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94화 (94/200)

94화

【 불사의 스테노 】

며칠 후, 메타디펜스 회의실.

이혁진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대표님 넥시트코인이 다시 3만4천 개로 줄어들었습니다. 마티아스 같은… 아니, 그보다 강한 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하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죠. 초기에 행성 082에서 히드라를 만났을 땐 정말 죽는 줄 알았지만, 그때 마지막으로 강화를 한 다음에는 이렇다 할 위협적인 적을 만나지 못했어요. 굳이 꼽자면 천마 할배 정도였을까."

생각해 보니 그랬다. 히드라와의 전투 이후 나는 충분히 강해졌고, 그 뒤로는 큰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천마와는 목숨을 내걸고 싸운 건 아니었으니 예외로 치고.

그런데 마티아스를 만나보니 얘기가 달라졌다. 막대한 코인을 들여 10단계 강화를 하지 않았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

만약 지구에서 만난 게 아니라 휴대폰이 방전돼 N마켓에 못 들어가던 행성 여행 중이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앞으로 또 어떤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와중에 무턱대고 현재의 실력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훈련하는 수밖에요. 신체 능력이 더 올라갔으니 훈련 효율도 더 높아지겠죠."

"그래서 말씀인데……."

이혁진 실장이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였다.

꼭 3년 전에 랜덤박스를 사라고 권유할 때와 똑같은 말투였다.

"또 무슨 묘책이 생각났나요? 랜덤박스 같은? 그런데 그건 한 번밖에 못 사잖아요."

"그건 아닙니다. 하하하. 제가 천마 게스트하우스에 간 디펜서들을 만나봤는데요……."

"천마에게 발탁돼 제자로 끌려간 그 두 명이요?"

"네. 그 디펜서들과 대화해 보니, 천마에게 내공심법이라는 걸 배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천마에 의하면 그 수련이 내공을 크고 탄탄하게 만들어준다고 하네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본 수련이죠."

"네.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니 대표님 몸 안에 있다는 내력이라는 것이나 천마의 내공이나 모두 비슷한 종류의 기운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네, 뭐. 실제로 느껴지기로도 유사해요. 몸 안에 뭉쳐있는 모양이 조금 다른 것 빼고는 흡사하더라고요."

가만, 설마?

지금 나한테 천마 할배의 제자가 되라는 건 아니겠지?

"네. 그래서 천마 님께 직접 내공 수련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으, 나보고 그 할배의 제자가 되라는 건가요? 그건 못해요."

"테라 행성에 처음 가셨을 땐 매튜 남작이라는 불사인에게 내력 운용과 검기 발현을 배우셨다면서요."

"달라요, 그거랑 이건 완전히 다르다고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천마의 제자가 되어 그의 하대(下待)와 잔소리를 감당하라니.

"뭐가 다르죠? 그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자타공인 최강의 남자라서요?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제가 잘나가는 프로게이머였을 때도 연습생들에게조차 배울……."

"그만.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제가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물론 내가 건방져진 것일 수도 있다.

내심 내가 천마보다 약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이혁진 실장은 천마가 무림에서 장로들과 제자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못 봐서 저러는 것이다.

* * *

따악!

천마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남자의 머리통을 휘갈겼다.

"악!"

얻어맞은 사람은 무공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천마 게스트하우스로 차출된 이근수였다.

이근수의 옆에는 자신과 함께 차출되어 온 정성민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다! 이놈아. 숨만 크게 들이쉬면 되는 것이 아니야. 모든 신경을 집중해. 단전으로 호흡을 당겨 모으듯 네 몸 안의 내공을 단전에 모으란 말이야!"

천마에게 맞아 휘청대던 이근수는 얼른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루에 꼬박 스무 시간.

20분씩 세끼 먹는 시간과 세 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이 자세였다.

다행히 해시(밤 10시)부터 세 시간 동안은 밤의 음기를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잠도 재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이근수였다.

"이놈들. 남들은 십 년을 수련해도 한 줌 모일까 말까 한 내공이다. 네놈들은 그걸 코인인가 뭔가로 샀다지? 행복한 줄 알거라."

짜악!

이번엔 정성민이 등짝을 얻어맞았다.

"집중! 하지만 네놈들의 내공은 쉽게 얻어서인지 정제되어 있지 않고 몸 안을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따악!

이번엔 이근수의 머리통.

"물론 생사현관(生死玄關)을 타통(打通) 하면 내공이 단전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십이정경(十二正經)과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떠돌게 된다."

짜악!

다시 정성민의 등짝.

"하지만 자유롭게 떠도는 것과 네놈들처럼 어지럽게 흐트러진 건 전혀 다른 것이다."

저 앞에는 세 명의 장로들이 마약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이쪽을 보며 연신 낄낄대고 있었다.

'일부러 우리 보라고 저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게 확실해. 저 장로들이 더 얄미워.'

장로들을 보며 이근수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자마자.

따악!

머리통에 불꽃이 튀었다.

"집중! 단 한 번이라도 몸 안의 내공을 단전 안에 모두 밀어 넣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저녁밥은 없는 줄 알 거라."

천마의 잔소리와 구타는 참기 힘들었지만, 이 말만은 무섭지 않았다.

이래 놓고 밥을 안 먹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따악.

밥 생각을 하자니 또 머리통에 불꽃이 튀었다.

이근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스승님, 그런데 왜 정성민은 등짝을 때리시면서 저는 머리통을 내리치시는 겁니까?"

따악!

이근수가 천마에게 맞은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네놈의 내공은 자꾸만 후정혈(後頂穴)에서 흐트러지고 이놈의 내공은 신주혈(身株穴)에서 흐트러지니 그러는 것 아니냐."

'괜히 물어봤다.'

"아… 네. 스승님."

이근수가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천마가 이 순간을 놓칠 리 없었다.

"이놈들! 아직도 혈도를 다 외우지 못한 것이냐?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 아닙니다. 거의 외웠습니다."

"거의? 안 되겠다. 오늘부턴 잠도 자지 말고 밤엔 혈도를 외우거라."

"스, 스승님. 해시부턴 음기를 흡수하기 위해 무조건 잠이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닥쳐라! 이놈. 혈 자리도 익히지 못한 놈이 음양의 조화를 꾀해서 무얼 하겠느냐. 다 익힐 때까지 잠은 잘 생각도 말거라! 다시, 집중!"

정성민이 잠시 이근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가 천마에게 등짝을 맞았다.

둘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단전에 기운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 * *

오후에 마법 본부에 들렀다.

본부장 사무실에서 노트북에 열심히 무언가를 타이핑 하던 레온이 고개를 들었다.

"수호 형!"

"레온이 오늘도 책 써?"

"네. 하하하. 정리할 게 너무 많네요."

"쉬엄쉬엄해. 책 쓰는 게 보통 일인가?"

레온은 요즘 한글로 마법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마법 개론부터 마나를 다루는 법, 그리고 실용 마법까지. 미래의 '레오니 마법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방대한 마법 지식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몇 권이나 썼어?"

"음, 지금까지 한 열 권 정도요?"

"벌써?"

"벌써라뇨. 100권은 더 써야 할 것 같은데."

"야……, 내가 레온이 데려와서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니에요, 형.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에요?"

사실 전투 중에 쓰일 만한 유용한 마법에 대해 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찾아온 참이었다.

예전에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마법을 레온과 논의한 끝에, 마법구를 집중 발전시켜보기로 했었다.

염동력 장갑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마법구.

레온은 그게 지금 내 전투방식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덕분에 마법구는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레온이 너무 바빠 보였다.

"어쩐 일은. 그냥 레온이 잘 지내나 한 번씩 오는 거지."

"잘 지내죠. 하하하. 아, 형! 오신 김에 이거 가져가세요."

레온이 자신의 책장으로 가 서류함을 뒤적거리더니 위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투박하게 묶은 A4용지 한 묶음을 내밀었다.

200여 장은 넘어 보였다.

"이게 뭐야?"

"검을 쓰며 전투하는 와중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공격, 수비 마법들을 몇 개 더 정리해 봤어요. 구동 방법까지 상세하게 적어놨으니까 한번 보세요, 형."

"이야, 이걸 나 주려고 정리했어?"

"네. 형은 마나 친화력도 높고 똑똑하니까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막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시고요."

예쁜 녀석.

"뭘 또 이런 걸 다……. 고맙다. 오늘 저녁에 소고기 먹으러 갈까?"

순간 레온의 눈빛이 빛났다.

"어디로요?"

"한웃집은 많이 가봤으니까, 오늘은 코스 요리로 먹자."

"코스 요리 집도 많이 갔잖아요."

"그래? 그럼 코스 요리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프랑스 가서 저녁 먹자. 오트 퀴진이라고 들어봤어?"

"오트 퀴진이요?"

"있어. 역사 깊은 아주 고급 코스 요리. 파리에 마법진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걸로 넘어가자."

"마법진을 그렇게 우리 저녁 먹는 데 써도 돼요?"

"프랑스에 얘기하면 되지 뭐. 우리가 다 만들어 준 건데 안 될 건 또 뭐야."

어느새 레온은 휴대폰으로 오트 퀴진을 검색해 보고 있었다.

"우와. 궁중에서 시작된 최고급 코스 요리네요? 수영이 누나도 함께 가요?"

"당연하지. 그런 델 빼놓고 갔다간 큰일 날걸."

"좋아요! 진짜 맛있겠다. 우와. 이따가 다섯 시에 퇴근하고 워프실에서 만나요."

"그래. 나는 식당 예약 미리 해 놓을게. 이따 보자 레온이."

"네, 형!"

마법 본부 본부장실을 나오는데 뒤에서 우와, 우와 하는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레온이 계속 오트 퀴진을 검색해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 * *

행성 087 서쪽 끝, 오케아노스 강 황금사과 동산 근처.

스테노와 에우리알레가 그늘에 앉아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동산 정상 근처에 앉아 있었는데, 각각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댄 채였다.

스테노는 느릅나무, 에우리알레는 미루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엔 버드나무도 한그루 보였다. 자신이 기댄 느릅나무의 푸른 잎을 바라보던 스테노가 입을 열었다.

"멍청한 헤스페리데스 자매들. 헤라클레스에게 황금 사과를 뺏긴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 스스로 나무가 되었담."

에우리알레가 대답했다.

"내 말이. 황금 사과는 결국 아테나 여신에 의해 다시 이 동산으로 돌아왔는걸."

스테노가 동산 정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황금 사과가 빛을 내고 있었다.

에우리알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렴 어때, 언니. 덕분에 이렇게 앉아서 쉴 그늘이 생겼잖아. 호호호."

"그러게. 그깟 사과 좀 잃어버린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우리만 좋은 나무 그늘이 생겼지 뭐. 호호호."

스테노와 에우리알레 자매가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언덕 아래에서 사슴 한 마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맛있는 나뭇잎을 찾아 한가로이 동산을 오르던 사슴의 시선이 스테노와 에우리알레에게 고정되었다.

한가로운 황금 사과 동산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두 자매의 모습은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머리카락은 뱀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자의 코를 하고 있는데 쭉 찢어진 입 사이로는 멧돼지의 송곳니가 뻗어 나와 있었다.

몸은 용의 비늘로 덮여있고 손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쭉 찢어진 입이 벌어질 때마다 뱀처럼 날름거리는 혀가 보였다.

겁먹은 사슴과 스테노의 눈이 마주쳤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사슴은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테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사슴의 몸이 돌이 되어 굳어버린 것이었다.

그때 스테노 옆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검은 점이 생겨났다.

"어머, 언니. 언니 옆에 그거 뭐야?"

"응? 뭐?"

스테노는 에우리알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공간에 생긴 검은 점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이게 뭐람? 또 어떤 신 놈이 장난치는 거야?"

"뭐야, 저거. 불길해. 일어나자, 언니."

"얘는 참, 우린 페르세우스 놈에게 당한 막내랑 달라. 불사의 몸이잖아. 아무튼 겁만 많아서는. 우리한테 불길할 게 세상에 어디 있어."

불길해 하는 에우리알레와 달리, 호기심 넘치는 스테노는 이제 호박만 해진 검은 구멍에 손을 쑥 넣어보았다.

순식간이었다.

스테노의 몸이 블랙 게이트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놀란 에우리알레가 소리쳤다.

"언니!"

* * *

11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3,961개]

[단가 66억 원]

[평가 금액 224조 1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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