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 *
같은 시각, 강화도.
터키에 나타난 거대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1, 2팀과 함께 떠났다가 파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전해 듣고 지금 막 강화도 본사로 돌아왔다.
출장 팀과 연결된 워프 마법진이 설치된 곳으로 뛰어가며 이어폰으로 이혁진 실장에게 물었다.
"파주 현장 상황은요?"
- 대성 그룹은 완전히 철수한 것으로 보이고, 우리 디펜서들은 지금 막 근접전을 시작했습니다!
"근접전? 가까이 가면 방독면과 방호복으로도 맹독 방어가 힘들 텐데요?"
- …최형우 팀장의 판단이었습니다. 독이 더 퍼지기 전에 카토블레파스를 하나라도 더 잡을 계획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제기랄! 박영식, 이 새끼! 가만두지 않겠어."
쾅!
나는 달리는 속도 그대로 문을 부숴버리며 워프실로 들어섰다.
놀란 레온이 날 보며 외쳤다.
"수호 형!"
"레온아! 파주 현장 지휘 본부랑 연결된 마법진이 어디야!"
"저쪽이요! 형! 제가 미리 챙겨놨어요. 가기 전에 이거 입어요. 방독면이랑 방호복……."
"그런 거 입을 시간 없어! 빨리 마법진 가동해!"
"그냥 가면 위험해요!"
"잠깐 숨 참으면 그만이야! 빨리!"
레온이 옆으로 다가와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밝은 빛이 내 몸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었고, 잠시 후 녹색 연기가 자욱한 곳에 도착했다.
카토블레파스 여러 마리가 내뿜은 맹독은 이미 한 치 앞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진하게 퍼져 있었다.
나는 바로 연무가 가장 짙은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거의 코앞까지 다가가서야 어슬렁거리고 있는 카토블레파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며 보이는 족족 카토블레파스를 베어 넘겼다.
하나, 둘, 셋…….
세 마리를 베어냈을 때, 그제야 조금 전부터 느꼈던 불길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디펜서와 스텝들 삼십여 명이 출동한 현장인데,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 카토블레파스를 찾아 주변을 빠르게 돌아봤지만 더 이상 걸어 다니는 카토블레파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디펜서들이 총 다섯의 카토블레파스를 해치운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헬리콥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무거나 올라탄 후 기체를 작동시켰다.
헬리콥터의 메인 로터가 회전하기 시작하며 연기를 사방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카토블레파스가 살아서 연기를 내뿜고 있을 때였다면 이건 연기의 확산을 촉진하는 행동이었겠지만, 놈들은 이미 다 죽었다.
지금 남아 있는 맹독 연기는 가만두어도 어차피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들이었다.
헬리콥터를 낮게 띄운 후 연기의 중심으로 다가갔다.
강하게 회전하는 로터가 아래 있는 맹독을 빠르게 사방으로 퍼뜨렸다.
녹색 연무를 어느 정도 밀어내자 아래 상황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카토블레파스 사체 여덟. 그리고 그 주변에 쓰러져 있는 시신 수십 구.
말도 못 하게 치열했을 전투가 무색하게 시신들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은 듯 각자의 손에 무기들을 굳게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도심지까지 도착한 맹독 연무에 물을 뿌려 가라앉히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사이렌 소리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상의 일처럼 아득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주변의 맹독 연무를 모두 날려버린 후 다시 땅으로 내려와 시신을 하나둘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중엔 카토블레파스의 단단한 목에 힘겹게 검을 꽂아 넣은 채 등 위에 매달려 있는 시신도 있었다.
최형우 팀장의 시신이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충분히 살 수 있는 청년들이었다.
메타디펜스의 디펜서들이 끝내 해치운 카토블레파스가 다섯.
대성 그룹의 디펜서들이 제때 합류했다면, 그랬다면 맹독이 방독면을 뚫고 들어와 이 젊은 청년들의 내장을 녹이기 전에 여덟 마리의 카토블레파스를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으리라.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입술에 닿아 짠맛이 느껴질 때쯤, 속마음이 그대로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박영식 이 X새끼……. 죽여버린다."
* * *
카토블레파스들이 내뿜은 맹독은 우리 디펜서들 외에도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었지만, 다행히 신도시까지 완전히 퍼지기 전에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자칫 수십만의 사상자를 더 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리 디펜서들의 목숨과 신도시의 안전을 맞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사 법무팀에서는 정식으로 대성 그룹에 항의 공문을 보내고 배상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대성 그룹에 대한 법무팀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사망한 디펜서들은 우리 직원이었고, 그들을 사지로 몬 건 우리 회사였다. 대성 그룹에 배상을 요청한다고 그들의 넋이 기려질 일은 아니었다.
모든 배상은 우리 회사에서 책임지고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서울 성북동을 향해 뻗은 오르막 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새벽 2시. 박영식 그놈이 오늘 술자리를 가진다는 정보를 듣고 이 길목을 지킨 지 벌써 한 시간. 한적한 도로에는 이따금 택시 한두 대가 돌아다닐 뿐이었다.
잠시 후, 저 멀리 한 무리의 검은색 차량이 내가 있는 쪽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줄지어오는 다섯 대의 차량 중 가운데 있는 검은색 BMW 760.
박영식의 차였다.
빠앙!
선두에 있던 차량이 상향등을 켰다 껐다 반복하며 길 한복판에 서 있는 나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
나는 왼손을 가볍게 들어 선두 차량을 붙잡는 모션을 취했다.
콰직!
선두를 달려오던 대형 SUV의 엔진룸 부분이 거대한 힘에 의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휙.
염동력으로 붙잡은 선두 차량을 가볍게 도로 우측으로 던져 버렸다.
콰앙!
공중을 빙글 돈 SUV는 도로 옆 가로등으로 날아가 부딪쳤다.
자동차와 부딪힌 가로등이 그대로 꺾여 도로 위로 쓰러졌다. 쓰러진 가로등은 잠시 어두운 도로 위에 스파크를 튀기다가 이내 빛을 잃고 꺼졌다.
천천히 걸어나가며 두 번째 차량도 염동력으로 멀리 던져버렸다. 두 번째로 집어 던져진 차는 인도를 지나 불 꺼진 커피숍 유리를 깨고 건물 안에 처박혔다.
두 대의 차를 집어 던지자 내 눈앞에 박영식의 차가 나타났다.
뒷좌석에 앉은 박영식이 뭐라 뭐라 소리치며 다급히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운전기사는 급히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완전히 틀었다. 유턴해서 도망치려는 모양이다.
차를 돌리기 위해 나에게 옆면을 보인 순간, 마그네타 검을 꺼내 들어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검은빛의 검기가 쏟아져 나가며 그대로 박영식의 차 가운데를 갈라버렸다.
앞과 뒤가 분리된 박영식의 차는 도로 위를 따로따로 미끄러졌다.
뒤에 있던 차에서 다양한 무기로 무장한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앞서 집어 던진 차에서도 디펜서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차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막아!"
"공격해!"
디펜서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며 소리쳤다.
천천히 박영식에게 걸어가던 나는 잠시 자리에 멈추어 섰다. 주변을 둘러보자 스무 명이 조금 안 되는 디펜서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죽기 싫은 놈은 당장 그 자리에 앉아라. 경고와 기회는 한 번뿐이다."
낮게 깔린 목소리였지만, 내력이 실린 소리는 단단한 알맹이가 되어 멀리 퍼져 나갔다.
다가오던 디펜서들이 잠시 주춤했다. 눈치를 보던 디펜서 한 명이 털썩 주저앉자, 네 명의 디펜서들이 따라서 무릎을 굽혔다.
"지금 앉은 디펜서들은 대성에서 잘리면 메타디펜스로 찾아와.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스윽.
나는 검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린 뒤 그대로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내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던 디펜서들의 목이 순식간에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아무 반응도 못 한 놈들이 태반이었고, 그중 그래도 몇몇은 막거나 피해 보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미리 앉았던 디펜서 다섯을 제외하고는 순식간에 모두 목이 잘려 나갔다.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보던 살아남은 디펜서 다섯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나는 다시 천천히 박영식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반으로 잘린 자동차 안에 박영식이 벌벌 떨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그랬냐?"
"뭐, 뭐!"
"파주 게이트! 같이 싸웠으면 다 죽지 않을 수 있었어. 왜 그랬냐고."
"모, 몰라! 저리 가!"
"나와, 이 새끼야."
나는 박영식의 멱살을 잡아 자동차 밖으로 끌어냈다.
"대답해! 왜 그랬냐고. 나한테 몇 대 맞았다고 복수한 거야? 파주에 갔던 우리 직원들이 모두 죽었어. 근처에 살던 주민들도 다 죽었고.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신도시 주민들도 떼죽음을 당할 뻔했다고! 어서 이유를 말해!"
"그렇게 될지는 몰랐어! 그냥 좀 엿을 먹이고 싶었던 것뿐이야. 정말이야……."
미친놈도 이런 미친놈이 없었다.
뭐? 그냥 좀 엿을 먹이고 싶어?
"야, 이 미친놈아. 나한테 얻어맞고 왜 괜한 사람들을 다 죽게 만드냐고!"
"아! 몰랐다니까! 이거 놔!"
박영식이 내 손을 뿌리쳐보려고 했으나 당연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손가락에 힘만 까딱 주면 넌 이 자리에서 죽어, 박영식."
"그, 그래서! 죽일 거냐? 고작 그런 일로? 대성 그룹의 차남을? 저기 목 달아난 저 디펜서들이랑 나랑 같은 줄 알아?"
구역질이 올라왔다. 당장 손가락에 힘을 줘 놈의 명줄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시킬 게 남아 있었다.
"당장 오늘 아침 일찍 기자 회견 열어. 이번 파주 사건 피해자 유가족 전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해."
"하, 하하. 그러면 그렇지. 진짜 죽이기라도 하려고 온 줄 알았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보상도 두둑이 할게. 이제 이 손 놓고 얘기해."
나는 박영식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목을 잡고 캑캑거리는 박영식이 나를 올려보았다.
"너 살려주는 거 아니야. 넌 조만간 죽어. 언제가 될지는 몰라. 그냥 내가 내킬 때 널 죽이러 올 거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
박영식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뭐, 뭐?"
"당장 내일 올 수도 있어. 아, 그리고 오늘 일은 적당히 네 선에서 무마시켜."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박영식을 지나쳐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아침 일찍 박영식의 기자 회견이 방송되었다.
- 저는 대성 홀딩스의 사장이자, 채굴사업부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는 박영식입니다. 파주 게이트 현장 철수는 저희 쪽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일어난 것으로, 전적으로 대성 그룹의 책임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오류?
- 이에 저는 대성 그룹을 대표하여 이번 파주 게이트로 인한 사상자 유가족분들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희 대성 그룹은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번 사상자 유가족분들께…….
인도주의적 차원?
틱.
나는 옆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TV 화면을 꺼버렸다.
옆에 있던 최수영이 짜증이 가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오빠, 저 사람 또 뭐라는 거야?"
"이 새끼……. 박영식.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 입으로 내다 버렸어."
"어떡할 건데? 진짜 다시 찾아가서 죽일 거야?"
"그건 나중에. 일단 저따위 사과문을 작성한 대성 그룹인가 뭔가부터 박살을 내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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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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