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 *
콘티넬 가문의 깃발이 꽂혀 있는 천막 쪽으로 가자 이미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사람들을 비집고 맨 앞으로 나서자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군중들이 더 다가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기사들의 가슴에도 콘티넬 가문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곤란하네. 기사 몇 놈 베고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 하얀 드레스를 입은 최수영의 모습이 보였다.
"수영아!"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최수영은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모여든 군중들이 연신 샤넬을 외쳐대며 시끄럽게 대는 통에 내 목소리가 저기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어깨 위에 있던 꽝이가 땅에 내려서더니 최수영에게 다가갔다.
"그래! 꽝이야! 가서 언니 잡아 와!"
잠시 후 저 멀리 최수영이 꽝이를 안아 들고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목소리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야! 최수영!"
"어? 오빠!"
최수영은 갑자기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기사 하나를 염동력으로 가볍게 밀쳐버리고 최수영에게 다가갔다.
"오빠! 오빠!"
나에게 달려온 최수영은 그대로 내 목을 감고 품에 안겼다.
"역시… 역시 찾아왔네?"
"응. 잘 있었어?"
"으앙, 보고 싶었어. 다신 못 보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으앙."
"빌데르로 오랬잖아. 여기서 뭐 해."
"몰라, 으앙. 오빠."
그렇게 한참을 최수영은 나에게 안겨 울었고, 찬물을 끼얹은 듯 잠시 조용했던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저 둘 연인인가?"
"에이, 설마. 세바니아 왕자가 대놓고 구애했는데 이럴 수 있다고?"
"아니야, 아까 오빠라고 했어. 남매인가보다."
"아! 맞아, 나도 들었어. 오빠라고 했어. 남매네, 남매."
"그럼 말이 되지. 그러고 보니 생긴 것도 비슷하네. 둘 다 남반구인이야."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다 보니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최수영이 나를 오빠라고 부른 걸 어떻게 알아들었지?
"수영아, 너 원래 동시통역기 가지고 있었어?"
"응? 아니. 훌쩍. 여기 와서. 샀지이. 훌쩍."
"여기서? 여기 휴대폰이 돼?"
"되면 벌써 전화했지, 바보야. 근데 딴 건 안 되는데 N마켓은 되던데? 훌쩍."
"아, 그래? 나는 휴대폰 한번 켜 보고 안 되길래 바로 꺼서 넣어뒀지."
그때 최수영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샤넬? 누구야? 오빠? 남반구에서 온 오빠야?"
그제야 나에게서 떨어진 최수영이 나를 소개했다.
"아, 소개할게. 여기는 내가 찾는다던 그 일행……."
나는 가명으로 소개하기 위해 최수영의 말을 끊었다.
"안녕하세요. 남반구인 용병 렉스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오빠, 그리고 이쪽은 날 사막에서 구해 준 내 생명의 은인, 소피아야."
"아, 사막에 떨어졌었어? 고생했겠네."
나는 최수영이 소개해 준 귀족 여성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우리와 비슷해 보였고, 가느다란 얼굴선과 큰 눈망울이 인상적인 금발 미인이었다.
"감사합니다. 우리 샤넬을 구해 주셨다고요."
"아닙니다. 사막을 지나던 길에 샤넬을 만난 건 맞지만, 지금은 제가 더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자, 천막 안으로 드시지요."
우리가 완전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밖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어 갔다.
아마도 나와 최수영을 친남매로 단정 짓고 다들 다음 경기를 보기 위해 떠나간 모양이었다.
"샤넬, 그토록 찾던 일행을 만나서 다행이다. 이제 혼자 빌데르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네?"
"응, 소피아. 오빠가 왔으니 이제 오빠와 함께 빌데르로 갈 거야. 물론 오늘 가문 대항전은 끝내고."
나는 잠시 소피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수영을 데리고 천막 구석으로 향했다.
"수영아, 너 지금도 너무 관심을 많이 끌고 있어. 그만해. 당장 떠나자. 시엠브레에서 지구인들이 이곳으로 넘어온 거 다 알고 있다고. 이렇게 주목받다간 임무를 완수하기도 전에 놈들한테 먼저 잡힐 거야."
"그건 나도 아는데… 어쩔 수 없어. 소피아는 내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야."
"이 대회에 나오는 건 소피아가 부탁한 거야?"
"응. 소피아가 사막에서 내 활 솜씨를 보고 가문 대항전에 함께 나와달라고 부탁했어. 나는 그럼 어차피 참가할 거면 오빠 말대로 관종 짓을 좀 해볼까 싶어서 개인전부터 다 참여해 봤지. 혹시나 내 소식을 듣고 오빠가 오려나 했는데 이렇게 진짜 왔네? 꺅! 지금도 믿기지 않아."
말하다 말고 다시 수영이 내 목을 끌어안았다.
"수영아, 나는 남쪽 라트니아 왕국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네 소문이 다 퍼졌어. 더는 위험해."
"오빠, 오늘만. 응? 이번 가주 대항전에서 지면 소피아는 시오넬 가문으로 시집을 가야 한단 말이야. 소피아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대. 근데 오늘 게임에서 지면 억지로 시오넬에 시집을 가야 한다니까?"
"가주들의 내기인가 그거 때문에?"
"응. 오빠도 알고 있네? 그게 이번 두 가문의 내기 내용이야."
"미친. 자기 딸을 시집보내는 내기를 하는 아빠가 어디 있어."
"서로 당연히 이길 거라고,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어느 가주도 애초에 질 생각은 없었어."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다시 소피아에게 가자."
우리는 천막 구석에서 나와 다시 소피아에게 향했다.
"소피아, 샤넬에게 사정 이야기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여기 오래 머물 수 없어요. 딱 오늘 가문 대항전까지만 하고 샤넬은 저와 함께 떠나야 합니다."
"알겠어요. 샤넬과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지만, 샤넬이 곧 떠나야 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샤넬이 의지할 수 있는 친오빠를 만나서 다행이에요. 만나야 한다던 일행이 가족일 줄이야. 왜 진작 말 안 했어, 샤넬?"
"응? 소피아? 무슨 말이야? 우리 가족 아닌데?"
"계속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어?"
"아, 그건 우리 사는 곳에서 부르는 애칭 같은 거야. 다시 소개할게. 여기는 내 남자 친구……."
최수영이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오빠, 아까 오빠 이름이 뭐라고?"
"렉스."
"아, 여기는 내 남자 친구 렉스야."
평온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소피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남자 친구? 애인? 오, 신이시여. 샤넬 너 그냥 지금 떠나. 당장 떠나."
"응? 왜 그래, 소피아?"
"너도 알잖아. 세바니아 왕자가 계속 너에게 구애하는 거. 그 왕자는 자기가 원하는 건 뭐든지 손에 넣는 사람이야. 렉스가 네 애인인 걸 알면 렉스를 가만두지 않을걸?"
"아, 그 왕자인지 뭔지 하는 자식은 남자 친구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말을 들어 먹지를 않네. 하하핫, 근데 이제 괜찮아, 소피아. 내 애인은 꽝이 다음으로 강하다고. 그치 오빠아?"
"꽝이 다음 아니라니까!"
"애옹?"
"수영아, 그 왕자라는 놈, 남자 친구 있다는 데도 계속 치근덕거렸어?"
"그렇다니까. 어휴 찰거머리. 얼굴도 못생긴 게."
"오, 둘 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어쨌든 난 괜찮으니 당장 떠나. 샤넬, 네가 몇 번 거절하는 거야 왕자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정도일 뿐이지만 실제 애인이 나타나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아닙니다, 소피아. 샤넬과 얘기 다 마쳤어요. 샤넬이 지금 떠나면 소피아도 곤란해진다면서요. 생명의 은인을 곤경에 빠뜨릴 순 없죠. 오늘 경기까지 끝내고 떠날 테니 꼭 승리하세요."
"그래, 소피아. 시오넬에 용병으로 참가한 불사인 활 쏘는 거 봤지? 내가 지금 빠지면 소피아는 무조건 시오넬로 시집가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나는 지금 오빠를 만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니까, 우린 걱정하지 말고 오늘 남은 경기 잘 치르자. 내가 최선을 다해 도울게."
잠시 고민하던 소피아는 결국 깊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고마워 샤넬. 고마워요, 렉스."
"수영아, 그럼 남은 게임도 잘하고 이따가 이 천막에서 만나. 나는 여기 와서 사귄 친구들하고 응원하고 있을게. 아, 한 녀석은 너 응원 못하겠구나. 어쨌든 이따 만나."
"응, 오빠. 이따 만나. 나 찾아와줘서 고마워."
"나도 네가 여기 있어 줘서 고마워. 그럼 이따 봐."
나는 천막을 빠져나와 다시 필라르와 세르히오에게 돌아왔다.
"렉스, 어떻게 됐어? 만났어?"
"응. 오늘 경기까지만 하고 여길 떠나기로 했어. 세르히오, 괜찮으면 오늘 밤에 하루만 더 신세를 져도 될까? 샤넬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여관을 가긴 좀 그렇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할 것 같아서."
"오, 좋지. 그럼 술집 말고 우리 집으로 가자. 고기랑 술이랑 잔뜩 사 가는 거야. 필라르, 너도 같이 마실 거지?"
"활쏘기 대회 여신님이랑 같이 마시는 거야? 그럼 나도 빠질 순 없지."
"먹고 놀자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고마워 세르히오."
제2경기도 싱겁게 콘티넬과 시오넬 가문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이제 두 가문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 이번 가문 대항전 결승전에 올라온 두 가문을 소개합니다! 올해도 역시 궁술에 가장 유서 깊은 두 가문이 결승전에 올랐군요. 소개합니다! 푸른 깃발의 콘티넬! 붉은 깃발의 시오넬!
"와아아아."
두 가문의 선수들이 무대 중앙으로 나와 섰고, 불사인이 최수영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 이후로는 한동안 절대적으로 조용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불사인이 어느 위치에 있는 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자가 시엠브레에 돌아가 오늘 본 일을 얘기하면 눈치 빠른 몇 사람은 최수영이 지구인이라는 걸 알아챌 것이다.
- 결승전은 총 경기로 진행됩니다. 그중 먼저 두 개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가문이 이번 가문 대항전의 최종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자, 첫 번째 경기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경기는 원반 맞추기입니다! 두 가문의 선수들은 단상에 올라주시기 바랍니다.
선수들이 단상에 오르는 동안 필라르가 경기 방식을 설명해 주었다.
단상에는 두 가문의 선수들이 모두 올라가고, 반대편에서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원반이 각각 오십 개씩 총 백 개가 날아오른다.
콘티넬은 파란 원반을 맞춰야 하며, 시오넬은 붉은 원반을 맞춰야 한다.
"무작위로 날아오르는 원반 중에 자기 가문의 색만 골라 맞춰야 하는 게임이구나?"
"그렇지. 실수로 상대 가문의 색을 맞췄다간 상대편 점수만 올려주는 꼴이 되는 거야."
"이야, 이 활쏘기 대회란 거 만만치 않네."
- 양 측 선수들 준비되었으면, 시작합니다. 승부는 2분 안에 결정됩니다! 짧은 시간에 최고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경기이죠. 자, 원반 날려주세요!
가장 먼저 파란 원반 하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미 화살 하나를 시위에 올려놓았던 최수영이 바로 첫 번째 원반을 쪼개버렸다.
곧이어 빨간 원반도 하나 튀어 올라왔고, 이번엔 불사인이 가볍게 원반을 꿰뚫었다.
곧 원반이 날아오르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고, 하늘엔 파란색과 빨간색 원반이 마구 뒤엉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원반이 워낙 빠른 속도로 발사됐고, 자칫 실수하면 상대편의 점수를 올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불사인도 최수영도 아까와 같은 퍼포먼스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한발 한발 자기 원반을 맞춰나갔다.
불사인과 최수영에는 못 미치지만, 연속으로 파란 원반을 쪼개고 있는 소피아의 실력도 제법 뛰어났다.
- 자, 첫 번째 경합이 끝났습니다. 정말 빨리 끝났죠? 이제 경기 진행 요원들이 깨지지 않은 원반의 수를 세고 있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원반들을 눈으로 보기엔 예측하기 힘든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 결과가 나왔습니다. 콘티넬의 파란 원반, 총 아홉 개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오넬의 빨간 원반은… 총 열한 개가 깨지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경합은 콘티넬의 승리입니다!
"와아아아!"
"샤넬! 샤넬! 샤넬!"
나와 필라르는 일어나 박수를 쳤고 세르히오의 고개는 힘없이 아래로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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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7,480개]
[단가 49억 원]
[평가 금액 85조 6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