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99화 (99/200)

99화

【 귀마왕 (2) 】

딱!

짝!

가부좌를 틀고 있는 천마의 두 제자가 뒤통수와 등짝을 얻어맞았다.

천마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쭈? 이놈들 봐라? 어서 다시 집중 안 해?"

탁!

짝!

연속으로 같은 곳을 두들겨 맞았지만 이근수와 정성민은 다시 집중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녹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테노를 바라보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선글라스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저걸 벗으면 자신들이 당장 돌로 굳어버릴 거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겠지.

한편, 천마는 스테노의 미모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천마는 눈을 찌푸린 채 나와 스테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번엔 또 뭘 데려온 것이냐? 귀신이냐?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네?"

"이쪽은 스테노예요. 스테노, 이쪽이 제가 말한 천마 어르신."

아차, 스테노에게 천마는 어르신이 아니지.

몇 년을 살았는지 세어보지도 않았다는 존재. 어쩌면 수천 살이 넘었을 수도 있다.

뭐, 어쨌든. 외모로는 천마가 어르신이니까.

"반가워, 천마. 난 수호의 친구 스테노야."

"이 귀신이 그 눈을 마주치는 상대는 모두 돌로 만든다는 그 괴물이냐?"

스테노와 천마는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수호, 쟤 뭐라는 거야? 별로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야, 천마 할배 말투가 원래 저래. 그냥 만나서 반갑다고 얘기하는 거야."

"그래? 그럼 뭐. 나도 반갑다고 전해 줘."

천마가 물었다.

"그래, 오늘은 어쩐 일이냐? 저 여자 귀신을 소개해 주러 온 것이냐?"

"천마 할배, 스테노 말고 진짜 귀신 얘기하러 왔어요."

"진짜 귀신?"

"귀마왕이요."

천마의 미간에 내 천 자가 새겨졌다.

"나타났느냐."

"아직이요. 그런데 스테노의 말에 의하면 마물들이 공간 너머에서 우릴 계속 지켜보고 있대요."

"곧 나타나려는 모양이구나."

"이번엔 어떤 식으로 어디로 나타날지 걱정이네요."

"잊지 않았지? 귀마왕 그놈은 내 몫이다."

"알겠어요. 아무튼 준비나 단단히 해놓으세요."

"이미 준비는 끝났다. 내 인생의 마지막 대결이니 멋지게 준비해 두었지."

이땐 천마의 말뜻을 알지 못했다.

* * *

스테노의 환영파티를 겸해서 천마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오늘도 고기 굽는 건 추멸염화 장희철, 서빙은 천보익비 제갈평의 몫이었다.

쌀쌀해진 겨울 날씨에 장희철은 우리를 빙 둘러 불의 장막도 쳐 주었다.

운치 있고 따뜻한 바베큐 파티였다.

"그러니까, 네놈의 까만 검이 저 여인의 몸을 반으로 갈랐는데도 칼로 물 베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 서로 설정 충돌이 일어나는 모양이에요. 스테노는 불사의 몸이니 어떤 공격에도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없는데, 이 검은 또 어떤 사물이라도 두 갈래로 베어버려야 하거든요."

우리가 사는 곳이 정말 메타버스라면, 이 정도 설정 충돌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 볼까?"

천마의 손가락에서 탄지공 하나가 쏘아져 나갔다.

"천마!"

다급히 말려보려 했지만 탄지공은 어느새 스테노의 어깨를 강타했다.

스테노의 어깨에 부딪힌 탄지공은 저 멀리 튕겨 나가버렸다.

스테노의 코트에 작은 구멍이 생겨났다.

최수영, 레온과 바베큐를 즐기던 스테노가 천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따가워. 뭐야? 너. 죽을래?"

스테노가 천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VR선글라스로 손을 가져갔다.

나는 다급히 손을 뻗어 스테노의 팔을 잡았다.

"스테노, 지구인 앞에선 그거 안 벗기로 약속했잖아요."

"저놈이 자꾸 건드리잖아. 수호야, 쟤 하나만 그냥 얼른 죽이면 안 돼?"

"안 된다니까요."

스테노가 가늘고 긴 검지를 펼쳐 천마에게 향했다.

"야, 너. 한 번만 더 나 건드리면 진짜 가만 안 둬."

이번엔 천마가 역정을 냈다.

"저 처녀 귀신 같은 여자가 뭐라는 것이냐? 지금 나한테 삿대질을 하는 것이냐?"

그때 다행히 천보익비 제갈평이 테이블에 고기를 올려주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고기로 향했다. 누가 보아도 가장 모양이 예쁜 두꺼운 알등심이 스테노의 앞에 놓였다.

제갈평은 스테노에게 고기를 맛보라는 손짓을 보냈고, 스테노는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목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제갈평의 두 다리에 퍼져 있던 내력이 잠시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걸 느낀 건 나뿐이 아닌 것 같았다.

"쯧, 제갈평 네놈이 수행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구나. 내일부턴 신입 제자 놈들과 함께 네놈도 내공심법 수련에 참여하거라."

"교주님! 어찌 제가 저들과 함께……."

"항명하는 것이냐?"

"조, 존명."

새우살을 입 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던 레온이 물었다.

"형, 이번엔 귀마왕이 어떤 식으로 쳐들어올까요? 이번에도 강화도로 직접 쳐들어오겠죠?"

"글쎄, 지난번처럼 차원 통로 같은 걸 열어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려나? 어쨌든 방비를 철저히 해야 하겠어."

"이게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일단 본사 건물 여기저기에 마법진으로 결계를 만들어 놨어요. 혹시 놈들에게도 통한다면 전처럼 건물 안에서 불쑥 나타나지는 못할 거예요."

"고마워 레온. 역시 대마법사라니까."

"그런데 형, 새로운 마법 연습은 좀 했어요?"

"응. 워프 마법 정도는 어느 정도 마스터 했고, 나머지 전투에 쓰일 만한 마법들도 연습 중이지."

"형은 마나 친화력도 높고 똑똑하니까 금방 익힐 수 있을 거예요."

나와 레온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천마가 입을 열었다.

"저 색목인에게 마법인가 하는 것을 배우고 있느냐?"

"네. 전투에 유용할 만한 것들이 많아요."

"내공심법 수련은 잘 되어가고 있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천마. 제가 무슨 내공 수련을 해요."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네놈 몸속 내공의 흐름이 여기 올 때마다 바뀌어 있는데."

역시 천마는 속일 수 없었다.

"그냥, 할배가 워낙 제 내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고 하시니 좀 모아볼까 했죠."

"제자로 삼겠다거나 하지 않을 테니 당분간 매일 들러라. 네놈에게 맞는 심법을 알려주마."

"…그래도 될까요?"

"네놈이 예뻐서가 아니다. 그 막대한 내공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다."

안 그래도 혼자 하기엔 막히는 게 많았던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천마."

* * *

새해가 되었고, 한 달 정도가 더 흘렀다.

두 달 동안 스테노는 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동안 총 12회의 게이트 파견이 있었는데, 파견 요청이 올 때마다 스테노는 뛸 듯이 기뻐했다.

마법진으로 이동해 새로운 나라를 구경하는 게 너무도 좋은 모양이었다.

최수영은 스테노를 질투하다가 또 언니언니 하고 친하게 지내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동안 레온이 정리해 준 마법을 독학하면서 천마에게 내공심법을 배웠다.

완전하진 않지만, 몸 안의 내력이 제법 정제되어 단전에 머물게 되었다.

1월 30일, 금요일.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건물 옥상에서 꽝이와 놀고 있었다.

난간에 올라가 애교를 부리는 꽝이를 바라보다 문득 건물 아래를 보게 되었다.

웬 거지꼴을 한 사내 하나가 본사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너무 먼 거리라서 봐서 확실치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대로 난간을 가볍게 넘어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콰앙!

갑자기 눈앞에 내가 내려서자 비쩍 마른 사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가까이에서 보니 누군지 확실해졌다.

4년 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얼굴.

중학교 동창. 나에게 넥시트 코인을 준 친구.

"야! 허염환!"

내 눈앞에는 깜짝 놀란 표정의 허염환이 서 있었다.

"수, 수호야."

"너 어떻게 된 거야? 그동안 어디 갔었어? 나 찾아온 거야?"

"그냥, 내 예상보다 네가 너무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그 유명한 메타디펜스 본사 건물 좀 보러 왔어."

"그럼 들어와서 날 찾을 것이지 왜 밖에 이러고 서 있어?"

"하하. 만나러 온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만나버렸네."

"그건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놓고 안 만나는 건 또 뭐야. 아무튼 잘 왔다. 진작 좀 찾아오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허염환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 뭐. 이쪽저쪽 통틀어 유일한 내 친구. 김수호. 어쨌든 기왕 만났으니 밥이나 좀 사줘라. 몸보신 되는 걸로."

4년 만에 나타나 또 알아듣기 힘든 말을 내뱉는 허염환이었다.

"이쪽은 뭐고 저쪽은 뭐야? 일단 가자. 밥부터 먹을까? 몸보신 되는 거? 장어 먹을까?"

"그래. 장어 좋네."

허염환을 데리고 인근 장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 좀 해봐. 그동안 어디 갔었어?"

"글쎄, 지극히 정상인인 너한테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될지 아직 감이 안 오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넌 뭐 비정상인이야?"

"뭐 별건 아니고. 넥시트가 만든 가상 현실과의 링크 감도가 떨어지는 체질을 타고났다고 해두자."

일단은 잘 구워진 장어를 허염환의 앞에 놓아주었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네. 일단 좀 먹어. 그런데 넥시트? 그건 코인 이름 아니냐?"

"이곳의 코인 이름이기도 하고, 현실과 링크된 대규모 가상 현실을 만든 AI의 이름이기도 하지."

"가상 현실? 그래. 네가 중학생 때부터 말해 왔던 대로 여기가 메타버스 속 가상 세계라는 거지?"

"그것보단 좀 복잡해. 가상 세계이기도 하고 가상 세계가 아니기도 해."

그동안 얼마나 굶고 지냈는지 허염환은 장어를 씹어 삼키기도 버거워했다.

"그만 물을게. 일단 먹자. 사장님! 여기 장어탕도 하나 주세요."

그래도 장어탕은 쉽게 넘어가는지 열심히 떠먹기 시작했다.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진 모르겠지만, 밥은 잘 먹고 지내야지. 이참에 여기 강화도로 들어와. 아무것도 안 묻고 아무것도 안 시킬 테니까 여기서 그냥 편하게 지내."

장어탕을 크게 한 숟갈 삼킨 허염환이 피식 웃었다.

"풉. 역시 이쪽 김수호나 저쪽 김수호나 나 먹을 거 걱정해 주는 건 똑같네."

"뭐래. 하하. 저쪽 김수호는 나를 조종하는 녀석이냐?"

"아니, 그냥 너지. 인격도 성격도 완전히 똑같은 너. 주변 환경만 다를 뿐이야."

"네가 말하는 그쪽에서도 우리는 친구야?"

"응. 처음엔 넌 나를 몰랐지만, 내가 너에게 다가갔지. 네 취향, 성격, 개그 코드. 모든 걸 알고 있는데 너랑 못 친해질 이유가 없었지."

"그래? 하하하. 잘했네. 그럼 넌? 그쪽의 너도 여기랑 똑같아?"

"음. 아니, 난 달라. 완전히 정반대지. 하하. 지금의 네가 저쪽의 날 보면 정말 깜짝 놀랄 텐데. 거기선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내가."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나타나선 장어탕을 겨우 우물거리고 있는 이 허염환이?

"네가? 열정? 하하하. 말이나 되는 소릴 해라."

"아, 씨. 정말인데 증명할 방법이 없네. 그렇다고 여기서 잘 지내는 너한테 굳이 쓸데없는 얘기를 잔뜩 들려줄 수도 없고."

"당장은 알아듣기 힘들긴 한데, 뭐 천천히 얘기해 봐. 예전처럼."

"아니야. 이 이상의 얘기는 너한테 혼란만 줄 뿐이야. 자칫하면 그 영향이 진짜 김수… 아니, 저쪽 김수호에게 갈 수도 있어."

"그래서 안 알려주시겠다? 이럴 거면 애초에 17년 전부터 아무것도 말해 주지 말지 그랬냐?"

"그땐 지금보다 어렸고,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있었어야지. 하하."

* * *

1월 3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8,001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54조 6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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