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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44화 (44/200)

44화

* * *

400년 전, 키르칸 왕궁.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차라리 나가서 끝까지 싸우다 죽겠습니다!"

"매튜."

"전하! 어떻게 저에게 시엠브레의 개가 되라는 명령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한평생을 키르칸 왕국의 가장 충실한 검으로 살아왔습니다! 저의 명예를 더럽히는 명령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일 그 더러운 놈들에게 항복하기 전에 이 자리에서 자결하라 하시면 당장 그리하겠나이다!"

매튜는 허리춤의 검을 빼 들고 자기 목에 가져다 대었다.

물론 검 끝이 본인의 목을 향해 있지만 알현실에서, 그것도 왕의 바로 앞에서 기사가 검을 빼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역죄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에밀리아노 4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매튜의 검을 손으로 잡아 그의 목에서 떼어 놨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에 에밀리아노 4세의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놀란 매튜가 왕의 상처가 더 커질까 검을 빼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전하!"

"명령이 아니다. 부탁하는 것이다. 믿고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지금처럼 이렇게 나에게 큰소리로 대들 수 있는 자도 너밖에 없지만, 영원의 세월 동안 키르칸 왕국의 정신을 이어줄 자도 너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에밀리아노 4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탁이다. 불사인이 되어 남은 키르칸의 백성들을 지켜주어라. 그들의 자녀의 자녀의 자녀까지. 무능하고 못난 왕을 만나 더 이상 왕국의 비호를 받을 수 없는 이 가여운 백성들과 그 후손들을 네가 대신 지켜주어라."

"전하……."

"시엠브레에는 이미 약속을 받아두었다. 네가 불사인이 되어 남반구인들과의 전쟁에 참여하면 전쟁이 끝나고 난 후 키르칸 지역의 영주 자리를 너에게 내어주기로. 그것이 우리 키르칸 왕국의 유일한 항복 조건이다."

매튜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렀다.

내일 이후 더 이상 왕국의 비호를 받을 수 없게 된 백성들.

그리고 왕국이 아예 없는 곳에 태어날 그 후손들.

그 모든 백성을 생각하는 에밀리아노 4세의 마음이 매튜에게 전해졌다.

물론 매튜에겐 가혹한 일일 수 있다는 건 에밀리아노 4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왕족이 아니면서 키르칸에 무한한 충심을 품고 있는 매튜밖에 없었다.

다른 왕국들처럼 쉽게 정령을 내주지 않고 끝까지 항쟁했던 대가로 키르칸의 모든 왕족은 내일 처형될 것이므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매튜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정령들이 스스로 괴물이 되어 숲을 지키듯 저도 스스로 그 저주받을 불사인이 되어 이곳 키르칸을 영원히 지키겠습니다."

에밀리아노 4세의 가슴을 송곳으로 후벼파는 말이었다.

하지만 에밀리아노 4세는 매튜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심이리라.

진심으로 명을 이행하겠다는 다짐이리라.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을 삼가기보다는 차라리 가장 직설적인 말에 진심을 담는 것을 택했으리라.

* * *

"…해서 나는 이곳 키르칸 땅을 벗어날 수 없네. 하지만 자네의 계획을 들려준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을 한번 찾아보겠네. 비록 먼 외계에서 왔다지만 뻔히 우리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 청년을 내가 돕지 않는다면 누가 돕겠나. 물론 우리 마을 사람들을 구해 준 것에 대해 보상도 해야 하고 말일세."

"실은 이곳으로 넘어오는 도중에 공격받았습니다. 그래서 일행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그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폴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럼 이 주변을 다 뒤져서 일행들부터 찾아야죠! 지금 여기 앉아서 뭐 하는 거예요!"

"그게, 워낙 멀리 흩어졌을 거라 주변을 수색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어쩌면 누구는 바다에 떨어지고 누구는 남반구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있는가?"

"일단은 빌데르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국 남쪽 항구 도시 말이군. 여기선 제법 먼데."

"어차피 최종 목적지도 제국 안에 있으니까요."

"혹시 마법사의 탑에 찾아가는 계획인가?"

"맞아요."

"그 큐브라는 것을 없애버릴 계획인가? 그럼 다시 돌아갈 수 없을 텐데?"

"남작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것까진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 계획은 빌데르에서 일행들을 만나 마법사의 탑에 가서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넘어온 일행들은 모두 자네와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 북반구인들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도 있고 아예 다른 외모인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는 백인 대원들을 말하는 것이었고 후자는 흑인인 제이슨 대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살아 있다면 다들 신분을 숨긴 채 빌데르에 들어가려 하겠군. 수소문해서 찾는 건 쉽지 않겠어. 다만 이런 촌구석 마을이 아니라 대륙의 중심부 근처에서 오늘 자네가 보여준 것과 같은 일을 벌인다면 그건 금방 소문이 나겠지."

"…이렇게 정체도 탄로 날 테고요."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마을 사람들에게도 오늘 일은 함구하라 이르겠네."

"감사합니다."

"얘길 들어보니 급히 떠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겠군. 마음은 급하겠으나 여기서 며칠 묵으며 함께 계획을 세워보세.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도 이것저것 알려주려면 오늘 하룻밤으로는 부족할 것 같군."

폴이 손바닥을 짝짝 치며 소리쳤다.

"그래요, 수호! 우리 마을에 며칠 머물도록 해요! 마을 사람들도 모두 좋아할 거예요. 수호는 우리 마을의 영웅이라고요."

"시간을 오래 끌 순 없지만 하루 이틀이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도움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좀 막막하긴 했거든요."

"도움이라 생각 말게. 폴의 말대로 자네는 우리 마을의 영웅 아닌가. 우리 마을을 지켜준 보답이라고 생각하게.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니."

"그런데 주로 감자 같은 걸 드시는 것 같은데 저 밖의 몬스터의 고기는 못 먹나요? 그럼 한동안은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몬스터의 고기는 먹을 수 없네. 단단한 가죽은 여러모로 쓸 수 있지만, 이미 오래전 모든 생명력이 빠져버린 저 몬스터들의 고기는 식량으로 쓸 수가 없어."

"저렇게 많이 잡아놨는데 아쉽군요."

"아쉬울 거 없네. 가죽만 잘 벗겨서 보관해 두었다가 천천히 이곳저곳에 팔면 자네 말대로 한동안은 식량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될 테니까. 이미 시간이 많이 늦은 것 같군. 방을 마련해줄 테니 피곤할 텐데 쉬게나. 내일 다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어? 안 돼요, 남작님. 수호는 우리 집에 가서 잘 거예요. 제가 가장 먼저 발견했으니 여기 있는 동안은 저와 지내야 한다고요. 그렇죠, 수호?"

뭐야, 처음 발견했다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가?

"뭐, 나는 어디든 상관없는데. 남작님도 먼 길 다녀오셔서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일단 폴의 집에 가서 신세를 좀 질까?"

"네! 가요, 수호. 내일 다시 오더라도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자요."

* * *

다음날 날이 밝자 온 마을 사람들이 몬스터 시체 산을 치우느라 마을 남부 광장에 모여들었다.

몬스터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쌓고, 한쪽에서는 벌써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온 듯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효율적으로 분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작님 나오셨습니까!"

누군가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자 매튜 남작이 광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고생이 많군."

"고생이라뇨! 이것들 다 내다 팔면 몇 년은 식량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식량 걱정은 무슨! 남작님! 우리 마을은 이제 부자 마을이 될 겁니다!"

"그래. 당분간은 좀 편히 지낼 수 있겠군. 어제 일과 관련해 중이 회의할 것이 있으니 마을 임원들은 지금 회관으로 모이게. 우리 마을의 영웅 수호 님도 함께 오시고."

마을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널찍한 회관 건물 안에 십여 명의 마을 임원들이 모였다.

그중엔 폴의 아버지 파커도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 하루아침에 몬스터를 저만큼 잡았다고 하면 분명 그 얘기는 여러 왕국에 퍼질 것이고, 그럼 많은 귀찮은 일이 생길걸세. 모든 마을 주민들은 어제 일에 대해 외부인에게는 일절 발설해서는 안 되네. 그리고 여기 남반구에서 오신 용사님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평화로운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서니 다들 잘 따라주시기를 바라네."

"네, 남작님."

"물론입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죽도 계획을 세워서 천천히 풀어야겠지요."

임원들의 대답에 만족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 매튜 남작은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임원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리고 마을 장로들은 우리 키르칸 왕국의 역사에 대해 대대적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교육을 시행하게.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헉!"

"헙!"

매튜 남작의 말에 몇몇 임원의 입에서 마른 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

"키르칸 왕국이란 단어를 절대로 써서 안 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후손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을 순 없는 것일세. 이대로라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시엠브레 제국이 무서워 키르칸 왕국이라는 말을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곳에 그런 왕국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게 될 것이야."

몇몇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또 몇몇은 아직도 자기 입을 틀어막고 자꾸 왕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남작을 위태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반구에서 오신 김쏘 용사님은 며칠간 우리 마을에서 머물다가 시엠브레 제국으로 떠날 것이네. 그곳에서 검술 실력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을 계획인데 우리 북반구의 지리나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우리 마을에서 동행자를 붙여드릴까 하네. 임원들은 적당한 인물을 추천해 주시게.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마을을 위기에서 구해 주신 귀한 분인데 우리도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말엔 임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원 한 명이 남작에게 물었다.

"그럼 시엠브레 왕궁까지 동행하는 겁니까?"

"아니네. 빌데르에 볼일이 있다고 하니 라트니아 왕국을 지나 마리노 왕국에서 빌데르에 가는 배를 타는 데까지만 동행하면 될 것 같네."

마을 사람이 나와 함께 시엠브레까지 들어갔다가 혹시라도 내가 지구인임이 발각되면 나를 도운 이 마을까지 위험해질 수 있겠지.

현명한 판단이다.

"자, 밖에 몬스터들 치우는 일로 바쁜데 회의는 이걸로 마치지. 수호 님은 나를 따라 저택으로 오시게. 내 이 행성, 아니 북반구에 대해 알려줄 것들이 많네."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 행성이라니, 400년 넘게 산 사람도 말실수를 하는군.

* * *

매튜 남작은 오전 내내 응접실에 앉아 이곳의 지리부터 여섯 왕국의 정세까지 다양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중앙 대륙에 있던 네 나라는 시엠브레 왕국에 의해 하나로 통일이 되어버렸고, 중앙 대륙 주변의 다섯 왕국은 이미 너무 강대해진 시엠브레와의 전쟁을 포기하고 속국이 되었다고 했다.

때문에 왕권은 지킬 수 있었지만 영토 내 정령을 모두 잃었고 지금은 사실상 시엠브레의 통치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정령과 숲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한 곳은 이곳 키르칸 왕국밖에 없었으며, 나머지 소국들은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영토 내 정령을 모두 뺏기고 말았다.

결국 키르칸 왕국까지 왕권을 포기하고 항복을 하게 된 후 시엠브레는 남반구로 침략을 이어 갔고, 그곳의 전쟁은 그저 학살에 불과했다는 매튜의 설명이 이어졌다.

시엠브레는 그렇게 행성 전체에서 잡아들인 정령들로 권력 계층들의 불사인화를 계속 이어 나간 것이다.

덕분에 시엠브레의 모든 귀족은 이미 불사인이 되었고 그 이후로도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귀화를 요청한 귀족들은 제국의 엄격한 선별과정에 따라 불사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 * *

4월 2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7,204개]

[단가 48억 원]

[평가 금액 82조 6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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