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 *
지하 광장에서 도둑들을 해치우고 다시 좁은 통로를 지나치길 여러 번.
복잡한 지하 구조에 제이슨의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쯤 다시 앞에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공간이 보였다.
쐐액.
순간 정면에서 화살 한 발이 문지기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깡.
제이슨이 급히 칼을 들어 화살을 쳐냈다.
"오? 제법이네. 안 막았으면 문지기 머리를 뚫고 네 놈 머리도 뚫었을 텐데."
"이제 좀 제대로 된 상대가 나타나는군."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이번엔 화살 한 발로 안 끝난다."
통로 끝 공간에는 제 몸만큼 커다란 화살을 제이슨에게 겨누고 있는 궁사가 두 명 서 있었다.
'공간이 너무 좁아.'
문지기를 밀어버리고 저 궁사들에게 다가간다 해도 날아들 화살을 모두 피해내기엔 제이슨이 서 있는 통로는 너무 좁았다.
슈퍼 솔저 수트도 없는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부실한 칼로 예사롭지 않은 저 활 공격을 다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괘씸한 놈들을 혼내주고 정보료를 다시 받아 갈 계획이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생각보다 어려운 적이 나타났다.
'우선 한 발을 쏘게 만들고 바로 쇄도한다.'
생각을 정리한 제이슨은 앞의 궁사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어디 쏴보시지. 그런 느려터진 화살로 내 털끝 하나 스칠 수 있을 것 같은……."
쐐액.
제이슨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까보다 훨씬 가늘고 날카로운 파공음이 제이슨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커헉!"
"크윽!"
제이슨의 앞에서 활을 겨누고 있던 두 궁사의 미간에 동시에 얇은 화살이 하나씩 박혔다.
화살은 제이슨의 뒤쪽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제이슨!"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놀란 제이슨이 뒤를 돌아봤다.
"수영? 수호?"
"진짜 여기 있었네요?"
"여긴 어떻게……?"
"술집에서 제이슨을 수소문해 봤는데, 누가 조금 전에 이쪽으로 가는 걸 봤다고 해서 따라와 봤죠."
"맙소사. 이렇게 만나다니."
"그런데 여기서 뭐 해요?"
"이 도둑놈들 좀 혼내주려고 합니다."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온이 나에게 물었다.
"지구인들은 도적단을 정말 싫어하는군요?"
갑자기 나타난 레온의 모습에 제이슨이 다시 칼을 들어 올렸다.
"아, 괜찮아요. 우리 일행이예요, 제이슨. 지구 이야기도 대충 알고 있고요."
"그렇습니까. 어쨌든 그럼 저는 이놈들 마저 좀 혼내주고 오겠습니다."
"같이 가요."
"그럴까요?"
* * *
"정말입니까? 수트를 찾으셨어요? 그것도 다 흩어져있던 걸?"
"네. 정말 우연히 왼팔 파츠를 찾아 다행이었죠. 도적놈들이 다 나눠 갖고 있었더라고요."
조금 전 빌데르에서 가장 큰 지하 도둑 길드를 처참하게 박살 낸 우리 일행은 바닥에 대리석이 깔린 고급 식당에 앉아 만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다행입니다! 저는 수트를 찾으러 가야 할지 동료들을 먼저 만나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여기서 보름 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하셨네요. 이렇게 저희도 만나고 수트도 찾으셨으니. 그런데 혹시 콜슨 중위님 소식은 아직 못 들으셨나요?"
"그게, 도둑 길드에 정보료를 주고 수소문해 봤지만, 소식은 못 들었습니다. 그 도둑 길드 놈들 제 돈을 그냥 꿀꺽하려던 것 같고요."
"그렇군요. 제이슨이 결정해 주실 일이 있습니다."
"뭘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좀 소란을 피웠거든요. 아마 지금쯤 기사단이나 마법사의 탑에서 저희 존재를 알고 있을 거예요. 이 남반구인 외모도 그렇고, 여기 오래 머무를 순 없어요."
"아, 콜슨을 기다릴지 작전을 수행할지 결정해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어렵군요. 하지만 우리 존재가 발각되지 않았다고 해도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제이슨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오늘이 6월 13일 화요일……. 이번 주까지만 기다려 보고 출발하시는 건 어떨까요?"
"좋아요. 제이슨이 지휘관이니 제이슨 말을 따라야죠."
"그런데 이 깡마른 청년은 어쩌다 동행하시게 된 겁니까?"
제이슨이 레온을 보며 물었다.
깡마른 청년 레온의 몸통은 제이슨의 사 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제가 도움을 받은 마을에서부터 동행한 친구입니다. 마법사죠."
레온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렉스. 렉스가 우리 마을에 도움을 줬죠."
"나도 도움 많이 받았어."
제이슨이 그제야 무언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라. 그렇다면 마법사의 탑에 진입하기 위해 데리고 다니시는 거였군요! 준비성이 철저하십니다."
"레온이 그걸 도와줄 순 있을 것 같지만 그래서 데리고 다니는 건 아닙니다. 동료이자 친구예요."
제이슨의 얼굴에 잠시 당황하는 표정이 스쳤다.
"아, 제가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제 어디 숙소를 잡을까요? 제가 깔끔한 곳을 몇 군데 알아놨습니다."
"아니요, 밤엔 도시 밖에서 노숙해야 할 것 같아요. 빌데르에선 식당에서 뭘 먹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고요."
"노숙이요?"
"오다가 독을 탄 음식을 먹고 죽을 뻔한 적도 있거든요. 이제 곧 우리가 여기 있다는 소식이 놈들의 귀에 들어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죠."
"하지만 콜슨을 기다려봐야 하니 이곳을 떠날 순 없고……."
"네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 * *
"렉스, 저 왔어요."
"레온이 왔어? 오늘도 고생했네."
"네. 미리 금화를 쥐여 준 식당이랑 여관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오늘도 남반구인이나 몸이 검은 사내를 찾는 사람은 없었대요."
"우리 레온이가 매일 고생이 많네."
"아니에요. 도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여기 먹을 것도 사 왔어요."
"고마워, 레온아. 아, 그리고 이것 좀 봐줄래?"
"오늘도 마법 연습했어요?"
"응. 이 한적한 데서 하루종일 뭘 하겠어."
나는 오른손을 들어 주변의 마나를 모아보았다.
손 주변으로 마나의 바람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질 때, 레온에게 배운 대로 모인 마나에 속성을 부여했다.
화악.
모여들었던 마나가 붉은빛을 내며 동그랗게 뭉쳐졌다.
"와, 벌써 이만큼 한 거예요?"
"아니, 더 했지."
나는 모여든 붉은빛의 마법구를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여보았다.
"렉스? 이건 뭔가요? 목표 좌표를 계산해서 발사하는 게 아니라 그냥 공중에서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는 게 가능하다고요? 이런 건 책에서도 본 적 없어요!"
"응. 염동력 장갑으로 연습해 본 거야. 해보니까 되더라고."
"그 주변 물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갑이요?"
"응. 그리고 이걸 이렇게 집어던지면."
마나를 조정하던 팔의 손목을 가볍게 튕겨내자 공중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붉은 마나 덩어리는 그대로 저 멀리 있는 바위에 날아가 꽂혔다.
펑.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렉스, 지금 목표물 좌표를 계산하고 마법을 발사한 게 아니죠?"
"응. 염동력으로 그냥 집어 던진 거야."
"세상에. 이건 전혀 새로운 방법이에요! 마나를 그냥 집어던져서 목표물을 맞히다니요!"
"해보니까 되네. 하하하."
"목표물의 좌표를 계산하고 거기 정확히 마법이 꽂히게 하는 데만 몇 년에서 몇십 년씩 훈련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게다가 매 순간 좌표와 변수를 빠르게 계산해내지 못하면 다시 마나가 흐트러지고요. 그래서 머리가 좋지 않으면 마나 친화력이 아무리 높아도 마법사가 될 수 없는 거예요."
"무식하게 그냥 집어던진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단 얘기로 들리는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대단해요, 렉스. 마법을 던진다? 정말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에요."
"나 수학 강사 출신이라고. 절대 암산을 못 해서 그냥 집어던진 건 아냐."
"당연하죠! 이걸 정확히 던질 수 있다면 어느 마법사가 중얼거리며 좌표를 계산하겠어요! 전투 중엔 좌표 계산하다가 죽는 일도 허다한데요."
"오빠, 혼자 너무 강해지는 거 아니야?"
최수영이 레온과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도 랜덤박스 살래. 이제 곧 5천 코인 모여."
"응. 여기서 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구에서 받은 아이템들이랑은 또 다르네. 마법 주머니와 마법사가 되는 물약이라니."
"레온, 오늘은 먹을 거 뭐 사 왔어?"
"감자와 해산물을 같이 넣고 찐 요리예요."
최수영이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내미는 레온의 양쪽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했다.
"우리 귀염둥이 레온이 덕을 크게 보네?"
"그런데 왜 자꾸 며칠 전부터 샤넌과 렉스는 저를 레오니라고 부르는 거예요?"
"응. 한국식이야. 우리 레온이가 적응해. 귀엽잖아. 하하하."
"레오니가 귀여운 이름인가요?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
최수영이 다시 레온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레오니는 안 귀엽지만 레온이는 귀여운 거야. 아무튼 그래."
그때 불을 피울 마른 나뭇가지를 잔뜩 짊어진 제이슨이 돌아왔다.
"레온, 왔네?"
"네, 제이슨. 이리 와서 같이 저녁 먹어요."
"오늘도 소식은 없었고?"
"…네."
"별수 없지. 수호, 수영. 그럼 예정대로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하시죠."
"그러시죠."
"…일단 임무를 완수하고. 나중에 구조대를 꾸려서 다시 오든지 해야겠죠. 미 해병대는 결코 아군을 적진에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되는군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빌데르를 떠나 마법사의 탑을 향했다.
* * *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제이슨."
"네?"
나는 마법 주머니에서 슈퍼 솔저 수트를 꺼내어 제이슨에게 건넸다.
"이 수트 입으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강한 적들을 만날 것 같네요."
마나 친화력이 높아진 이후 마법만 쓸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다.
마나의 미세한 변화까지 느껴지다 보니 강한 기운을 가진 생명체가 다가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레온은 자신은 그런 건 느낄 수 없으며, 내가 내력과 마나 친화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강하고 예리한 기운이 마나를 타고 내 몸에 전해져오고 있었다.
"하아아악!"
꽝이도 놈들의 기운을 느꼈는지 귀를 내리깔고 하악질을 시작했다.
"수영이랑 레온이도 준비해. 이번엔 진짜 강한 놈들인 것 같다."
잠시 후, 언덕 너머로 거대한 금속 말을 탄 불사인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선두에 있던 불사인이 입을 열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듯 양쪽 입꼬리가 위로 솟아 있었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 김수호."
누가 저 표정을 보면 오랜 친구를 만난 줄 알 것이다.
"넌 누구냐? 나를 알아?"
"잘 알고 있지.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고. 나는 시엠브레 제국 제1 기사단장 가엘이다."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했더니 한가락 하는 놈이구나?"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는 건가? 역시 기대 이상이야."
"싸우러 온 거겠지?"
"물론이지. 정말 오래 기다렸다."
기사단장 가엘이 말에서 내리자 나머지 기사 셋과 마법사 한 명도 말에서 내려왔다.
마법사가 말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그의 지팡이에서 푸른 빛이 뻗어져 나갔고, 네 갈래로 갈라진 푸른 빛은 가엘을 비롯한 기사들에게 맞닿았다.
"렉스, 저 마법사 엄청 빨라요."
"그래 보이네. 저놈은 레온 네가 맡아."
"네? 불사인 왕궁 마법사를요?"
"응. 넌 할 수 있어."
"…네!"
"수영이는 레온 옆에서 우리 엄호해 주고. 제이슨, 준비됐어요?"
"됐습니다."
천천히 다가오는 네 명의 검사가 들고 있는 검에서 일제히 푸른 빛의 검기가 발현되었다.
"가운데 큰 놈을 특히 조심하세요. 그리고 강철 수트를 입었다고 해도 절대 놈들의 검과 부딪히면 안 돼요. 저 검기는 강철 정도는 가볍게 잘라요."
"네."
기사단장의 검기는 그중에서도 유독 짙고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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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1,490개]
[단가 50억 원]
[평가 금액 107조 4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