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103화 (103/200)

103화

【 카리브디스 】

이미 사람들은 다 피했는지 게이트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게이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 헬리콥터가 착륙했다.

디펜서들은 일사불란하게 접근금지 라인을 치고 임시 상황실을 만들었다.

스테노가 말했다.

"엄청 징그러운 애들이네."

골프장 위에는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디펜서 1팀, 혹시 대피 못한 일반인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몬스터는 저 혼자 처리합니다."

스테노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부하들도 많은데 왜 너 혼자 처리해?"

"오늘은 시험해 볼 게 좀 있어서."

스릉.

마그네타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게이트로 다가갔다.

왼편에 코끼리만 한 몬스터가 보였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코끼리와 비슷한데 얼굴엔 코 대신 기다란 뿔이 달려 있었다.

코 대신 뿔이 달려 있으니 뿔끼리라고 불러야 하나?

촤악.

뿔끼리를 향해 검을 대충 휘둘러 보았다.

날카로운 검기가 뿜어져 나와 뿔끼리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

옆에 바싹 붙어 따라오던 스테노가 물었다.

"수호, 움직임이 좀 달라졌네?"

"어떻게?"

"글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어. 그 새까만 검기도 훨씬 날카로워졌고."

스테노의 말대로 확실히 몸의 움직임이 가벼워지고 검기 또한 날카로워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실처럼 세밀하게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이 주변의 모든 상황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보지 않아도 볼 수 있었고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발밑으로 마나를 흐르게 해보았다.

마나가 땅과 발바닥 사이를 지나며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몸이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하늘 높이 올라간 후 검을 검집에 꽂아 넣고 양손으로 마법구를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마법구가 생겨났다.

가볍게 손을 흩뿌리자, 수십 개의 마법구가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몬스터에게 동시에 날아갔다.

펑, 퍼엉!

몬스터들의 머리가 잇달아 터져 나갔다.

분명 예전과 같은 마법이었지만, 효율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던진 것도 아니고 좌표를 계산해 쏘아 보낸 것도 아닌데, 마법구들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때, 게이트에서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튀어나왔다.

크기로만 따지면 8등급 몬스터 히드라보다도 더 컸다.

몸통엔 크고 작은 뿔이 돋아나 있었고, 네 개의 다리 외에 두 개의 팔이 더 달려 있었다.

온몸이 바위와 같은 재질이었다.

긴 목 위엔 커다란 머리통이 달려 있었는데, 길게 찢어진 입 밖으로 송곳니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다.

마침 적당한 놈이 튀어나왔다.

대천흑룡도 달라졌는지 시험해 볼 만한 놈.

검을 뽑아 들고 내력과 마나를 동시에 밀어 넣었다.

강력하고 정순한 내력과 균형을 맞추려는 듯 마그네타 검이 강하게 진동하며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준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콰과과.

검에서 묵빛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보다 두 배는 커져 있었다.

물결치듯 요동치며 뻗어 나간 기운은 거대한 몬스터의 몸통을 향했다.

퍼엉!

돌처럼 단단해 보이던 몬스터의 몸통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대천흑룡은 그 후에도 지치지 않고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갔다.

몬스터가 있던 자리엔 커다란 구멍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전과 비교할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 대표님 공격의 위력이 훨씬 커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늘을 날고 계신 거죠?

이혁진 실장의 놀란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그러게요. 마저 채굴합니다."

나는 공중을 이리저리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대충 휘저은 검의 길이 곧 최적의 검로가 되었다.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적들이었지만, 자연스러운 움직임 중엔 어떠한 빈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몸 안의 내력과 몸 주변의 마나는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 * *

대표실로 비서가 들어왔다.

"대표님, 지구방위위원회에서 회의를 소집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회의요? 언제요?"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안건은요?"

"재외공관 설치 추진 계획 발표라고 합니다."

"참석한다고 회신 보내주세요."

"네, 대표님."

비서가 나간 후 달력을 보았다.

다음 주 수요일.

한국의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올해는 아버지 산소에 하루 일찍 다녀와야겠네."

"애옹―"

혼잣말에 반응하듯 꽝이가 책상 위로 사뿐히 뛰어 올라왔다.

꽝이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있는데 대표실 문이 벌컥 열렸다.

대표실 문을 저렇게 노크도 없이 열 수 있는 사람은 이 회사에 단 두 명.

최수영과 스테노뿐이었다.

지금 들어온 건 스테노였다.

"수호."

"왜? 무슨 일이야?"

"심심해. 혼자 다니는 건 별로 재미없고. 여행 가자."

"안 그래도 이제 곧 지겹게 여행하게 될 거야. 그것도 무려 행성 여행."

"행성 여행?"

"응. 이제 곧 내가 말해 줬던 행성들을 하나씩 돌아볼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다가 스테노의 행성에 도착하면 동생도 만날 수 있고. 다시 거기서 동생이랑 행복하게 살아."

"와, 진짜? 완전 좋아."

"우선 다음 주에 미국부터 같이 가자."

"미국?"

"지구에서 제일 부자인 나라."

"오! 재밌겠다!"

그때 최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국을 간다고?"

최수영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엔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녀였는데, 요즘 자꾸 치마를 입는다 했더니 오늘은 아예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가만, 원피스는 스테노 취향인데?

스테노는 오늘도 날씨와 상관없이 하늘거리는 원피스 차림이었다.

최수영은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한 색의 니트로 짜인 딱 붙는 원피스.

둘의 의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느껴졌다.

"지구방위위원회에서 회의를 연대. 재외공관 설치를 추진하려나 봐."

"그래? 그거 잘됐네. 아니다. 이제 우리 또 고생길 시작인가?"

"어쩔 수 없지. 언제까지 다른 행성에 떨어질 지구인들을 방치할 순 없잖아. 정 가기 싫으면 지구에 남아도 돼."

최수영이 스테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언니, 갈 거죠?"

"응. 당연하지. 행성 여행에 내가 빠질 리 없잖니?"

최수영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갈 거야."

일주일 후 최수영, 스테노와 함께 뉴욕으로 향했다.

지난번과 같이 버몬트주로 워프한 후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지구방위위원회 직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과 함께 특별작전국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왠지 지난번 만찬 모임 때와는 다르게 정문부터 삼엄한 경비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건물 이곳저곳도 손을 많이 본 것 같았다.

다시 제대로 특별작전국으로 이용할 모양이었다.

지하에 있는 널찍한 회의실로 들어서자 이미 많은 헌터와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스테노의 빼어난 미모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여신이 강림한 줄 알았어. 선글라스를 쓴 여신이라니. 김수호 헌터와 함께 왔네?"

스테노와 다니면서부터는 항상 있던 일이라 이제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난번 만찬 때 보였던 헌터들이 대부분 참석해 있었다.

위원장이 앞으로 나와 인사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지난번 만찬 모임 이후 지구방위위원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재외공관 설치 계획을 세워보았습니다. 이후 브리핑은 리암 소령님이 진행해 주시겠습니다. 브리핑 이후 세부 사안에 대한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위원장의 소개를 받은 리암이 발표석에 서자 대형 스크린에 브리핑 자료가 띄워졌다.

"우선, 이동 편의성을 위해 대규모 군대를 대동하는 것보다는 소수 정예로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5개 대대의 기갑부대와 공병부대가 움직일 계획입니다."

화면에는 미군 기갑부대의 훈련 영상이 띄워졌다.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전차와 장갑차들이 종횡무진 움직이며 포격을 퍼붓는 훈련이었다.

이번에 새로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M1A3 전차도 영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5개 대대로 구성한 걸 보니 행성마다 1개 대대씩 상주시킬 계획인 것 같았다.

"그리고 각 재외공관에 필수로 필요한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함께 떠날 것입니다. 특히 유지 보수와 원활한 확장을 위해 최고의 건축공학자들이 해당 행성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재외공관을 설계할 것이고, 자원해서 그곳에 머물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각 분야의 전문가, 기술자 약 100여 명이 각 행성 재외공관에 상주할 예정입니다."

브라질에서 온 헌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럼 다섯 개 행성에 상주할 전문가가 500명이 넘게 필요하다는 건데. 도대체 누가 자원해서 그런 위험한 행성에 가서 산답니까?"

리암 소령이 답했다.

"5년 근무 조건으로 이미 대부분 자원자가 선발되었습니다. 인류 공통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요. 군부대도 마찬가지로 5년 주둔 계획입니다."

"그 이후에는요?"

"그들과 교대해 줄 두 번째 세 번째 병력과 전문가가 다시 행성 여행을 시작해야겠지요."

독일 출신 헌터가 손을 들었다.

"재외공관을 꽤 크게 설치할 거라고 들었는데. 그 인원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까?"

"자동화 로봇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입니다."

이후로도 약 삼십 분간 리암 소령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언제 블랙 게이트로 빨려 들어갈지 모르는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위한 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기 계신 헌터님들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충분한 보상을 약속드릴 테니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보상이라.

지금 각국 대표급 헌터로 활동하고 있다면 이미 돈이 셀 수없이 많거나, 채굴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일 것이다.

어지간한 보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헌터가 물었다.

"출발 시기와 진행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출발 준비는 상반기 내에 마칠 예정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게이트 반대편이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관계로 지구로 돌아오기까지의 소요 기간은 정확히 예측이 힘듭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최소 반년에서 최대 삼 년 사이로 예상됩니다."

최초 게이트 발생 당시, 내가 지구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기간이 2년.

지금은 게이트 발생 빈도가 훨씬 높아졌지만, 대규모 인원이 움직여야 하다 보니 어쩌면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제일 문제는, 게이트 너머 행성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5분의 1 확률로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

* * *

같은 시각, 행성 094.

"꾸에엑."

커다란 몬스터의 목이 툭 떨어졌다.

쿠라타니 후지로는 신경질적으로 카타나에 묻은 녹색 피를 털어냈다.

"젠장. 이 지저분한 행성만 벌써 몇 번째 오는 거지. 빨리 지구로 돌아가야 N마켓에서 뭘 더 사든 할 텐데."

후지로의 옆에 있던 기사가 물었다.

"하지만 그 검으로 계속 사냥하실 때마다 코인인가 그게 더더욱 쌓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지구에 돌아가서 휴대폰을 충전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시지 않습니까. 이미 한참 전에 가엘 기사단장쯤은 넘어서지 않으셨습니까?"

"3년 전, 사무엘과 기사단장을 동시에 상대하고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는 그 지구인. 그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할지 모른다."

후지로의 일본도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검기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거대 몬스터의 목을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불사의 몸. 게다가 채굴도 내가 더 많이 했을 테니 이제 N마켓에 접속만 하면 된다. 김수호 그놈에게 복수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후지로와 그의 추종자들 주변엔 수백의 몬스터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 후지로의 검기에 의해 목이 날아간 몬스터였다.

"가자. 또 다음 게이트를 찾아야지."

* * *

2월 18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39,969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67조 8천억 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