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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87화 (87/200)

87화

【 세계 헌터 만찬 모임 】

"잠시 산책 좀 하지."

천마가 나에게 산책을 권유했다.

나는 꽝이를 어깨에 태우고 천마와 함께 게스트하우스 뒷산을 천천히 올랐다.

"그 얘기 좀 자세히 해보거라, 김수호."

"어떤 얘기요?"

"지구인들을 위해 다른 행성에 재외 공관인가 뭔가를 설치하겠다며."

"아, 그거요. 진행 여부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고요. 아직은 저 혼자의 생각이에요. 어제 쳐들어온 마물들 보셨죠?"

"잘 봤지."

"놈들이 이리로 넘어오는 건 어찌어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구에 블랙 게이트가 생겨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구할 방법이 없어요."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들도 이미 그 검은 게이트에 많이 휘말렸다. 지금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

"맞아요. 지금 서로 게이트로 연결된 행성이 총 여섯 개 거든요?"

"그래. 그건 네놈이 며칠 전에 얘기해 주지 않았느냐."

"그래서 다섯 개의 행성에 대피소 기능을 겸할 수 있는 재외 공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구인이라면 누구든 찾아갈 수 있는 안전 자치구요."

걸음을 멈춰선 천마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특하구나. 네가 나보다 낫다. 지구에서 너의 위치는 어느 정도지?"

"지구에서요? 말씀드렸다시피 지구는 정말 커요. 저는 뭐 작은 나라에 사는 기업가일 뿐이에요."

"거짓말 말아라.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긴 무림처럼 힘세다고 대우해 주는 그런 곳은 아니라서요. 뭐, 조금 대우를 받고 있긴 한가? 아무튼 무림이랑은 달라요."

"네놈이 주도적으로 그 안전 자치구를 만들겠다고 하면, 나와 장로들도 협력하겠다."

순간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협력? 천마신교가?

"네?"

"무림과 지구가 공동으로 사용할 자치구를 만들면 다섯 개가 아니라 네 개만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죠. 지구와 무림은 서로 넘어온 사람들을 받아주면 되니까요."

"귀마왕 놈과 마티아스 놈을 없애버리고 난 후 시작하자. 네놈하고 같이 다른 행성을 다니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뭔가 많이 달라지셨네요? 천마신교의 만인지상 교주님께서 다른 행성과 협력을 하신다니요."

"어제 나타난 그 마귀 놈을 너도 보지 않았느냐.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 그런 놈이 있는 곳에 갑자기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있는 무림인이 몇이나 되겠느냐."

귀마왕의 힘에 충격을 받긴 한 모양이다.

"그렇긴 한데 천마 할배가 다른 무림인을 챙기다니, 생소해서요."

"우리끼리 티격태격할 때나 정파니 마교니 하는 거지.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 다른 행성 놈들이 침략해 오는 판국에."

"좀 달라 보여요. 천마."

"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어디, 다른 행성엔 어제 그 귀마왕만큼 강한 놈들이 많이 있는 게냐?"

"저도 그 마물들의 왕이 있다는 얘기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에요. 천마 할배 보다도 더 강할……."

아차.

"…수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어쨌든 꽤 강한 놈이더라고요."

치켜 올라가려던 천마의 눈썹이 겨우 진정되었다.

잠시 천마의 눈치를 본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뭐 다 만나보고 온 건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천마 할배 말고는 귀마왕만큼 강한 상대를 만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

"네. 그런데 행성 087에는 정말 신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신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반신(半神)은 만나봤거든요."

"반신이 무어냐?"

"반은 신, 반은 인간이요. 일종의 혼혈아 같은 존재랄까요?"

"그럼 그곳의 신은 신선(神仙) 같은 자들을 말하는 거냐?"

"아니요, 좀 달라요. 정말 있다면, 그 행성에선 태초부터 신이었던 존재일 거예요. 제우스나 하데스 같은."

"태초의 존재라……."

"어찌 생각하면 어제 만난 귀마왕도 태초부터 있었던 일종의 신(新)이겠죠 뭐. 어쨌든 귀마왕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끌끌끌. 재미있겠군."

허공을 바라보는 천마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 나는 천마의 의중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무림에서의 만인지상의 위치는 이미 지루해졌을 테고, 어제 귀마왕과 힘을 겨뤄보고는 큰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보니 재외 공관이니 동맹이니 하는 건 명분에 불과한 것 같았다.

천마신교를 내팽개치고 행성 여행을 다니며 강자들을 상대할 명분.

* * *

다음날, 메타디펜스 대표실.

이번 사태 피해 현황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비서실 직원이 서류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UN 지구방위위원회에서 초대장이 왔습니다."

"초대장이요?"

비서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펼쳐보았다.

영어로 온 메일 원본에 한 줄씩 한글 번역을 삽입해 만든 서류였다.

"세계 헌터 만찬 모임?"

"네. 보시는 대로 각국의 대표 헌터들이 모여 만찬을 나누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헌터라, 우리나라에서만 디펜서라는 용어를 쓴다고 했었지. 그런데 일정에 무슨 공연도 있고 그렇네요?"

"네. 전화로도 연락받았는데, 공식적인 회의 같은 걸 하자는 취지가 아니니 파티에 오신다 생각하시고 부담 없이 참가해 주시라고 합니다."

"각국의 대표 헌터들이 모이는 자리라니, 한번 가봐야겠군요. 맨하탄 그랜드 화이트 호텔. 다음 주네요?"

"네, 대표님. 그럼 출장 준비하겠습니다."

비서와의 대화를 마치고 간단히 오전 업무를 본 후 기술개발실을 찾았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황동민 개발실장이 피크닉 돗자리같이 생긴 걸 접으며 나를 반겼다.

"부탁드린 물건이 혹시 그 돗자리인가요?"

"돗자리요? 하하하. 네, 맞습니다, 대표님. 전투 수트와 마찬가지로 스테인리스 와이어에 고강력 폴리에틸렌사를 피복한 섬유로 만들었습니다. 마력석도 박아 넣었고요."

황 실장이 돗자리를 다시 펼쳐 보여주었다.

사람 대여섯 명이 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돗자리에는 레온의 워프 마법진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레온 본부장님 말에 의하면 본사 워프실과 바로 연결된 마법진입니다. 대표님도 그 마법이라는 걸 쓰실 수 있다고 하셨으니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바로 본사로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콘크리트 블록 때랑은 다르게 휴대용으로 만들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나는 마법진 돗자리를 접는 선에 따라 네 번 접은 후 돌돌 말아 정령의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은 마법 본부로 향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쪽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여섯 명의 디펜서들이 레온의 감독하에 손끝에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모여드는 마나의 양을 보니 두 명의 실력이 발군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레온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수호 형! 아니, 대표님!"

마나를 모으는 훈련을 하던 디펜서들도 나를 돌아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애써 모은 마나가 다 흐트러졌네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하세요."

"네!"

"레온아, 본부장실에서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대표님."

본부장실에 들어가자 레온이 다시 살갑게 형이라고 불렀다.

"수호 형, 무슨 일이에요?"

"아, 훈련은 잘돼 가고 있나 해서 들렀지."

레온이 갑자기 풀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빨리 전력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한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뭘 또 풀이 죽고 그래. 테라 행성 마법 아카데미에선 뭐 몇 달 만에 마법을 쓰고 그러냐? 거기서도 평생을 연마해도 마법 못 쓰는 사람이 허다하다며."

"그건 그렇죠."

"민지훈 씨랑 유민철 씨가 좀 속도가 붙네?"

레온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조금 전에 마나 모으는 거 보니 다르던데 뭐."

"네, 맞아요. 그 두 분이 마나 친화력도 높은데 또 그만큼 이해력도 좋아요."

"그 둘을 파트장으로 하고, 세 명씩 두 파트로 나눠서 훈련 시켜. 서로 경쟁하게 하고."

"오, 그럼 더 동기부여가 되겠네요! 역시 수호 형."

"그리고 나 그것 좀 다시 한번 가르쳐줘. 워프 마법. 항상 레온이 네가 같이 있어서 워프 마법엔 소홀했네."

"워프 마법이요? 마법진 그리는 거 너무 복잡하다고 그냥 안 배우신다면서요."

나는 주머니에서 새로 개발한 워프 돗자리를 꺼내 바닥에 펼쳐보았다.

"마법진은 레온이 네가 그려줬잖아. 가동법만 다시 한번 알려줘. 다 잊어버렸어."

"와, 진짜 지구의 기술력은 대단해요. 이 천이 워프 마법을 버틴다는 거죠? 들고 다닐 수 있는 마법진이라니."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기술력이 대단하면 뭐 해, 대마법사 레온 님이 없으면 이런 건 만들지도 못하는데."

대마법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레온이 귀까지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아! 형! 자꾸 대마법사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제가 무슨 대마법사예요."

"테라 행성에선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마법사를 대마법사라고 한다며. 넌 지금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마법사잖아."

"그야 여긴 마법사가 없으니까 그렇죠. 저는 그런 칭호를 얻기엔 한참 멀었어요."

"마법 본부 디펜서들 가르치는 일 외에도 밤에 잠도 안 자고 마법 연구 하고 있는 거 다 알아. 지금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곧 시엠브레의 그 대마법사라는 놈보다 네가 훨씬 훌륭해질 거야."

"헤엑, 대마법사 사무엘이요? 그 사람은 천 년 동안 마법을 연구했어요! 제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 * *

같은 시각. 테라 행성 시엠브레 제국 마법사의 탑.

"사무엘 대마법사님, 가엘입니다."

제1 기사단장 가엘이 응접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얼마 전 새로 건축이 완료된 마법사의 탑은 예전에 비해서는 작아졌지만, 더욱 튼튼하고 폐쇄적으로 지어졌다.

2년 4개월 전 큐브 파괴 사건 당시 마법사의 탑에 있던 많은 마법사들이 블랙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 돌아오지 못했다.

때문에 시엠브레 제국 내 마법사의 수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마법사의 탑도 전보다 작게 지어졌다.

대마법사 사무엘이 답했다.

"들어오시게."

가엘이 성큼성큼 들어와 사무엘 맞은 편에 앉았다.

일반인 시종이 자신의 머리통만 한 찻잔을 가지고 들어와 제 키보다 높은 티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마법사의 탑은 작아졌지만 내부의 화려함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욱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비록 큐브 파괴 사건으로 마법사를 많이 잃긴 했으나, 대마법사 사무엘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시엠브레를 있게 한 장본인이자, 여전히 이 제국의 실세였다.

무(武)에 미친 황제 마티아스가 근위대를 모두 데리고 다른 세계의 강자를 찾아 떠난 지 반년. 사무엘은 자신의 측근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한 후, 여전히 시엠브레 제국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가엘에게 차를 권한 후 고급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신 사무엘이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숲 복원을 위한 몬스터 토벌 작전에 대해 여쭐 게 있습니다."

"또 쿠라타니 후지로, 그자에 관한 이야기겠군."

"맞습니다."

"여전히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쉽게 항복을 받아내고 끝낼 수 있었던 몬테넬과 라트니아의 전쟁을 대학살극으로 몰고 간 장본인입니다."

"어쨌든 몬테넬과 우리 시엠브레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지 않았는가. 덕분에 숲 복원 마법도 손쉽게 손에 얻었고."

가엘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되었다.

"그 지구인 놈이 우리 행성 사람을 사냥해 점점 강해졌다는 걸 대마법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고말고. 하지만 전쟁 이후 그 조그만 기계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강해지지 못한다고 했잖은가. 가엘 자네도 그자의 기운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 걸 느끼고 있을 테고."

후지로는 몬테넬과 라트니아의 전쟁이 끝났을 무렵 놀랄 만큼 기운이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구에서 가져왔다는 휴대폰이라는 기계의 수명이 다한 뒤로, 더 이상 그의 기운은 커지지 않았다.

이는 후지로를 항상 예의주시했던 가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놈이 소수 병력만 데리고 굳이 몬스터 토벌 작전에 두 발 벗고 나서는 게 저는 영 찝찝합니다."

"모두가 꺼리는 몬스터 토벌 작전에 스스로 나서주니 일을 맡겼던 것뿐일세. 가엘 자네가 이렇게 찾아와서까지 얘기하니, 숲 토벌 작전에서 후지로를 빼도록 하겠네."

"제 마음을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지구를 칠 방법도, 이유도 없는 지금. 후지로 그자를 계속 키워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 *

10월 16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63,911개]

[단가 64억 원]

[평가 금액 409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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