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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61화 (61/200)

61화

* * *

쐐액, 쐐액.

최수영이 쏘아 올린 섬광탄이 주둔지의 하늘을 환히 밝힌 직후, 최수영의 것으로 생각되는 화살이 여기저기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닥치는 대로 도적들을 베어 넘기던 나는 급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갈래로 나뉘어 흩어지는 화살 중 하나가 정확히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목표물도 없이 여러 개의 화살이 이렇게 넓게 퍼져 나가는 걸 보면 분명 폭탄을 장치한 화살들일 것이다.

근처에 있다간 나까지 터진다.

나는 도끼를 들고 나에게 달려드는 도적의 머리통을 밟고 그대로 점프해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화살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화살을 잡은 채 공중에서 주변을 살펴보자 저 멀리 이미 주둔지를 버리고 달아나는 도적들의 무리가 보였고, 나는 최수영의 화살을 그쪽으로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콰앙.

타이머를 맞춰둔 것인지 사방에서 동시에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각 폭발음의 진원지부터 강한 불꽃이 일어나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사막의 건조한 환경 탓에 불은 삽시간에 번지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불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나와 같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최수영이 쏜 화살에서 시작된 화염.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황량한 사막, 지구에선 볼 수 없었던 양식의 천막과 건물들, 그 속을 뛰어다니는 나와 다른 행성의 사람들.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TV로 화재 현장 뉴스를 볼 때보다 더 나와 관계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비상식적인 일들을 너무 많이 겪어서일까, 아니면 여기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이기 때문일까.

점점 현실성이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막상 지구로 돌아가도 내 주변의 일들이 그다지 크게 현실로 와닿지 않을 것 같은,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넌 것 같은 그런 느낌…….

오랜만에 문득 허염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녀석은 중학생 때부터 이미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히야압!"

조금 전 나에게 머리를 밟혔던 도적이 다시 나에게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불필요한 거친 기합 소리.

잔뜩 힘이 들어간 몸, 지나치게 큰 동작.

내 눈은 여전히 저 멀리 하늘로 솟아오르는 화염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뒤에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놈의 움직임이 훤히 느껴졌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그네타 검을 등 뒤로 휘둘렀고, 놈과 나는 아직 5미터가량 떨어져 있었음에도 도끼를 들고 달려오던 도적의 몸이 대각선으로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검기의 발현.

뭐가 현실이고 뭐가 허구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는데 아직도 내가 살던 세상만이 현실이라고 믿고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광경이 이렇게까지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이고, 매튜 남작도 느껴진다던 내 몸의 내력의 흐름을 정작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검을 몸 앞으로 가져와 내력을 실어보았다.

금방이라도 주변을 집어삼킬 듯한 검정빛의 검기가 검에서 뻗어져 나왔다.

나는 건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도적 대여섯 명이 섣불리 다가오지도 못하고 나에게 무기를 겨누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그네타검을 천천히 눕혀 놈들이 있는 방향을 가로로 베어 보았다.

스윽.

검에서 뻗어 나온 칠흑 같은 검기는 놈들의 허리를 그대로 베며 지나갔다.

저벅. 저벅.

나는 천천히 동쪽을 향해 걸으며 눈에 보이는 도적들을 모두 도륙했다.

검을 한 번 맞댈 일도 없었으며, 다급히 뛰거나 검로를 바꾸기 위해 무리하게 팔에 힘을 주는 일도 없었다.

내 눈엔 이곳이 지옥이었는데, 놈들의 눈엔 내 존재가 지옥이었을 시간이었다.

* * *

"렉스!"

"레온, 마법 지팡이는 마음에 들어?"

"네! 너무 좋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저 멀리서부터 봤는데 그 검은빛 검기는 뭐예요? 무시무시하던데요?"

"샤넌이랑 네 공격이 더 굉장하던 걸 뭘."

"아니에요. 렉스 뭔가 분위기가 좀 달랐는데……."

"뭐가 달라 인마. 사람들은? 다 잘 피신시켰어?"

"네. 에릭과 폴이 큰길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고 곧 돌아올 거예요. 뒤를 쫓는 도적들은 없었어요."

"다들 고생했네. 수영아, 고생했어. 기분은 좀 어때?"

"이상해. 개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찝찝하지도 않아."

"우리 오늘 좀 비슷한 경험을 했나 보네."

"오빠도 그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꾸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 이게 그 느낌이었구나?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네? 렉스, 샤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레온의 어깨에 팔을 툭 걸쳤다.

"그런 게 있어. 우리가 살던 곳의 유명한 학자가 한 말이야."

우리는 한동안 도적단 북부지부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다가 에릭과 폴이 돌아오자 다시 동부지부 지부장을 굳혀놓은 곳으로 향했다.

"와, 아직도 그대로 굳어 있네? 근데 눈이랑 코는 좀 움찔움찔하는데?"

"숨을 못 쉬면 안 되니까요."

"이런 마법이 그렇게 세밀하게 조절이 된다고?"

"보통 이 마법은 1분 안쪽으로 사용한다고 책에서 봤어요. 그런데 이 마법을 더 오래 지속시키면서 피험체가 죽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죠. 몰래 숲 외곽에 가서 동물이나 몬스터에게 실험도 했고요."

"그렇게 독학한 마법을 이놈한테 바로 쓴 거네?"

"네, 뭐…….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대단해, 레온. 아무튼 이제 풀어주자."

"네."

레온이 잠시 뭐라 중얼거리자 지부장을 굳혔을 때와는 반대로 주변에 미세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크헉! 헉, 헉."

"잘 있었냐? 가자, 서부지부로."

"부, 북부지부는 어떻게 된 거냐!"

"뭘 어떻게 돼. 다 죽었지. 너도 죽기 싫으면 빨리 안내해. 갈 길이 바쁘다."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군. 서부지부도 똑같이 할 거냐?"

"거긴 그놈들 하는 거 봐서. 얌전하면 찾는 물건만 가지고 나올 수도 있고. 대들면 다 죽는 거고."

"조금 강하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계속 이딴 짓을 벌이다간 곧 단장님과 붉은 발톱이 직접 널 찾아올 것이다."

"그럼 고맙지."

* * *

"저기냐?"

"그렇다."

"이번엔 그렇게 크지 않네."

"서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으니까."

"그럼 다들 여기서 좀 기다려. 여긴 나 혼자 다녀올게."

"렉스 혼자요?"

"응. 북부지부처럼 뭐 전멸을 시킬 것도 아니고, 여기선 우리 찾을 것만 찾아 나오면 될 것 같아서. 괜찮지, 수영아?"

"응. 오빠 알아서 해."

폴이 감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 북부지부는 지옥으로 만들고 대신 여기엔 자비를 베푸는 건가요? 도적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몰래 물건만 가지고 나올 계획인 거예요?"

"아니. 그렇진 않아. 가다 만나는 놈들은 다 벨 거야. 어차피 다 똑같은 놈들이잖아? 그냥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잔 얘기지."

이곳에 오는 동안 최수영에게 조심스레 사막에서의 일을 다시 물어보았다.

험한 꼴을 조금 당하긴 했지만, 다행히 소피아 일행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했다.

뭐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놈들을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아……. 뭔가 어렵다. 아무튼 조심히 잘 다녀와요, 렉스."

"금방 다녀올게. 다들 기다리고 있어."

동부지부, 북부지부 모두 지부장의 막사는 주둔지 가운데 있었다.

여기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한 번의 점프로 주둔지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막사 앞에 섰다.

"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마그네타 검을 스윽 휘저었다.

아마도 '누구냐!'라고 외치려던 것이겠지.

도적단을 소탕하면서 수십 번은 들은 말이니 더 들을 필요는 없었다.

소리가 들린 곳은 나와 제법 떨어진 곳이었지만 뒷말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검과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 말도 안 되는 검기.

굳이 거리를 재고 검기의 길이를 조절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베고자 하는 것이 있고, 그쪽으로 검을 휘두르면 검은빛의 검기는 정확히 뻗어 나가 그걸 베어버렸다.

마그네타 검이 내가 베고자 마음먹은 물체만 베었던 것처럼, 이 검기는 내가 베고자 하는 것에 정확히 도달해 그것만 베어냈다.

설사 검이 휘두르는 방향이 조금 틀렸더라도 검기는 내 목표물에 정확히 닿는 느낌이었다.

이게 마그네타 검의 힘인지, 검을 쥐고 있는 염동력 장갑의 힘인지, 아니면 내 안에 있다는 내력의 영향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이제 마음만 먹으면 거대한 산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아쉽게도 막사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슈퍼 솔저 수트도 보이지 않았다.

허탕인가.

그때,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몸이 반 토막 난 동료를 발견한 모양이다.

나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막사 밖으로 걸어 나갔다.

"누구냐!"

"남반구에서 온 용병 렉스다. 너희 지부장은 지금 어디에 있냐?"

"네 놈이 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

방금 소리친 자의 양팔엔 찰리의 상반신이 들려 있었다.

"그렇다. 너희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지부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

"미친놈! 쳐라!"

대충 동료의 잘린 단면을 보면 이렇게 덤벼선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할 텐데.

제 수준도 가늠하지 못하는 무식한 도적놈들이었다.

스윽.

단조로운 움직임 한 번에 달려들던 도적의 칠 할 이상이 반 토막 났다.

"마, 마법이다!"

"아니야! 저건 검기야!"

"도망쳐!"

나는 검을 바닥에 꽂고 이제야 혼비백산해 흩어지려는 도적 중 두 놈을 염동력 장갑으로 끌어당겼다.

"두 놈 중 한 놈이 먼저 지부장의 위치를 말하면 나머지 놈은 바로 죽는다."

"보… 본부로 갔습니다!"

왼손에 목을 잡힌 도적이 먼저 지부장의 위치를 불었다.

"단장님이 불러서 오늘 아침 떠났습니다!"

부랴부랴 오른손에 목을 잡힌 도적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불었다.

깜짝 놀란 왼쪽 놈이 정보를 덧붙였다.

"북부지부와 동부지부가 당했다고 해서 단장님이 급히 부른 것입니다!"

"알았다."

나는 놈들의 목을 잡은 양손에 힘을 주었다.

"크흑! 먼저 말하면 살려준다고……."

"살려준다는 말은 안 했다. 나머지 놈은 바로 죽는다고만 했지."

"이… 악마!"

콰직.

나는 목뼈가 으스러진 두 시체를 옆에 던져버리고 다시 높이 점프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내가 날아오는 모습을 본 폴이 벌떡 일어났다.

"렉스! 벌써 찾았어요?"

"아니. 지부장은 여기 없대."

"그럼 어떡해요?"

"단장이 불러서 갔다니까 거기 가면 다 있겠지. 본부로 가자."

동부지부 지부장이 앞장서 길을 안내하고 나와 최수영은 맨 뒤에서 걸었다.

나는 염동력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은 뒤 최수영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최수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애인끼리 손잡는데 표정이 그게 뭐야."

그제야 동그랗던 최수영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그녀는 특유의 눈웃음을 띈 얼굴로 내게 말했다.

"하하핫. 그러게."

최수영과 나는 맞잡은 손을 앞뒤로 살살 흔들며 걷기 시작했다.

* * *

6월 3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0,600개]

[단가 50억 원]

[평가 금액 103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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