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 * *
- 해외 토픽입니다. 중국에 나타난 행성 087의 몬스터 메두사가 베이징 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속보입니다. 어제는 중국의 대표 헌터 양위복이 메두사와 싸우다가 온몸이 뱀에 물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함께 뉴스를 보던 레온이 말했다.
"메두사 아닌데."
나는 다시 한번 레온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스테노랑 에우리알레요. 아마 둘 중 한 명일 거예요."
TV에선 중국군 관계자가 나와 브리핑하는 모습이 나왔다.
- 눈이 마주치면 돌이 된다기에 카메라 등의 장비를 갖춰서 몬스터를 상대해 봤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눈이 마주친 통제실 병력까지 모두 돌이 되어버렸습니다.
"레온아, 그리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는 어떻게 메두사 목을 베었다고 했지?"
"청동 방패를 거울처럼 사용해서요."
"음, 청동 방패에 비해 카메라의 화질이 너무 좋아서 통제실 사람들까지 돌이 돼버린 걸까? 결국 간접적으로 봐도 발동이 된다는 건데."
대화를 듣고 있던 최수영이 놀라 물었다.
"그럼 그 몬스터가 생방송에 나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네?"
"그렇지.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 모든 언론에 절대 촬영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대."
"진짜 까다로운 몬스터가 나타났구나.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오빠는?"
이미 중국 정부의 협조 요청이 와 있는 상태였다.
수일 내로 베이징으로 떠나기로 일정을 잡아둔 상황.
나는 손에 들고 있는 VR 기기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조금 큰 선글라스와 같은 모양을 한 VR 기기였다.
"개발실에서 만들어준 이 VR을 쓰고 가려고 했는데, 오늘 뉴스를 보니 이것도 의미 없겠네."
중국으로 간다는 내 말에 황동민 개발실장이 하루 만에 만들어준 장비였다.
사실 특별할 건 없었다.
VR 기기 옆에 소형 카메라를 달아 VR의 화면과 연결해준 것.
과격한 움직임에도 벗겨지지 않게 이중 삼중으로 밴드도 달아주었다.
이렇게 하면 직접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겠다는 황 실장님의 계획이었는데, 지금 뉴스를 보니 전혀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수호 형, 그럼 어떻게 해요?"
"그냥 눈 감고 싸워봐야지, 뭐."
극도로 예민해진 다른 감각들, 그리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마나의 흐름에 의지할 수밖에.
최수영이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폭격에도 아무 상처도 안 입는다며. 혹시 마그네타 검도 안 통하면 어떡해?"
"그땐 천마 할배가 말한 대로 해야지."
"어떻게 하라는데?"
"두드려 패서 꽁꽁 묶어놓으래."
그때, 이혁진 실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이것 좀 보십시오."
이혁진 실장이 내민 태블릿에는 메두사의 언니로 추측되는 몬스터가 발견된 경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최초 발견된 하얼빈에서 최근 발견된 허베이성 청더(承德)까지.
"이게 뭐죠?"
"출몰 장소와 경로입니다. 출몰 지역별 피해자 숫자도 함께 나와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번 몬스터를 히드라(행성 087, 8등급)에 비견될 만큼 강한 몬스터로 보고 있죠."
태블릿을 잠시 들여다보자 이혁진 실장이 무얼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피해자 수가 너무 적군요. 출몰 장소도 뜨문뜨문 이고요."
"네, 맞습니다. 만약 히드라가 죽지 않고 이 경로대로 이동했다면 중국엔 이미 대재앙이 벌어졌을 겁니다."
딱히 대량 살상은 하지 않는 몬스터라…….
그렇다고 우호적인 것도 아니었다.
중국 최대 헌터 회사인 주하이의 헌터들을 몰살시켰으니.
"그러게요. 도대체 목적이 뭘까요? 이동 경로를 보니……."
"그냥 남서쪽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목적성이 보이지 않아요."
남서쪽이라. 행성 087의 몬스터가 나침반을 가진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인간들을 해치기 위해 도시를 찾아다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딜 가는 거지? 남서쪽.
순간, 테라 행성에 처음 떨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레온아! 그 메두사 자매, 신화 책에는 어디 산다고 나와 있어?"
"서쪽 끝 망자의 땅 근처요."
"알아냈다. 이동 목적."
* * *
며칠 후.
스테노가 잔뜩 인상을 썼다.
"어째 공기가 점점 탁해지는 것 같은데? 여기 인간들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는 거야?"
그때, 저 멀리 헬리콥터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스테노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또 대포알을 떨구러 오는 건가? 먼지 날려서 짜증 난다고."
점점 잦아지는 중국 군대의 공격에 짜증이 한껏 늘어난 상태였다.
"먼지 날리기 전에 부숴버려야지."
스테노는 황금 날개를 활짝 펼치고 헬리콥터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헬리콥터를 부숴버리기 위해 청동으로 된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헬리콥터에서 인간 하나가 튀어나왔다.
스테노를 향해 점프한 인간은 새까만 검을 휘둘렀다.
스테노는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저 검과 닿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스테노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검이 더 빨랐다.
스윽.
검이 스테노의 옆구리를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꺄악!"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소름 돋는 기분에 스테노가 소리를 꺅 질렀다.
자신의 몸을 헤집고 들어오는 검이라니.
날지 못하는 인간은 스테노의 허리를 베어낸 후 땅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스테노가 자신의 옆구리를 만져보았다.
"어?"
분명 새까만 검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스테노의 몸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뭐야, 괜히 깜짝 놀랐네. 그나저나 쟤, 신기한 인간이다."
땅에 떨어진 인간이 다시 자신을 향해 높이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 * *
분명히 베었는데.
마그네타 검이 몬스터의 허리를 베는 느낌이 분명히 느껴졌다. 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몬스터의 몸통은 여전히 붙어 있었다. 심지어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 같은 상태.
"마그네타 검으로 안 베어지는 건 처음이네."
이번엔 검기로 해보자.
나는 검에 내력을 주입해 검기를 뽑아내었다.
공중에 떠 있는 몬스터를 향해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촤아악!
몬스터를 향해 검을 뿌리자 짙은 묵빛 호가 그려졌다.
몬스터는 당황한 듯 급히 방향을 틀었다.
나 역시 손목을 조금 틀어 검기의 방향을 틀었다.
"꺄악!"
이번엔 검기가 몬스터의 몸통을 대각선으로 완전히 갈라버렸다.
몬스터가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으으, 이번 건 더 엄청나게 기분 나쁜 느낌이야."
하지만 몬스터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떠 있었다.
물론 몸통도 갈라지지 않았다.
"레온아,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어쨌든 네 예상대로네."
이어폰 너머에서 레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역시. 마그네타 검이 먹히지 않아요? 물체가 아닌 검기나 마법과 맞부딪혔을 때처럼 이번에도 베어지지 않나요?
"아니, 그거랑 달라. 베어지는데 안 베어져."
-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
"분명히 베었는데, 그대로야. 그렇다고 순식간에 재생이 된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칼로 물 벤 느낌?"
- 아,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강력한 자기장으로 모든 사물을 벨 수 있는 마그네타 검.
"안 베어진다니까."
- 그리고 신화에 의하면 절대 죽을 수 없는 불사의 몸. 그 둘이 만난 결과네요. 베어지지만, 베어지지 않는다.
"말장난하냐?"
- 말장난 같긴 하지만, 이게 사실인 걸 어떡해요. 마그네타 검으로 해치우는 건 포기하고, 더 늦기 전에 천마 할아버지가 하란 대로 해요.
"패서 묶어?"
- 네.
순간, 코앞에서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누굴 패서 묶어? 설마 나?"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다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몬스터의 몸통을 지나 두 다리가 보였다.
하마터면 눈을 마주칠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말이 통하네? 게다가 넌 눈도 안 가리고 나타났잖아? 어떻게 내 눈을 안 보는 거야? 실수로라도 마주칠 법한데."
이틀간의 특훈 결과였다.
안구의 시선을 추적하는 장비를 장착한 채, 특별히 편집된 수많은 눈 마주치는 영상을 보며 훈련했다.
내 시선이 화면에 그대로 표시되는 장치였다.
이틀 동안 훈련한 끝에 두 시간짜리 영상을 보는 동안 3,600번의 눈 마주침을 모두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반인보다 1,000배 이상 강화된 운동 신경과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번외 훈련으로 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영상에서 주요 부위에 시선을 주지 않는 연습도 해봤는데, 그건 실패했다.
최수영에게 뒤통수만 몇 대 맞게 되었다.
"훈련을 좀 하고 왔다. 너는 스테노냐, 에우리알레냐?"
"어? 너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여기 와서 날 아는 인간은 처음이네. 난 스테노야. 고르고네스 자매의 첫째지."
스테노의 목소리에서 전혀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긴장을 놓지는 않았다.
"나는 여기 지구에 살고 있는 김수호다. 여긴 어떻게 넘어왔지?"
물론 게이트를 통해 넘어왔겠지만, 내 질문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방문했냐는 뜻이었다.
마그네타 검에도 베이지 않는 신급 몬스터가 게이트에 실수로 빨려 들어왔을 리는 없을 테니까.
"무슨 작은 구멍이 생기길래 손을 넣어봤는데 쏙 빨려 들어왔어."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 대답으로 스테노의 이동 경로에 대한 내 추측은 더 확실해졌다.
"너, 지금 해가 지는 쪽으로 가고 있구나. 서쪽 황금사과 동산으로 가기 위해."
깡, 깡, 깡.
내 말을 들은 스테노가 박수를 쳤다. 청동으로 된 스테노의 양손이 부딪치자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맞아! 넌 정말 많은 걸 알고 있는 인간이구나. 대화도 잘 통하고. 마음에 들었어. 비록 날 보자마자 내 몸에 그 흉측한 검을 찔러넣었지만, 넌 특별히 봐줄게. 살려주겠어."
"애초에 인간들을 많이 죽일 생각도 없는 것 같던데?"
"……."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스테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분명히 인간 냄새가 나긴 하는데. 올림포스의 신이야? 반신(半神)인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것 같더라고. 뭐, 그렇다고 딱히 살생을 피하는 것 같지는 않고."
잠시 후.
"…처음엔 그냥 세상을 돌아다녀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어."
갑자기 스테노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주었다.
고르고네스 자매 셋은 서쪽 끝 땅에 살고 있었는데,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지루해 세상을 잠시 여행해 보기로 했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많은 인간과 심지어 몇몇 신까지도 돌로 만들어버리게 되었다.
눈을 마주치는 생명은 무엇이든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은 결코 그녀들이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을 뿐.
결국 여행을 포기하고 고르고네스 자매는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시도 때도 없이 영웅들이 이들을 처단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세 자매는 나중엔 찾아오는 영웅의 수를 세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러던 중,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의 몸이 아니었던 막내 메두사가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고 말았다.
잠시 여행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세 자매에게 그 대가는 너무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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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3,961개]
[단가 66억 원]
[평가 금액 224조 1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