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 마티아스 】
'무슨 소리야. 행성 055랑 연결된 게이트에서 강철 인간이라니.'
라울은 방금 보고한 디펜서가 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또 다른 디펜서가 외쳤다.
- 여러 명이 나옵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그제야 라울의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마티아스.
행성 도장 깨기를 하고 다닌다는 시엠브레의 미친 황제.
라울의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제기랄."
라울은 게이트 쪽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실장님! 듣고 있어요?"
- 네! 라울. 지금 거기 강철 인간이 나타났나요?
"아무래도 그놈들인 것 같아요! 마티아스 황제. 대표님과 천마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 네! 이미 천마가 계신 게스트하우스로 사람을 보냈고, 대표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금방 본사로 돌아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서둘러주세요."
- 대표님께서 섣불리 붙지 말고 최대한 시간을 끌며 지켜보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디펜서 전원, 섣불리 덤비지 말고 거리를 두고 흩어져라! 일단 지켜본다!"
그때였다.
콰앙!
건물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게이트 옆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박성호, 이철민 디펜서가 당했습니다! 너무 크고 빠릅니다!
라울이 다급히 도착했을 땐 이미 게이트 주변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게이트에서 강철 인간들이 나온다는 외침을 듣고 뛰어온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강철 인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디펜서가 보이는 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대충 세어보아도 20여 명 이상.
오늘 출동한 디펜서 1팀의 인원보다 강철 인간의 수가 더 많았다.
김수호는 저 근위대 한 명을 상대하는데 디펜서 한 개 팀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초창기 지구에 침공해 오던 강철 인간들과는 완전히 급이 다르다고 했다.
게다가 마티아스라는 자가 김수호가 만난 제1 기사단장보다 강한 게 사실이라면, 자신을 제외한 디펜서 전원이 달려들어도 못 당할 거라고 했다.
"제기랄. 30분, 아니 10분만 버티면 될 텐데."
라울 혼자라면 어떻게든 몸을 빼낼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디펜서 1팀이 몰살을 당할 게 뻔했다.
라울의 창끝에서 짙은 검기 뿜어져 나왔다.
"최상등급 몬스터 대비 대형으로 집결! 뭉쳐서 싸운다! 대표님이 오고 계신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라울의 외침에 따라 디펜서들이 라울 뒤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맨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강철 인간이 라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대신 키가 4미터도 넘는 스무 명의 강철 인간들이 디펜서 1팀을 조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뒤쪽 마법사들의 지팡이에서 푸른 빛이 뻗어 나와 기사들에게 연결되었다.
콰앙!
기사 한 명의 검과 라울의 방패가 강하게 부딪쳤다.
라울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뒤로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기사가 검을 찔러 들어왔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
검을 밀어내느라 높이 들어 올렸던 방패를 다시 내릴 틈도 없었다.
두 검 중 하나는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라울의 창끝에서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짙은 검기가 뻗어 나왔다.
슈악.
라울이 창끝을 잡고 오른쪽 강철 인간의 복부를 향해 창을 길게 찔러 넣었다.
의외의 공격에 강철 인간의 눈동자가 커졌다.
푸욱.
라울의 창이 강철 인간의 배를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남은 검 하나가 라울의 허리를 깊이 베고 지나갔다.
"크흑!"
"팀장님!"
남은 디펜서들이 앞다투어 뛰어나와 라울의 앞을 가로막았다.
치료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디펜서가 라울의 옆구리에 손을 올려보았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 보였다.
라울이 방패로 땅을 짚으며 겨우 다시 일어났다. 라울의 눈에 조금 전 자신의 창에 뚫린 강철 인간의 복부가 스르륵 메워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기랄."
더 큰 치명상을 입힌 건 라울 쪽이었다. 하지만 버프 마법을 받고 있는 강철 인간의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공격을 주고받았다기엔 라울의 피해가 너무 컸다.
"섣불리 공격하기보단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내며 버텨라! 대표님이 오실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지금으로선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명령이었을 뿐, 이 상황의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라울이 뒤로 빠지자 강철 인간들이 디펜서들을 무참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라울의 눈앞에서 자신의 팀원들이 계속 죽어 나갔다.
거대한 검 하나가 라울 바로 앞에 서 있는 디펜서의 목을 향해 베어져 들어왔다.
겨우 몸을 일으킨 라울이 검을 휘두르는 강철 인간의 목을 향해 자신의 창을 강하게 집어 던졌다.
푸욱.
라울의 창이 강철 인간의 목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강철 인간은 휘두르던 검을 내던지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목에 박힌 창을 뽑아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라울의 창은 N마켓의 무기. 주인 외에는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창을 빨리 뽑아내면 재생 마법으로 살아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강철 인간이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한 놈 해치웠다. 그리고 라울의 유일한 무기가 사라졌다.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은 디펜서는 라울을 포함해 세 명.
모두 제대로 무기를 들고 있기도 힘든 상태.
라울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 여기까지군. 그래도 보람 있었다."
촤악.
디펜서 세 명의 몸이 거의 동시에 반으로 갈라졌다.
* * *
이혁진 실장의 연락을 받은 나와 최수영은 바로 마법진 돗자리를 이용해 강화도로 돌아왔다.
마침 천마 일행도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서둘러 워프실로 가자 레온이 이미 워프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이라크 아르빌에 있는 마법진으로 이동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무슨 유적지 복판에 게이트가 있다고 합니다! 헬리콥터는 이미 타고 가버려서 이동 수단이 없어요! 각자 이동합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도시 중심부로 몸을 날렸다.
정말 마티아스가 쳐들어온 것이라면 디펜서 1팀 전체가 위험했다.
이어폰으로는 이미 디펜서 1팀의 기합 소리와 비명이 어지럽게 섞여 들어오고 있었다.
몇 차례의 도약으로 빠르게 이동하자 저 앞에 화이트 게이트의 윗부분이 보였다.
있는 힘껏 그쪽으로 몸을 날리는데 이어폰에서 라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 여기까지군. 그래도 보람 있었다.
"라울? 라울!"
다급히 외쳐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 시야에 강철 인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높이 도약해 놈들이 모여 있는 곳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불사인들의 커다란 검에 반으로 잘린 디펜서들.
그 중엔 라울도 포함되어 있었다.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몸을 빼낼 수 있었을 텐데, 팀원들을 버릴 수 없었겠지.
뽑아 든 마그네타 검에서 검은색 검기가 길게 피어올랐다.
* * *
마티아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싸워볼 만한 놈이 있는 행성에 도착했군."
엄청난 기운을 지닌 사내.
그자의 검에서 무림맹주에게 보았던 것보다 훨씬 위험해 보이는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특이하게도 그 검기는 검은색이었다.
마티아스는 근위대에게 물러나라고 명한 뒤 저 사내와 일대일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엄청난 기운.
콰아앙!
마티아스는 얼른 검을 들어 그 기운을 막아냈다.
흙먼지 사이로 붉은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멀리 하늘을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림에서 만났던 자들과 비슷한 모양의 옷이었다.
노인은 마티아스 앞 10미터 지점에 내려서더니 뒷짐을 지었다.
무림에서 가장 강한 자였던 무림맹주보다 훨씬 강한 살기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고 마티아스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검은 검기를 내뿜는 자가 근위병들을 다 해치울 때까지 시간을 벌 생각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근위병들과 검은 검기의 사내는 이미 한데 뒤엉켜 전투를 시작했다.
"너는 누구냐. 네가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인가?"
붉은 옷의 노인은 마티아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행성에서 했던 것처럼 정신 마법으로 머릿속의 생각을 읽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위대와 함께 전투에 참여 중인 마법사를 한 명 부르려는데, 무림인의 옷을 입고 있는 세 명의 중년인이 더 나타났다.
곧이어 특이하게 생긴 활을 든 여자가 뛰어와 옆에 섰다.
여자 궁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지구의 최수영이고, 이 옆에 계신 분은 무림의 천마 님이다. 그 옆엔 천마신교의 장로들이시지. 네가 마티아스냐?"
놀랍게도 그 여인은 테라 행성의 언어를 사용했다. 지구인 일부가 통역기를 사용한다고 하던데, 그걸 쓰는 모양이었다.
"그렇다. 내가 시엠브레의 전 황제, 마티아스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를 찾고 있다."
여인이 붉은 옷의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서가 틀렸어. 너는 무림에서 가장 강한 상대를 잘못 찾았었다. 여기 계신 분이 무림의 최강자, 천마이시다."
"그런데 왜 이곳 지구인들과 어울려 있는 것이지?"
최수영과 천마가 뭐라고 대화를 나누었다.
최수영이 다시 마티아스를 보고 크게 말했다.
"그대로 전할게. '네놈을 찾기 위해 게이트를 통과했다. 무림에서 가장 강한 자를 찾기 위해 무림맹에 갔다지? 완전히 잘못 찾아갔다. 무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네 앞에 있는 나, 천마 님이시다. 이제 덤벼라.'라고 하셔."
마티아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그래서 스스로 찾아와주었단 말이군. 좋다. 덤벼라."
그때였다.
콰과과!
근위대가 있던 쪽에서 검은색 용 같은 기운이 마티아스를 덮쳐왔다.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마티아스가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해 냈다.
검은 용이 날아든 곳을 바라본 마티아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천마라는 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인데 근위대 기사와 마법사들이 모두 도륙되어 있었다.
검은 기운의 사내가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고, 천마는 그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호통을 쳤다.
천마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검은 기운의 사내의 말은 똑똑히 들려왔다.
"저놈은 저한테 양보하세요, 천마."
천마가 뭐라고 화를 내었다.
"라울을 죽였어요. 디펜서 1팀을 모두 죽였다고요. 저놈은 제 몫이에요."
마티아스는 어이가 없었다.
'저들이 지금 설마 서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다투고 있는 것인가?'
마티아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서로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그냥 한꺼번에 덤벼라!"
천마와 검은 기운의 사내가 마티아스에게 동시에 소리쳤다.
천마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사내의 말은 똑똑히 들렸다.
"넌 잠깐 빠져 있어!"
마티아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사내에게 물었다.
"건방진. 도대체 넌 누구냐?"
"지구의 김수호다. 네놈들이 조금 전 죽인 회사원들의 고용주이고, 네놈이 찾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바로 나다."
* * *
11월 2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64,671개]
[단가 66억 원]
[평가 금액 426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