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 *
메타디펜스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류미연 주임은 요즘 부쩍 더 바빠진 걸 느꼈다.
예전엔 거대한 본사 규모에 비해 방문자가 참 적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기자들과 정부 관료들이 다였으니까.
'그땐 참 편했었는데.'
하지만 김수호 대표가 돌아온 뒤로부터는 마법진 설치인가 하는 일로 각 나라 외교관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최근엔 본사 건물 내에 메타트레이딩이라는 자회사가 생기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했다.
예전에 비해 업무는 많아졌지만, 얼마 전 받은 특별 성과급 5억 원을 생각하면 아직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서 오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류미연 주임은 회전문을 열고 데스크를 향해 걸어오는 사내를 향해 밝게 인사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멀리서 볼 땐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는데, 가까이 오니 초점 없는 눈빛에 셔츠는 땀인지 침인지로 다 젖어 있었다.
아직도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 사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수호 대표 만나러 왔다."
류미연은 성과급으로 마련한 인천 시내 신축 아파트를 생각하며 애써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으신가요? 성함을 말씀해 주시면 비서실과 연락해 보겠습니다."
"나는, 박영식이다. 김수호 만나러 왔다."
말투도 이상했다. 외국인 같지도 않은데 발음이 온통 뭉개져서 알아듣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류미연은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경호실 직원들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류미연의 신호를 알아챈 경호원들이 안내 데스크를 향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미리 약속되어 있지 않으시면 대표님께 안내해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약속 잡으시……."
쾅!
박영식이 안내 데스크를 내리쳤다.
굉음과 함께 대리석으로 만든 안내 데스크가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꺅!"
류미연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고, 가까이 접근한 경호원들이 다급히 박영식을 붙들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건장한 경호원 둘이 양팔을 붙들었으나 박영식은 차례로 한 명씩 저 멀리 집어 던져 버렸다.
"아, 맞다. 마물… 팬던트……."
경호원들을 날려버린 박영식이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다가 귀마왕이 준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으흐흐… 김수호. 넌 오늘 끝이다."
박영식이 펜던트를 반으로 툭 쪼갰다.
"으흐흐흐."
* * *
천마신교 게스트하우스.
"응?"
"왜 그러십니까, 교주님?"
"갑자기 마기(魔氣)가 나타났다. 김수호 놈 회사 쪽인데?"
천마 옆에 앉아 단전호흡 중이던 만근염왕 이두복이 깜짝 놀라 물었다.
"마기요?"
"그래. 너는 느껴지지 않는 게냐, 이 마기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마기로구나."
만근염왕 이두복이 마기를 느끼기 위해 신경을 집중시키는 동안, 흡영흡수 구종석이 입을 열었다.
"…느껴집니다. 마기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혈교 놈들과 싸울 때 느껴졌던 그 마기랑은 완전히 다릅니다."
천보익비 제갈평이 물었다.
"저도 미약하게 느껴집니다. 교주님, 제가 한번 빠르게 다녀올까요?"
"아니다. 지금 느껴지는 마기의 움직임이 마치 그 색목인 마법사가 워프 마법진을 만들 때 느껴지던 기의 틀어짐과 유사하다."
물론 다른 장로들은 천마만큼 세밀하게 마기의 움직임을 감지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천마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었다.
추멸염화 장희철이 말했다.
"마귀들이 지금 무슨 술법을 부리고 있는 게 틀림없군요. 저도 가보겠습니다! 야, 이두복이. 너도 같이 가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가봐야지. 김수호가 주는 음식을 그렇게 처먹었으면 말이야."
"뭐, 인마? 너 지금……."
만근염왕 이두복이 장희철에게 뭐라 소리치려는 순간, 천마가 이두복의 말을 끊었다.
"예사롭지 않다. 다 같이 가자. 김수호, 이 의뭉스러운 놈.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우릴 그렇게 극진히 대접했군."
* * *
메타디펜스 트레이닝 센터.
"수영, 미스터 킴이 그 무림인들을 그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게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요?"
"수호 씨 말로는 그렇대요. 천마 할배는 은원에 확실한 사람이니까."
최수영의 대답에 라울이 의문을 표했다.
"천마가 은원에 확실하다는 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수영도 알잖아요. 이 건물 방어 시스템이 얼마나 철저한지. 강화도에 핵이 떨어져도 끄떡없을걸요? 미스터 팍 사건 이후로 인근 주민들을 본사 건물로 대피시킬 수 있는 지하 통로도 만들어졌고."
"그건 그렇죠. 하지만 여러 행성을 다니다 보니 참 별 희한한 놈들이 많더라고요."
그제야 라울의 표정도 조금은 심각해졌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행성 094의 그 마물인가 하는 놈들 중엔 공간 이동을 하는 놈들도 있다면서요?"
"그렇더라니까요. 그리고 사실 오빠가 천마 할배 꽤 좋아해요. 천마 할배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하하핫."
그때였다.
"하아악."
최수영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있던 꽝이가 갑자기 건물 남쪽을 향해 하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응? 꽝이야 왜 그래? 저쪽에 누가 있어?"
"하아악."
라울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건 적이 나타났을 때나 하는 하악질이잖아요? 여긴 본사 안인데 여기 갑자기 무슨 적이 있다는 거지? 꽝이 고장 났나?"
"고장이라니요! 우리 귀여운 꽝이한테. 그런데 꽝이 진짜 왜 그래? 라울, 가볼까요?"
"네, 그러죠."
삐이. 삐. 삐이. 삐.
스피커에서 나오는 경보음을 들은 라울과 최수영이 깜짝 놀라 서로를 마주 보았다.
메타디펜스 건물의 최고등급 경보 소리였다.
"이게 무슨? 외벽 방어 시스템이 작동된다는 2단계 경보도 없었는데? 갑자기 4단계 경보음이라니?"
"가만, 4단계면? 건물이 완전히 뚫렸을 때 나는 경보잖아요!"
최수영이 급히 이어폰을 켜서 전략기획실을 연결했다.
"이 실장님! 무슨 일인가요? 건물이 뚫렸다는 거예요?"
- 로비에 게이트가 나타났어요!
"네? 게이트요?"
- 아, 그 게이트는 아니고. 저걸 뭐라고 해야 하지? 싱크홀인가? 지옥문? 어쨌든 로비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니 행성 094의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최수영은 이 정도까지 당황하고 횡설수설하는 이혁진 실장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이거 뭐, 외벽 방어 시스템을 가동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이 분명했다.
"대표님에게 연락했어요?"
- 그게, 연락이 안 됩니다! 해병대에도 지원 요청을 하려고 해봤는데 지금 외부와 완전히 통신 두절이에요! 마물들이 무슨 수를 쓴 것 같아요!
이 와중에 호주에 가 있는 김수호에게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니. 최수영의 마음에 그제야 불안의 묵빛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라울! 어서 로비로 가요! 마물이 나타났대요!"
"그래요! 수영."
이어폰으로는 다급한 이혁진 실장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아무래도 본사를 노리고 들어온 것 같습니다! 직원들을 모두 건물 밖으로 피신시키겠습니다!
최수영이 얼른 대답했다.
"어서 대피시키세요!"
라울이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후 트레이닝 센터 전체에 들릴 만한 큰 소리로 외쳤다.
"디펜서 전원! 무기 챙기고 로비로 집결!"
라울과 최수영을 선두로 메타디펜스의 디펜서 1, 3팀이 모두 로비로 내려왔다.
메타디펜스 본사의 널찍한 로비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닥치는 대로 직원들을 해치고 건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소름 돋는 건 로비 바닥에 뚫린 거대한 구멍이었다.
지금도 그곳에서 마물들이 계속 기어 나오고 있었다.
라울이 다급히 외쳤다.
"전원 공격! 저 구멍에서 마물이 더 튀어나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제압한다!"
단순했지만, 지금 쓸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었다.
이미 나와 있는 마물들을 빠르게 해치우고 구멍을 점거해 놈들이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라울이 방패를 앞세워 먼저 돌진했다.
마물들도 디펜서들을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오싹하게 생긴 놈들이었다.
가장 앞선 마물이 긴 팔을 라울 쪽으로 내뻗었다.
콰과과!
마물의 손에서 마기가 쏟아져나왔다.
콰앙!
강렬한 기세로 뻗어오던 마기가 라울의 방패에 부딪혔다.
"크윽."
라울은 뒤로 몇 발짝이나 밀려나고 말았다.
이대로 몸을 회전시켜 마기를 흘려내면 마물에게 접근해 공격을 가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저 정면으로 기운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마물들이 내뿜는 마기.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를 괴사(壞死)시킨다.
그나마 그건 스쳤을 때의 이야기이고, 마기를 몸에 정통으로 맞으면 장기가 모두 괴사되어 즉사할 수 있다.
이 공격을 흘려보내면 아마 뒤에 있는 디펜서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라울은 힘겹게 놈의 마기를 정면으로 버텨냈다.
쉬익.
뒤편에서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최수영이 쏜 화살이었다.
펑!
마나가 실린 최수영의 화살은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마물의 양팔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수영! 고마워요!"
마기가 사라지자 라울은 그대로 몸을 날려 마물의 목에 긴 창을 꽂아 넣었다.
라울의 창끝에 서린 검기가 제법 짙어져 있었다.
양팔이 터지고 목에 창이 꽂힌 마물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마물들은 다양한 크기와 생김새처럼 공격 방식도 다양했다.
방금처럼 마기를 뿜어내는 놈이 있는 반면, 긴 팔과 손가락을 이용해 육탄전을 벌이는 놈들도 있었다.
손끝에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가 괴사되는 건 마기와 마찬가지였다.
날개 달린 놈들도 로비 위를 날아다니다가 수시로 디펜서들을 덮쳐왔다.
메타디펜스의 디펜서들은 그렇게 힘겨운 마물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잠시 후,
퍼엉!
건물 외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 최수영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천마 할아버지!"
천마와 다섯 장로가 로비로 진입하고 있었다.
일해빙장 황중로의 손이 한 번씩 뻗어 나갈 때마다 마물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흡영흑수 구종석은 흡기공으로 마물들을 한데 모았고, 추멸염화 장희철이 그 마물들에게 무자비한 지옥불을 선사했다.
천보익비 제갈평은 빠른 발놀림으로 마물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놈들의 팔과 다리를 베어버렸다.
만근염왕 이두복은 돼지 같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마물들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보낸 후 체중을 실은 강력한 장법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천마.
천마는 장로들이 싸우고 있는 마물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로비 바닥에 뚫린 구멍 속을 한참 동안 노려보고 서 있었다.
로비 우측에선 이제 제법 마물들과의 싸움에 익숙해진 디펜서들이 조금씩 밀고 들어오고 있었고, 좌측에선 천마신교의 다섯 장로들이 마물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라울이 소리쳤다.
"조금만 더! 저 구멍을 점거해야 한다! 그 뒤론 기어 올라오는 놈들 대가리만 깨면 된다!"
그때.
로비 바닥에 난 구멍에서 짙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물 한 마리가 천천히 떠올랐다.
놈의 머리엔 세 개의 커다란 뿔이 달려있었다.
마물들의 왕, 귀마왕이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천마의 시선은 곧장 귀마왕에게 고정되었다.
귀마왕의 뻥 뚫린 눈 역시 천마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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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63,491개]
[단가 64억 원]
[평가 금액 406조 3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