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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98화 (98/200)

98화

* * *

"에우리알레와 나는 처음엔 그 페르세우스 놈을 잡아 죽이러 쫓아가려고 했어."

"하지만 세상에 다시 나가는 게 무서웠던 거구나."

나도 모르게 스테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있었다.

"무섭진 않았어! 하지만… 다시 세상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았어. 그렇게 에우리알레와 나는 다시 적적한 삶을 택했을 뿐이야. 막내의 복수도 포기한 채."

"그런데 이런 곳에 떨어져 버렸으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겠네."

"응, 맞아. 아, 아니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여행도 해보고 싶어. 휴, 나도 모르겠어."

스테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뱀 머리칼에 사자 코. 쭉 찢어진 입과 날름거리는 뱀 혀. 하지만 목소리나 말투는 아쉬움 가득한 여인의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조금 친밀감이 생겼다.

"궁금한 게 있는데."

스테노가 대답했다.

"뭐?"

"나한테 지금 이런 얘기를 다 하고 있는 이유가 뭐야?"

"네가 아까 그랬잖아. 내가 인간들을 많이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그건 그냥 이동 경로를 파악해 봤을 때……."

스테노가 내 말을 끊었다.

"두 동생을 제외하고는 내 마음을 알아준 건 네가 처음이야. 인간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전부 돌로 만들어버릴 생각은 아니었다고."

"두 동생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오래 대화한 상대도 처음이겠네?"

"응. 심지어 이제 막내 메두사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들도 가물가물해. 얼굴도. 우리 중에 제일 예뻤는데."

어느덧 스테노가 가고자 하는 서쪽 지평선 끝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스테노의 눈을 볼 순 없었지만, 그녀가 서쪽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스테노의 집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게."

"뭘?"

"여행도 하고, 동생에게도 돌아갈 수 있도록."

"진짜? 어떻게?"

* * *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

내 앞에는 짙은 녹색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이 여인은 정말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지금은 헤라클레스가 황금 사과를 훔쳐 갔던 이야기를 신나서 하고 있는 여인. 스테노였다.

일단 나와 같이 한국에 가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자기 모습을 바꾸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짙은 녹색 머리칼.

꼭 감은 채였지만 아름다움이 감춰지지 않는 눈매.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코.

붉고 생기발랄한 입술.

모델처럼 길게 뻗은 팔다리.

눈동자는 볼 수 없었지만, 분명히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야말로 여신과 같은 미모였다.

둘 다 자기 모습이라기에 어떤 게 진짜냐고 했더니 이제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짧은 여행 이후, 흉측한 외모를 계속 유지해 왔다고 했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해? 눈 감고 있는 거 너무 답답해."

"아직 좀 남았어. 약속했잖아.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는 눈 뜨지 않기로."

"알았어. 그때까지 눈 절대로 뜨지 않을게.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뭐?"

"너는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믿게 된 인간이야. 지금도 네 말만 믿고 내내 눈을 감고 있고."

"그래.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나한테 다 생각이 있다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네가 날 배신한다면 난 이 지구의 모든 인간을 돌로 만들어 버릴 거야. 너만 빼고."

"나는 왜 빼? 내가 배신자인데."

"그게 너한테 제일 괴로운 일일 테니까."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미리 준비되어 있던 헬리콥터를 타고 바로 강화도로 향했다.

본사 건물을 걸어 기술개발실에 들어갈 때까지 스테노는 약속대로 눈을 뜨지 않았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옆의 여자분은?"

전략실엔 미리 말해 주었지만 황동민 개발실장은 이 여자분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황 실장님, 그 소형 카메라 달려 있는 VR 장비 좀 주시겠어요?"

"그거요? 그 몬스터의 눈을 영상으로 봐도 돌이 되기 때문에 소용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반대의 경우라면 소용이 있을 것 같아서요."

"반대의 경우요?"

"일단 줘 보세요."

황동민 실장이 개발해두었던 VR 기기를 가져왔다.

다른 기능은 필요 없기에 일반적인 VR 기기보다 작고 얇게 제작되어 있었다. 대충 보면 흡사 선글라스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직접 스테노에게 장비를 장착해 주었다.

전원을 켠 후.

"이제 눈을 떠봐."

VR 기기를 쓴 스테노가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물론 스테노의 눈앞은 스크린과 강화 플라스틱으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상황. 대신 선글라스 옆에 달린 소형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스테노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눈동자는 보이지 않지만, 스테노가 나와 황동민 실장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때? 이제 눈 마주쳐도 괜찮지?"

스테노가 소리쳤다.

"수호!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왜 너희 둘은 돌이 되지 않는 거야?"

"지금 네 눈앞은 완전히 막혀 있어. 대신 작은 스크린이 세상을 보여줄 거야."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스테노가 해맑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청동 손으로 치던 박수와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이걸 쓰고 있으면 마음껏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야?"

"응."

스테노가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왈칵 안겨 왔다.

그때 개발실 문이 열리며 최수영이 들어왔다.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지금?"

* * *

오랜만에 느껴보는 냉랭한 분위기.

회의실엔 나와 최수영, 레온, 이혁진 실장, 스테노가 앉아 있었다.

스테노는 아직도 연신 주변 사람들과 열심히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최수영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몬스터를 잡으러 가서 예쁜 여자 친구를 만들어 오셨다?"

"여자 친구라니, 무슨 소리야."

"둘이 껴안고 있는 거 내가 다 봤는데?"

"오해야, 수영아."

"어쩐지 극구 중국에 혼자 가겠다더니. 이런 속셈이었어?"

"무슨 소리야, 이번엔 정말 너무 위험하니까 혼자 가겠다고 했잖아. 눈 안 맞추기 훈련을 완전히 통과한 것도 나뿐이고."

"아, 모르겠고. 이제 얼른 다시 돌려보내."

그때 스테노가 최수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구나? 얘기 들었어. 김수호의 사랑하는 피앙세."

냉랭한 분위기를 쏘아내던 최수영의 볼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여기 오면서 내 첫 인간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니 알게 되었지. 사랑하는 여인이 있더라고? 그게 너구나. 맞지?"

잠시 주변 눈치를 보던 최수영이 입을 열었다.

"그, 그래. 그게 나다. 어쩔래. 넌 빨리 너희 행성으로 돌아가."

스테노가 또 박수를 짝짝짝 쳤다.

"멋져. 책에서나 보고 얘기로나 들어봤지. 진짜 사랑하는 남녀라니. 너희는 내가 실제로 본 최초의 커플이야."

기분 탓인지, 민감해진 감각 탓인지 냉랭했던 회의실 안의 온도가 살짝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이혁진 실장이 입을 열었다.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표님. 이런 건 상상도 못 해봤어요. VR 기기를 역으로 스테노에게 씌우다니요."

레온이 거들었다.

"나도요! 수호 형, 정말 놀랐어요. 이제 스테노는 모두의 눈을 바라볼 수 있지만 누구도 스테노와 눈이 마주칠 일은 없겠네요."

이번엔 조금 부드러워진 최수영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스테노 씨. 이제 어쩔 계획인가요?"

스테노가 대답했다.

"에우리알레에게 돌아가야지. 수호가 이 안경 하나 더 만들어준다고 했어. 에우리알레 것까지. 에우리알레도 엄청 좋아할 거야."

최수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좀 천천히 가려고. 호호호. 급할 거 없잖아? 내 여행은 이제 시작됐으니."

레온이 물었다.

"그럼 어디를 여행할 계획인가요?"

"오면서 들어보니 너희들은 마법진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몬스터와 싸운다지? 나도 따라다닐 거야. 진짜 재밌을 것 같아. 마법진으로 떠나는 용사의 모험이라니."

뭐? 우릴 따라다닌다고?

스테노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스테노. 여행하게 도와준다고 했지 같이 몬스터를 잡자는 말은 아니었어."

"누가 같이 몬스터를 잡재? 나는 구경만 할 거야. 방해 안 될 테니 걱정하지 마. 한동안 수호 너 따라다니다가, 지루해지면 알아서 떠날게."

아, 뭔가 일이 꼬여가는 느낌이다.

회의실의 공기가 다시 조금씩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흥."

최수영이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 * *

스테노는 내내 옆에 붙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종일 종알대는 스테노는 최수영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와, 저기 봐. 완전 여신이야, 여신."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로도 가려지지 않는 빼어난 미모는 항상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최수영에게 부탁해 입을 옷 몇 가지를 사주었는데, 이런 건 어디서 파냐고 묻더니 결국 지금은 백화점에 오게 되었다.

물론 최수영도 함께였다.

스테노는 최수영의 팔짱을 끼고 수십 벌의 옷을 사며 돌아다녔고, 둘의 취향이 잘 맞는지 어느새 패션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이미 백화점을 몇 바퀴째 돌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스테노는 선글라스 매장 앞에 멈추어 섰다.

아무래도 황동민 개발실장의 센스가 들어간 VR선글라스와는 많이 다른 화려한 선글라스들.

"이것들은 내가 쓰고 있는 거랑 다른 거지?"

최수영이 답했다.

"응, 언니. 언니 거는 앞이 막혀 있지만, 이것들은 그게 아니라 쓸 수 없어."

잠깐만. 언니라고?

언제부터 둘이 언니 동생이 된 거야? 그렇게 냉랭한 기운을 내뿜더니, 고작 쇼핑 한 번으로?

못내 아쉬운지 스테노가 예쁜 선글라스들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점원이 한번 써보시라고 추천하는 걸 급히 막았다.

백화점 안 사람들을 모두 돌로 만들 순 없으니까.

대신 스테노에게 말했다.

"너무 테가 얇은 건 말고, 몇 개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어두운색으로. 그 모양 그대로 VR선글라스를 만들어 달라고 해볼게."

"정말?"

스테노가 팔짝팔짝 뛰며 또 내 팔짱을 끼었다.

방금까지 언니 언니 하며 세상 좋은 웃음을 짓고 있던 최수영의 눈이 금세 세모 눈이 되었다.

"같은 걸로 두 개씩. 알지? 우리 에우리알레도 갖다 줘야 하니까."

"응. 많이 만들어줄 테니까 걱정 마."

쇼핑을 마치고 강화도로 돌아가는 차 안.

새로 산 토트백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스테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수호."

"왜?"

"그런데 넌 마물들하고 무슨 원수진 일이라도 있어?"

"마물이라니? 갑자기?"

"오늘도 계속 여기저기 공간 뒤에 숨어서 우릴 지켜보는 것 같던데, 수호 네가 아니면 나한테 용무가 있는 건가? 나는 마물하고 딱히 원한이 없는데."

최수영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언니, 우릴 지켜보는 마물이 많아? 계속 따라다녀?"

"응. 계속 바뀌면서 따라다녀."

스테노가 손가락을 들어 오른쪽 창문 밖을 가리켰다.

"지금도 이쪽에 한 놈 있어. 지구엔 마물이 꽤 많네?

* * *

12월 5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4,281개]

[단가 66억 원]

[평가 금액 226조 2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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