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 *
몬테넬 서부 사막지대.
"저기가 맞냐?"
얼굴이 퉁퉁 부은 지부장이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잘 찾아오는구만. 한 번에 왔으면 얼마나 좋냐. 뭐 하러 빙빙 돌아서 얻어맞고 그래."
"……."
지부장이 가리킨 곳엔 거의 작은 도시라고 해도 될 만한 규모의 북부지부의 주둔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렉스! 저기 봐요. 저기 어린아이들이 끌려가고 있어요!"
폴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낙타를 탄 도적들 뒤로 줄줄이 밧줄에 묶여 어린아이들이 끌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적들은 어린아이들을 커다란 창고 같은 나무 건물에 밀어 넣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저 건물이 납치해 온 사람들을 가둬두는 건물인가 보다."
"도대체 사람들을 어디서 저렇게 납치해 오는 걸까요?"
최수영이 답했다.
"소피아에게 들었는데, 주변 소도시들에서 몬테넬 왕국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목을 주로 노린대. 왕국 사람들을 건드리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주로 소도시 사람들만 납치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몬테넬에서도 딱히 놈들을 토벌하지 않는 거군요?"
"그렇지. 자신들에겐 큰 피해가 없으니 나설 이유가 없겠지."
"하지만 저렇게 사람들을 납치한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한단 말인가요? 저런 놈들은 기사단을 보내서 쓸어버려야 정상 아니에요?"
"주둔지를 계속 옮겨 다니는 데다가 일부 귀족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어서 쉽지 않을 거야."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최수영의 말대로라면 사막 길을 횡단하는 사람들을 노려 납치한다는 것인데, 저 아이들끼리 사막길을 건너다 잡혀 왔다고?
"저 창고의 규모, 지금 잡혀 들어간 아이들의 숫자. 단순히 길 가는 사람들을 납치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네? 그럼요?"
"저 정도면 마을 하나의 어린아이들을 다 잡아 온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저 어린애들이 자기들끼리 사막을 횡단할 리가 없죠."
"생각보다 규모가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놈들인 것 같다."
"렉스, 샤넌. 작전이 뭔가요? 동부지부처럼 그냥 무작정 쳐들어가나요?"
"숫자가 너무 많아. 잡혀있는 사람들도 다치지 않게 해야 하고, 또 이렇게 큰 주둔지가 초토화되는 걸 보면 지부장이 도망쳐버릴 수도 있고."
폴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단해요, 렉스. 일단 저 큰 주둔지를 초토화할 수 있는 건 기정사실이라는 말투네요?"
"당연하지. 그런 건 여기 샤넌 혼자도 충분해. 오히려 나보다 낫지."
최수영은 이미 자기 배낭에서 탄띠를 꺼내 화살용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모양이 이게 뭐냐며 절대로 몸에 두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 탄띠였다.
"오빠, 빠르게 가자. 우리가 저 창고에 있는 사람들을 구출할 테니까 오빠는 바로 지부장이란 놈을 죽이고 수트를 뺏어."
최수영이 탄띠에서 분홍색 보드마카 모양 폭탄 하나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이건 섬광탄이야. 수트를 확보하면 5초 타이머 맞추고 하늘 높이 집어던져.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구하고 나면 섬광탄을 하늘로 날릴게."
"그렇게 하자. 두 개의 섬광탄이 모두 하늘에서 터지고 나면……."
"이 자식들은 다 죽는 거야. 불바다를 만들어 버리겠어."
에릭이 물었다.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에릭의 손가락이 향한 곳엔 동부지부 지부장이 퉁퉁 부은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묶어서 얼굴만 빼고 땅에 파묻어놔. 이따 와서 뽑아가게."
"이게 더 간편할 거예요."
레온이 잠시 뭐라 중얼거리더니 지부장에게 두 손을 뻗었다.
급히 주변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지부장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이런 것도 돼? 마법으로?"
"마법으로는 렉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죠."
"그럼 레온이 잠깐 중얼거리면 나도 저렇게 굳어버리는 거야?"
"말도 안 돼요. 렉스한텐 걸 수 없어요. 내력이 강하거나 마나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죠. 하지만 저런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가능해요."
"좋아. 이제 시작하자."
뭐가 신났는지 폴이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좋아요! 도적단을 물리치는 영웅들! 출동!"
"들떠 있지 말고 몸조심해 인마. 너만 조심하면 돼."
"샤넌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도적놈들 가까이 오지도 못하던데."
* * *
"넌 누구냐!"
놈들의 주둔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발견한 도적이 소리치며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뭐 물어볼 게 있는데, 그 검 뽑으면 넌 바로 죽는다."
"다들 나와봐! 적이……!"
검을 뽑으며 소리치던 도적은 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하지만 놈의 외침에 근처 막사에 있던 도적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너희들 대장이 지금 어딨는지 알려줄 사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어깨 위의 꽝이가 땅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당연히 순순히 내 물음에 답해 주는 도적은 없었고, 마그네타 검은 또다시 흑무(黑舞)를 추기 시작했다.
서른 명쯤 베어버리자 주변에 도적이 대여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놈들은 더 이상 달려들진 못하고 다리를 벌벌 떨며 무기만 겨우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한 놈을 염동력으로 끌어당긴 뒤 물었다.
"대장 숙소가 어디냐?"
놈은 손을 벌벌 떨며 겨우 손가락으로 주둔지 가운데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주둔지 한가운데 보이는 큰 천막이 대장 숙소냐?"
끄덕.
"오랜만에 바로바로 대답해 주는 놈을 만났네. 고맙다."
놈은 멱살 잡힌 몸에 힘을 쭉 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데 오늘은 다 죽이기로 했어."
푸욱.
놈의 등을 검고 가는 검신이 뚫고 나오자 잠시 몸을 부들거리던 도적은 그대로 몸이 축 처지고 말았다.
"아, 악마다! 달아나!"
잠시나마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남은 도적들은 그제야 무기를 던져버리고 급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먼저 달아나던 도적을 순식간에 앞질러 그 앞에 섰다.
"다 죽이기로 했다니까."
"으, 으악!"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은 도적의 몸통을 대각선으로 갈라버린 후 나머지 도적들도 하나하나 처리했다.
"꽝이야, 다시 올라와. 저기 가운데 큰 막사까지 한 번에 뛸 거야."
"애옹."
꽝이가 가볍게 내 허리춤을 한 번 밟고 그대로 어깨 위로 올라왔다.
"꽉 잡아. 바로 간다."
"애옹."
나는 허리와 무릎을 웅크렸다가 그대로 바닥을 강하게 밀며 점프해 한 번에 주둔지 중앙까지 날아갔다.
어깨 위의 신난 개냥이는 코를 움찔움찔하며 바람을 만끽했다.
붉은 천으로 만든 커다란 막사 바로 앞에 내려선 나는 그대로 천막을 걷어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냐?"
"네가 지부장이냐?"
"어라, 이놈은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냐?"
"아, 저깄네."
막사 한쪽에 슈퍼 솔저 수트의 헬멧이 놓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헬멧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냐 물었다!"
내 목을 향해 제법 빠른 속도로 날카로운 검이 뻗어져 왔다.
"너는 동부지부 지부장보다는 좀 하네?"
뻗어져 오던 검은 내 엄지와 검지에 붙잡힌 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뭐야! 네놈은 누구냐!"
"알 거 없어. 아까 끌고 들어오던 아이들은 어디서 잡아 온 거냐?"
"주둔지에 잡혀 왔다가 도망친 연놈들이 있었는데, 따라가 보니 돌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래서?"
"덤비는 놈들은 죽였고 나머지는 잡아 왔지."
"끌려오는 건 어린이들밖에 없던데?"
"다 덤비더라고."
"순순히 잘 대답해 주고 있는 걸 보니 널 구하러 올 부하들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모양이지?"
"……!"
"소용없어. 어차피 오늘 다 죽어."
나는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있던 놈의 검을 똑 부러뜨린 후 검 끝 조각을 놈의 목젖을 향해 집어 던졌다.
"크억!"
* * *
펑.
하늘 높은 곳에서 섬광탄이 터지면서 북부지부 주둔지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대낮처럼 밝아진 주둔지 동쪽 끝자락, 나무로 만든 커다란 건물 지붕 위에 남녀 두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샤넌, 렉스가 임무를 완수했나 봐요!"
"응, 나도 봤어."
레온에게 짧게 대답한 최수영은 건물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폴! 사람들 밧줄은 다 풀었어?"
"거의 다 풀었어요!"
"샤넌! 저기 또 누가 와요!"
레온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최수영이 화살 두 개를 시위에 메겼다가 동시에 발사했다.
푹, 푹.
부랴부랴 창고를 향해 뛰어오던 도적 두 명이 이마에 화살이 꽂힌 채 쓰러졌다.
방금 쓰러진 두 명의 도적 주변엔 수십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좀 지치네. 폴! 에릭! 서둘러줘!"
그때 또다시 한 무리의 도적들이 무기를 들고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샤넌, 이번엔 제가 할게요."
레온의 마법 지팡이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그대로 몇 가닥의 붉은 섬광이 도적들에게로 날아들었다.
마법 지팡이는 이곳에 오기 전 들른 도시에서 김수호가 사준 것이었다.
쾅, 콰쾅.
섬광은 도적들과 부딪히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레온의 마법에 적중당한 도적들은 그대로 몸통이 터져버렸다.
"화려한데?"
"살살 한다고 한 건데……. 마법 지팡이는 처음 써봐서요."
"레온, 너 대단하구나?"
그때 창고 안에서 폴의 외침이 들려왔다.
"준비 다 됐어요!"
"좋아! 나랑 레온이 지원사격을 할 테니까 에릭과 폴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서 어서 주둔지를 빠져나가!"
"네! 자, 다들 우리를 따라오세요. 지금부터 여길 빠져나갑니다!"
에릭과 폴을 선두로 창고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은 긴 줄을 만들며 북부지부의 주둔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도적들이 뛰어나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미 최수영과 레온의 공격력을 눈으로 확인한 터라 섣불리 달려들진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용감한 몇몇 도적들이 폴과 에릭에게 달려들어 봤으나 무기를 맞대보기도 전에 최수영의 화살을 급소에 맞고 쓰러졌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보던 최수영은 탄띠에서 섬광탄을 꺼내 화살촉에 장착하고 하늘로 쏘아 올렸다.
펑.
주둔지의 하늘이 다시 한번 밝아짐과 동시에 최수영은 화살촉에 다른 색의 폭탄을 하나 끼워 밝아진 주둔지 중심부를 향해 활을 들었다.
"샤넌! 그쪽엔 아직 렉스가 있잖아요!"
"이 정도에 다칠 사람 아니야."
퉁.
시위의 긴장이 풀어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큰 호를 그리며 날아갔다.
그렇게 연달아 다섯 발의 화살을 주둔지 이곳저곳에 발사한 최수영은 레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끄러운 거 싫어하면 귀 막아."
콰앙.
지축을 흔드는 폭음이 주둔지 전체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와… 이게 도대체 뭐예요? 지난번에도 봤는데 어떻게 한 거예요? 마법도 아니고 대포도 아니고."
"우리 연구실장님의 피와 땀의 결실이지."
"연구실장님이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자. 저기 도적놈들 화나서 달려온다."
최수영은 화살을 시위에 메기고 레온은 낮게 중얼거리며 김수호가 사준 마법 지팡이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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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8,460개]
[단가 50억 원]
[평가 금액 92조 3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