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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43화 (43/200)

43화

【 연금술, 정령, 그리고 몬스터 】

나와 폴의 눈이 동시에 동그랗게 커졌다.

잠시 후,

"애옹―"

어깨 위에 있던 꽝이가 지루한지 바닥으로 뛰어내려 응접실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짧지만 긴 침묵은 그걸로 끝이 났다.

"맞습니다."

"내 예상이 맞았군. 라트니아 왕국에 갔을 때 행성062의 인간들이 여기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지. 자네가 바로 그 지구인이었군. 폴에게 말한 대로 시엠브레 제국에 작위를 받으러 간다는 말은 물론 거짓말일 테고."

"뭐, 잠깐 둘러댈 말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수호! 지구인? 시스템에서 말하던 그 행성에서 온 사람이란 말이에요? 언제? 언제 왔어요?"

"오늘. 아무렇지 않게 정체를 밝힐 수는 없어서 거짓말을 좀 했다. 미안하다."

"말도 안 돼. 내가 외계인을 만나다니."

외계인이라. 맞는 말이긴 하지만 기분이 좀 이상한데.

"전쟁을 하러 온 건가?"

저 매튜 남작이라는 강철 인간에게는 왠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고 느껴졌다.

"지구인의 입장으로는 전쟁을 막으러 온 거고. 그쪽 입장에서는 내가 전쟁을 일으키러 온 걸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군. 어떤가? 그 지구라는 곳은. 살 만한가?"

"여기서 온갖 강철 괴수와 몬스터를 보내기 전까진요."

"지구인들은 모두 자네처럼 강한가?"

"제가 좀 강한 쪽에 속한다고 해두죠."

"음……. 불과 몇백 년 만에 이 행성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린 그놈들이라면 지구도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리겠지."

그놈들? 같은 편 아니었어?

"말도 안 되게 강한 것 같긴 하지만 혼자서 뭘 어쩔 계획인가? 나에게 그 계획을 알려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알려줄 리가 없겠죠? 혹시라도 그냥 묻는 게 아니라 지금 심문하는 거라면 저는 당장 이곳을 나갈지 당신의 목을 베어버릴지 선택해야 합니다."

"불사인은 저 밖의 몬스터들처럼 그렇게 쉽게 베어지지 않네."

"많이 베어 봤는데 별 차이는 못 느꼈습니다."

매튜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조금 더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필요가 있겠군. 우리 키르칸은 사백 년 전까지는 제법 크고 풍요로웠던 왕국이었네. 팔백 년 전 시엠브레가 중앙 대륙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시엠브레보다도 더 큰 왕국이었지. 하지만 보다시피 지금은 이렇게 풍화되어가고 있는 옛 영광 위에 겨우 집이나 짓고 생계를 꾸리고 있는 신세일세. 예상했겠지만 나는 키르칸 왕국의 마지막 생존자이고."

마을에 처음 들어올 때 느낀 특이했던 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무슨 고대문명 관광지 위에 마을을 지어놓은 듯한 모양이었군.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놈들이 지구를 침탈하는 데 성공하면 우리의 후손들도 이렇게 되는 건가.

"어때,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볼 마음이 생겼나?"

남작의 뒤쪽으로 제멋대로 응접실의 한쪽에 놓인 선반 위에 올라가 편안하게 앉아 있는 꽝이가 보였다.

매튜 남작이 우리에게 적대심을 품고 있었다면 이미 꽝이가 하악질을 했겠지.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다면 기꺼이요."

"그래. 듣고 나서 자네 얘기도 들려줄 마음이 생기거든 그땐 자네도 이야기해 주게나."

"네, 그러죠."

"시엠브레 제국은 본래 지금처럼 북반구 중앙 대륙을 통차지한 대국이 아니었네. 이 행성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땅인 중앙 대륙은 네 개의 왕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며 통치하고 있었지. 시엠브레는 그중 하나였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 세계사 수업을 듣는 기분이네.

"그런데 천 년 전, 시엠브레의 학자이자 마법사였던 사무엘이 모두가 그토록 노력했으나 풀지 못했던 연금술의 마지막 열쇠를 찾아내고 말았네."

"연금술로 강력해진 군대를 동원해 정복 전쟁을 펼친 거군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연금술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시엠브레의 땅은 황폐해져 갔지. 처음엔 놈들은 그런 것쯤은 신경도 쓰지 않았어. 무한한 부와 불로장생의 몸을 가지게 되었으니 숲이 사라지는 것 따윈 관심 밖이었던 거지. 하지만 곧 시엠브레의 영토엔 연금술의 마지막 재료이자 이 땅에 숲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존재인 정령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네."

"정령이요?"

"그렇네. 온통 사막뿐인 이 행성에 울창한 숲이 있을 수 있었던 건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정령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먼 옛날, 살아 있는 모든 식물과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 정령들은 자신들의 마법을 이용해 이 황폐한 땅에 아름다운 숲을 만들었네. 메마른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거지."

남작은 잠시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심지어 이 행성에 인간이 점점 많아져 자꾸 숲을 파괴하려 들자 정령들은 인간들을 숲에서 강제로 쫓아내는 대신 자신들의 마법을 전수해 주는 길을 택했네.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마법. 그 마법을 가지고 인간들은 따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더 이상 숲을 파괴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

그 시끄러운 폴도 언제부턴가 조용히 남작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정령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숲에서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네. 자신들이 알려준 마법을 바탕으로 인간들이 결국 연금술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지금 마법사들이 쓰는 그 마법은 정령이 알려준 것이란 말인가요? 숲을 파괴하지 말고 따로 농사짓고 살라고?"

"그렇네. 하지만 지나치게 영리하고 욕심이 많은 인간은 그 마법을 전혀 다른 쪽으로 발전시켰지. 풍족해진 인간들은 정령들이 가르쳐준 마법을 변형시켜 서로 힘을 겨루고 전쟁하고 땅을 빼앗는 데 사용한 거야. 그러다 결국 저주받을 연금술까지 완성해 버리고 만 것이지."

"그런데 정령이 그 연금술의 마지막 재료였다고요? 그래서 인간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한 건가요?"

"정령은 순수한 생명력 그 자체. 스스로 늙지도 죽지도 않을뿐더러 누가 죽일 수도 없는 존재이네."

"그런데 지금은 정령이 거의 사라졌다면서요?"

"인간들은 연금술을 완성하기 위해 정령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다가 그들에게서 생명 에너지를 몽땅 빼내고 다시 풀어줬네. 풀려난 정령들은 다시 자신들이 살던 숲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인간에게 너무 많은 생명력을 빼앗긴 탓에 전처럼 숲을 가꿀 수 없게 되었어."

"안타까운 일이군요."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숲이 망가져만 가자 정령들에게 남은 건 자신들이 가꿔온 숲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분노뿐이었지. 결국 정령들은 마지막 남은 생명 에너지를 모두 짜내어 스스로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모습을 가진 존재로 변하는 길을 택했네."

남작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해서라도 더 이상 인간들이 숲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만들려고 한 거지. 자신들의 영원한 생명도, 아름다움도, 고귀함도, 지혜로움도 모두 버리고 그저 본능에 충실하고 흉악하게 생긴 괴물이 되기로 한 것이야."

"설마……?"

매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자네가 베어버린 그 몬스터들이네. 예전엔 이 행성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였었지."

지구에 금속 몬스터가 처음 침입해왔을 때 최수영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으, 차라리 금속이라 다행이에요. 금속 재질이 아니었으면 더 징그러웠을 것 같아요."

그렇네. 의도대로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한 거 맞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도 가슴 한편이 조금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라도 자책하지는 말게. 정령들이 스스로 선택해 그렇게 변한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이성도 마음도 없는 상태가 된 거니까. 자네가 베어버린 건 누가 죽이기 전까지 죽지도 못한 채 숲을 지키고 있는 정령의 껍데기일 뿐이야."

"참 씁쓸한 이야기군요. 그럼 그래서 이 행성이 이렇게 황폐해진 건가요?"

"그렇네. 시엠브레 놈들은 영토 확장엔 별로 관심이 없었어. 하지만 자신의 영토에 정령이 남지 않게 되자 정복 전쟁을 시작했지. 연금술로 무장한 그들은 강력했고, 주변 왕국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어. 물론 그렇게 침략하고 나면 놈들은 바로 정령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 행성엔 이제 정령이 거의 안 남았다는 말씀이군요. 놈들의 욕심은 채웠지만, 그 결과 행성 전체가 황폐해져 버린 거고.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정령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을 배웠다면서요? 그 마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되잖아요."

"그것도 이 땅에 정령들이 많이 있고 우거진 숲이 있었을 때 얘기였네. 인간들이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뭘 어떻게 해봐도 이젠 전처럼 땅에서 식물들이 잘 자라질 않아."

"그래서 저주받을 연금술이라고 하셨군요."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말하는 내용이나 말투를 봐도 이 땅을 이렇게 만든 연금술과 시엠브레 제국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게 느껴지는데.

정작 본인은 연금술로 만들어진 불사인이네?

그때, 진지한 분위기에 입을 닫고 있던 폴이 다시 그 모터 달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남작님! 그래서 저보고 기사 작위를 받으러 시엠브레에 가지 말라고 하신 거군요! 정령이 있었다는 건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은 건 처음이에요. 시엠브레 제국 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네요! 그런데 키르칸이 천 년 전엔 시엠브레보다도 큰 왕국이었다는 게 정말이에요? 그냥 좀 과장된 이야기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매튜 남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폴에게 되물었다.

"자세히 들은 적은 처음이다? 그냥 좀 과장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네. 아무도 이렇게까지는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허허… 어른들이 이 이야기를 너한테 자주 해주지 않았단 말이지? 이백 년, 아니 백 년 전만 해도 모든 마을 사람들이 시엠브레 놈들에게 칼을 갈고 있었는데.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니 분노도 옅어지는구나."

둘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한 게 몇 년 전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45년 광복이니까 이제 78년.

78년밖에 되지 않았어도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와 또 요즘 어린 세대의 생각이 다 다른데.

정복 전쟁 당시 살아 있었던 매튜와 그로부터 400년 후에 태어난 폴의 상황이 이해가 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남작님이 계시잖아요. 역사의 증인! 대륙 최강의 검사!"

"역사의 증인은 맞는다만, 대륙 최강의 검사는 먼 옛날이야기다. 불사인이 되기도 전이지."

"그래서 더 유명하신 거잖아요! 인간의 몸으로 불사인들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던 마지막 전설! 대륙 최고의 검!"

"이놈. 역사 공부는 하나도 안 하는 게 그런 이야기들만 그렇게 좋아하니 부모님이 항상 걱정하시는 거 아니냐."

지금이다. 왜 불사인이 되었는지 물을 타이밍.

"남작님께선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시엠브레의 불사인들에게 대항하셨던 모양이군요. 그런데 어쩌다 지금은?"

매튜 남작의 눈이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이 몸 말인가? 키르칸 왕국의 마지막 왕이자 나의 마지막 주군, 에밀리아노 4세의 마지막 명령이었네. 더 이상 백성들이 희생당하는 걸 막기 위해 결국 항복을 택했던 그 날, 그는 나에게 시엠브레의 신하가 되어 불사인이 되라고 명령했지."

매튜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자신이 불사인이 된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 * *

4월 26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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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금액 82조 6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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