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 *
우리는 도적단 본부에 찾아가기 전 몬테넬과 라트니아 사이 작은 소도시에 들러 하루 쉬기로 했다.
작은 여관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자 몬테넬에서 흘러들어온 것인지 돼지고기가 약간 들어간 감자수프가 나왔다.
와! 고기다! 라고 외친 폴이 허겁지겁 수프를 떠먹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지 레온에게 물었다.
"레온, 라트니아 왕자 시해 음모로 시끄럽긴 했지만 어쨌든 숲 토벌은 끝냈잖아? 그 뒤엔 어떻게 됐을까? 정말 마법으로 숲을 살려냈을까?"
"나야 모르지, 폴. 어쩌면 몬테넬과의 분위기 때문에 숲을 살려내는 걸 미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시엠브레 눈치도 봐야 할 테고."
"전쟁이야 어떻게 되든 제발 숲 좀 살려냈으면 좋겠다. 감자수프만 평생 먹다 죽을 순 없다고. 옛날엔 곡식도 키워 먹고 나무 열매도 먹고 했었다던데."
조용히 수프를 먹던 에릭이 폴을 나무랐다.
"야, 폴. 그래도 우리 마을은 남작님이 계셔서 풍요로운 편인 줄 알아. 사막의 다른 마을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다고."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 남쪽 숲은 이미 거의 토벌됐잖… 읍!"
"말조심해 폴. 그건 아직 우리 마을의 비밀이라고. 윽! 더러워!"
폴이 자기 입을 막은 에릭의 손바닥에 혀를 들이밀었는지 에릭이 질겁하며 손바닥을 식탁 위 헝겊에 박박 닦았다.
나는 키르칸의 동행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폴, 에릭, 레온. 내가 보기엔 매튜 남작님이 너희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셔. 너희야말로 키르칸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사람들이지. 이번 동행도 세상을 더 넓게 경험하고 오라는 남작님의 배려였을 거야."
"빨리 다시 라트니아 가서 해산물 요리 먹고 싶다……."
"폴,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물론이죠, 렉스. 나는야 키르칸의 기대주! 떠오르는 희망!"
"어, 그래. 듣고 있었구나."
그때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식사를 시킨 후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하는데 다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우리는 강제로 그들의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어느 쪽에 지원할 거야?"
"두 왕국만 놓고 보자면 라트니아가 더 강하긴 한데, 어째 몬테넬 뒤에 시엠브레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우리 같은 용병이야 그냥 돈 더 주는 쪽으로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
"이봐, 이건 전쟁이라고. 돈이 전부가 아니야. 자칫하면 죽거나 병신이 된다고."
"그렇게 걱정되면 양쪽에 다 지원을 안 하면 되겠네."
"그건 또… 용병으로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단 말이지. 양쪽 왕국에서 모두 용병을 모집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봐. 우리 몸값은 계속 뛸 거라고."
"진짜 전쟁을 하긴 하려나 보지? 몇백 년 만이잖아?"
"이거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큰 전쟁이 벌어지는 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살아남아 돈 좀 만지면 운이 좋은 거고, 뒈지면 그냥 재수 더럽게 없는 거지 뭐. 지루하게 평생 이 감자수프나 먹다 죽는 것보단 재밌잖아?"
"그건 그렇지. 평생 감자나 캐고 살려고 용병이 된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럼 우리 몬테넬로 가는 건 어때? 라트니아의 용병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상대 진영에서 갑자기 시엠브레의 불사인들이 나타나는 걸 보고 싶진 않다고."
"그랬다가 시엠브레가 몬테넬을 돕지 않으면? 우린 라트니아 마법사들의 마법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어렵군. 일단 좀 더 지켜보자! 몸값도 계속 뛸 거라며?"
"그러지 뭐! 주인장! 여기 서주 좀 주시오."
"또 술이냐?"
"마셔야지. 전쟁 나면 한동안 못 마실 거 아냐?"
수프를 가장 먼저 비운 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에릭, 정말 전쟁이 나려나 봐?"
"그러게. 두 나라에서 이미 전쟁 용병을 모집하고 있나 보네."
레온이 숟가락을 테이블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정말 괘씸한 거 아니야? 여태 가만히 있다가 라트니아가 숲을 살릴 방법을 찾았다니까 바로 전쟁이라고?"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라트니아 편들기는. 렉스, 샤넌. 우리도 도적단 본부를 치고 마리노 왕국으로 넘어가려면 서둘러야겠어요. 여기 있다간 전쟁에 휘말리겠는데요?"
"그래.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 야, 지부장. 내일은 그 본부라는 데 도착할 수 있지?"
"그렇다. 이 마을 건너에 있는 돌산만 넘으면 그곳이 우리 도적단의 본거지다."
"좋아. 그동안 너무 강행군이었으니까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바로 본부를 친 다음 마리노 왕국으로 가자."
모두 식사를 마쳐갈 때쯤 종업원으로 보이는 소년이 우리 앞에 차를 한 잔씩 가져다 주었다.
"차를 시킨 적은 없는데?"
"요즘 저희 마을을 지나는 여행자분들이 흔치 않아서요. 사장님이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수아나무잎을 말린 차예요."
차를 한 모금 마신 최수영이 방긋 웃었다.
"어? 생각보다 향기가 좋은데? 근데 여기는 잎이 다 말라 있어서 찻잎을 만들려고 잎을 따로 말릴 필요는 없겠다."
최수영의 말에 나도 차를 입에 가져다 대 보았다.
처음 맡아보는 향인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기분 좋은 향이 났다.
"그러게. 생각보다 괜찮네."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며 따뜻한 차를 마신 우리 일행은 휴식을 위해 뒤편으로 이어진 숙소에 가 잠을 청했다.
오랜만의 실내 취침이었다.
* * *
"제대로 잠든 거 확실해?"
…….
"이봐, 이 검은 뭐가 이렇게 무거워? 아예 꼼짝도 안 하는데?"
…….
"그럼 그건 그냥 놔둬. 으흐흐. 이놈 돈주머니 좀 봐. 돈도 제법 들고 다니네? 이건 우리가 챙기자."
…….
* * *
"아… 머리야."
"놈이 깨어났다! 단장님께 알려!"
머리가 깨질 듯한 느낌과 함께 눈을 뜨니 돌을 대충 깎아 만든 듯한 바닥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전면에는 철창이 보였고 나머지 사방은 모두 돌이었다.
돌산을 파서 만든 감옥인 모양이었다.
나는 팔다리에 강철로 된 족쇄를 차고 있었고, 그 족쇄는 벽에 박혀 있어 나는 지금 대자로 벽에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감옥은 제법 넓었지만 다른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차에 독을 탄 모양이네."
그때 철창 바깥쪽에서 내 혼잣말에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차는 여관 주인의 호의였을 뿐이다. 독은 수프 속에 있던 고기에 절여 두었지. 너희가 오면 수프에 꼭 넣어주라고 여관주인에게 부탁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강철인간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사인?"
"놀란 모양이군. 나는 도적단 독수리 발톱 단장 데릭이다."
"조금 놀랍긴 하네. 불사인이라니. 불사인은 모두 귀족 아니었나?"
"귀족이었지. 이백 년 전 추방당하기 전까지는."
"내 동료들은 어디 있지?"
"다들 너처럼 묶여 있다. 자, 이제 내가 질문을 할 테니 잘 대답해라. 네 대답에 따라 동료들이 어떻게 될지 결정된다. 누가 시킨 것이냐?"
"누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다."
"그럼 뭐 때문에 우리 도적단을 그렇게 헤집어 놓은 것이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고,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해서는 안 될 일이야 워낙 많이 하고 있으니 네놈이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가져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이냐?"
"지부장들에게 나눠준 갑주. 너는 덩치가 커서 몸에 맞지도 않겠구나. 네놈이 갑주 몸통을 가지고 있다지?"
"고작? 고작 조금 번쩍번쩍한 갑주 때문에 우리 도적단 지부 세 개를 박살 낸 것이냐?"
"그렇다. 여기도 곧 박살 날 예정이고."
"하하하하.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네 꼴을 봐라. 혹시 약 기운이 빠지고 내력이 돌아오면 그 족쇄를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림없다. 그 족쇄엔 마법이 걸려 있지. 시전자가 아니면 풀 수 없다."
"마법에 대해 잘 아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런 건 일반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라고 했다."
나는 양손에 힘을 콱 주어 족쇄를 부수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족쇄는 놈의 말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족쇄가 강해서라기보다는 약 기운 때문에 아직 힘이 덜 돌아온 느낌이었다.
'약 기운 때문에 힘이 덜 돌아왔군.'
"주먹이 불끈불끈하는 걸 보니 힘 좀 줘보고 있나 보지? 하하하. 소용없다. 자, 이제 죽은 부하들과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너와 네 동료의 목숨값으로 뭘 지불할 수 있지?"
"수하 수백 명을 죽였는데도 바로 죽이지 않고 여기 가둬둔 이유가 고작 그거냐?"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손해를 봤고. 넌 평범한 놈은 아닌 것 같고. 이젠 네 놈이 가진 모든 걸 털어 내 손해를 메꿀 차례지."
"가진 게 별로 없는데 어쩌냐."
"그럼 네놈 동료들부터 하나씩 죽여야지. 이봐! 그 꼬맹이 놈부터 깨워서 끌고 와라."
도적들이 아직 비몽사몽인 폴을 끌고 와 불사인 앞에 앉혔다.
불사인은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폴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덩치가 큰 불사인에게는 단검이었지만 폴의 목에 닿은 단검은 폴이 평소 들고 다니던 장검보다도 컸다.
"자, 이놈 목숨값부터 흥정을 시작하지. 열 셀 테니 뭘 내어줄 수 있는지 대답해라. 열, 아홉, 여덟……."
폴의 목에서 피가 찔끔 배어 나왔다.
"끄응……."
폴이 인상을 쓰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자, 잠깐!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애다!"
"내 알 바 아니다."
"좋아! 저기 바닥에 있는 저 마법검! 저걸 주겠다!"
"응? 저 검은색 검 말인가? 그래. 신기하긴 하더군. 수하들 말로는 아무리 들어보려고 해도 꼼짝도 안 했다는데 네놈을 실은 수레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이젠 이 감독 안으로 갑자기 이동됐다."
"그, 그래! 마법 검이라서 그렇다! 저걸 주마!"
"신기하긴 하다만, 내가 들어보려고 해도 꼼짝도 안 하던데? 저런 걸 어디다 쓰겠나."
"마법이 걸려 있어서 그렇다. 내가 풀어줄 수 있다. 그럼 네 검이 되어 언제나 너를 따를 것이다."
"푸하하하. 저 검처럼 시커먼 네 놈의 속마음을 모를 것 같으냐. 듣자 하니 네놈은 검기를 내뿜는다지? 그런 놈의 손에 검을 쥐어달라? 내가 저능아로 보이는 게냐."
"그, 그럼 그 금화! 배낭 하나에 가득 든 금화를 이미 가져갔지 않았어? 그걸로 이 아이의 목숨값을 치러주면 안 되겠냐?"
"금화? 무슨 금화가 있었다는 말이냐."
"무슨 소리야! 내 방에 그 배낭! 거기에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
불사인 단장의 눈썹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주도권이 놈에게 넘어갔다간 폴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힘이 완전히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여기서 더 몰아붙여야 한다.
"일단 그걸로 이 아이의 목숨은 퉁 치자고! 지부 몇 개를 새로 차리고도 남을 돈이잖아! 어때?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의 목숨값으로는 내가 더 많은 금화를 주겠다. 약속하지!"
인상을 쓰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단장이 옆에 있던 부하에게 소리쳤다.
"바론! 가서 이자들을 납치해 온 놈들을 내 방으로 끌고 와라! 이 꼬맹이는 다시 감옥에 가둬 놓고!"
"네! 단장님!"
성공.
애초에 금화가 가득 든 배낭 같은 건 있지도 않았지만 도적놈들이 서로를 믿을 리가 없지.
"남반구인,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하지. 그땐 네 동료들도 다 깨어날 테니."
그래.
다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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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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