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 비밀 결사 조직, 쇼인 】
며칠 후, 청와대.
한민국 대통령이 소집한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메타디펜스가 처음 채굴을 시작하던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민국 국무총리가 지금은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의장인 한민국 대통령이 이번 임시 국무회의에 나를 관계 전문가 자격으로 출석하게 하였다.
사실상 내가 대통령에게 제안한 국무회의이니 나를 빼고 진행하는 건 의미가 없기도 했다.
국가안보실장이 입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일지도 모르는 데 파병을 결정해야 한다니요. 국방부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 장관이 대답했다.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구방위위원회나 미국으로부터 파병에 대한 보상을 약속받은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외계 행성 파병이라니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것 아닙니까."
참 답답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얻어내 온 참여권인데.
지난주 지구방위위원회 회의에서 나는 군부대 5개 대대 중 1개 대대를 한국에서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당연히 거절당했고, 그럼 메타디펜스는 재외공관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아 겨우 한국군의 참여권을 따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통령 직통 라인으로 이 소식을 전했고, 한민국 대통령은 바로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 답답한 장관들이었다.
미국이 왜 발 벗고 나서 군부대와 각 분야 전문가를 외계에 보내는지 조금만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올 텐데.
한국의 장관들은 계속 약속된 보상이 뭔지만 궁금해했다.
약속된 보상? 당연히 없다.
참여권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따온 건데 보상은 무슨 보상.
대신 5년간의 파병 기간이 끝나면, 우리는 외계 행성 한 곳의 자원을 독식할 수 있게 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어떤 대단한 가치가 있는 자원을 갖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파병을 망설이다니.
한민국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메타디펜스 김수호 대표님께서 재외공관 사업 참여권을 어렵게 따오셨다고 하시니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시죠. 김수호 대표님, 왜 파병을 보내야 하는지 부연 설명을 좀 더 부탁드립니다."
한참 만에 다시 내 발언 기회가 찾아왔다.
"간단합니다. 다섯 개 행성 중 한 곳에 한국군이 주둔하면, 5년 동안 재외공관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 행성의 자원을 독점적으로 채취할 수 있게 됩니다. 지구에 가져왔을 때 가치가 높을 것들로만 추려서 채취해 올 수 있겠죠."
나는 정령의 마법 주머니에서 마력석이 박힌 워프 돗자리를 꺼냈다.
"지구 어디에서든 우리 회사 워프실로 워프할 수 있는 마법 도구입니다. 보시다시피 여기 마력석이 박혀 있죠. 이 마력석이 있기 때문에 미리 그려 놓은 마법진을 언제든 작동시킬 수 있는 겁니다. 이게 없다면 마법사가 그때그때 마나를 담아 그려내야 하죠."
마력석이 박힌 워프 돗자리를 책상 위에 펼쳐 올려두었다.
"지금은 우리 회사에서만 쓰고 있지만, 이걸 만들어서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실 마력석의 이용 범위는 이런 워프 마법진 사용에만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회의실 사람들은 한차례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명분도 확실합니다. 인류의 안전을 위한 일이니까요. 이 안건이 통과되면,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유일하게 외계 행성에 주둔하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외교부 장관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긴 하겠습니다."
기획재정부 장관도 입을 열었다.
"다른 행성들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원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이때다 싶어 첨언을 덧붙였다.
"장관님들, 행성 087에 가면 신화 속 전설의 금속 '아다만트(adamant)'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쨌든 우리나라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찾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국무회의 이후 따로 집무실에서 한민국 대통령과 독대했다.
"국무총리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인데, 김수호 대표님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정말 많은 일을 해주고 계시는군요."
"아닙니다. 제 회사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많이 신경 써주시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번 재외공관 사업권 덕분에 어쩌면 대한민국이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대통령님께서 국무총리 시절에 메타디펜스가 채굴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때의 저야말로 국민의 안전을 위했을 뿐입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청와대의 발표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블랙 게이트로 빨려 들어간 지구인을 위한 재외공관 설치 사업에 참여할 것이며, 1개 대대의 기갑부대와 공병부대 병력을 파견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후로도 수시로 지구방위위원회와의 회의가 있어서 처음엔 화상회의로 대체하다가 아예 뉴욕 특별작전국 내에 콘크리트 마법진을 설치해 버렸다.
이제 회의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뉴욕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 * *
대만, 타이루거 국립공원.
그리 크지 않은 화이트 게이트 하나가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테라 행성의 불사인들이 튀어나왔다.
이십여 명의 불사인이 튀어나왔고, 그중 한 명은 지구인 출신이었다.
쿠라타니 후지로.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멀리 계곡 너머에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후지로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드디어 도착했구나."
바스티안이 대답했다.
"드디어 여기가 대장님이 살던 지구라는 곳입니까."
바스티안은 후지로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
기사단 소속이었다가 라트니아와의 전쟁 중에 후지로의 첫 번째 심복이 되었다.
"그렇다. 이제야 돌아왔군."
후지로 일행은 절그럭 소리를 내며 계곡을 내려왔다.
후지로의 눈에 국립공원 관리인이 머무는 곳으로 추정되는 작은 오두막이 한 채 보였다.
키가 4미터에 육박하는 후지로가 들어가기엔 오두막이 너무 작았다.
후지로는 칼을 빼 들고 오두막의 지붕을 베었다.
푸른 검기가 발현되며 오두막 지붕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두리번거리며 충전기를 찾는데 저 멀리에서 어떤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모, 몬스터다!"
남자는 급히 뒤로 돌아 뛰어가며 휴대폰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바스티안이 후지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후지로가 대답했다.
"죽여. 그리고 저 휴대폰 뺏어와."
바스티안이 품에서 표창을 하나 꺼내 들고 남자에게 집어던졌다.
흡사 일본 닌자와도 같은 자세.
후지로에게 배운 표창 투척술이었다.
불사인 바스티안의 손에서 벗어날 땐 작아 보이던 표창이 남자의 등에 꽂히자 그제야 실제 크기로 보여졌다.
불사인에게 맞추어 만들어진, 날 하나의 길이가 30센티미터도 넘는 대형 표창이었다.
그사이 후지로가 잘린 지붕을 치워버리고 오두막 안에서 휴대폰 충전기를 찾았다.
손가락이 너무 커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잠시 헤맨 끝에 충전선을 자신의 휴대폰 단자에 꽂는 데 성공했다.
충전선을 연결하자마자 휴대폰 액정에 글자가 켜졌다.
[충전 : 0%]
후지로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큰 소리로 웃었다.
"으하하하!"
후지로의 웃음소리에 근처 나무에 있던 산새 수십 마리가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스티안이 남자의 품을 뒤져 휴대폰을 가져왔다.
후지로가 거대한 손가락으로 남자의 휴대폰을 잠시 조작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유이토 일등육좌?"
-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쿠라타니 후지로 육장일세."
- 이 시간에 누가 장난 전화를 하는 거야?
"우리는 1946년 11월 2일을 잊지 않았다. 대일본제국은 부활한다."
후지로를 중심으로, 자위대 내에서도 극우 인물들로 결성된 비밀 결사 조직의 구호였다.
이 극우 조직의 명칭은 '쇼인(松陰) 결사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창한 에도시대 사상가 요시다 노리가타의 호(號)에서 따온 조직명이었다.
휴대폰 너머로 잔뜩 긴장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 대일본제국 만세! 정말 후지로 육장님이십니까!
"그럼 내가 죽기라도 했을 줄 알았나?"
- 아닙니다! 이치가야 주둔지에서 육장님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기에 분명히 살아계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위치를 알려줄 테니 배를 보내도록. 하치조코(八丈小島)섬은 아직 잘 관리되고 있겠지?"
- 예! 하치조 지청에서도 아직 무인도 하치조코섬에 우리 조직의 시설이 있는 건 모르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간부급 결사대원들을 모아라. 곧 하지조코섬에서 간부 회의를 진행한다."
- 네! 계신 곳을 알려주시면 바로 배를 보내겠습니다!
"배는 큰 걸로 보내라. 물론 쇼인 결사대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 네!
* * *
다음 날, 강화도.
여동생 성희에게 오늘 저녁은 집에서 함께 먹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 뭐. 오늘 저녁엔 특별한 일정도 없으니까. 집으로 갈게. 아, 수영이도 같이 갈까?"
- 음, 오늘은 그냥 오빠 혼자 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닌가? 수영 언니도 함께 오는 게 낫나? 잠깐만, 엄마!
어머니와 뭐라고 대화를 나누던 성희가 다시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 엄마도 괜히 불편할 수 있으니 오늘은 오빠 혼자만 오는 게 낫겠다는데?
"불편해? 같이 식사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왜 갑자기 수영이가 불편해?"
- 아니. 당연히 수영 언니는 안 불편하지. 근데 다른 사람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누가 또 와?"
- 이따 와보면 알아. 아무튼 끊어.
성희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누가 오나 싶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전 내내 컴퓨터로 결재할 서류들을 확인했다.
점심시간까지 잠깐 시간이 남아 꽝이와 놀아주기로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 깨알만 한 마법구를 만들어 이쪽저쪽 던져주었다.
꽝이는 내 손에 집중하고 있다가 날아가는 깨알 마법구를 앞발로 팡팡 쳐내었다.
꽝이의 앞발이 마법구를 쳐낼 때마다 작은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마법구를 제법 빠르게 날려보아도 어김없이 꽝이의 앞발에 걸렸다.
문득 꽝이의 진짜 속도가 궁금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화단 울타리 기둥을 하나 뽑았다. 얇은 쇠막대기였다.
놀이가 끝나면 주려고 가지고 올라왔던 대구포를 쇠막대기 한쪽 끝에 두툼하게 꽂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쇠막대 끝을 살짝 구부려 대구포가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꽝이야, 이거 뺏어봐."
나는 막대기를 꽝이 앞으로 내밀었다. 꽝이가 대구포를 뺏기 위해 앞발을 뻗자 얼른 막대기를 위로 들어 올렸다.
꽝이가 곧장 대구포를 향해 점프했다.
마치 검술을 하듯이, 쇠막대기의 경로를 이리저리 틀며 꽝이의 앞발을 피해 보았다.
예사 놀이가 아니란 걸 느꼈는지 꽝이도 점점 속도를 높였다.
가만히 선 채 대구포를 지켜내기엔 꽝이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갑자기 일어난 유치한 호승심에 앞뒤 좌우로 발까지 움직이며 쇠막대기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속도로 꽝이와 한판 대결을 펼쳤다.
꽝이가 빨라짐에 따라 내 움직임의 범위도 점차 넓어졌다.
"어때? 집사라고 무시하면 안 되겠지? 못 뺏겠지?"
그때였다. 옥상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쪽에서 최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뭐 해?"
"응? 꽝이랑 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쇠막대 끝에 무언가 툭 걸리는 느낌이 났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꽝이가 이미 대구포를 먹고 있었다.
당장 이혁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운동 신경 강화' 상품 11단계를 구매하라고 말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아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종일 이혁진 실장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최수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저거 대구포 안 뺏기려고 그 난리를 피우고 있었어?"
"안 뺏기려고 난리를 피우다니! 그냥 꽝이랑 놀아준 거지."
"에휴."
* * *
2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1,269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76조 5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