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 천마신교 】
"어딘가요?"
내 물음에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깔끔한 정복을 입은 프랑스군 장교가 대답했다.
"발롱 데조프 항구 쪽입니다. 이미 몬스터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일단 가시면서 얘기 나누시죠. 수송기 대기시켜 놨습니다."
마법진이 설치된 격실 밖으로 나오자 활주로에 군용 수송기가 이륙 준비를 마친 채 서 있었다.
활주로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했는데 수송기의 양 날개 끝을 보니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기체인 것 같았다.
수송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저 멀리 파란 지중해가 보였다. 그리고 지중해와 육지 경계에 거대한 화이트 게이트가 있었다.
멀리서 보니 해변에 커다란 관람차가 하얀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멋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발롱 데조프 항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십 마리의 이족보행 몬스터들이 항구 곳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초가집 지붕을 덮어쓴 듯한 더벅머리에 12개의 눈이 얼굴을 빙 둘러 박혀 있는 5등급 몬스터.
눈이 많은 대신 귀와 코는 없었고, 커다란 입이 뚫려있는 곳을 보아야 어느 쪽이 얼굴 앞쪽인지 알 수 있었다.
키는 5미터 정도 되고 두꺼운 팔뚝 하나가 건장한 사내만 했다. 그리고 그 두꺼운 팔뚝이 몸통을 빙 둘러 네 개나 달려 있었다.
사방에 달린 팔에는 모두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다행히 다리는 두 개밖에 없어, 얼굴에 달린 커다란 입과 두 다리의 무릎 방향으로 어디가 앞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열두 개의 눈과 네 개의 팔을 가진 저 몬스터들의 앞과 뒤를 파악하는 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놈들의 몽둥이질은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주변을 파괴했다.
잠시 후,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수송기가 착륙했다.
"라울, 내려오면서 보니 놈들 몽둥이질 위력이 보통이 아니에요. 디펜서들을 서너 명씩 묶어서 팀으로 움직이게 하세요."
"네, 미스터 킴. 이미 대응 상황별로 파티는 다 짜져 있어요."
라울이 수송기에서 내린 디펜서들에게 외쳤다.
"디펜서 1팀! 5등급 중형 몬스터 근접전 대형으로 집결!"
라울의 외침에 디펜서들이 일사불란하게 삼삼오오 대열을 맞춰 정렬했다.
"가장 중요한 건 시민과 우리의 안전이다! 시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다치지 말도록!"
"네!"
"이미 몬스터들이 도심을 휘젓고 있다. 자, 넓게 산개하며 바로 진입한다!"
디펜서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휘를 마친 라울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킴, 수영. 우리도 셋이서 옛날처럼 파티를 한 번 꾸려볼까요?"
최수영이 먼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핫. 정말 오랜만이네. 좋아요."
나도 라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좋죠. 예전처럼. 하하하."
물론 5등급의 저 더벅머리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굳이 셋이 파티를 이룰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옛날 기분도 낼 겸 우리 셋은 몬스터가 가장 많아 보이는 곳을 향해 함께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몬스터의 크기가 생각보다 거대했다.
나는 손에 농구공만 한 마법구를 대여섯 개 만들어 주변에 있는 놈들의 머리통을 향해 날려 보았다.
펑!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던 두 놈은 마법구를 맞아 머리가 터져버렸지만, 나머지 놈들은 몽둥이로 마법구를 막아냈다.
마법구를 막아낸 몽둥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마법구가 제법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을 텐데 괜히 눈이 열두 개씩 달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충 놈들의 전력을 파악했으니 근접전의 첫수는 라울에게 양보해 주었다.
라울이 가까운 몬스터 한 놈의 뒤쪽으로 빠르게 다가가자 놈의 뒤의 팔이 라울에게 거대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묵직하지만 제법 빠른 움직임.
라울은 얼른 방패를 들어 몽둥이를 막아냈다.
퍼억.
라울의 발이 돌로 된 바닥을 긁으며 뒤로 밀려났다.
라울이 밀려난 자리의 돌 바닥이 깊게 파였다.
예전 같으면 뒤로 날아갔겠지만, 그동안 힘과 내구도를 더욱 강화한 라울은 이제 이 정도는 거뜬히 버텨냈다.
라울의 창끝에 푸르스름한 빛이 모여들었다.
검기였다.
6월에 지구에 돌아와 라울에게 검기 운용 방식을 알려준 이후 두 달. 하루도 빼지 않고 꾸준히 수련한 결과 라울은 창끝에 약간의 검기를 발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테라 행성의 불사인 기사들처럼 검기를 길게 뽑아내지는 못했다.
라울은 몬스터의 또 다른 몽둥이질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해 낸 후 놈의 목덜미를 향해 빠르게 점프했다.
푸욱.
라울의 창끝이 몬스터의 두꺼운 목을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라울의 검기는 창의 공격 범위를 넓혀 주진 못했지만, 두꺼운 몬스터의 가죽을 더 쉽게 뚫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크아악!"
깊이 박혔던 창을 뽑아내자 놈의 목에서 보라색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라울은 내 쪽을 한번 바라보며 윙크를 날리더니 다음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기 위해 몸을 틀었다.
"라울! 조심해요!"
라울에게 목이 뚫린 몬스터가 보라색 피를 분수처럼 뿜으면서도 두 개의 몽둥이를 동시에 내리찍었다.
콰앙.
급히 방패를 머리 위로 든 라울이 힘겹게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묵직한 충격에 라울의 두 다리가 돌 바닥 깊숙이 박혀버렸다.
최수영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빠, 라울 안 도와줘?"
"5등급 몬스터 정도는 라울 혼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때, 왼쪽에서 다른 몬스터 하나가 네 개의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며 최수영과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나는 바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던 검을 가볍게 대각선으로 들어 올렸다.
느릿한 움직임이었지만 검에서 쏟아져나온 검기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몬스터는 순식간에 몸이 대각선으로 갈라진 채 땅에 처박혔다.
그사이 라울은 방패를 짓누르고 있는 놈의 몽둥이를 겨우 벗어났다.
그는 다시 몬스터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 내며 놈의 몸 곳곳에 창을 꽂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쿵.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몬스터는 바닥에 쓰러졌다.
라울이 내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미스터 킴, 파티원끼리 이러기예요? 왜 보고만 있어요. 무슨 테스트라도 하는 겁니까?"
"하하하, 테스트라뇨. 라울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잠깐 보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라울도 정말 그동안 노력 많이 하셨네요."
"하하하, 그래 보입니까? 미스터 킴 없는 동안 저도 놀고 있던 건 아니니까요. 강화 상품도 많이 샀고. 저도 예전의 그 라울이 아니란 말입… 어?"
그제야 라울은 우리 쪽에 몸이 반으로 갈린 몬스터가 여럿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아니 언제?"
네 개의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이 몬스터들은 다행히 협동이라는 걸 할 줄 몰랐다.
아마도 몽둥이를 아무렇게나 휘둘러대는 동족의 옆에 갔다가는 자신도 저 몽둥이에 얻어맞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라울이 몬스터 한 놈과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근처의 다른 몬스터들은 차례로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고, 다가오는 족족 모두 반 토막이 나버렸다.
"자, 우리 셋은 혼자서도 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제 흩어지죠. 힘들어 보이는 파티를 찾아서 도와주세요. 저도 돌아다니면서 놈들을 처리할게요."
"각자요? 미스터 킴은 당연히 괜찮겠지만, 수영은요? 혼자는 위험하지 않아요?"
그때 최수영이 시위에 화살을 하나 메긴 후 화살촉에 마나를 실었다.
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멀리 있는 몬스터 한 놈의 머리를 정확히 뚫고 지나갔다.
얇은 화살이 지나갔을 뿐인데 놈의 머리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풀썩.
몬스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최수영이 라울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하하핫. 라울, 저도 뭐 놀다 온 건 아니라고요."
"아……. 네, 그렇죠. 두 분, 도대체 무슨 일을 겪고 온 거예요. 알겠습니다. 흩어지죠! 저는 저쪽 디펜서들을 돕겠습니다!"
우리 셋은 각자 흩어져 힘들어 보이는 디펜서 파티를 도와 몬스터들을 해치워 나갔다.
* * *
그날 저녁.
발롱 데조프 항구 근처 레스토랑.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인 부야베스와 각종 해산물 요리들이 식탁 위에 놓였다.
나는 최수영과 라울에게 부야베스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부야베스가 원래 이곳 마르세유 뱃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팔다 남은 생선 조각들을 넣고 끓여 먹던 수프였대."
부야베스의 진한 국물을 한 입 떠먹던 최수영이 내 설명에 놀라며 물었다.
"그래? 그런데 이건 왜 이렇게 비싸?"
"뭐, 여기가 관광지이기도 하고. 이건 딱 봐도 팔다 남은 생선 조각들이 들어간 게 아니잖아? 귀한 해산물은 전부 집어넣은 거 같은데. 육수도 콩소메를 썼을걸?"
"그래서 맛있구나. 맛있긴 하다."
부야베스 속 모시조개를 건져 알맹이를 쏙 빼먹은 라울이 물었다.
"그런데 미스터 킴. 행성 049, 아니 그 무림 사람들을 좀 안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뭐. 블랙 게이트를 찾으러 워낙 싸돌아다니다 보니 많은 무림인을 만났죠."
"이번에 러시아에 쳐들어온 그 무림인들 말이에요. 뉴스에서 보니 전투기도 떨어뜨렸다는데요? 그게 가능한가요?"
"사실 저도 궁금하긴 해요. 도대체 누가 왔길래 러시아 군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건지. 무림인이라고 다 그 정도 힘을 가진 건 아니라서요. 물론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무림인도 있긴 하죠."
무언가를 떠올리듯 잠시 왼쪽 위를 바라보던 라울이 다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 천마인가 하는 그 무림인 말인가요? 미스터 킴은 그 천마랑 싸워봤다고 하지 않았어요?"
"잠깐 붙어봤죠."
"누가 이겼어요?"
"우리는 기운을 두어 번 맞대보고 바로 알았죠."
"뭐를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라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러다 천산이 통째로 날아가겠구나……."
그때 옆에서 게살을 발라내던 최수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웃겨, 아주. 남자들이란."
"뭐, 뭐가?"
"그냥 둘 다 지기 싫었던 거잖아. 천마는 부하들 앞에서. 오빠는 큰소리쳐 놨던 곤륜파 장로들 앞에서. 하여간 남자들이란."
"진짜 천산이 다 부서질까 봐 멈춘 거라니까?"
"네. 알았네요. 대단하십니다요."
"수영이 너!"
나와 수영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 있던 라울이 다시 물었다.
"어쨌든 대충 비겼다는 거고. 그럼 미스터 킴도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어요?"
손사래를 치며 뭐라 대답하려는데 최수영이 먼저 나섰다.
"천마 그 할배나 우리 오빠나 둘 다 유치한 건 똑같긴 한데. 아마 둘이 손잡으면 러시아 전투기 몇 대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 항공모함이랑 붙어도 문제없을걸요?"
"뭐야? 수영이 너 지금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거야?"
"왜? 내가 둘 다 웃긴다고 했지 언제 약하다고 했어?"
라울이 갑자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미스터 킴이 돌아올 땐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예 쳐다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군요."
"하하하. 그게 뭐가 중요해요. 라울, 다시 이렇게 만나서 같이 훈련도 하고 밥도 먹고 하잖아요."
"그렇죠. 미스터 킴 말이 맞아요. 그거면 됐죠, 뭐. 하하하. 그런데 러시아는 안 가보실 생각이세요?"
"우리 회사랑 계약한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의 동맹국도 아니고. 딱히 가볼 명분이 없네요? 뭐 누가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지 궁금하긴 한데 직접 찾아갈 만큼 궁금한 건 또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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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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