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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52화 (52/200)

52화

* * *

우리는 왕자 일행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전 산티아고 공작의 저택에 들러 용병들이 가지고 있던 편지의 인장과 공작의 인장이 조금 다른 것도 확인했다.

"왕자, 그럼 이번 일이 몬테넬 놈들이 꾸민 짓이란 말인가."

"예, 전하. 공작이 더 자세한 것들을 조사해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저를 해하고 이를 공작의 짓으로 꾸며 라트니아의 국력을 완전히 흐트러뜨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시엠브레의 폭정에 시달리기만 하다가 이제야 숲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마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나 했더니 이번엔 또 뜬금없이 몬테넬 놈들이 말썽이구나."

"숲의 개발보다는 몬테넬과의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우선일 듯하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제 겨우 개발한 숲 개발 마법 기술만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마법으로 숲을 되살리려 한다는 소문이 북반구 전체에 퍼졌습니다."

"시엠브레야 느긋하게 우리 기술이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뺏어가면 그만일 테고. 몬테넬 놈들이야말로 이제 마음이 급해진 게로군."

"네, 전하. 우리가 숲을 되살리는 데 완벽히 성공하고 나면 우리 왕국과 시엠브레 제국만이 그 기술을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니, 자신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테니까요."

"두 왕국이 무슨 짓을 벌여도 시엠브레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지금이 우리의 마법 기술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게로군."

"시엠브레야 그 기술이 라트니아에서 완성되든 몬테넬에서 완성되든 상관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몬테넬 놈들은 자신들의 계획에 대해 시엠브레에 이미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음……. 어쩌면 전쟁에 대비해야 할 수도 있겠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 복장을 한 사내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놈들의 궁사 부대가 막강하다 한들 우리의 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당해 내기엔 한참 모자랍니다. 이참에 우리가 먼저 놈들을 쳐 다시는 감히 우리 라트니아를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엔 그의 반대편에 서 있던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 나섰다.

"우리뿐 아니라 지금 모든 왕국은 백성들의 식량을 구하는 데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상황입니다. 이 와중에 전쟁이라니요. 전쟁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동안 더 깊어질 백성들의 배고픔은 어찌한단 말입니까. 몬테넬과의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지금은 숲을 되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기사 복장의 사내가 소리쳤다.

"우리 왕자님을 해하려던 놈들 아닙니까? 망설이다가 당하느니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야 합니다. 몬테넬 놈들이 지금 그 어이없는 활쏘기 대회인가에 푹 빠져 있을 지금이 기회입니다!"

"활쏘기 대회? 뭘 잘 모르는군. 이번 활쏘기 대회는 이미 망했다네. 대회 일정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남반구에서 온 궁사 하나가 너무 압도적인 기량을 펼치고 있어 이미 왕족과 귀족들의 관심이 떠났다는 소식이네. 몬테넬의 궁사들을 우승시키기 위해 대회 룰을 유리하게 바꿔봐도 그 남반구의 궁사 하나를 당해낼 수 없는 모양이야."

둘의 대화에 왕자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압도적인 선수가 있으면 대회가 더 재미있어지는 것 아닌가?"

노인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랬겠지만, 그 선수가 몬테넬도 시엠브레도 아닌 남반구의 궁사라는 게 문제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전에 없이 그 궁사에게 열광하고 있지만 왕국의 고위층은 이미 대회에 흥미를 잃은 상태라고 합니다."

전쟁을 하니 마니 하는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몬테넬의 활쏘기 대회가 언급되는 걸 보니 그 대회의 규모나 영향력이 크긴 큰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깐, 어디서 온 궁사라고?

"중요한 대회 중에 죄송한데 잠깐만요. 남반구에서 온 궁사라고요?"

노인이 엄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무엄하다! 왕자 저하와의 대화 중에 끼어드는 것이냐!"

"루카 경, 괜찮소. 저분들은 내 생명의 은인이시오. 수호,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물으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저에겐 너무 중요한 일이라 그만. 지금 몬테넬의 활쏘기 대회에서 활약 중이라는 그 남반구의 궁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루카 경이라고 불린 노인은 그제야 엄한 눈을 조금 풀고 나에게 대답해 주었다.

"같은 남반구인이라 흥미가 돋는 모양이군. 내 들은 바로는 특이하게 생긴 활을 든 여성 궁사라고 하네. 아무리 마법과 궁술은 여성들도 잘 다룬다고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는군."

노인의 대답을 듣고 나자 이곳으로 떠나기 전 우주선에서 수영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오빠, 그런데 우리 혹시 거기서 멀리 떨어지게 되면 어떡하지? 당연히 휴대폰도 안 될 테고.'

'안 떨어져야지. 혹시라도 멀리 떨어지게 되면, 수영이 넌 평소 하던 대로 관종 짓을 하고 있어. 그럼 내가 금방 찾으러 갈 수 있을 거야.'

'뭐? 관종 짓?'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

설마 진짜 관종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몬테넬에서?

"여기서 몬테넬까지는 얼마나 멀죠?"

"말을 타면 사흘 정도면 도착할 수 있네. 두 왕국 사이는 비교적 길도 잘 닦여 있는 편이고."

* * *

알현실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얘들아, 나는 몬테넬에 가봐야겠다. 거기에 내가 찾아야 할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에릭과 레온은 내가 지구에서 온 것도, 흩어진 일행이 있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폴이 눈치껏 물어보았다.

"그 남반구 궁사요? 그 사람이 수호가 찾는다는 사람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런 것 같다."

"그럼 같이 가야죠! 어차피 그분 만나면 다시 함께 빌데르로 갈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내가 마음이 좀 급해서 말이야. 날이 밝는 대로 바로 출발해서 뛰어갈까 해."

에릭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뛰어간다고요? 뛰어갈 거리는 아니에요. 차라리 왕실에서 말을 빌려서 함께 타고 가죠?"

"난 말 탈 줄 몰라. 그리고 내가 뛰어가는 게 더 빠를걸."

"말로 꼬박 달려 사흘이에요. 수호가 빠른 건 알지만 인간이 뛰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라고요."

"어쨌든 몬테넬엔 나 혼자 다녀올 테니 너희들은 여기 라트니아에 잠깐 머물고 있어."

폴이 내 팔을 붙잡고 옆방으로 끌고 와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 혼자 다니면 너무 눈에 띄어서 남작님이 우리를 붙여준 거잖아요. 인제 와서 몬테넬까지 혼자 가면 어떡해요, 심지어 거긴 지금 축제와도 같은 대회 중이라 여러 왕국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요. 항상 침착하고 이성적이던 수호답지 않아요."

"하하, 티나냐? 근데 내가 지금 막 차분할 상황은 아니라서 말이지. 좀 다녀올게."

"아니, 그 찾는다는 분은 지금 활쏘기 대회에 참가 중이라면서요. 그것도 압도적인 우승 후보. 중간에 떨어질 게 아니면 활쏘기 대회는 아직 많이 남았어요. 우린 수호 혼자 못 보내요."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거기까진 길도 잘 닦여 있다고 했으니 너희들끼리 와도 안전할 거야. 나 먼저 갈 테니 너희들은 에릭 말대로 말을 빌려 타고 바로 뒤따라와. 활쏘기 대회장 근처에서 남반구인을 찾으면 날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아냐."

"수호."

"응?"

"저 말 탈 줄 모르는데요."

"그럼 걸어와."

"그래서 언제 따라가요. 수호는 금방 갈 거잖아요."

"그럼 뛰든지."

"…갔다 바로 여기로 올 거죠? 그럼 저희는 여기 있을까요?"

"응. 여기 있어. 오랜만에 키르칸 밖에 나왔으니 왕국 구경도 좀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 여기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겠으니 그 전에 좀 즐겨두라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폴 일행과 짧은 작별을 하고 바로 몬테넬 왕국을 향해 북쪽 대로를 따라 내달렸다.

바위나 물길을 따라 길이 굽이져있으면 높이 날아올라 뛰어넘었고, 한적한 곳에서 만난 도적단은 달리던 속도도 늦추지 않은 채 그대로 베어버리고 지나갔다.

반나절을 그렇게 달리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잠시 멈춰 서 숨을 고른 나는 엔캡슐을 하나 꺼내 먹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몬테넬 왕국의 가장 남쪽 마을에 도착했고, 여관을 찾기에도 시간이 너무 늦어 적당히 지붕만 갖춰진 창고를 하나 찾아 들어가 좀 쉬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보는 눈이 많으니 오늘 같은 속도로는 달릴 수 없다. 그래도 하루 만에 몬테넬에 들어왔으니 내일은 적당한 속도로 쉬지 않고 뛰어가면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왕궁 근처 대회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남반구에서 와 활쏘기 대회에 참가한 압도적인 실력의 궁사.

실력이 너무 뛰어나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그 소문이 옆 왕국 라트니아까지 퍼진 궁사.

대회 규칙을 바꿔가면서까지 떨어뜨려 보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이겨낸 남반구인 궁사.

농담으로 멀리 떨어지게 되면 관종 짓을 하고 있어 보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게 이목을 끈 거 아닌가…….

"하, 꽝이야. 이 관종을 도대체 어떻게 하지?"

"애옹―"

"에이, 아닐 거야. 설마 관심 좀 끌겠다고 갑자기 이런 큰 대회에 나왔겠어? 자기 정체가 발각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무슨 다른 사정이 있는 거겠지. 우리도 여기 온 첫날 몬스터를 천 마리나 베어버렸잖아."

"애옹?"

"아니라고? 관종이 맞는 것 같다고?"

"애옹."

"글쎄, 만나서 물어보자. 일단 눈 좀 붙이자 꽝이야. 피곤하다. 그나저나 최수영이 아니면 어쩌지……."

* * *

다음날.

누군가 처음부터 쫓아왔다면 깜짝 놀랄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급하게 어딜 가는 길인가보다 싶어 보일 속도로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오후 늦게 대회장 근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의 경기는 모두 끝난 모양이었다.

인근 여관을 하나 찾아 들어가자 확실히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라트니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식당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 빈 자리도 없는 터라 나는 최수영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용병 알렉스가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대로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합석해 보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네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시끄러운 남녀를 타깃으로 정했다.

남자는 커다란 덩치에 가죽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작은 체구에 회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정체도 숨길 겸 이곳에 더 익숙한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처음 만난 용병인 알렉스의 맨 앞 글자만 빼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본 후 그들에게 다가가 용병인 척 말을 걸어보았다.

"안녕하시오, 나는 남반구에서 온 용병 렉스라고 하오. 여기 활쏘기 대회가 굉장한 볼거리라기에 와봤는데 사람이 많아 밥을 먹을 곳도 찾기가 힘들군. 괜찮으시면 여기 빈자리에 좀 앉아도 되겠소?"

제법 용병티가 나도록 알렉스의 말투도 흉내 내보았다.

"저리 꺼지시오."

와, 이거 야박하네.

알렉스처럼 하면 다들 자리에 끼워주는 거 아니었어?

그때 다행히 저리 꺼지라던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로브를 걸친 여자가 자신의 옆에 있는 의자를 빼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해 주었다.

"괜찮아요. 이리 앉으세요.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오늘 돈을 많이 잃어서 그래요. 호호호. 나는 주술사 필라르예요. 저기 화가 잔뜩 나 있는 녀석은 사냥꾼 세르히오."

"제길! 돈 잃은 얘기는 뭣 하러 해."

"다 잃은 것도 아닌데 그러고 있는 꼴이 웃겨서 그러지. 내일 다시 따면 될 거 아냐? 그러게 내일은 그 여자 궁사한테 걸라니까?"

"그 여자한텐 인제 와서 걸어봐야 배당이 너무 낮아져서 대회 끝날 때까지 잃은 돈 반도 못 찾아!"

* * *

5월 1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7,480개]

[단가 49억 원]

[평가 금액 85조 6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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