지상에 상륙한 괴수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붓던 지구인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갑자기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심지어 괴수들은 계속 지구인들을 해치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가엘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올린 채 상체를 안드레스 쪽으로 기울였다.
"공격을 멈춰? 괴수들이 자신들의 동족을 해치고 있는데도?"
"네. 무언가 특이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강철 마차 같은 것이 하나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장갑차라고 하는 그들의 탈것이었습니다. 말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입니다."
가엘이 안드레스를 재촉했다.
"그런 보고들은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왔소. 그래, 그들이 뭐라고 말을 걸어온 것이오? 그들도 언어를 통역해 준다는 그 기계를 사용했소?"
"네, 그렇습니다. 통역해 주는 기계를 사용하는 듯했고 그자들은 이미 우리의 포섭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을 멈춘 것 같았습니다. 우리 일행에게 다가온 그들의 첫 마디는……."
* * *
이십 일 전, 도쿄.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안드레스 일행에게 다가온 강철 마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그대들을 돕겠소."
안드레스는 의아한 눈으로 강철 마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뜸 우리를 돕는다니? 다른 곳에서 우리가 이곳 인간들에게 한 제안을 이미 들은 모양이군.'
말을 걸어온 자의 의도를 알아챈 안드레스는 차분히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시엠브레 제국 왕궁 마법사 안드레스다. 지금 우리에게 말은 건 자는 마차에서 내려 신분을 밝혀라."
안드레스의 말이 끝나자 장갑차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군복을 입은 중년 사내가 내렸다.
"나는 일본 육상총대 사령관 쿠라타니 후지로요. 당신들이 지구 침공을 위한 조력자를 찾고 있다 들었소."
"불필요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에게 협력할 인간을 찾고 있긴 하다만, 넌 우리를 도와 어떤 일을 할 수 있지?"
"어떤 일? 내 명령 한마디면 인근 나라 서너 개 정도는 당장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소. 단, 당신들도 우리에게 협력한다는 조건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오."
"조금 전 사령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나? 이 왕국의 왕도 아닌 것 같은데?"
"아직은. 하지만 곧 그렇게 될 예정이오. 저 뒤를 보시오. 괴수들에게 공격당하면서도 내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나의 군대요. 뒤에 보이는 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의 전력이 더 있고 그들은 오직 나의 명령을 따르고 있소."
쿠라타니 후지로 말대로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군대가 뒤편에서 각종 무기를 겨누고 있었으나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안드레스는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려 정신 마법을 전개했다.
안드레스의 마법 주문과 함께 지팡이에서 옅은 노란색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인간들을 하나라도 더 물어뜯으려 날뛰던 괴수들이 갑자기 얌전해진 채 그저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겠군. 적당한 장소가 있나?"
"이미 마련해 두었소. 멀지 않으니 따라오시오."
* * *
다시 현재, 시엠브레 제국 마법사의 탑.
"그래서? 그자는 실제로 그럴 만한 힘이 있는 자였소?"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자가 보여준 영상 자료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충격적이다?"
"네.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각종 무기와 미사일들을 시연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강하던가?"
"외람되오나 저 안드레스 정도의 마법사들 몇백 명이 모여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인가? 그럼 나는 어떻겠는가? 여기 대마법사님은?"
흥분한 가엘의 입에서 '대마법사님은?'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무엘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법사답게 빠른 눈치로 사무엘의 표정 변화를 읽은 안드레스는 재빨리 가엘의 질문에 대답했다.
"대마법사님은커녕 고위 마법사 몇 명만 있어도 그들을 상대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맹세합니다. 기사단장님도 마찬가지지요. 다만 제가 충격적이라고 말씀드린 건 그자가 생각보다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자가 그냥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면 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황하는 안드레스를 보며 가엘은 그제야 옆에 앉아 있던 사무엘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가엘이 뒤늦게 살핀 사무엘의 얼굴은 평소와 같은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온 후였다.
"우리에게 협력한다는 자가 하찮은 쥐새끼는 아니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제법 규모가 큰 군대를 이끄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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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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