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 * *
마그네타 검에 내력과 마나를 동시에 주입하면 나오는 가공할 검은 기운.
천마와의 대결 이후, 이 정도 무공에 이름이 없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천마신교의 장로들이 뜻을 모아 내 검은 기운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대천흑룡(對天黑龍).
'천마에게 대적할 만한 검은 용'이라는 의미.
당연히 천마는 처음엔 이 무공 이름을 탐탁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파천마공에 겨우 대적만 해볼 수 있다는 뜻일 뿐. 이토록 강대한 무공의 이름이 이곳저곳에서 쓰일수록 교주님의 만인지상의 위엄은 더 널리 퍼지는 것이옵니다.'라는 추멸염화 장희철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런 유치한 무공명을 사용할 생각도 없었는데,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쳐서 결국 내 검은 기운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콰아앙!
천마가 뿔 셋 달린 마물에게 밀리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전력을 다해 날린 대천흑룡이 마물의 옆구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천마와의 대결에 모든 마기를 쏟아붓던 마물은 대천흑룡에 맞아 그대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천마가 화가 난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에휴, 천마 할배한테 또 잔소리 좀 듣겠네.
분명 천마는 오늘 일을 가지고 두고두고 잔소리해 댈 것이다. 하지만 그 잔소리를 안 듣겠다고 천마를 죽게 놔둘 순 없었다.
나는 일부러 천마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고, 손이 미끄러졌네!"
당연히 헛소리다. 대충 눈감고 휘둘러도 검은 기운은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가 공격한다.
하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대답할 변명거리를 만들어둬야 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게 무림인들의 방식이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디펜서들이 마물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급히 디펜서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활은 아예 내팽개치고 디펜서들을 치료해 주고 있는 최수영의 모습이 보였다.
얼른 몸을 날려 최수영에게 다가갔다.
"수영아! 괜찮아?"
나를 바라보는 최수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왜 이제 와! 나 얼마나 힘들었는데!"
"미안해, 통신이 끊겨서. 그래도 마물이 쳐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넘어온 거야. 진짜 많이도 쳐들어왔네."
귀마왕을 한 방에 날려버린 걸 본 건지 마물들이 내 주변으로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었다.
"수영아, 라울이랑 레온이 챙겨서 뒤로 좀 빠져 있어. 힘들겠지만 아직 치료 못한 디펜서들도 조금만 더 챙겨주고."
"응, 알았어. 그래도 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 진짜 다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내가 고마워. 수영이 네가 우리 사람들을 잘 지켜줬네."
"칫."
"자, 모두 부상자 챙겨서 뒤로 빠지세요!"
나는 마물들이 있는 곳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고, 디펜서들은 부상자들을 부축하며 내 뒤로 모두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실장님, 들립니까?"
- 네, 대표님! 들립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방어 시스템도 작동을 안 한 것 같은데?"
- 로비 내부에서부터 침입해왔습니다.
"이놈들이 로비를 어떻게 들어와요?"
- CCTV 돌려봤는데, 대성 그룹 박영식 사장이 로비로 들어온 후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습니다.
박영식 이놈이 기어이.
"알겠습니다. 자, 채굴 시작합니다."
- 네! 대표님!
죽은 마물이 백여 마리, 남은 마물은 이백여 마리.
나는 마그네타 검에 천천히 내력을 주입했다.
촤악.
우선 하늘에 있는 놈들부터.
오랜만에 마그네타 검의 흑무(黑舞)가 시작되었다.
나와 다섯 장로의 공격에 의해 마물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천마는 아까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자세는 운기조식이었지만, 두 눈은 조금 전 내 공격에 맞고 날아간 마물이 있는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마물 몇 마리가 저 멀리 숲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뿔 달린 마물이 날아간 방향이었다.
급히 검을 놀려 날아가는 놈들을 베어버렸는데, 몸이 잘린 채로도 여전히 숲으로 빨려 들어갔다.
흡영흑수 구종석이 소리쳤다.
"김수호, 저건 귀마왕이란 자가 부리는 일종의 흡마공이다! 부하들을 흡수해 힘을 키우더군."
나는 놈이 더 힘을 키우기 전에 숲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만."
어느새 일어난 천마가 내 앞을 막아 세웠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마라. 내가 처리한다."
"천마 할배, 할배도 아직 내력 회복이 다 안 됐잖아요. 저놈이 다시 회복하기 전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더 이상 간섭하면 너도 죽인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천마의 두 눈에서 살벌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나이를 200살 가깝게 먹었으면 뭐 하나, 아직도 이렇게 어린애 같은걸.
나는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보는 내 동공을 뚫어버릴 듯 뻗어 나오던 살기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천마는 뒤를 돌아 귀마왕이 있는 숲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숲에서 날카로운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천마 할배! 피해요!"
나는 얼른 왼손으로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으아아!"
하지만 천마는 크게 고함을 내뱉으며 쏟아져 오는 마기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옷이 다 찢어지고 살에서 피가 튀었지만 천마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이 마귀 새끼! 내가 오늘 네놈을 반드시 찢어 죽인다!"
그때, 귀마왕이 숲 위로 날아올랐다.
귀마왕의 모습을 발견한 천마의 손에서 여러 개의 궐천마탄이 쏘아져 나갔다.
스륵.
하지만 귀마왕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애꿎은 탄지공들만 하늘 높이 뻗어 나갔다.
사라졌던 귀마왕의 기운이 다시 뒤쪽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마물들이 있는 곳 한가운데 귀마왕이 나타나 있었다.
"대단하군.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다니. 다시 보자, 인간들. 다음번에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우웅.
귀마왕과 마물들의 머리 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공간에 생겨난 구멍은 그대로 지상으로 내리꽂히며 마물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렇게 순식간에 놈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 * *
미처 귀마왕의 차원 이동 구멍에 들어가지 못한 마물들을 모두 처리한 후, 전략기획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실장님."
"대표님 오셨습니까."
"마물들 침입 당시 CCTV 좀 보여주세요."
모니터에 당시 로비 상황이 재생되었다.
"여기서 스톱. 같은 시간 건물 앞 도로 CCTV요."
"이 난리통을 만들고는 택시 타고 빠져나갔네요."
"개자식. 이 실장님, 이 영상 법무팀에 넘기고 강경하게 대응 준비하라고 하세요."
이혁진 실장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눈치 빠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행성 여행 후 달라진 내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다른 방법으로 복수할 거라고 예상했겠지.
"법적으로 처리하실 계획이십니까?"
"아니요. 이제 내가 저지를 짓을 무마하기 위해서예요. 법무팀장에게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도 미리 기별 넣으라고 하세요."
"네, 대표님. 법무팀에 바로 영상 자료 넘기겠습니다."
디펜서가 아닌 일반 직원들을 포함한 사망자 스물한 명.
나는 그대로 차를 몰고 성북동을 향했다.
* * *
성북동, 박영식의 저택.
차에서 내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CCTV만 수십 대.
콩알만 한 마법구 수십 개를 만들어 눈에 띄는 CCTV에 모두 쏘아 보냈다.
퍽, 퍽.
사방에서 카메라 렌즈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완전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여기까지 오는 장면도 많이 찍혔을 것이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CCTV도 여러 대 있을 것이다.
복면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이런 부촌(富村)에서 완전범죄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이 일을 무마시켜줄 수사 기관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것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박영식의 저택 마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다란 2층 창문 너머 거구의 그림자가 보였다.
박영식이었다.
그대로 점프해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저택 전체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흐억! 기, 김수호!"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박영식은 기괴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위스키 잔을 들고 있던 박영식이 나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박영식. 네가 기어이."
"저, 저리 가!"
한 발 한 발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쨍그랑.
박영식이 놓친 위스키 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그 마물들은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그놈들 본거지가 어디지?"
"나, 나도 몰라!"
"됐다. 네놈에게 뭘 바라겠냐. 내가 차차 알아봐야지."
스릉.
마그네타 검을 천천히 빼 들었다.
박영식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를 딱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으니 길게 대화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겠구나."
푸욱.
마그네타 검이 놈의 복부를 천천히, 그리고 깊이 찌르고 들어갔다.
"크헉."
"대성 그룹부터 없애버리고 널 손봐주려고 했었는데.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야."
꺽꺽거리며 침과 피를 함께 내뿜는 박영식의 호흡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툭.
놈의 고개가 힘없이 앞으로 꺾였다.
* * *
다음날, 천마신교 게스트하우스.
"천마 할배, 정말 손이 미끄러졌다니까요. 당연히 할배가 이길 걸 뻔히 아는데 제가 왜 도와드려요."
"헛소리 말아라.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했다간 네놈 목부터 따버리겠다."
아무 의미 없는 대화.
당연히 천마는 내 손이 미끄러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도 천마가 내 목을 따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자존심을 지켜보기 위한 몸부림.
조금은 특이한 무림인들의 대화법이었다.
"안 그래요, 장로님들? 교주님이 그깟 마물한테 밀리겠어요?"
막내 장로 천보익비 제갈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교주님이 그깟 마물에게 지실 리 없지!"
"암, 물론이고말고. 혹시라도 지실 것 같았으면 우리가 먼저 도왔지."
"당연하지."
장로들은 앞다투어 한마디씩 보탰다.
천마가 근엄하게 말했다.
"어쨌든 다시는, 끼어들지 말거라. 귀마왕이라는 그 마귀 놈과 마티아스라는 강철 인간은 내가 반드시 죽인다."
"네, 그러세요. 그러려면 지구에 좀 더 머무셔야겠네요?"
"그래. 네놈 본거지에서 신세 좀 더 지자. 마귀 놈도 이리로 다시 쳐들어올 것 같으니."
천마와 장로들이 없었다면 이번 마물 침략 때 메타디펜스는 완전히 함락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네, 그러세요. 여긴 얼마든지 계셔도 돼요. 천마 할배가 안 계셨으면 이번에 정말 큰일 날뻔했어요. 감사합니다."
지는 건 그렇게 싫어하면서 또 감사하다는 말에는 익숙지 않은지 천마가 급히 말을 돌렸다.
"황중로, 구종석."
천마가 일해빙장 황중로와 흡영흑수 구종석을 불렀다.
"너희 둘은 게이트를 넘어가 천마신교로 돌아가라. 가서 내가 늦을 수도 있다고 전하고, 부교주에게 나 없는 동안 얌전히 천마신교를 잘 관리하고 있으라고 전해라. 정파 놈들과도 되도록 부딪치지 말고, 각자 수련에 매진하라고 해라."
"존명."
"존명."
평소에는 격이 없이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 장로들이었지만, 천마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일해빙장 황중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정파 놈들과는 왜 부딪치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이빨이 다 빠진 호랑이를 사냥해서 무엇하겠느냐. 그리고 어제 보니 지금 정파 놈들과 투닥거리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돌아가는 대로 무림을 하나로 묶어 다른 행성에 대항할 힘을 키울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드디어 정파와의 대전을 벌이실 계획이십니까?"
"그건 그때 봐서. 어쨌든 무림을 하나로 묶긴 할 생각이다."
어제 사건 이후 천마가 확실히 달라졌다.
장로들은 천마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천마가 무림에 돌아가 정파와의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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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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