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 *
"어? 렉스! 저 사람 눈 떴어요!"
폴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자 한쪽 얼굴이 퉁퉁 부은 도적이 눈을 다급히 다시 감는 모습이 보였다.
"눈 뜬 거 다 봤다."
"내, 내 부하들은 다 어떻게 한 거냐! 죽였냐?"
"아니? 너 죽은 줄 알고 다 도망가던데?"
"제기랄! 네놈들 정체가 뭐냐!"
"그건 알 거 없고. 넌 이제부터 너희 지부로 우리를 안내하면 돼. 내가 지부장인지 하는 놈 만나서 물어볼 게 있거든."
"내가 순순히 안내할 것 같으냐!"
"반대쪽 뺨도 다 터지고 안내할 거냐?"
이케르가 흠칫하며 자신의 볼을 어루만졌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다오."
"우리 바빠. 열까지 센다."
"주둔지로 외지인을 들였다간 난 죽은 목숨이란 말이다!"
"안내만 제대로 하면 넌 그냥 놔줄게."
"동료들을 팔아넘기란 말이냐!"
"그럼 오른쪽 뺨 대."
"…앞장서지."
"자, 다들 가자. 이놈이 지부인가 하는 데로 안내해 준대."
에릭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렉스, 그 특이하게 생긴 갑주가 뭐길래 그래요?"
"아, 그거? 우리 일행 거야. 원래는 전신 갑주인데 이놈들이 양팔만 가지고 있다네? 나머지는 어디 있는지 가서 물어봐야지. 이건 우리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거든."
* * *
도적단 독수리 발톱 동부지부 부지부장 이케르의 안내에 따라 북쪽으로 국경을 넘어 한참을 걸었는데도 놈들의 본거지는 나오지 않았다.
"야, 너 지금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거면 가만 안 둔다."
"저 앞에 보이는 돌산 너머에 지부가 있다."
최수영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오빠, 근데 왜 이놈들은 팔만 한쪽씩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걸까? 나머지는 어쨌지? 캡슐이 떨어지다 터져서 다 흩어져 버린 걸까?"
"글쎄, 혹시 누구한테 팔만 얻은 건지도 모르지. 일단 가서 물어보자."
이케르의 말대로 돌산을 넘자 거대한 야영지 같은 것이 드러났다.
"저기냐?"
"그래. 이제 난 풀어줘. 내가 안내한 걸 알면 지부장이 진짜 날 죽일 거야."
"저기가 맞는지는 확인해야 풀어주지. 빨리 마저 앞장서."
"제기랄!"
한참을 더 다가가다가 생각보다 큰 본거지 규모에 놀랐는지 에릭이 물었다.
"렉스, 이놈들 규모가 꽤 큰데요?"
"그러게. 일개 지부가 이만하면 이 독수리 발톱인지 뭔지 하는 도적단 규모는 얼마나 큰 거야?"
앞서 걷던 이케르가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후후후. 우리는 요즘 가장 떠오르는 도적단 중 하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독수리 발톱이 대륙 최고의 도적단이 될 거다."
"미친놈. 자랑이다. 넌 아까 말한 대로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손 씻고 착하게 살아. 알았어?"
"…알겠다."
"그만 가봐."
"정말?"
"그래. 마음 바뀌기 전에 가."
"저기, 지부장을 만나면 내가 안내해 줬다는 얘기는……."
나는 조용히 오른 손바닥을 펼쳐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것저것 부탁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알았어! 그럼 난 간다."
이케르를 보내고 지부장의 막사를 찾기 위해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보려는데 갑자기 최수영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수영아, 왜 그래?"
"저… 저 깃발. 닭발 모양 붉은 깃발."
최수영이 가리키는 곳에는 닭발 같은 것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최수영이 가리키는 곳 외에도 여기저기 같은 깃발이 걸려 있었다.
"이 개자식들……. 다 죽여버릴 거야."
부들거리는 최수영을 보며 폴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샤넌? 왜 그래요? 얼굴이 창백해요!"
"이 자식들 그냥 도적단이 아니야. 인신매매도 해. 사막에서 탈진해 있는 나를 잡아다가 사창가에 팔아먹으려고 했다고! 이 개자식들이 안 그래도 탈진해 있는 사람한테 몹쓸 약까지 먹이고……."
최수영은 내가 물어도 사막에서의 일을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었다.
그저 탈진해서 쓰러져 있었는데 지나가던 소피아 일행이 자신을 구해 줬다는 얘기만을 반복했을 뿐.
지금 최수영의 반응을 보니 혹시나 안 좋은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돼 미치겠지만 괜히 상처를 긁는 꼴이 될까 봐 자세히 물을 수도 없었다.
"저 깃발을 가진 놈들이 탈진해 있는 수영이 널 납치해서 팔아먹으려고 했단 말이지?"
"…다 죽여버릴 거야. 내 가방 줘."
'수영아, 차분히 생각하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옆에 있는 최수영의 얼굴을 보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가죽 가방에서 최수영의 배낭을 꺼내주었다.
잠시 배낭을 뒤적거리던 최수영은 화살 하나를 꺼내더니 보드마카처럼 생긴 메타디펜스의 신무기 하나를 화살촉에 장착했다.
"나 안 말려?"
"응. 하고 싶은 대로 해."
"고마워."
몸의 떨림이 멈췄는지 최수영이 하늘을 향해 차분하게 시위를 당겼다가 손가락 힘을 풀었다.
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도적단의 야영지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내심 뭔가를 기대한 건지 숨죽이며 지켜보던 폴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샤넌, 아무 일도 없는데요?"
최수영은 대답 대신 낮은 음성으로 숫자를 거꾸로 셌다.
"다섯, 넷……."
잠시 후.
콰광!
땅이 울리는 폭음과 함께 야영지 한복판에서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다음 폭탄을 화살촉에 끼우려던 최수영은 잠시 망설이더니 탄을 다시 배낭에 집어넣었다.
"슈퍼 솔저 수트는 찾아야지?"
"그래, 가자!"
더 이상 몸을 숨길 마음도 없어진 우리 일행은 그대로 일어나 야영지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수많은 도적이 우리를 발견하고 덤벼들었지만 나는 검을 빼어 들 필요도 없었다.
덤벼들려는 도적들은 모두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최수영의 화살에 쓰러져 나갈 뿐이었다.
뒤따라 걸어오는 키르칸 출신 동행자 세 명은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최수영의 무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폴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지구인들은 모두 이렇게 강해요?"
"아니라니까."
"제가 본 지구인은 다 이래서요."
그때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도적들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운데 있는 도적의 오른팔에 슈퍼 솔저 수트가 끼워져 있는 것을 보니 저놈이 지부장인 것 같았다.
"뭐야? 기사단이라도 쳐들어온 줄 알았더니 이 소란을 일으킨 게 너희들이냐?"
최수영도 수트를 발견했는지 그제야 시위를 연신 당기고 있던 팔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원래는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였는데 너희 닭발 도적단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
닭발 도적단이라는 말에 몇몇 호전적인 도적들이 무기를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뭐? 건방진! 우리는 독수리 발톱이다!"
"발톱이든 닭발이든 관심 없고. 내가 지금 기분이 많이 안 좋아. 지금 무기 빼든 놈들 한 발짝이라도 더 나서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내 말이 경고가 아닌 도발로 들린 것인지 제일 앞에 있던 도적 네 명이 동시에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꼭 말로 하면 안 듣지."
나는 검을 빼 들고 달려드는 도적들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가 놈들의 목을 차례로 그어버렸다.
물론 나는 검 끝으로 목을 살짝 긋기만 했지만, 마그네타 검은 그들의 몸과 머리를 깨끗이 분리했다.
순식간에 목이 날아간 부하들을 본 지부장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모두 동시에 쳐라!"
그래도 제법 리더십이 있던 모양인지 그의 한마디에 모든 도적이 무기를 꺼내 들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최수영은 다시 시위에 화살을 메기기 시작했고, 에릭과 폴도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야영지의 규모가 꽤 컸던 만큼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도적 떼가 쏟아져 나왔지만, 놈들의 실력은 크게 뛰어나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도적이 정리되었고, 나는 천천히 지부장에게 다가갔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누가 보낸 거야?"
"누가 봐도 질문은 내가 할 상황 아니냐?"
"……."
"첫 번째. 오른팔에 그 갑주는 어디서 구한 거냐?"
지부장은 이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자기 물건은 뺏기기 싫은지 왼손으로 오른팔에 두른 갑주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건 단주님이 직접 하사하신 갑주이다. 독수리 발톱 도적단은 하나라는 증표이지."
"아, 단주라는 자가 주워서 나눠준 건가? 그럼 이 갑주를 다 찾으려면 닭발 도적단을 전부 박살을 내야겠네?"
"미친놈. 우리는 좀 방심했을 뿐이다. 너희가 동부지부를 이렇게 만든 사실은 곧 도적단 전체에 퍼질 것이고, 그럼 너희들은 대륙 어디에도 숨지 못한다."
"도적단 따위한테 숨어다닐 생각은 없다. 자,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간다. 지부는 총 몇 개고 본거지는 어디지?"
"내가 그걸 알려줄 것 같으냐!"
나는 염동력 장갑으로 지부장 근처에 있던 사내 하나를 끌어당겨 놈의 목을 세게 잡고 물었다.
"넌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냐?"
"잘 모, 모른다! 크헉!"
나는 그대로 놈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옆으로 집어 던졌다.
"다음, 너! 웃통 까고 있는 덩치. 너는 대답할 마음이 있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을 먹은 것인지 나의 지목을 받은 도적은 지부장의 눈치를 살폈다.
핑.
뒤에서 활이 이완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눈치를 살피던 사내의 이마에 화살이 박혔다.
사내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자, 다음."
그때 지부장의 옆에 있던 도적 하나가 앞으로 뛰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너, 모든 지부와 본거지의 위치를 알고 있냐?"
"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지부장이 단검을 집어던져 무릎 꿇고 있는 도적의 뒷목에 정확히 꽂아 넣었다.
제법 빠르고 정확한 솜씨였다.
부하를 죽여서까지 입막음하다니.
지부장은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큼, 크흠. 내가 안……."
지부장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너무 작아져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는 거냐?"
지부장은 겨우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내가 안내하겠다고……."
자기 살자고 부하를 죽인 거였군.
"좋아. 일단 오른팔에 그 갑주부터 벗어. 그리고 막사로 들어가 얘기 좀 하자."
* * *
지부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 도적단엔 두 개의 지부가 더 있다고 했다.
북부지부와 서부지부.
그리고 그 중앙 지점 어디쯤엔 본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큰 도적단은 아니었는데 최근 단장의 명으로 인신매매까지 손을 대며 급격히 몸집을 불린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단주라는 놈이 북부지부엔 머리에 쓰는 투구를, 서부지부엔 다리를 감싸는 갑주를 나눠줬다는 거지?"
"그렇다. 보름 전 지부장 회의에서 단주님이 직접 나눠주셨다. 충성과 믿음의 증표로."
"믿음의 증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쨌든 그럼 갑주 몸통은 단주가 가지고 있겠네?"
"그렇다."
나는 가죽 주머니에서 에릭이 챙겨준 지도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자, 여기에 정확히 위치를 표시해. 어차피 다 찾을 때까지 네 놈 데리고 다닐 계획이니 거짓으로 표시하면 죽는다."
지부장은 지도에 도적단의 위치를 표시했다.
그중 북부지부는 몬테넬 왕국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샤넌, 널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은 아무래도 북부지부인가 보네."
"지도를 보니 그런 것 같아."
"다시 몬테넬까지 올라가야겠네. 여기 북부지부부터 치자."
"응. 여긴 대충 도망치는 놈들은 살려줬지만 거긴 진짜 다 죽일 거야."
"폴, 에릭, 레온, 너희들도 같이 갈 거야?"
"당연하죠! 렉스가 빌데르행 배를 타기 전까진 우리는 무조건 동행할 거라고요. 그렇지, 에릭?"
"맞아요. 매튜 남작님도 그렇게 지시하셨어요."
마지막으로 레온이 조심스레 말했다.
"다음번 도적들하고 싸울 땐 저도 도울게요. 인신매매라니, 이놈들한텐 마법을 써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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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7,780개]
[단가 50억 원]
[평가 금액 88조 9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