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 *
"계속해 보시오."
안드레스가 쿠라타니 후지로와의 만남에 대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자는 아주 큰 욕망을 가진 자였습니다. 물밑에서 우리를 계속 도울 테니 자신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격적인 침공이 일어나는 그 날이 되면 자신이 일본의 왕이 되어 주변국들을 차례대로 처리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노예가 필요하다면 노예를 만들어 줄 것이고 인구를 줄여야 한다면 모두 말살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가엘이 물었다.
"조건은?"
"대일본제국의 부활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일본제국?"
"그들이 가장 부강했을 때의 제국 이름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란 나라에 패배해 지금과 같은 소국이 되었지만, 우리에게 협력하여 그 미국이라는 나라를 쓰러뜨리고 다시 지구의 패권을 잡겠다고 합니다."
"우리의 밑에서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포부가 큰 자인지 그저 비열한 자인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군."
대화를 듣고 있던 사무엘이 호탕하게 웃으며 가엘에게 말했다.
"하하하하. 가엘. 그런 것이 무어가 중요하겠는가. 어쨌든 우리에게 협력할 적은 많을수록 좋은 것을."
"하하하. 대마법사님. 대륙 정복 전쟁 때와 마찬가지군요. 어차피 전쟁 후에 배신자를 계속 살려둘 것인지 없애버릴지는 승자 마음이니까요."
"그렇지. 한 번 배신한 놈은 두 번도 배신하는 법이니 말일세."
흥미로운 전쟁 이야기로 즐거워진 가엘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부러 '강한 인간'의 왕국에 괴수들을 보내시지 않는 것은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라 하셨는데, 그 함정이 바로 일본이었던 것입니까? 후지로라는 배신자가 직접 '강한 인간'을 처리하게 하도록?"
"그렇다네. 안드레스가 일을 아주 잘해 주고 돌아왔어. 배신자를 포섭했을 뿐 아니라 아주 많은 정보를 얻어왔지. 안드레스가 후지로에게 알아 온 정보에 의하면 그놈들은 우리가 보낸 병력을 처리하면서 코인이라는 것을 모으고 있다더군. 그 '강한 인간'이 사는 나라를 침공하지 않으면 곧 인근 나라로 원정을 나갈 것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그렇게 강한 인간을 그 배신자 후지로가 쉽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만이라면 힘들겠지. 하지만 나는 마침 새로 개발이 완료된 괴수를 일본으로 보낼 것이야. 운이 좋아 양동 작전이 성공한다면 이번 기회에 그 '강한 인간'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새로운 괴수요?"
"짐승들보다는 정신 마법에 잘 걸리지 않는 놈들이라 괴수로 만들기 쉽지 않았지."
"짐승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혹시 몬스터로 괴수를 만드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몬스터에게 정신지배 마법이라니……. 대단하십니다."
* * *
다음날, 일본 도쿄.
아침 일찍 조식을 먹은 뒤 호텔 밖으로 나오자 이미 육상총대에서 보낸 차량이 호텔 앞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차를 타고 이치가야 주둔지로 향했다.
이동 중에 갑자기 날짜를 확인하던 최수영이 나에게 물었다.
"수호 씨, 두 번째 랜덤박스 열릴 때 되지 않았어요?"
"맞아요. 저번 달 8일에 처음 구매했으니까 아마 내일쯤 새로운 박스가 열리겠죠."
라울이 말했다.
"첫 번째건 꽤 쓸 만해 보였는데. 이번엔 뭐가 나올까요? 나도 빨리 코인 모아서 랜덤박스 사봐야겠습니다."
"하하. 라울. 이제 아이템 한 개 나왔잖아요. 몇 개 더 나오는 거 보고 결정해요. 이상한 것들 나오면 어떡해요."
"하하하. 미스터 킴. 어차피 당장은 랜덤박스 살 코인도 없어요. 이렇게 출장 뛰면서 열심히 모아야죠."
랜덤박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량이 주둔지에 도착했다.
"내리십시오.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일본 자위대의 안내를 받아 거대한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회의실에는 군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가운데 상석으로 보이는 자리에는 어제 공항에서 만났던 쿠라타니 후지로 사령관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최근 도쿄도에 점차 많은 수의 괴수들이 침공해 오고 있습니다. 그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수들의 파괴력도 날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대형 스크린 속 자료 화면에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형태의 괴수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수호 씨, 우리가 못 보던 괴수들도 많네요."
"네. 아마 한국에 침공이 없었던 기간 동안 새로 생긴 괴수들 같아요. 공격이 점점 강해지고 있긴 하네요."
그동안의 상황과 앞으로의 예측에 대한 삼십여 분간의 브리핑이 이어진 후에야 우리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한국에서 온 디펜서님들은 도쿄도 내 침공이 발생했을 때 강철 인간이나 특등괴수들을 맡아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나머지 괴수들은 기존대로 육상자위대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접근전을 위주로 펼치시는 관계로 디펜서님들이 전투 중인 지역에는 포격은 배제하고 대신 소수 정예의 저격수들을 지원 병력으로 붙이겠습니다."
특등괴수는 일본에서 분류한 괴수 등급 중 그 위험도가 높은 괴수들을 뜻했다.
UN 산하 지구방위위원회에서 지금까지 나타난 괴수의 등급을 1등급부터 5등급까지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또 일본 나름의 등급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특등괴수는 국제 등급 기준 4, 5등급에 해당하는 괴수를 말하는 것 같았다.
국제 등급 기준에 따르면 처음에 나타났던 가장 기본적인 괴수들이 1등급이고 최근 나타난 강력한 괴수들이 5등급으로 구분된다.
일주일 전까지도 4등급이 가장 높은 등급이었으나 지난주에 5등급 괴수가 새로 등록되었다.
5등급으로 새로 등록된 괴수 중 하나는 집채만 한 금속 고슴도치로, 몸에 나 있는 수백 개의 가시를 자유자재로 발사하는 놈이었는데 그 가시 하나하나가 장갑차의 장갑도 뚫어 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디펜서님들을 지원할 저격수들은 이번에 배럿사에서 새로 개발한 대물 저격 소총을 소지하게 될 예정입니다. 2킬로미터 밖에서도 장갑차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 신형 장비입니다. 이 소총을 갖춘 일개 분대의 저격수들이 디펜서님들의 전투 지역에 함께 투입됩니다."
브리핑을 담당하던 장교가 나에게 물었다.
"김수호 대표님, 이렇게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저격수들은 최대한 먼 곳에 위치할 수 있도록 지휘해 주세요."
브리핑이 끝난 후 상석에 앉아 있던 쿠라타니 후지로 사령관이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위대를 대표하여 디펜서분들의 지원 활동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담당관을 지정했으니 숙소나 식사에 부족함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담당관! 저분들을 숙소로 안내해 드리도록."
후지로 사령관의 뒤에 서 있던 장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후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 디펜서분들의 편의를 담당할 일등육위(一等陸尉) 이시마 켄지입니다.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시마 켄지 담당관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에는 우리를 위해 새로 리모델링한 듯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건물에는 8개의 침실과 각 한 개씩의 회의실, 휴게실,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시마 켄지 담당관은 이 건물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건물 뒤편에 디펜서님들을 위한 전용 헬리콥터가 대기 중입니다. 상황이 발생하면 그 헬리콥터로 바로 현장으로 이동하시게 될 겁니다. 그 외에는 이 건물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시면 되고,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지구방위위원회에서 공문이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육상총대에서는 생각보다 우리를 맞을 준비를 잘해 놓은 상태였다.
1인 1샤워실이 딸린 숙소의 상태는 어제 묵은 호텔에 비교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숙소를 돌아본 라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 무슨 호텔 같은 숙소가 군부대 안에 있네요?"
이시마 켄지 담당관이 웃으며 답했다.
"원래 있었던 외부 귀빈용 숙소를 급히 조금 개조했습니다. 곧 점심 식사가 준비될 예정이니 방에 짐 푸시고 쉬고 계시다가 12시에 식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한국말을 무척 잘하시네요? 한국에 살아본 적이 있으신가 봐요?"
내 물음에 이시마 켄지는 특유의 친절한 웃음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어머니가 한국분이십니다. 어릴 때부터 한국어와 일본어를 고루 사용했습니다. 아, 한국엔 여행으로 두 번 가본 게 전부입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최수영이 말했다.
"깨끗한 숙소에 친절한 담당관님까지. 생각보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불편할 것 같진 않네요."
최수영의 말에 이시마 켄지의 귀가 조금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 최수영 씨 팬입니다. 최수영 씨가 나오는 영상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봤습니다."
"어머? 그래요? 어쩐지 좋은 분 같더라니. 하하핫.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팬이에요. 어쨌든 절 좋아해 주신다니 감사해요. 여기 있는 동안 잘 부탁해요."
최수영이 먼저 손을 내밀자 이시마 켄지는 이제 대놓고 얼굴까지 모두 빨개진 채 머뭇거리다가 오른 손바닥을 군복에 몇 차례나 닦은 뒤 최수영과 악수를 했다.
"저,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최수영과 악수를 한 후 황망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이시마 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최수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수영 씨, 이러다가 팬클럽 생기겠어요?"
"팬클럽이요? 저도 벌써 있잖아요. 몰랐어요?"
"벌써 있다고요? 아, 뭐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 같은 거라면 저도 있어요."
"그게 팬클럽이지 뭐예요. 나보다 회원 수도 세 배나 많던데."
"그 카페가 팬클럽이었어요?"
"수호 씨, 그 카페 안 들어가죠? 들어가 봐요. 정말 응원 글 뿐인가."
"아, 좀 바빠서요. 카페는 홍보팀에서 따로 관리해 주고 있어서 처음 몇 번 말고는 안 들어가 봤네요."
"나는 수호 씨 카페도 수시로 들어가는데. 아주 질투 나던데요? 이상형이라느니,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느니, 하루라도 영상을 안 보면 살 수가 없다느니……."
갑자기 라울이 나와 최수영 사이로 한 발짝 들어오며 물었다.
"응? 수영, 미스터 킴 팬카페 글을 보고 왜 질투가 나요? 두 사람 혹시?"
라울이 음흉한 표정으로 최수영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갑자기 박강훈이 끼어들었다.
"저도 대표님 카페 봤는데 아주 질투가 납디다."
우리 셋은 고개를 돌려 박강훈을 바라보았다.
"아니, 대표님 카페엔 전부 여자 회원이던데 왜 제 카페엔 전부 예비역들 뿐인 겁니까."
"그래요? 미스터 팍은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네요. 나는 그래도 반반 정도 되던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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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9,692개]
[단가 43억 원]
[평가 금액 41조 7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