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 * *
순간 우메오의 신형이 흐려지더니 어느새 카타나가 내 옆구리를 베어 들어오고 있었다.
챙.
내 검과 카타나가 날카롭게 부딪쳤다.
챙. 챙. 챙.
우메오는 기세를 몰아 카타나를 양손에 움켜쥐고 연속 베기를 시도했다.
하나하나 정말 빠른 데다 묵직한 힘이 실려 있는 공격이었다.
마지막 베기에 유독 힘을 주어 내 검을 밀어낸 우메오는 잠시 벌어진 틈을 이용해 카타나를 높이 치켜들었다.
대각선 베기. 일본도에 가장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는 기술.
콰직!
온 힘을 다해 내려쳐진 카타나는 앞을 막아선 내 검을 그대로 쪼개버렸다.
멈추려나?
이제 와서 멈추려고 해도 카타나는 내 어깨를 깊이 파고들고 나서야 멈출 것이다. 하지만 멈추려고 하지 않으면 내 몸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지겠지.
카타나는 어느새 내 귀 부근까지 내려왔다.
목과 어깨뼈 사이를 정확히 노리고 있는 예리한 칼날. 그런데 검의 속도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아주 악질이네, 이놈.
나는 왼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염동력으로 카타나를 강하게 튕겨 내었다.
내려꽂히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카타나가 튕겨 올라갔다.
손잡이를 꽉 쥐고 놓지 않은 우메오는 카타나와 함께 뒤로 한참을 날아가 버렸다.
"친선 대결인데 지금 내 몸을 반으로 갈라버리려고 한 거야?"
우메오는 내 물음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다시 한번 물었다.
"묻잖아. 안 막았으면 지금 내 몸은 반 토막이 나 있겠던데?"
그제야 우메오가 대답했다.
"허접한 무기를 든 네 잘못이다! 다시 무기를 들어라!"
"필요 없어."
나는 염동력 장갑을 벗어 바닥에 툭 던졌다.
"너 같은 놈 상대하는 데는 이 염동력 장갑도 필요 없어."
계속해서 놈에게 다가갔다.
"어제부터 자꾸 거슬리게 하더니 오늘은 아예 날 죽이려고 했네? 좀 맞아야겠다."
우메오는 카타나를 수직으로 들었다가 대각선으로 들었다가를 반복하며 공격 기회를 찾고 있었다.
처음 발도술 때와 달리 자세가 안정되지 않은 걸 보니 꽤 긴장한 모양이었다.
앞뒤 양옆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우메오와 달리, 나는 일직선으로 놈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카타나의 공격권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놈의 기운이 두 팔에 집중되었다.
놈의 발이 빠르게 앞으로 뻗어져 나왔다. 동시에 카타나는 내 무릎을 노리고 날카로운 호를 그리기 시작했다.
위로 점프해서 공격을 피해 내면 아마 착지하기도 전에 다음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나는 그대로 우메오를 향해 점프했다.
카타나는 내 발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칼을 휘두르느라 순간 무방비상태가 된 우메오의 가슴팍에 내 주먹이 꽂혔다.
"크헉!"
우메오가 다시 한번 뒤로 멀리 날아갔다.
놈은 카타나를 땅에 꽂고서도 한참을 더 밀려난 끝에 겨우 다시 일어섰다.
나는 순식간에 놈과의 거리를 다시 좁혔다.
깜짝 놀라 커진 우메오의 눈은 내 움직임을 쫓지도 못하고 있었다.
짜악!
손바닥을 펼쳐 놈의 뺨을 때렸다.
우메오의 고개가 옆으로 거세게 돌아갔다.
"친선 대련에서 그런 검격을 쓰는 놈이 어딨어."
짜악!
"못 막으면 그냥 죽이려고 그랬어?"
짜악!
찰진 소리가 운동장 전체를 꽉 메웠다.
그제야 지구방위위원회의 스텝들이 앞다투어 우리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맞자."
짜악!
마지막 싸대기와 함께 놈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우메오와 나의 대련과는 달리 이후 진행된 몇 차례의 대련은 안전하게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며 끝이 났다.
헌터들은 나와 리암 소령의 대련을 원했지만, 둘 다 거절한 끝에 이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검기를 보여달라는 헌터들의 요청에는 응해 주었다.
"신체 강화 상품을 구매하고, 훈련을 반복하면서 여러분들의 몸 안에는 내력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이 기운의 정체를 느끼신 분도 계실 테고, 아직 못 느끼신 분들도 계시겠죠."
염동력을 이용해 무기 보관대에서 평범한 검 하나를 가져왔다.
"우선은 그 내력의 흐름을 느끼시는 데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느껴지고 나면, 이제 무기를 든 손에 그 내력을 집중해 보세요."
들고 있는 검에서 푸른빛 검기가 발현되었다.
"내력을 키우고 훈련을 거듭할수록 이 검기는 더욱 짙고 길어집니다."
검에 내력을 조금 더 밀어 넣자 검기가 순식간에 10미터 길이로 길어졌다.
"더 자세히 알려드리고 싶어도 이게 무형의 기운이라, 더 이상 설명해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린 방법대로 꾸준히 연습하시면 여러분도 검기를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외계 행성의 적들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몇몇 헌터의 내력이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연습하시다가 막히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찾아오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 * *
한 달이 지났다.
천마는 디펜서 중 무공에 소질이 보이는 두 명을 제자로 삼아 게스트하우스 뒤뜰에서 무공을 전수했다.
레온의 마법 본부도 나날이 발전해 이제 마법 본부의 디펜서들은 간단한 공격 마법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라울은 이제 검기를 제법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계약된 나라에서 지원 요청이 왔지만, 큰 사건 없이 평범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강화도에 첫눈이 내렸다.
점심 식사 이후 최수영, 라울과 함께 본사 앞 카페에 앉아 창밖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중독되어 얼죽아가 된 라울이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를 들고 말했다.
"한국의 겨울은 참 아름다워요. 밖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어딜 가나 난방이 잘돼 있어서 따뜻하고요."
"인도는 이렇게 눈이 안 오죠?"
"겨울이 있긴 하지만 영하로 내려가진 않아요. 한국에서만 벌써 네 번째 첫눈이네요. 겨울이면 이렇게 따뜻한 곳에 앉아 창밖으로 눈 오는 걸 바라보는 게 좋아요."
"항상 고마워요, 라울.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너무 큰 힘이 돼주셨어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에요. 하하하. 인도에서 비즈니스 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즐거워요. 가끔 가족들이 보고 싶긴 하지만, 또 미스터 킴이 언제든 휴가를 보내주시니까요."
"그럼요.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지금은 괜찮아요. 미스터 킴, 그건 어떻게 할 거예요? 헌터 협회장."
"다시 생각해 봐도 귀찮아요. 하하하. 안 할래요."
지구방위위원회에서는 세계 헌터 협회를 발족시켰고, 초대 협회장으로 나를 추대하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래요. 미스터 킴은 지금도 충분히 바쁜데 그런 건 해서 뭐 하겠어요."
최수영은 커피잔을 들어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아, 오빠. 어제 뉴스 봤어. 결국 부도 처리됐더라? 대성 그룹."
"응. 뭐, 당연한 수순이었어."
"그럼 거기 디펜서들은?"
"사전에 작업 다 해놨지. 이제 곧 경력직 디펜서들이 대거 입사할 거야. 조직 변경도 좀 있어야겠지."
"디펜서 만드느라 대성 그룹에서 돈 엄청나게 쏟아부었을 텐데. 그대로 우리한테 뺏기네?"
"엄청나게 쏟아부었겠지. 아직 반의반도 회수 못 했을걸?"
"그렇겠다. MB게임즈도 마찬가지겠지?"
"아직까진 그렇겠지. 하지만 손익분기점만 넘어서면 엄청난 수익이 생길 테니까 뭐."
라울이 물었다.
"대성의 디펜서들은 자기 돈으로 N마켓의 무기를 산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 기존 디펜서들과 같은 대우인가요?"
"아뇨, 다르죠. 우리 디펜서들은 채굴 기여도에 따라 넥시트 코인을 지급 받지만, 대성의 디펜서들은 연봉제로 운영할 거예요. 물론 연봉은 대성보단 많이 올려줬죠."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둔 최수영과 내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전략실에서 보내온 문자였다.
[이라크 지원 요청. 행성 055와 연결된 C급 화이트 게이트 출현. 1팀 출동 요망.]
"이라크라. 행성 055면 공룡들 튀어나오겠네. 우리도 라울 따라 이라크 가볼까 수영아?"
"나 이라크는 한 번도 안 가봤어. 라울이랑 같이 갔다가 관광도 하고 오자."
"그래. 그러자."
본사로 들어가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태국 지원 요청. A급 화이트 게이트 출현. 연결 행성 확인 전. 2, 3팀 출동 요망.]
"동시에 이런다고? 수영아, 이라크는 못 가겠는데? 우린 태국으로 가야겠네. A급 게이트라니."
"에이, 아쉽다. 이라크는 나중에 가면 되지 뭐. 대신 오늘 저녁은 뿌팟퐁커리 먹자."
"그래. 비서실에 우리 가는 곳 근처에 맛집 어딨는지 알아봐 달라고 할게."
서둘러 일어난 라울이 웃으며 말했다.
"이라크 관광은 제가 대신 하고 올게요. 하하하."
최수영이 답했다.
"하하핫. 라울, 사진이라도 찍어와요. 인증샷 필수."
* * *
이라크 북부 도시 아르빌.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간이 거주한 고대 유적 시타델 위에 C급 화이트 게이트가 생겨났다.
라울과 디펜서 1팀은 이라크 쿠르드 자치 정부가 준비해놓은 헬리콥터를 타고 게이트로 이동했다.
쿠르드자치정부의 장교 한 명이 소리쳤다.
"연결된 곳은 행성 055입니다!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육식 공룡들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라울이 대답했다.
"네! 다른 행성의 몬스터에 비해 공룡들은 큰 위협이 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
"그, 죄송하지만 한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게이트가 고대 유적 시타델 위에 나타났습니다. 시타델은 7,000년 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지요. 되도록 훼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건물들은 안 건드리고 공룡들만 최대한 빨리 잡을 테니 군에서는 시민들 대피에 총력을 기울여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시타델 동쪽 끝에 헬리콥터 세 대가 내려섰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디펜서들을 향해 라울이 소리쳤다.
"따로 통제선은 치지 않는다. 이 성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이라니까 최대한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빠르게 흩어져 공룡들을 때려잡는다!"
"네!"
라울의 지시에 따라 디펜서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라울 역시 빠르게 움직이며 놀라 날뛰는 공룡들을 처리했다.
건너편 블랙 게이트가 평화로운 지역에 생긴 건지, 넘어오는 공룡의 수도 많지 않았고 거대한 육식 공룡도 없었다.
이 정도면 굳이 메타디펜스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고 이곳의 군병력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유적지라고 하니 군대가 진입하면 이곳이 부서질까 봐 자신들을 부른 것 같았다.
그때 라울의 측면 골목에서 벨로시랩터 세 마리가 뛰어왔다.
라울은 가장 앞서 달려드는 랩터를 향해 방패를 들어 올렸다.
랩터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방패를 보고도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대로 밀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터엉!
랩터의 예상과 달리 이 조그만 인간은 자신과 부딪히고도 전혀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랩터가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방패 너머로 붕 떠서 날아갔다.
랩터는 그대로 라울의 뒤편에 고꾸라졌다.
라울은 방패를 든 왼손을 늘어뜨리고 몸을 크게 회전하며 오른손으로 창을 휘둘렀다.
창끝에는 푸른빛의 검기가 맺혀 있었다.
검기는 이제 제법 길어져 있었다.
서걱.
라울이 휘두른 창에 두 번째로 달려들던 랩터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그제야 세 번째 랩터가 움찔하며 멈추어 섰다.
이번엔 라울이 오른팔을 쭉 펴 창으로 찔러 들어갔다.
푹.
미처 피해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세 번째 랩터의 가슴팍이 그대로 뚫려버렸다.
라울이 뒤를 돌자 처음 달려들었던 랩터가 겨우 일어나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이번엔 창을 어깨높이로 올렸다가 그대로 집어 던졌다.
라울의 손을 떠난 창은 랩터의 몸통을 그대로 뚫고 돌 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아차, 문화유산이라고 훼손하지 말아달라고 했지."
라울은 얼른 달려가 땅에 박혀있는 창을 빼 들었다.
그때였다.
라울의 이어폰을 통해 다급한 디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라울 팀장님! 게이트에서 강철 인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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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64,471개]
[단가 66억 원]
[평가 금액 425조 5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