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53화 (53/200)

53화

* * *

로브를 걸친 여자의 옆에 앉은 나는 간단히 식사를 주문하고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세르히오, 어쩌다 돈을 잃으셨소? 여기부턴 내가 술을 살 테니 나도 대회 얘기 좀 들려주시오. 오늘 처음 왔더니 아는 것이 없소."

조금 전 합석을 청하는 나에게 바로 꺼지라는 말을 내뱉었던 세르히오가 나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이, 남반구인 용병 양반. 돈이 꽤 있소? 나 오늘 술을 아주 많이 마셔야 될 기분이라서 말이지."

"여기 있는 두 분에게 술과 음식을 넉넉히 살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 자, 그러지 말고 얘기를 좀 들려주시오."

그러자 세르히오가 큰 소리로 술을 주문했다.

"주인장! 여기 서주 통째로 하나 가져오시오!"

잠시 후 와인 저장 창고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오크통이 뚜껑이 열린 채 우리 옆에 놓였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그 짐승은 뭐요? 기르는 거요? 너무 쪼그매서 잡아먹으려면 몇 년은 더 키워야겠구먼."

"기르는 건 맞는데 잡아먹을 건 아니오."

"그렇소? 하긴. 저 쪼그만 걸 잡아먹어 봐야 뭐."

자신의 앞에 있던 술잔을 그대로 오크통에 푹 넣어 술을 한가득 퍼낸 후에야 세르히오가 제대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아주 고급 정보를 입수했단 말이오. 오늘은 그 여자 궁사가 절대로 우승하지 못할 거라는 고급 정보. 자리도 제일 안 좋은 곳에 배치한데다가, 뭐라더라? 마법사들이 몰래 그쪽에만 바람을 일으킬 거라고 했던가? 어쨌든 오늘은 그 궁사가 절대 1등을 못 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단 말이지."

사내는 커다란 술잔을 들어 서주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 그 정보를 준 놈들이 사기를 친 거요. 안 좋은 자리는 무슨 개뿔. 오늘도 쏘는 족족 다 맞추더구만. 아, 제기랄! 내 돈!"

화가 잔뜩 난 세르히오와는 달리 필라르는 이 상황을 퍽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호호호, 그래서 아무 정보나 덥석덥석 받아먹지 말라고 했잖아."

"필라르! 아무 정보가 아니라니까! 믿을 만한 놈들한테 진짜 비싼 돈 주고 산 정보인데. 제기랄!"

"아이고, 돈까지 주고 사신 정보였어요? 그럼 오늘 다 해서 얼마를 날린 거야? 호호호."

이대로 두다간 돈 잃은 이야기만 밤새 들을 것 같아서 나는 본격적으로 최수영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지금 말하는 궁사가 이 대회의 우승 후보라는 그 남반구인 궁사 맞습니까?"

"맞소. 빌어먹을. 처음부터 그 여자한테 걸었어야 했는데. 한 번쯤은 미끄러질 법도 한데 한 번도 안 빼고 1등이라니."

"그래서 넌 한 번도 안 빼고 잃었고. 호호호."

"닥쳐, 필라르! 짜증 나 죽겠는데 화도 적당히 돋우라고."

"그 궁사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혹시 긴 갈색 머리를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생기긴. 남반구인이 다 똑같이 생겼지 뭐. 아, 긴 갈색 머리 맞고 얼굴이 엄청 하얗더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남반구인 용병 양반도 얼굴이 하얗네? 남반구인들이 다들 얼굴이 이리 하얗던가?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매튜 남작도 남반구인들에 비해 내 얼굴이 많이 희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척박한 땅에서 유목민으로 살고 있는 이곳의 남반구인들은 지구의 우리처럼 하얀 얼굴을 가지기 힘들겠지.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그 궁사는 최수영이 거의 확실하다.

"내일도 그 궁사가 대회에 출전합니까?"

"내일은 가문 대항전이 열리는 날이오. 그 궁사도 참가한다더군. 보나 마나 또 그 궁사가 속한 가문이 우승이겠지 뭐."

"가문 대항전이요? 그 남반구인 궁사가 가문이 있답니까?"

"호호호. 그건 제가 설명하죠. 가문 대항전은 몬테넬의 유명한 궁사 가문들 간의 대결이에요. 다른 대회는 행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축제라면, 이 가문 대항전만은 몬테넬 가문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에요. 몬테넬 사람들에겐 사실상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대항전에는 가문별로 한 명씩 몬테넬 외부 사람을 용병으로 쓸 수 있어요."

"아, 그럼 그 남반구인 궁사는 용병으로 참가하는 거겠군요?"

"그렇겠죠. 그런데 렉스, 그 궁사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아, 확실치 않습니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내일 확인해 보려고요."

"혹시 헤어진 예전 애인이거나 하면 꿈 깨요. 이미 그녀에게 꽂힌 왕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호호호. 대회 도중에 벌써 몇 번이나 구애했다던데요?"

"예?"

"저 무식한 세르히오 눈에나 남반구인이 다 똑같이 생겼지, 그 궁사 사실 이국적이고 예쁘게 생겼거든요. 대회 초반부터 수많은 남성의 이목을 받았지만 세바니아의 둘째 왕자가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구애한 이후에는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죠."

세바니아라면… 레온에게 들은 적 있다.

시엠브레 동쪽에 있는 무술 연구에 진심이라는 나라.

그때였다. 세르히오에게 누군가 조용히 접근해 오더니 귓속말을 걸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세르히오는 주머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귓속말을 건 사내에게 건네고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던 필라르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야! 너 또 정보 사는 거야?"

"마지막이야, 마지막. 어차피 이젠 그 남반구인 궁사한테 걸어서는 본전 못 찾는다니까."

"그 정보 주는 놈들 사기꾼이라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보겠어. 그리고 저놈들 사기꾼 아니란 말이야. 이쪽에서는 꽤 유명한 놈들이라고."

"에휴, 그래서? 그 정보라는 게 뭔데?"

"이리 가까이 와봐. 남반구인 양반도 이리 가까이 오슈."

"야, 이분 아까 렉스라고 자기소개했잖아. 아직도 남반구인 양반이 뭐냐? 이 멍청한 자식아."

"그래? 아무튼 그럼 렉스 당신도 이리 가까이 와 보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오늘 술도 사준다고 했으니 내 특별히 고급 정보를 공유해 드리지."

나와 필라르가 가까이 다가오자 세르히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일 가문 대항전에 시엠브레의 불사인이 한 명 참가한다고 하오. 기사단에 속해 있는 궁사라고 하더군."

"야, 불사인이라면 이미 몇 명 나왔잖아. 어차피 다 그 남반구인 궁사한테 지던데?"

"그들은 그냥 취미로 활을 쏘는 귀족들이었고. 이번엔 진짜 시엠브레 왕궁 소속 기사단 출신 궁사가 오는 거라니까."

"아니 그럼 그런 대단한 불사인을 어떻게 여기 활쏘기 대회에 용병으로 초청했대?"

"이번 가문 대항전에 뭐 지면 안 되는 내기가 걸려 있는 모양이지."

가문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라더니 갑자기 내기라니?

"내기요?"

"렉스, 몬테넬에는 궁사 가문으로 유명한 두 곳이 있는데 그 두 가문은 전통적으로 가문 대항전이 열릴 때마다 가주들이 내기를 한다오. 어떤 해엔 그냥 웃어넘길 내기가 걸리지만 어떨 땐 정말 중요한 내기가 걸리기도 하지."

필라르가 세르히오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중 한 가문에서 내기에 이기려고 이번에 시엠브레의 기사단 출신 불사인 궁사를 불러들였다는 거야? 돈이 꽤 들었겠는데?"

"그렇지! 그리고 여기 이 종이 안에, 그 가문의 이름이 적혀있지. 어때? 고급 정보 맞지? 남반구인 용병 양반, 아니 렉스. 당신도 내일 이 가문에 돈을 거시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니 아마 배당이 엄청나게 높을 거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내일도 그 남반구인 궁사가 속해 있는 가문에 돈을 걸겠지."

* * *

우리는 그렇게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한 세르히오는 여관방을 못 구한 나를 흔쾌히 자기 집에서 재워주었다.

그날 밤 우리 셋은 완전한 술친구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세르히오의 집에 필라르가 찾아왔다.

"야! 세르히오! 안 갈 거야? 일어나! 이러다 대회 시작한다고!"

"으으… 머리야. 렉스, 괜찮냐?"

"아……. 세르히오, 나도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나와 세르히오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집을 나섰다.

"으이그, 서주 큰 통 하나를 둘이 다 퍼마셨으니 오늘 일어난 게 용하네."

"이, 일어나야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본전 찾으러 가야지."

"야, 세르히오. 오늘 진짜 그 가문에 걸 거야?"

"그렇다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나 오늘도 남반구인 궁사한테 걸겠지. 그러면 그럴수록 내 배당은 올라간다고. 우하하하. 아, 아이고 머리야. 크게 웃으니 머리가 깨질 것 같네."

어제부터 세르히오는 불사인 용병을 부른 가문이 무조건 이긴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르히오, 그런데 어떻게 불사인이 속한 가문이 이긴다고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남반구인이 이길 수도 있지 않아?"

"에이, 렉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불사인은 궁술을 몇백 년은 연마했을 거 아니야. 그것도 그 강철 다리와 강철 팔을 가지고. 강한 활로 무거운 화살을 날릴수록 파괴력과 정확도는 올라가는 법이지."

"호호호. 그런데 렉스? 어제부터 느낀 건데 그 남반구인 미녀 궁사는 아는 사람 맞지? 진짜 전 애인?"

"필라르, 일단 아는 사람 맞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라니까."

"자꾸 편드는 거 같길래 하는 말인데, 혹시 다시 잘해보려거든 꿈 깨. 시엠브레의 귀족이 아닌 이상 세바니아의 둘째 왕자가 찜한 여자를 넘보다간 큰 변을 당할 테니까."

"내가 찾는 사람이 맞는다면, 그 왕자라는 사람이 큰 변을 당할 수도."

"어머? 이 남자 예상외로 박력 있네. 매력 있어. 호호호."

필라르가 내 칭찬을 하자 갑자기 세르히오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필라르 널 넘보는 놈이 있다면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 버릴 거라고!"

"뭐라는 거야, 나는 너한테 관심 하나도 없다니까? 항상 말하지만, 우린 소꿉친구일 뿐이야."

세르히오한테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필라르는 오늘 아침 일찍 숙취에 좋다는 풀잎차를 구해 달여 왔었다.

'귀여운 커플이네.'

경기장에 도착하자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운 좋게 경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잠시 세르히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필라르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남반구인 궁사 이름 생각났어? 어제는 술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며."

"아, 분명 알았는데 지금도 가물가물하네? 섀넌? 샤넨?"

"설마, 혹시… 샤넬?"

"아! 맞다! 샤넬! 렉스, 어떻게 알았어? 아, 전 애인이 맞는구나? 뭐야, 처음부터 전 애인인 거 알고 온 거면서 우리한텐 모른 척했네."

"전 애인 아니라니까."

"에이, 표정이나 말투가 딱 전 애인 찾는 사람이던데 뭘."

"전 애인 아니고 지금 애인."

필라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금 애인? 현재 애인? 둘이? 그 궁사랑 렉스랑?"

"응. 사정이 좀 있으니 너희 둘만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말고. 수영이를, 아니 샤넬을 찾으면 우린 조용히 이곳을 떠날 거야."

"어머, 어머! 이건 무슨 러브스토리래? 장난 아니다. 그런데 세바니아 둘째 왕자는 어쩌려고. 이미 그녀에게 공개 구애했다니까?"

"안 그래도 그래서 그놈 면상은 한번 보고 갈 생각이야."

"박력 있어 좋긴 하지만, 렉스가 북반구에 온 지 얼마 안 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세바니아의 그 둘째 왕자 엄청 유명해. 자기가 한번 갖고자 한 건 무조건 가지는 사람이야. 게다가 무술도 엄청나다고 하던데……."

"상관없어."

"뭔가 멋진걸? 호호호. 나와 세르히오가 도울 일 있으면 도울게."

"고마워."

그때 감자구이 꼬치를 사 온 세르히오가 굳이 나와 필라르 사이에 굳이 끼어 앉으며 물었다.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있었어?"

"어, 어. 그냥 렉스한테 경기 방식 설명해 주고 있었어."

"그런 건 뭐하러 설명해 줘. 내 정보대로 돈 걸면 된다니까. 렉스! 아직 돈 안 걸었지? 가자. 돈 거는 곳에 데려다줄게."

"난 안 한다니까."

"이런 멍청이! 내 정보대로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니까."

필라르가 풉 소리를 내며 웃으며 말했다.

"과연 누가 멍청이일지는 이따 경기 끝나고 나서 보자고. 오늘도 돈 잃었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면 오늘은 같이 술 안 마셔준다."

"됐고. 그럼 둘은 나 돈 따는 거나 구경해. 자, 렉스. 내가 대진표 가져왔어. 이거 봐봐."

세르히오가 내민 투박한 종이에는 여덟 가문의 토너먼트 대진표가 그려져 있었다.

* * *

5월 18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7,480개]

[단가 49억 원]

[평가 금액 85조 6천억 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