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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88화 (88/200)

88화

* * *

세계 헌터 만찬 모임이 열리는 맨해튼이 있는 뉴욕주는 메타디펜스와 채굴 협약을 맺은 곳이 아니었다.

때문에 우리는 뉴욕 북동쪽에 있는 버몬트주로 워프한 후 다시 비행기로 뉴욕으로 이동했다.

"경공술도 없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니. 대단하구나."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천마는 워프 마법진을 처음 이용했을 때보다 더 놀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는 지구와 무림이 동맹을 맺을 수도 있으니 지구의 지도자들을 만나봐야겠다며 나와 최수영의 여행길에 따라붙었다.

지도자가 아니라 그냥 코인으로 강해진 헌터들일 뿐이라고 몇 번을 설명해 줘도 소용없었다.

역시 동맹은 핑계일 뿐, 그저 강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비행기가 JFK공항에 가까워졌다.

"한국에서 한 약속 기억하시죠? 절대 싸우거나, 무공을 겨뤄보거나 하는 건 안 됩니다."

"거참, 알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랜드 화이트 호텔의 뱅큇홀(Banquet Hall)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나의 흐름을 파악해 홀 안의 사람들의 기운을 살펴보았다.

천마 역시 가만히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보니,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최수영은 호텔 장식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새에 관심을 보였다.

조용해진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최수영은 사람들의 기운을 읽느라 바쁜 나와 천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남자들이란. 만찬 모임이라잖아요. 서로 인사하고, 맛있는 거 먹고, 친해지면 되는 그런 모임이요."

그제야 천마와 나는 기감을 거둬들였다.

"크흠, 알고 있다."

"내가 뭘, 그냥 한번 둘러본 거지."

넓은 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자, 하얀 테이블보가 덮여있는 원형 테이블 하나에 작은 대한민국 국기가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자 잘 정돈된 식기 앞에 우리 이름이 쓰인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원형 테이블엔 여덟 명의 자리가 세팅되어 있었고, 가운데는 대한민국, 중국, 일본의 국기가 꽂혀 있었다.

우리 자리 외에도 이름이 쓰인 푯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세 나라의 대표 헌터들을 이 테이블에 모아놓은 것 같았다.

행사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아 행사장을 더 둘러보려는데 하늘색 장삼을 입은 중국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반갑소. 나는 중국에서 온 양위복이라고 하오. 한국의 김수호 헌터님 맞으시오?"

짧게 자른 머리에 구릿빛 피부.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지고 있고, 광대는 거칠게 튀어나와 있었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중국의 대표 헌터는 장년(長年) 나이의 시멘트 재벌이라고 들었는데, 외모를 보니 N마켓에서 '젊음 회복'을 구매한 모양이다.

"네, 안녕하세요. 이쪽은 우리 회사 이사님 최수영 씨이고요, 이쪽은……."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천마가 스스로 나섰다.

"반갑다. 나는 천마라고 한다. 걸어오는 자세를 보니 봉술을 연마했군?"

"그렇소만, 어떻게 걸음걸이만 보고?"

"발가락이 나아가는 방향과 보폭을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이지."

"노인께선 중국 무예에 조예가 깊으신 분 같군요. 저는 우리 선조이신 양오량 님의 오랑팔괘곤(五郞八卦棍)을 전수하였습니다."

놀라웠다. 천마가 동시통역기도 없이 양위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통역기를 꺼보자 그제야 둘의 유창한 중국어가 들려왔다.

억양은 다른 것 같았지만 분명 둘 다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수영아."

"응?"

"지금 뭐 신기한 거 없어?"

테이블에 놓여 있던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들여다보고 있던 최수영이 답했다.

"뭐가? 호텔 커틀러리가 프랑스제가 아니라 독일제인 거?"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럼 뭐?"

"다른 행성에서 온 천마가 저 중국인이랑 말이 통해."

그게 뭐 어쨌냐는 듯 나를 바라보던 최수영의 눈이 금세 동그랗게 커졌다.

"정말이네? 어떻게 말이 통해?"

"둘 다 중국말을 쓰는 것 같아."

내 손짓에 따라 최수영도 동시통역기를 꺼보았다.

"그러네? 그냥 비슷한 말을 쓰는 줄 알았더니. 다른 행성에서 온 천마가 쓰는 말이 실제 중국어였어? 둘이 무슨 연결고리가 있나?"

"글쎄. 그냥 시스템의 설정값 아닐까?"

"설정값?"

"응. 알파벳 비슷한 걸 쓰던 행성 087 있잖아."

"응."

"얼마 전에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그거 고대 그리스 문자더라고."

"뭐야, 정말? 그러면 거기가 진짜 그리스 신화 속 세상이야?"

"지구에서 만든 신화를 가지고 그 행성을 만든 건지 그 행성이 먼저고 지구의 신화가 나중인지는 모르지만. 시스템의 설정값이 중복된다는 건 분명한 것 같아."

최수영이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는 턱을 괴었다.

"뭔가 어렵네. 전혀 새로운 세상들을 만든 게 아니고 비슷한 설정값을 돌려썼다는 그런 말이지?"

"응. 그런가 봐. 행성 055의 공룡들도 우리가 알던 애들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나와 최수영은 행사장을 마저 둘러보았다.

그때, 정면에 마련된 무대 위로 미군 몇 명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허리에 기다란 검집을 차고 있었는데, 검집 위로 나온 손잡이의 모양이 익숙했다.

"마그네타 검?"

분명 마그네타 검의 손잡이 모양이었다.

곧이어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이제 곧 세계 헌터 만찬 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행사 시작과 함께 식사도 준비될 예정이니 각국에서 오신 헌터님들께서는 정해진 자리에 앉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리로 돌아가자 아직도 양위복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천마가 아는 체를 했다.

"뭐 둘러볼 게 있다고 돌아다니다 이제 오는 것이냐. 그런데 저기 앞에 저 색목인은 네놈이랑 같은 기운의 검을 차고 있구나."

"네. 저도 봤어요. 미군에서 산 것 같은데 언제 샀지? 지금 시세로 130조 원 정도 할 텐데요."

"큰돈이냐?"

"제가 사는 나라의 2년 치 국방 예산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최수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빠, 미국은 국방 예산이 얼마인데?"

"한화로 하면 한 800조 원 정도?"

"그럼 뭐 꼭 필요하면 무리해서 살 수도 있겠네."

"저 검 하나를?"

"다 오빠 때문 아니야? 하하핫. 저 검만 있으면 오빠처럼 되는 줄 알고?"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실수로 이 검을 산 지 어느새 2년 하고 10개월. 그동안 정말 많은 기연과 우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 검은 기운을 쏘아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엔 그냥 엄청나게 잘 드는 검에 불과할 텐데, 거기다 130조 원을 들이다니.

"안녕하십니까."

검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들자 하얀색 정장 안에 빨간색 셔츠를 입은, 멀끔하지만 이상한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길게 찢어진 눈매에 하얀 얼굴. 웃고 있는 입술 사이로 돋보이는 덧니가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온 모토히로 우메오 입니다."

아, 일본. 하얀 정장에 빨간 셔츠를 입은 건 일본 국기를 표현한 건가? 애국자네.

나는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김수호입니다."

"나는 중국에서 온 양위복이오."

중국에서 온 양위복과 동행 헌터 한 명.

일본에서 온 모토히로 우메오와 동행 헌터 두 명.

우리 일행 세 명. 그렇게 여덟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 우선 오늘 초대받으신 헌터분들의 간단한 소개 영상을 준비하였습니다. 아직은 서로 잘 모르실 테니 이 영상을 참고하시어 서로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무대 뒤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헌터 한 명 한 명의 사진과 프로필이 띄워졌다.

프로필에는 각 헌터의 사용 무기와 신체 능력 강화 정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힘, 체력 강화', '운동 신경 강화', '내구도 강화'.

세 가지 항목의 강화 정도가 그래프와 숫자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우측 상단에 '예상치'라고 쓰여 있었다.

- 지구방위위원회에서는 헌터님들의 활동과 영상을 분석하여 신체 능력 강화 정도를 예측해 보았습니다. 물론 N마켓의 구매 내역은 본인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예상 수치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수영이 나에게 속삭였다.

"흥미로운 걸 준비했네? 오빠, 우리 숫자도 궁금한데?"

"그러게. 얼마나 잘 맞췄는지 한번 볼까?"

무작위로 순서를 배치한 건지, 나라와 상관없이 헌터들의 프로필이 차례차례 띄워졌다.

잠시 후 마그네타 검을 차고 있어 눈에 띄었던 미군 헌터의 사진이 나타났다.

군복을 입고 있는 사진임에도 거대한 승모근이 그대로 드러났고, 목은 머리보다도 더 굵어 보였다.

예상대로 미 해병대 소속이었다.

프로필을 눈여겨보다가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와……."

리암 소령 신체 능력 강화 내역

[힘, 체력 강화 : 10단계]

[운동 신경 강화 : 7단계]

[내구도 강화 : 8단계]

나 외에도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수영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힘, 체력은 오빠보다도 더 많이 강화했네? 저만큼 강화하려면 2만 코인도 더 들지 않아?"

"응. 28,100코인. 제이슨 대위나 콜슨 중위와는 또 다르네. 역시 강대국이라 이건가."

들고 있는 무기는 2만 코인짜리 마그네타 검에, 신체 강화에 들어간 코인은 2만8천.

현재 시세로 300조 원이 넘게 들어간 헌터였다.

물론 채굴로 벌어들인 코인도 꽤 되겠지만, 지구에서 단기간에 코인을 저만큼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새삼 미 국방성의 재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나와 최수영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마가 물었다.

"저놈이 네놈 다음으로 강한 놈이구나."

"아직 잘 모르죠."

"의뭉스러운 놈. 네놈도 들어오면서 기운을 다 느껴보지 않았느냐."

사실 리암 소령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의 기운을 읽어내긴 했었다.

그래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스크린에 열댓 명의 프로필이 지나가고, 이번엔 내 차례였다.

김수호 신체 능력 강화 내역

[힘, 체력 강화 : 8단계]

[운동 신경 강화 : 7단계]

[내구도 강화 : 5단계]

"풉. 뭐야, 오빠 엄청 얕보였네? 하하핫. 전부 9단계까지 강화한 거 알면 사람들 깜짝 놀라겠는데?"

지구에 돌아온 후 어디 부딪친 영상이 없으니 내구도야 당연히 모른다고 치고. 나머지 두 개도 너무 낮게 잡아놓긴 했다.

하지만 전혀 상관은 없었다. 2년간의 행성 여행 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저 숫자가 밑바탕은 될 수 있어도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모토히로 우메오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님."

"아, 뭐.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까 나왔던 미 해병대 소령보다는 한참 떨어지네요? 세계 최고의 헌터라는 호칭도 이제 옛말인가 봅니다."

지금 대놓고 비꼬는 건가? 한 번은 참아주지. 뭐라고 대답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최수영이 끼어들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밝게 웃어주는 그녀. 하지만 지금 올라간 입꼬리의 모양은 미묘하게 달랐다.

최수영은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우메오 씨는 얼마나 강한지도 곧 나오겠네요? 하하핫. 너무 궁금해요."

우메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최수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입고 오신 그 옷은 일장기를 표현한 거 맞나요? 애국심은 높게 사지만 하얀 재킷에 빨간 셔츠라니……. 세상에."

* * *

10월 2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63,911개]

[단가 64억 원]

[평가 금액 409조 원]

김수호 신체 능력 강화 내역

[힘, 체력 강화 : 9단계]

[운동 신경 강화 : 9단계]

[내구도 강화 : 9단계]

최수영 신체 능력 강화 내역

[힘, 체력 강화 : 6단계]

[운동 신경 강화 : 8단계]

[내구도 강화 : 8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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