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 *
"꽝이야, 거기서 뭐 해. 배 안 고파?"
비서실 직원을 한번 슥 돌아본 꽝이는 다시 하늘을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비서실 직원이 열빙어 간식을 꽝이 앞에 내밀며 말했다.
"얘가 오늘 이상하네, 밥도 안 먹고. 왜? 하늘에 뭐 있어? 이거 간식 먹어. 언니가 너 주려고 갖고 왔어."
코앞에 간식을 들이미는데도 꽝이는 계속 하늘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털은 또 왜 이렇게 다 곤두세웠어? 왜, 어디 불편해? 도대체 하늘에 뭐가 있다고 그래."
비서실 직원은 꽝이의 시선을 따라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
유성처럼 꼬리가 달린 물체 두세 개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게 뭐지? 어?"
어렴풋이 보이던 물체는 점점 커지며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 비행 물체! 침공이다! 침공이에요!"
놀란 비서실 직원은 소리치며 옥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하늘에 나타난 비행 물체의 존재를 알렸고 깜짝 놀란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채 사람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비서실 직원은 두고 온 꽝이를 떠올리며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 꽝이를 찾았다.
"꽝이야! 꽝이야! 어딨어! 언니랑 들어가자! 꽝이야!"
하지만 조금 전까지 하늘을 노려보고 있던 꽝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 * *
메타 디펜스 전략실.
모니터를 바라보던 직원이 소리쳤다.
"강화도 침공입니다! 비행 물체 방향상 우리 본사 건물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혁진 실장이 다급히 외쳤다.
"건물 방어 모드 작동시키세요! 당장!"
"네!"
본사 건물 안에서는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며 직원들에게 침공 소식을 알렸고 본사 건물 밖에선 모든 창과 문에 강철판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오각형 모양의 메타 디펜스 본사 건물의 방어 모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건물 외곽 잔디 아래에서 두꺼운 철제 외벽이 솟아올라 건물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는 김수호의 안전 가택에도 본사 건물과 같은 방어 시스템이 작동되었다.
"해병대에 침공 소식 전파하고, 국방부에 방어용 총포 사용 허가 요청하세요!"
이혁진 실장의 지휘에 따라 전략실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본사 건물을 완전히 감싼 방어벽의 상단 부분에서는 57mm, 76mm 직사포의 포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미니건이 외벽 사이사이에서 예열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동으로 반응하거나 지휘실에서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첨단 방어무기들이었다.
"대표님께는? 연락했습니까?"
"비서실에서 이미 연락했다고 합니다."
그때 박강훈이 전략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강화도에 침공이라니?"
"아, 박 상사님.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낙하 방향이 우리 본사 건물 쪽인 것 같아 일단 최대한 대비는 하고 있습니다."
"군부대는?"
"이미 연락했습니다. 곧 해병대 2사단에서 출동할 겁니다."
전략실의 대형 스크린에는 수십 기의 드론들이 촬영하고 있는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대형 비행 물체 세 기가 이미 본사 건물 앞 지척까지 내려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박강훈이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이제 대놓고 우리 회사를 노리고 쳐들어온단 말이지?"
방어 준비를 거의 끝마친 이혁진 실장이 박강훈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 상사님. 건물 자체 방어 시스템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고 곧 군병력이 도착할 겁니다. 더군다나 강화도는 귀신 잡는 대한민국 해병대가 있는 지역 아닙니까."
"이 실장님, 나는 뭐 도울 거 없습니까?"
"여기서 같이 상황 지켜보시죠. 본사 방어 대응 수칙에 따라 전 직원은 건물 안에 상주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미국 펜타곤 건물 모양을 본떠 만들었지만, 펜타곤보다 이 건물이 더 안전하고 강력할 겁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비행 물체가 갈라지면서 땅으로 떨어집니다!"
"몬스터든 괴수든 뭐든 사정권에 들어오면 바로 발포하도록 세팅하세요!"
"아직 국방부에서 총포사용 권한 회신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용 허가만 요청할 뿐 승인 여부는 관계없습니다. 세팅하세요."
박강훈이 이혁진에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이며 말했다.
"오, 이 실장님. 결단력 있습니다?"
이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침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하. 대표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 이혁진 실장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김성희였다.
이혁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김성희를 안심시켰다.
"네, 성희 씨. 집에 방어 시스템 잘 작동되었죠? 어머님도 잘 계시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
- 상혁 씨, 그게 아니라… 저 지금 커피숍에 와 있는데. 무슨 일이에요? 지금 위험한 상황이에요?
"네? 성희 씨 지금 집이 아니에요? 자주 가는 그 커피숍이죠? 거기 그대로 있어요! 내가 바로 데리러 갈게요!"
- 상혁 씨가요? 알겠어요. 일단 여기 있을게요.
"건물 문 다 닫고 지하나 2층으로 피해 있어요! 1층은 절대 안 돼요!"
전화를 끊고 바로 전략실 밖으로 뛰어나가려던 이혁진을 박강훈이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표님 동생분이 지금 밖에 있습니까?"
"네. 커피숍에 가 있다고 하네요. 제가 얼른 나가서 데리고 들어오겠습니다."
"이 실장님이요? 위험합니다! 이미 밖에 비행 물체 땅에 떨어진 거 몰라요? 내가 다녀올 테니 이 실장님은 여기서 건물 방어 지휘하세요. 이 실장님이 지금 갑자기 자리 비우면 지휘 본부는 누가 지킵니까?"
"아… 그럼 꼭 좀 부탁드립니다, 박 상사님! 날아다니는 괴수들 때문에 헬리콥터는 못 띄울 것 같고 지하 2층으로 가시면 우리 회사에서 개조한 장갑차가 있습니다. 저는 드론으로 주변 상황 확인하고 전달해 드릴게요!"
박강훈이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이혁진에게 말했다.
"나 특전사 박강훈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다녀옵니다!"
마감과 세공이 어찌나 정교하게 되어 있는지 아무런 틈도 보이지 않던 메타 디펜스의 외벽 일부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높이 3미터가량 되는 문이 열리면서 장갑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에는 이미 괴수와 몬스터들이 본사 건물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지만 무인 직사포와 미니건의 화력에 건물과 일정 거리를 둔 채 픽픽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놈들이 외벽에 닿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공중에도 하늘을 나는 괴수들이 건물 주변을 맴돌며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강훈은 건물의 방어 시스템에 감탄하면서도 군 병력이 빨리 오지 않으면 본사 건물이 함락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실장님, 저놈들 분명 지휘부가 있습니다. 일사불란한 정도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대부분 놈들이 다 본사를 목표로 달려들고 있어요."
- 네, 박 상사님.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놓고 우리 건물을 노리고 침공해 온 겁니다. 어쩌면……,
"…대표님이 안 계실 때를 일부러 노린 거겠지."
본사 건물을 빠져나와 달린 지 5분 정도가 지나자 상가 건물이 밀집된 동네가 나왔다.
이미 대열을 이탈한 몇몇 괴수가 여기까지 와서 길거리를 바삐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괴수 두 마리를 그대로 차로 들이받아 버린 박강훈은 그대로 이혁진 실장이 알려준 커피숍 건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차 우측을 바싹 붙인 채 차에서 내린 박강훈은 이어폰을 통해 이혁진에게 말했다.
"건물 앞에 차 세워뒀으니 얼른 나와서 타라고 하세요! 나는 밖에서 가까이 오는 놈들 처리하고 있겠습니다!"
마침 강철 괴수 두 마리가 박강훈에게 달려들었고 박강훈은 바닥을 구르며 놈들의 공격을 피해 낸 뒤 먼저 오른쪽에 있는 괴수의 머리를 향해 벌목도를 크게 휘둘렀다.
벌목도에 정면으로 맞은 괴수는 그대로 머리통이 쪼개졌다.
괴수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벌목도를 몇 번이고 같은 부위에 찍어 내리던 예전의 그 박강훈이 아니었다.
나머지 한 마리도 손쉽게 처리하자 이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성희 씨와 건물에 있던 상인들이 차에 탔습니다!
'상인들?'
순간 박강훈의 머릿속엔 단골 고깃집 사장님을 비롯해 바로 사흘 전에도 자신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해병대 출신 당구장 한 사장님, 맨날 고깃집만 간다고 타박하던 곱창집 최 사장님, 해병대 군부대 근처에서 마크사를 하다가 얼마 전 이 동네에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차린 김 사장님 등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기랄."
박강훈은 급히 차에 오르며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차에 올라 뒤를 돌아보자 김성희와 그 건물 상인 세 명이 차에 올라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 탄 사람 중엔 최수영이 지난 상인회 회식 때 언니, 언니하고 따르던 커피숍 사장님도 있었다.
비교적 젊은 커피숍 여사장님은 최수영뿐 아니라 김성희와도 친해진 모양이었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게 박강훈의 눈에 들어왔다.
"자, 메타 디펜스 본사로 바로 달립니다. 꽉 잡으세요!"
능숙한 운전 솜씨로 괴수들을 이리저리 피하거나 들이받아 버리며 작은 상권을 빠져나온 박강훈이 이혁진에게 물었다.
"이 실장님. 이 차, 거기서 원격 조종 되지 않습니까?"
- 네! 가능합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럼 이제 이 실장님한테 맡깁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장갑차가 본사로 잘 들어갈 수 있게 들어가는 길목에 미리 화력을 좀 퍼부어주시고. 대표님 동생 무사히 본사에 못 들여보냈다가는 우리 둘 다 모가지인 거 알죠? 하하하."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난 여기서 내릴 테니 드론으로 보고 있다가 다시 내가 있는 쪽으로 이 차 보내요. 두 세대 보낼 수 있으면 더 좋고. 아니, 원격으로 보낼 수 있는 차는 전부 보내요. 군부대에도 이쪽으로도 병력 보내라고 말해주고!"
그제야 박강훈의 의도를 깨달은 이혁진이 놀라 외쳤다.
- 박 상사님! 지금 설마!
박강훈이 운전석 문을 열고 뛰어내리며 말했다.
"이웃사촌 아닙니까. 하하."
뛰어내리며 뒷발로 열려 있는 차 문을 걷어찬 덕분에 장갑차는 차 문을 닫은 채 건물을 향해 달렸지만 박강훈은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구르며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얼른 일어난 박강훈은 가볍게 몸을 툭툭 털어낸 뒤 상가 건물 밀집 지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건물에 키가 3미터 조금 넘어 보이는 몬스터 한 마리가 얼쩡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1층 전면 유리를 다 깨부순 놈은 2층 유리를 부수고 2층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2층에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
그대로 몸을 튕기듯 날린 박강훈은 머리가 이미 2층으로 들어간 몬스터의 등에 벌목도를 깊이 찔러넣었다.
"크아악!"
긴 팔을 자신의 등 뒤로 뻗은 몬스터는 그대로 박강훈의 몸통을 잡고 멀리 집어던져 버렸다.
벌목도를 땅에 꽂아 넣으며 간신히 날아가던 몸을 멈춘 박강훈은 그대로 다시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몬스터는 급히 몽둥이를 박강훈에게 휘둘렀으나 박강훈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거대한 몽둥이를 피해 내고 몬스터의 옆구리를 크게 베어냈다.
"쿠악!"
"자꾸 소리를 질러대는 걸 보니 몸뚱이가 쇳덩이여도 아프긴 한가 보구나!"
박강훈이 높이 뛰어오르며 옆구리를 부여잡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몬스터의 목을 벌목도로 찍어냈다.
깡!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벌목도가 몬스터의 목에 반쯤 박혀 들어갔으나 놈의 목은 한 번에 베어지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다 같은 쇳덩이 같아도 괴수나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그 강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익숙한 듯 벌목도를 뽑아 든 박강훈은 그대로 같은 자리에 벌목도를 다시 힘껏 내리쳤다.
그제야 몬스터의 머리통이 몸통과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대로 2층 상가로 뛰어 들어간 박강훈의 눈에 미처 3층으로 올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당구큐대를 부여잡고 창문 쪽을 노려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나, 참. 한 사장님. 그걸로 뭐 어쩌시려고. 그래도 해병대 출신이라 이겁니까?"
"바, 박 상사!"
"이 건물은 통유리라 너무 위험해요. 따라오세요."
"아, 알겠네! 고맙네! 고마워!"
"하하. 인사는 살아 돌아가서 하십시다."
* * *
3월 20일 박강훈 N마켓 구매 내역
[벌목도 1,500NXT]
[힘, 체력 강화 6단계 1,260NXT]
[운동 신경 강화 5단계 620N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