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 *
공중에서 보자 놈의 입이 처음 봤을 때보다 열 배 이상은 더 커져 있었다.
저게 몬스터의 주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저 소용돌이 또한 장관이었다.
폭포 아래쪽 대부분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나이아가라 강물이 놈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게 포세이돈과 가이아의 장녀란 말이지.
두 번째로 만나는 행성 087의 '신급' 몬스터였다.
첫 번째는 물론 불사의 스테노.
물론 지금은 몬스터라고 하기엔 너무 예쁜 외모를 하고 돌아다니고 있지만.
날아오면서 레온에게 걸었던 전화가 연결되었다.
- 네, 수호 형.
"레온, 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카리브디스 알아?"
- 알죠. 하루 세 번 바닷물을 빨아 먹고 다시 내뱉는 신급 몬스터요.
"신급 맞네. 지금 그게 지구에 나타났거든. 이것도 불사의 몸이야?"
- 어,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엄청 먹어서 불사에 가까운 몸이겠지만, 그 뒤로는 못 먹었으니 불사는 아닐 거예요. 원래 불사의 몸이 아닌 이상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는 계속 먹어야 불사의 몸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그럼 죽일 순 있단 말이네?"
- 그렇죠. 하지만 쉽지 않을걸요. 신화에서는 너무 강력해서 그냥 다들 카리브디스가 있는 해협은 피해 다니는 걸로만 묘사가 되어 있어요. 영웅들도요.
"아,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놈은 아닌가 보지?"
-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알았어. 고마워, 레온아."
큰 부담은 없었다.
난 하늘에 떠 있고, 저 몬스터는 물속에서 물이나 빨아 먹고 있었으니까.
죽일 수 있으면 좋고 못 죽이면 별수 없는 거지 뭐.
혹시 못 죽인다고 하더라도 세계적 관광지 하나 없어진 셈 치면 그만일 일이었다.
아니지. 오히려 하루 세 번 저 소용돌이를 보러 관광객들이 몰려오려나?
어쨌든 몬스터니까 한번 잡아보기로 했다.
행성 087의 신급 몬스터를 잡으면 몇 코인이 들어오는지도 확인해 볼 겸.
마그네타검을 뽑아 들고 내력과 마나를 동시에 주입했다.
신급이라는 점과 엄청난 크기를 고려했을 때 적당한 대천흑룡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만들었던 대천흑룡 중 가장 강한 놈을 준비했다.
몸 안의 내력이 검으로 계속 주입되었고, 마그네타 검은 눈에 보일 정도로 요동치며 주변의 마나를 흡수했다.
콰과과!
나도 깜짝 놀랄 만큼 강한 기운이 검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천흑룡은 그대로 카리브디스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강물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그어어어."
낮은 음의 듣기 싫은 소리가 일대를 가득 메웠다.
강물 표면에 가까웠던 놈의 입이 물속으로 잠겼다.
잠시 후 소용돌이도 서서히 멈추는 듯했다.
해치운 건가?
그때였다. 온몸의 감각이 위험을 경고함과 동시에.
촤아악!
물속에서 기다란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나에게 뻗어져 나왔다.
갑자기 눈으로 뭐가 날아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 눈을 감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 주변 마나를 운용해 촉수를 피해 냈다.
피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마나를 운용하진 않았는데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촤악, 촤악.
물속에서 계속해서 촉수가 뻗어 올라왔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두께와 길이를 자랑했고, 끝은 뾰족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검기를 뽑아내어 촉수를 자르고, 또 다른 촉수를 피해 내고를 수십 차례.
물속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촉수가 튀어 올라왔다.
어느새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이 물속에서 튀어나온 촉수로 가득 차버렸다.
동시에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촉수들을 피하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날아든 촉수 하나가 발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끝은 뾰족하지만 점점 두꺼워지는 촉수.
그대로 촉수가 발을 뚫고 올라오게 했다가는 발등이 터져버릴 것이었다.
얼른 발을 빼낸 후 대천흑룡을 크게 한번 날렸다.
대천흑룡에 맞거나 스친 촉수들이 우수수 터져 나갔다.
뻥 뚫린 발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훨씬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신급 몬스터의 강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크기가 너무 크고 촉수의 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검으로 아무리 베어버려도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재생되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한 방에 안 죽는다고 하더라도 대천흑룡을 연속으로 퍼부어 거대한 몸을 다 터뜨리려고 했었는데 너무 빠른 촉수 공격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놈의 본체는 몇 번 공격해 보지도 못하고 계속 촉수를 베거나 피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나에게 집중된 촉수가 닿지 않는 높은 하늘에서 스테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자고 했잖아."
"스테노! 멀리 빠져 있어! 너 이 몬스터한테 잡아먹히면 영원히 저 뱃속에서 살아야 한다며!"
"쳇, 뭐야. 내 걱정해 주는 거야, 지금?"
그때, 또다시 피하지 못할 각도로 촉수 하나가 찔러 들어왔다.
이번엔 등 뒤였다.
이대로 찔리면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수도 있었다.
다급히 실드를 등 뒤로 펼쳐 내었다.
콰직.
촉수는 실드를 금방 깨부수고 들어왔다.
내구도를 10단계까지 강화했는데도 내 발을 아무렇지 않게 뚫어냈을 정도니, 물리 공격에 약한 실드 마법으로는 결코 이 촉수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실드와 촉수의 충돌로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그사이 앞선 촉수들을 빠르게 잘라내며 겨우 몸을 옆으로 틀어 등을 찔러오던 촉수를 피해냈다.
머리 위에서 또 스테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김수호."
"멀리 가라니까 왜 자꾸 말 걸어! 나 바빠!"
"어떻게든 카리브디스를 물 밖으로 꺼내 봐."
"뭐?"
"일부분이라도 물 밖으로 꺼내 보라고. 쟤 눈 여러 개 달린 거 봤지?"
스테노가 자신의 VR선글라스를 만지작거렸다.
* * *
스테노는 생각했다.
'에휴, 저 멍청이. 괜히 건드리지 말고 가자니까.'
김수호가 누구보다 강한 인간이란 건 그동안 봐와서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상대는 달랐다.
생긴 게 저래서 그렇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카리브디스를 돌로 만들어버린 걸 들키면 포세이돈이 날 가만두지 않을 텐데.'
여러 이유로 가급적이면 얽히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사귄 친구가 카리브디스의 촉수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김수호의 능력이라면 그냥 멀리 달아나버려도 될 텐데.
그러면 카리브디스가 폭주해서 저 촉수로 지구인들을 무차별 살해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김수호는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고 카리브디스의 촉수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쳇. 그 와중에도 내 걱정을 해주다니.'
여러모로 외면할 수 없는 친구였다.
잠시 후, 스테노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김수호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체를 향해 그 검은 기운을 쏘아낼 틈만 찾고 있던 김수호가 지금은 이리저리 촉수를 피하며 폭포 쪽을 향하고 있었다.
본체를 공격할 틈을 노리지 않으니 조금 더 여유롭게 촉수를 피해 다녔다.
'뭐 하려는 거지?'
스테노는 김수호가 걱정되긴 하면서도 섣불리 아래로 내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저 촉수한테 잡혀서 카리브디스에게 먹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원의 세월 동안…….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때, 김수호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촉수들을 향해 그 강력한 검은 기운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쾅, 콰앙.
그런데 가만 보니 김수호의 공격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김수호의 기운은 촉수들을 뚫고 폭포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아하."
스테노가 낮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폭포.
바꿔 말하면 이 강 주위는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쿠궁, 쿵!
김수호의 검은 기운이 절벽에 커다란 구멍을 여러 개 뚫어내자, 거대한 절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앙, 쿠르르!
땅이 울리고 하늘이 떨리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바위와 흙더미가 강물로 떨어져 내렸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고 흙먼지가 일대를 자욱하게 덮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이루던 거대한 절벽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무너진 절벽의 잔해는 강의 절반 정도를 메워버렸다.
강 아래에 가득 찰 정도로 커져 있던 카리브디스는 바위와 흙더미에 밀려 강물 위로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스테노는 천천히 VR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는 양손을 넓게 펼쳤다가 강하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두 눈은 카리브디스의 눈동자에 고정한 채였다.
깡, 깡, 깡!
청동 손이 맞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하던 카리브디스의 눈동자가 스테노의 눈동자와 마주 보게 되었다.
콰드드드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신 가이아의 장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존재.
거대한 신급 몬스터 카리브디스의 몸이 돌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 * *
다시 선글라스를 낀 스테노가 내 옆으로 날아왔다.
"혹시 혼자 상대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내가 끼어든 거 아니지?"
"그럴 거면 굳이 절벽을 무너뜨리지도 않았지. 난 천마 같은 사람이 아니야. 그런 거 상관없어."
"아, 그래? 다행이다. 호호호. 그럼 내가 도움이 된 거네?"
"응. 나 여기 발 뚫린 거 봐. 계속했으면 이겼을지 졌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쉽지 않았어. 하하하."
카리브디스가 완전히 돌이 되어버린 걸 확인한 후 최수영에게 날아가 뚫린 발을 치료했다.
그동안 스테노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잠시 후 이혁진 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 대표님. 이혁진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 전투가 있었습니까? 대표님 코인이 엄청나게 채굴되었는데요.
"전투가 있긴 했지만 제가 죽이진 않았는데?"
- 확인해 보십시오. 천 코인이 넘게 들어왔어요.
휴대폰을 확인하자 정말 1,300NXT이 새로 채굴되어 있었다.
신급 몬스터라 이건가?
죽이지 않고 촉수를 수백 번 베었을 뿐인데 채굴이라니.
그럼 내가 죽였으면 얼마나 채굴되었으려나.
끝까지 싸워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약간 드는 순간이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내 표정을 본 최수영이 등짝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저거 죽였으면 얼마 채굴됐을지 그 생각하고 있지! 어휴, 쫌! 저런 괴물은 그냥 피해! 다치고 다니지 좀 말라니까!"
"알았어, 수영아. 조심할게."
자기 등을 만져보던 스테노가 말했다.
"여기 백화점 어딨어? 나 원피스 새로 사야 해. 뒤에 다 찢어졌어."
황금 날개가 돋아나며 원피스 등판을 찢어버린 모양이다.
"캐리어 한가득 옷 가져왔잖아?"
"배랑 같이 강에 빠졌어."
"아……."
그러고 보니 내 백팩도 함께 뒀었지.
근처 쇼핑 센터에 가서 간단히 쇼핑을 마친 우리는 카지노가 딸린 리조트에서 하루 묵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카지노에도 들러보았다.
0과 00을 포함해서 38분의 1의 확률.
자기가 좋아하는 숫자에 계속 배팅하던 스테노가 룰렛이 80번 넘게 돌 동안 한 번도 자기 숫자가 나오지 않자 딜러를 돌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잠깐 소동을 부렸다.
최수영은 슬롯머신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소소한 잭팟을 터뜨려 4만 달러를 벌었다.
나는 텍사스 홀덤을 잠깐 해보다가 금방 일어났다.
자신의 패를 확인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미묘한 변화들이 너무 세세하게 느껴졌다.
표정, 숨소리, 맥박 등.
좋은 패를 들고 있는지 블러핑인지 모두 알아낼 수 있으니 카드 게임이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새벽에야 호텔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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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1,269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76조 5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