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귀환 】
최수영이 내 팔을 꽉 잡고 옆에 붙어섰다.
"으, 벌레들이 너무 크고 징그러."
"샤넌, 벌레 같은 거 무서워해요? 불사인 기사들 미간도 화살로 한 번에 뚫어버리면서?"
"응 무서워. 악! 지네!"
"근데 수영아. 벌레 모양들이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지 않아?"
"아 몰라! 징그러!"
"그런데 이런 곳에 살면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온통 먹을 거 천지네."
레온이 온갖 동식물이 한데 어우러진 정글이 신기한 듯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쿵.
땅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쿵.
또 한 번.
이번엔 주변의 커다란 새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커다란 새도 어디서 본 건데… 닭 같기도 하고 공작 같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저 새들을 어디서 봤더라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수십 미터가 넘는 나무 위로 기다란 목을 한 생명체의 머리가 슥 올라왔다.
저것도 어디서 많이 봤다.
이젠 알겠다.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두두두두.
갑자기 오른쪽에서 한 무리의 짐승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얼굴에 세 개의 뿔과 프릴을 달고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는 짐승들.
몸길이는 대충 봐도 칠, 팔 미터는 돼 보였다.
최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트리케라톱스?"
"그런 것 같지?"
"근데 왜 우리한테 뛰어와?"
그때 꽝이가 트리케라톱스들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하악질을 시작했다.
저게 내가 알고 있는 그 공룡이 맞다면 딱히 우릴 공격하진 않을 텐데?
"렉스! 샤넌! 저기……."
레온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보통 이즈음에서 진부하게 등장하는 바로 그놈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하, 티라노사우루스."
나는 바로 마그네타검을 뽑아 내력을 주입하였다.
* * *
2년 후, 경기도 광명 상공.
메타디펜스의 이름이 새겨진 헬리콥터 10여 기가 안양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메타디펜스의 전무이사이자 임시 대표직을 맡고 있는 라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실장님! 화이트 게이트는 지금 얼마나 커졌습니까!"
- 아직은 C급 크기의 게이트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커지고 있어 최종 몇 급의 게이트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무작위로 발생하는 게이트는 그 크기에 따라 D급부터 S급까지 다섯 단계로 나뉜다.
화이트 게이트가 크다고 강한 몬스터나 적이 나오라는 법은 없지만 크기가 클수록 많은 수의 생명체가 지구로 넘어오게 된다.
"이번에도 큰 놈이군. 화이트 게이트가 평촌 학원가에 생겼다고 했지요? 이런 데서는 부디 뭐가 많이 안 튀어나와야 할 텐데."
- 네! 지금 급히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는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 이제 10분 후면 평촌에 도착합니다!
"그놈들은요?"
- MB게임즈 말씀이십니까?
"네!"
- 그… 이미 현장에 도착해 있다고 합니다.
"또요? 또 우리가 늦은 겁니까?"
- 대성그룹도 거의 도착한 모양입니다.
"대성까지요?"
- 대성보다는 우리가 조금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잠시 후 메타디펜스의 헬리콥터들이 평촌 상공에 도착하자 그 아래에는 이미 B급까지 커진 화이트 게이트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통제하고 있는 MB게임즈의 디펜서들이 보였다.
저 멀리 남쪽에서 날아오고 있는 헬리콥터들에는 아마 대성그룹의 디펜서들이 타고 있을 것이다.
라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낮게 외쳤다.
"요즘 들어 저 MB 놈들이 꽤 빨라졌단 말이야……."
헬리콥터 한편에 놓여있던 창과 방패를 든 라울이 이어폰에 대고 외쳤다.
"메타디펜스 디펜서 1팀, 2팀 투입!"
- 투입!
각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디펜서 두 개 팀 인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10여 대의 헬리콥터에서 일제히 밧줄이 늘어뜨려졌고, 메타디펜스의 디펜서들은 일사불란하게 헬기 레펠을 시작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메타디펜스의 실질적 리더이자 1팀 팀장인 라울은 창과 방패를 든 채 로프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대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라울을 선두로 한 디펜서 1, 2팀이 화이트 게이트로 다가가려고 하는데 접근금지 라인을 만들고 있던 MB게임즈의 디펜서 한 명이 라울의 앞을 가로막았다.
라울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
MB게임즈의 강호석 팀장.
"라울, 그쯤에서 전열을 정비하시죠. 이 안쪽은 먼저 도착한 MB에서 맡겠습니다."
"그쪽이야말로 접근 금지 라인을 너무 크게 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거 반경 30미터 맞아요? 훨씬 넓어 보이는데?"
"여긴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원가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서로 채굴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한들 어린 학생들의 안위가 우선이지요."
약아빠진 인물 강호석은 이미 한국 넥시트코인 채굴 규약에 정해진 바를 훨씬 넘어선 접근 금지 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채굴 기업에서 접근 금지 라인을 펼치면 다른 회사의 디펜서들은 위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라인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채굴 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발생될 수 있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권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고자 만들어진 규약이었다.
MB게임즈에서 가장 먼저 도착해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화이트 게이트 주변에 디펜서들을 완벽히 대기시켰으니 규약에서 정해진 넓이를 조금 어긴다 해도 명분이야 충분했다.
'학생들의 보호가 최우선이었다.'
이 한마디는 학원가 한복판에 발생한 화이트 게이트의 채굴권을 싹 쓸어가기에 충분한 명분이었다.
"좋아……. 학생들의 안전이 우선이지. 잘해 보시오."
육 개월 전 채굴 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후 채굴 기업에 대한 사회 인식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본인들의 채굴 경쟁을 위해 시민의 안전을 저버린 채굴 기업들.]
[제 배를 불리기 위한 채굴에 눈이 먼 초능력자들.]
당장 각 기업의 디펜서들이 채굴에 나서지 않으면 화이트 게이트가 생길 때마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있을 것임이 자명한데도 이런 꼬리표들은 반년 가깝게 그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라울은 비록 MB게임즈의 접근금지 라인이 규약을 좀 어겼다 해도 강하게 개선을 요구할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성그룹의 디펜서들이 도착하기 전에 제2 진을 치는 것 정도였다.
그때 화이트 게이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온다! 준비해!"
콰앙.
화이트 게이트에서 거대한 나무가 뿌리째 튀어나온 것을 시작으로 온갖 나무나 바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MB게임즈의 디펜서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쏟아져 나오는 잔해들을 피하며 게이트를 경계했다.
강호석 팀장이 상황실을 향해 소리쳤다.
"분석팀! 잔해 회수해서 빨리 어느 행성인지 알아봐!"
"이미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게이트에서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퉁 튀어나왔다.
쾅.
머리가 세 개 달린 드래곤의 형상을 한 몬스터가 바닥에 떨어지며 그대로 쓰러졌다.
"잔해 분석 결과 행성 087과 연결된 게이트입니다!"
"이미 알아! 제기랄! 저건 히드라잖아! 일단 모두 뒤로 물러서!"
거대한 몸통에 긴 목이 세 개 달린 드래곤, '히드라'.
행성 087에 서식하며, 국제 몬스터 등급 기준에 의해 8등급으로 구분되는 최상급 몬스터였다.
8등급은 지금까지 나타난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등급에 속했다.
한 번 휘저으면 건물을 부서뜨리는 강한 꼬리를 가지고 있었고, 거대한 날개는 저 육중한 몸을 하늘 위로 가볍게 띄워 올릴 수 있었다.
두꺼운 피부는 어지간한 대포나 미사일로도 뚫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세 개의 머리에서 내뿜는 맹독성 브레스였다.
갑자기 8등급 몬스터 히드라가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자 MB게임즈의 디펜서들은 겁을 먹은 채 뒤로 물러섰다.
저 히드라 한 마리 때문에 아예 망해버린 나라만 해도 벌써 여럿이었다.
곧 이 일대는 초토화가 될 것이고, 모든 디펜서 회사와 군대가 힘을 합쳐도 겨우 저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히드라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세 개의 머리가 모두 잘려 나간 채였다.
"이게 뭐야!"
"블랙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기 전 자기들끼리 싸움이 있었나 봅니다!"
"아무리 자기들끼리 싸웠다고 해도 머리가 이렇게 깨끗하게 잘려 나갈 순 없어!"
퉁, 퉁.
게이트는 또 몬스터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번엔 히드라가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함께 나타나는 4등급 몬스터 '오르토스'들이었다.
오르토스는 두 개의 파충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몸통은 거대한 개와 같은 모양을 한 몬스터였다.
행성 087에서 히드라의 곁을 지키는 오르토스들은 화이트 게이트에서 히드라가 나타날 때면 항상 함께 등장했다.
"이놈들도 목이 모두 잘려 있습니다!"
히드라의 등장에 느꼈던 공포도 잠시, 강호석 팀장은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 모가지가 날아간 상태로 오면 채굴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때였다.
"저기 누가 걸어 나옵니다!"
걸어 나와?
게이트에서?
강호석 팀장은 이런 헛소리를 내뱉은 녀석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게이트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 세 명이 정말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잔해나 생물들처럼 화이트 게이트가 밀어내는 강한 힘에 의해 튕겨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 집 안방 문인 듯 천천히 화이트 게이트를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는 그는 어눌하지만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렉스! 여기가 지구인가요?"
어깨 위에 작은 짐승을 올려놓은 사내가 대답했다.
"응. 이번엔 맞게 찾아온 것 같다."
"오빠, 저 간판들 좀 봐! 심지어 한국이야! 나 눈물 날라 그래, 이게 몇 년 만이야?"
"2년 넘었지? 진짜 고생했어, 수영아."
* * *
최수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감격한 듯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풍경인지 코끝이 쨍해졌다.
그때 전투복같이 생긴 옷을 입은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양손에는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는데, 눈빛이나 자세가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다가온 사내가 우리에게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반갑습니다! 여긴 정말 한국이 맞군요! 저는 김수호라고 합니다. 메타디펜스라는 회사의……."
"메타디펜스 대표 김수호?"
영 예의가 없는 건지, 지금 상황에 너무 당황해서인지 그 남자는 내 인사와 소개를 중간에 끊고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번은 참아주지.
"그렇습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설마 행성 087에서 게이트를 통해 넘어 온 겁니까?"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화이트 게이트를 바라본 후 말했다.
"저기를 행성 087이라고 하나 보죠? 어쨌든 게이트를 통해 넘어 온 건 맞습니다. 여기는 한국인 것 같은데, 어디입니까?"
"게이트 너머에서 저 히드라와 오르토스들을 해치운 건가요? 죄송하지만 이 게이트는 우리 MB게임즈에서 이미 확보한 상태로……."
아직 자기소개도 하지 않은 이 남자는 여기가 어디냐는 내 질문에 또다시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
기분이 영 안 좋은데.
나름 대부분 사람에게 친절했던 내 성격은 2년 넘는 행성 떠돌이 생활 동안 꽤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만 친절하게 대한다.
그리고 지금 이놈은 굉장히 불친절하다.
"이봐요, 여기가 어디냐니까 뭐 이렇게 딴소리만 늘어놔?"
"뭐, 뭐요?"
"됐습니다. 저 도로 이정표 보니 안양 어디인가 보네. 회사에 전화하게 휴대폰이나 좀 빌려줘 봐요."
남자는 잠시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코웃음을 픽 내뱉었다.
"몇 년 전 실종됐다더니 이제 막 지구에 돌아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시네. 아직도 뭐 혼자 날뛰던 옛날의 그 메타디펜스 대표인 줄 아나 보지? 얘들아! 이 사람들 라인 밖으로 끌어내."
끌어내?
"그리고 당신이 멋대로 처치한 저 몬스터들, 채굴 규약에 따라 나중에 메타디펜스에 따로 청구할 테니 그렇게 아쇼. 아무리 반대편에서 건너왔다고 해도 여긴 우리 MB게임즈에서 먼저 확보한 게이트라고."
최수영이 물었다.
"오빠, 저 사람 자꾸 뭐라는 거야?"
"모르겠어 나도."
나는 가만히 손을 올려 염동력으로 그자를 끌어당겼다.
10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에 서 있었음에도 그자는 순식간에 내 손바닥으로 끌려들어 왔다.
"커헉!"
나는 한 손으로 그자의 목을 틀어쥐고 물었다.
"뭐라고? 끌어내? 그리고 메타디펜스에 뭘 청구해?"
"그, 그 여긴 우리 MB게임즈가 확보한 게이트란 말이다!"
"뭔 소리야 도대체. 휴대폰이나 내놔."
급작스러운 상황에 게이트 주변을 빙 둘러 경계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 쪽을 향해 무기를 빼 들었다.
"뭐야? 해보자는 거야, 지금?"
* * *
2025년 6월 9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72,140개]
[단가 62억 원]
[평가 금액 447조 3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