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 *
육상총대에서의 첫날은 괴수들의 침공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박강훈이 생선조림을 한입 크기로 떼어 밥 위에 올리며 말했다.
"어제 브리핑에서 말했던 배럿사의 신형 대물 저격 소총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배럿M82과는 완전 다른 모델이던데요. 이번 건 탄환 자체가 완전 다릅니다."
배럿M82도 처음 들어보는데?
"배럿M82는 어떤 총인데요? 총에 대해선 잘 몰라서……."
"배럿M82도 괴물 같은 놈이었습니다. 보통 소총탄보다 두 배도 더 큰 12.7mm 탄을 쓰는데 덕분에 어지간한 건물 벽이나 장갑차의 장갑도 다 뚫어 버리니까요. 나온 지 40년이 됐는데도 아직 많은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최강의 저격 소총입니다."
"그럼 이번에 자위대에서 들여왔다는 신형은요?"
"XM109라는 프로토타입이 있었던 건 들어봤는데 아마 그 총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출시가 되었다는 얘기는 저도 여기서 처음 듣습니다. 25mm 유탄을 쓰는데 정확도와 사거리는 전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배럿사에서 이번에 작정하고 괴물을 만들었네요. 이 정도면 어지간한 괴수들도 다 한 방에 터져 나갈 것 같습니다."
"유탄을 발사하는 저격용 총인가요? 놈들과의 전투에서 꽤 쓸 만하겠네요. 우리나라는요? 우리 군에서도 이걸 채택하면 사상자를 훨씬 줄일 수 있을 텐데요."
"이제 갓 출시됐으면 생산량엔 한계가 있을 테고 괴수들 때문에 이 총을 원하는 나라는 많아질 테니 당장은 사전에 물밑작업이 완료된 나라에나 공급될 것 같습니다. 아마 당장은 이 총을 만든 미국에서 쓸 물량도 부족할 겁니다."
"어떤 면으로는 일본 육상총대가 대단한 거네요. 그런 대단한 무기도 발 빠르게 수입하고."
"안타깝지만 일본 놈들이 원체 그런 쪽으로는 발 빠르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박강훈이 순간 깜짝 놀라며 그제야 이시마 켄지가 함께 식사 중이라는 걸 깨닫고 급히 자기 말을 수습했다.
"아, 일본은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참 빠르고 거침이 없다는 뜻입니다. 칭찬입니다, 칭찬. 하하하."
이시마 켄지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괜찮습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런데 그 총은 저희도 몇 정 못 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강훈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최수영이 주먹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며 박강훈에게 '으이그'라는 입 모양을 발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방에 있던 책상 위에 녹색 상자 하나가 생겨났다.
2회차 랜덤박스였다.
나는 디펜서와 이혁진 실장이 있는 단톡방에 랜덤박스의 등장을 알렸고 세 명의 디펜서들은 바로 내 방으로 찾아왔다.
이혁진 실장 역시 바로 영상통화를 걸어오며 언박싱에 참여했다.
"자, 2회차 랜덤박스 개봉해 볼게요."
덜커덕.
응? 방금 박스가 저절로 움직인 것 같은데?
"지금 박스 움직이는 거 봤어요?"
"그러게요. 혼자 조금 움직이는 거 같았어요."
"뭐지? 일단 열어볼게요."
혼자서 움직이는 박스라…….
나는 조심스럽게 랜덤박스를 개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스 윗부분을 열자마자 짐승의 발이 하나 튀어나오더니 내 손등을 할퀴고 다시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깊이 팼는지 손등에서 금세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침대 옆에 있던 마그네타 검을 집어 들어 녹색 상자를 겨누었다.
"뭐, 뭐예요, 수호 씨?"
"안에 괴수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모두 조심해요. 분명 발이 튀어나오는 걸 봤는데도 내가 피할 수도 없을 만큼 공격이 빨랐어요."
라울이 놀란 눈으로 내 상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미스터 킴이 상처를 입다니? 도대체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죠?"
그때였다.
랜덤박스가 다시 달그락거리는가 싶더니 작은 짐승의 얼굴이 박스 밖으로 쓱 나오는 것이 보였다.
"꺅! 고양이?"
최수영이 박스 밖으로 얼굴을 내민 짐승을 보더니 갑자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소리를 질렀다.
최수영의 말대로 박스 위로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털을 가지고 있는 작은 고양이 머리가 빼곡 나와 있었다.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춘 채 황당한 표정으로 박스를 바라보고 있는데 최수영이 박스로 조금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코숏이에요, 코숏!"
"코숏? 그게 뭐예요?"
"코리안 숏헤어요! 한국 토종 고양이! 악, 작고 귀여워! 저 동그란 눈 좀 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잠시 우리를 살피던 고양이는 천천히 상자 밖으로 나와 책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새끼고양이인 듯 몸 크기는 팔뚝 길이보다도 짧아 보였고 온몸이 검은색과 흰색 털로 반반 뒤덮여 있었다.
"저게… 이번 랜덤박스 아이템인가?"
최수영이 문득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내 손등을 보며 말했다.
"아! 제 방에 가서 치료 장갑 가져올게요. 수호 씨는 상자 안을 좀 확인해 봐요."
"아, 네. 고마워요."
나는 고양이를 경계하며 천천히 박스로 다가가 박스 안에 있는 두꺼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고양이는 내 행동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더 이상 공격해 오거나 하진 않았다.
[상품명 : 예민보스 고양이]
[고양이의 집사가 되어보세요!]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고양이입니다.]
[일반 고양이에 비해 활동 영역이 100배 이상 넓습니다.]
[소유자와 멀리 떨어져도 근처로 자동으로 이동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집사를 잘 찾아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과 집사에게 적대적인 상대를 본능적으로 경계합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물빨래 금지. 절대 금지.]
하, 이 비싼 랜덤박스를 샀더니 고양이의 집사가 되어보라고?
"이번 랜덤박스는 꽝인 것 같네요."
그사이 최수영이 치료 장갑을 끼고 들어와 내 손등을 치료해 주었다.
"꽝이라뇨!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나왔는데."
"수영 씨, 이 고양이 지금 3조 원이 넘는 거예요."
"아… 그럼 꽝인 건가?"
어느새 겁도 없이 고양이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던 라울이 말했다.
"미스터 킴, 이름 지어줘야죠."
"꽝이니까 '꽝이'로 하죠, 뭐. 넌 이제부터 꽝이다."
"애옹―"
짧게 울음소리를 낸 고양이가 가볍게 점프해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내 다리에 가만히 등을 가져다 댔다.
"하하핫. 완전 애교쟁이 개냥이었네? 귀여워라. 근데 이름이 꽝이가 뭐예요, 꽝이가……. 어? 꽝이 꽝이 하니 또 좀 귀여운 것도 같네?"
최수영이 꽝이 이름에 대한 불만과 만족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동안 꽝이는 8자를 그리며 내 다리 사이를 천천히 왔다 갔다 했다.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몸이 살짝살짝 스치는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싫지는 않은데, 그래도 고양이 한 마리에 3조는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꽝이도 나를 올려다보며 작은 입을 벌려 소리를 냈다.
"애옹―"
- 저는 그만 끊겠습니다. 대표님.
책장 위에 고정해 둔 휴대전화를 통해 언박싱을 지켜보던 이혁진 실장이 조용히 영상 통화를 종료했다.
첫 번째 언박싱 때와는 너무 다른 반응이다.
랜덤박스 구매 추천 당사자로서 민망할 만도 하겠지.
이혁진 실장의 반응을 보니 이번엔 정말 꽝인가 보군.
"수영 씨, 고양이 좀 잘 알죠? 난 강아지만 키워봐서."
"그럼요. 고양이 잘 알죠."
"여기 설명서에 활동 영역이 100배 넓다고 쓰여있는데 보통 고양이 활동 영역이 얼마나 돼요?"
"집에서만 키우면 그 집이 전부지만, 길냥이나 시골에서 크는 고양이들은 사냥 영역이 반경 몇백 미터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그럼 얘는 몇십 킬로 되겠네요?"
"그 영역이라는 게 또 복잡해요. 야생 고양이는 집으로 생각하는 영역 따로 활동하러 다니는 영역 따로 사냥 나가는 영역 따로 구분되어 있을 거예요."
"나중에 한국 데리고 가면 강화도 전체가 이놈 활동 영역이겠네요."
꽝이를 빤히 바라보자 꽝이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애옹―"
"귀엽긴 하네."
* * *
애애애앵.
꽝이랑 놀아주며 휴대전화로 사료와 고양이 용품을 알아보고 있는데 시끄러운 경보음이 부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스피커에서 이시마 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침공입니다! 준비를 마치시는 대로 뒤편 헬기장으로 나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둘러 수트를 챙겨입고 드론 가방과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애옹 소리가 들렸다.
"꽝이야, 나갔다 올게. 방에 얌전히 있어."
"애옹."
건물 밖을 나서자 나머지 디펜서들도 준비를 마치고 헬기장에 나와 있었다.
"자, 첫 원정 채굴을 나가보죠!"
우리가 모두 헬리콥터에 오르자 이시마 켄지가 직접 문을 닫아주며 말했다.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
헬리콥터에 탑승하자 스피커로 사령부의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 롯본기와 긴자 경계에 비행 물체들이 나타났습니다. 우선 그곳으로 이동한 뒤 한국의 디펜서님들께서 가장 큰 비행 물체 조각이 떨어지는 지역을 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헬리콥터는 비행 물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미 비행 물체 대다수가 지상에 떨어져 괴수들을 쏟아낸 상태였고 나머지 비행 물체들도 전부 여기저기로 흩어져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두 시 방향에 떨어지고 있는 비행 물체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쪽으로 가주세요."
"더는 접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건물 옥상에 내려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냥 이대로 고도만 조금 더 낮춰주세요. 건물 옥상에 착륙하실 필요 없습니다."
높이가 어느 정도 낮아지자 우리 네 명의 디펜서는 무기와 철제가방을 들고 그대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우리는 서둘러 드론들을 날려 보낸 후 가장 큰 비행 물체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헉, 저건 또 뭐야?"
"오마이갓, 저건 인간인가요, 괴수인가요?"
도착한 곳엔 거대한 방망이를 든 금속 몬스터들이 주변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었다.
키가 5미터도 넘어 보이는 몬스터는 그 거대한 몸집에 비해도 손색없이 커다란 머리통을 어깨 위에 달고 있었다.
머리통 위에는 짧은 뿔 여러 개가 아무렇게나 나 있었고 거대한 입 밖으로는 뾰족한 송곳니 네 개가 위아래로 튀어나와 있었다.
놈들의 방망이질 한 번에 자동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건물 외벽이 박살이 났다.
최수영이 자리에 서서 활시위를 당기며 말했다.
"으, 차라리 금속이라 다행이에요. 금속 재질이 아니었으면 더 징그러웠을 것 같아요."
최수영의 화살 하나가 가장 가까운 몬스터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라울과 박강훈은 좌측으로, 나는 우측으로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실장님! 영상 음성 신호 모두 잘 전달되고 있어요?"
"네! 대표님. 모두 잘 됩니다."
"자, 그럼 채굴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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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9,692개]
[단가 45억 원]
[평가 금액 43조 6천억 원]
김수호 랜덤박스 아이템 현황 (2/6)
[1회차 : 마술사의 염동력 장갑]
[2회차 : 예민보스 고양이]
김수호 신체 능력 강화 구매 현황
[힘, 체력 강화 : 8단계 (256배 강화)]
[운동 신경 강화 : 8단계 (256배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