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 * *
"모두 왼쪽 건물로 들어가요!"
황소만 한 금속 쥐의 몸통을 베어버린 박강훈이 소리쳤다.
박강훈의 소리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왼편에 보이는 건물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괴수와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사람들을 모으고, 장갑차에 태워 본사 건물로 들여보내기를 벌써 네 번째.
그 과정에서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박강훈은 혼자서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본사로 보낸 장갑차가 도중에 어떻게 됐는지 박강훈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계속해서 본사의 장갑차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니 구출 작전이 아주 실패하고 있는 건 아닐 거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 이번엔 좀 힘들겠는데."
박강훈의 시야에 자신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고슴도치 모양의 괴수와 네다섯의 몬스터가 들어왔다.
저 고슴도치같이 생긴 놈이 문제였다.
조금 전 전투에서 몸을 부르르 떨다가 발사하는 가시를 피해 건물 뒤편에 피했었는데 그 가시가 벽을 뚫고 넘어와 박강훈의 왼쪽 어깨를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그나마 트레이닝 센터에서 탄환 피하기 훈련을 열심히 해두지 않았더라면 고슴도치의 다음 공격에는 몸통이 뚫렸을 것이다.
박강훈은 고슴도치의 다음 공격부터는 모두 피해내거나 벌목도의 옆 날로 막아내며 겨우 고슴도치에게 다가가 거대한 목을 따버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옆에 있던 몬스터의 몽둥이에 등을 맞아 척추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다리가 금방이라도 풀려버릴 것 같은 고통에도 이를 악물고 놈들을 겨우 해치운 후 사람들과 다음 장갑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또 다른 고슴도치와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이다.
저 고슴도치를 처리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장갑차에 태워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망할 해병대 놈들. 이제야 왔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총과 대포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군 병력이 근처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 실장님, 군 병력이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 바로 한 블록 뒤에서 박 상사님 계신 곳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시면 됩니다! 곧 군 병력이 도착합니다!
그때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고슴도치가 박강훈을 향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당장은 움직이지 않고 가시 공격 이후에 바로 달려들기 위해 박강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건물 안으로 피신시킨 사람들은 군부대가 오기 전에 저 몬스터들에게 모두 죽는다.'
박강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벌목도를 쥔 손과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제기랄. 1분만 빨리 오지."
박강훈은 여기서 자신이 살아남으면 국방부에 5분 대기조를 4분 대기조로 바꾸라고 건의해야겠다는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가시를 피해 몸을 날리며 가장 가까운 몬스터에게 뛰어들었다.
* * *
"정신이 드십니까!"
"나… 살아 있습니까?"
"의무병입니다!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아직 살아 있긴 한가 보군……."
박강훈의 머릿속에 아빠와 여행을 간다고 신나 있던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안하다. 지석아, 지은아. 여행은 힘들겠네. 그래도 아빠가 사람 많이 살렸다.'
"심박수 떨어집니다! AED 실시합니다!"
'너희들이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아빠잖아. 같이 여행 못 가게 된 건 용서해 줄 거지? …싫다고? 이놈들아, 아빠 사람 많이 살렸다니까…….'
"쇼크!"
'그냥 계획대로 시골 내려가서 살 걸 그랬나……. 그래도 얘들아, 자랑스럽고 멋진 아빠였지? …좋은 아빠는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CPR 시행합니다! 하나! 둘!"
* * *
다음 날 아침 강화종합병원.
이혁진 실장이 병원에 이미 확인했다고 했지만 내가 직접 병원에 찾아가 물어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었다.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나는 가까운데 보이는 의사에게 다짜고짜 박강훈의 생사를 물었다.
"죄송합니다. 환자분께서는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 이미……."
말도 안 돼.
박 상사님이…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옆에 있던 최수영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고 최수영의 어깨를 감싼 나는 병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본사로 돌아오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박강훈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트레이닝 센터를 지나는 길에 그만 터지고 말았다.
처음 면접을 보던 날 박강훈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디펜서로서의 목표가 있다면요?"
"그 잡것들이 더 이상 지구에 못 넘어올 때까지 이 벌목도로 베고 또 베는 것입니다."
"싸워보셔서 아시겠지만 만만치 않은 놈들이에요."
"이래 봬도 특전사 짬밥만 20년입니다. 그리고 그놈들이 계속 침공해 오는 한 저도 계속 N마켓의 상품을 구매할 겁니다."
"채굴되는 코인 전부 다요?"
"물론 일부는 떼서 가족들 풍요롭게 지내게 해줘야죠. 하하하."
"으아아악!"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며 나도 모르게 건물 벽을 주먹으로 쾅 쳐버렸고 복도와 트레이닝 센터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큰 소리를 내며 터지듯 부서져 나갔다.
나와 최수영을 뒤따라오던 비서가 깜짝 놀란 눈으로 무너져내린 벽을 바라보았다.
"전략기획실 직원들 지금 당장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주세요."
* * *
"그래서, 분명 놈들은 우리 본사 건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분명 아무 계획 없이 사람들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양새는 아니었습니다. 박 상사님도……."
차분하게 보고하던 이혁진이 자신도 모르게 박강훈을 입에 올렸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감정을 추슬렀다.
"…박 상사님도 놈들에게 분명히 지휘부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분명 그쪽 인간들도 함께 넘어왔겠군요. 하지만 강철 인간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죠?"
"네. 아직까지도 해병대에서 남은 괴수와 몬스터를 찾아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강철 인간들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침공 당시 멀리서 찍힌 드론 영상이 전부입니다."
"개 같은 놈들. 어디 숨어 있는 모양이네요."
회의 중에 갑자기 입에 욕을 담는 내 모습을 본 전략실 직원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드론, 헬기 전부 띄워서 찾으세요. 다시 돌아가기 전에 찾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라울은 언제 돌아오죠?"
"오늘 오후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입니다."
"그 전에 강철 인간 놈들은 내가 무조건 잡습니다. 그놈들 없애고 나서 라울과 함께 박 상사님 장례식에 참석하겠습니다. 자, 다들 움직여주세요."
"네! 지금 바로 드론, 헬기 전부 띄우겠습니다."
"최수영 씨는 놈들이 혹시 기습할지 모르니 본사에 남아주세요."
"네?"
"혹시라도 기습할 수 있으니 본사에 남아 직원들을 책임지고 지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 바로 나가서 놈들 흔적을 좀 찾아보겠습니다. 김 비서님, 인근 상인들 피해 상황 파악해 주시고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네. 대표님."
"박 상사님 가족분들께는……. 아닙니다. 장례식장에서 제가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죠."
* * *
"이 실장님, 이쪽 산중에도 전혀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까?"
-네, 대표님. 공중에서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습니다.
본사 근처부터 시작해 공중에서 잘 확인할 수 없는 지역을 골라 놈들을 찾아 헤맨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벌써 돌아간 건가. 한국에 차원의 문 열렸다는 소식이 있습니까?"
- 아니요, 아직 없습니다.
그때였다. 숲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튀어나와 나에게 날아들었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그 물체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나는 깜짝 놀라 검을 멈추었고, 검은 물체는 마그네타 검의 옆 날을 사뿐히 밟고선 내 어깨 위로 올라섰다.
"꽝이야!"
"애옹―"
"너 이놈, 없어졌다더니 어디 갔었어?"
"애옹―"
내 볼에 자신의 볼을 몇 번 비빈 꽝이가 땅으로 내려서더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
"애옹―"
뒤를 한 번 돌아본 꽝이는 따라오라는 듯 계속 걸었고 나는 일단 꽝이를 뒤따라가 보기로 했다.
* * *
"안드레스 님, 이제 남은 계획은 무엇입니까?"
제3 기사단 소속 기사 루카스가 마법사 안드레스에게 물었다.
"조금 더 있으면 한국에 차원의 문이 열린다. 우리는 그때 다시 돌아간다."
"그때 다시 돌아간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 함락에도 실패했고 이렇다 할 정보도 얻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뭐라고 보고해야 합니까?"
"짐승들과 몬스터들로는 외성벽조차 무너뜨리지 못할 만큼 그자의 성이 견고하다는 것은 알게 되지 않았나. 어쨌든 지금은 돌아가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던 다른 기사가 빈정대는 말투로 말했다.
"애초에 마법사의 탑에서 저런 짐승들과 몬스터들에게 연금술까지 사용해 가며 이곳에 보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소. 오늘만 해도 애초에 우리 제3 기사단을 이곳에 보냈다면 지금 저 성은 재만 남았을 것이오. 아니지, 그랬으면 애초에 부끄럽게 빈집털이 같은 짓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안드레스가 미간을 좁히며 그 기사를 노려보았다.
마법사의 탑의 전술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이 기사의 이름은 이든.
분명 안드레스의 서열이 높음에도 고위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자신을 하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마법사의 탑과 대마법사님까지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지 않은가.
"이든, 이건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전쟁이다. 대마법사님은 가장 확실한 승리를 거머쥘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불대지 말도록."
"뭐? 나불대? 지금 나한테 한 말이오?"
"내가 엄연히 상관이다. 예의를 지켜라."
"예의를 지켜서 이 정도인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안드레스 경. 그대야말로 도대체 뭘 믿고 나한테 이러는 것이오? 언제까지 내 상관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때였다. 루카스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기 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루카스의 외침에 고개를 든 안드레스의 시야에 검은색 검을 들고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지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서, 설마……."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던 이든이 일어나며 말했다.
"뭐야, 저놈은? 혼자 온 건가?"
자신의 검과 방패를 집어 들고 앞으로 나서려는 이든에게 안드레스가 다급히 말했다.
"멈춰라! 이든. 공간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우리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나서지 말아라. 느낌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저자가……."
"내가 이래서 마법사들을 싫어한다니까. 저 쪼그만 놈 하나 무서워서 지금 여기 숨어 있자는 말이오? 그리들 겁이 많으니 직접 못 나서고 일 년 넘게 지구에 짐승이나 보내고 있는 거겠지."
"아무래도 저자가 김수호인 것 같다. 너도 들은 바가 있을 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라."
"더 잘됐군. 안드레스 상관님, 공간 마법 풀고 버프 마법이나 좀 빵빵하게 걸어주시오. 얘들아, 가자. 저놈을 죽이고 떳떳하게 왕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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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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