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 *
"어머니,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양한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갈비찜, 잡채, 꽃게탕까지. 고등어도 구웠네?
"무슨 날이에요? 음식을 왜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응, 수호 왔니? 배고프지. 거실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지금 TV에 수호 네가 나이이가라 폭포 무너뜨린 다큐멘터리 나오더라."
거실 TV에 한쪽이 완전히 무너진 나이아가라 폭포가 나왔다.
그 아래로는 강물 위로 삐죽 튀어나온 카리브디스가 보였다. 물론 완전히 돌이 된 상태였다.
새로운 장관이 된 관광지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니 성희가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이혁진 실장님?"
성희 옆엔 이혁진 실장이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쫙 빼입고 서 있었다.
손에는 커다란 한우 세트를 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아, 아니. 형님."
형님? 갑자기?
어머니가 두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쓱쓱 닦으시며 주방에서 나왔다.
"왔어요?"
"하하, 어머니. 저 왔습니다."
잠시 후 우리 네 명은 식탁에 앉았다.
"나만 모르는 뭐가 있는데 지금?"
성희가 대답했다.
"뭐가. 오빠도 우리 사귀는 거 다 알잖아."
"사귀는 건 알지. 근데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다른데? 이혁진 실장님 안 입던 정장도 빼입고."
갈비찜을 밥 위에 얹어 크게 한입 먹던 이혁진 실장이 급히 음식을 삼키고 말했다.
"그게, 오늘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표님."
"그러니까요. 뭐가 분위기가 다르다니까. 뭐, 결혼 발표라도 하는 건가요?"
"아, 그. 네! 성희 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뭐라는 거야. 나는 농담이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손뼉을 치며 웃으셨다.
"호호호. 나는 찬성이에요. 우리 성희를 누가 데려가 주려나 했더니 이렇게 멋진 청년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뭐,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건 좀 갑자기였다.
"그래서 오늘 결혼 허락받으러 오신 거예요?"
"네, 대표님. 아니, 형님."
둘 다 혼기가 차긴 했지만, 건방지게. 오빠도 아직 미혼인데.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뭐 허락까지. 둘이 좋으면 하는 거죠."
"아닙니다! 성희 씨가 오빠는 자기한테 아빠나 다름없으니 오빠 허락 없이는 결혼을 못 한다고 했습니다."
성희가 이혁진 실장의 귀에 대고 귓속말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그냥 했다고 해. 그래야 형님 기분 좋으시지."
이것들 봐라. 내 청각은 보통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고.
"다 들리거든요."
"아, 성희가 먼저 귓속말을 하는 바람에 대표님 감각을 깜빡했습니다. 어쨌든."
이혁진 실장이 다시 한번 자세를 바로잡았다.
"성희 씨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미 교제한 지도 삼 년이 다 되어 가고. 이제 결혼하고 싶습니다!"
나는 천천히 잡채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이거 참. 회사는 어디냐 연봉은 어떻게 되냐 이것저것 물어보고 허락을 해줘야 하는데. 다 알고 있으니 물어볼 게 없네?"
일어나 주방 한쪽에 있는 유리 선반에서 싱글몰트 위스키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딱히 먹을 사람도 없지만 장식처럼 진열되어 있던 술이었다.
"한잔할래? 매제."
이혁진 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형님!"
1차는 1층 주방에서, 2차는 2층 성희 거실에서. 3차는 3층에 있는 내 서재였다.
서재 가운데 있는 소파에 이혁진 실장과 마주 보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안주는 성희가 직접 만들어 갖다 준 건새우 튀김.
"신혼집은 어떻게 할 거야?"
"여기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이 집으로? 왜, 돈도 많이 벌었잖아. 김포나 청라에 아파트 얻든지 하지. 아니면 내가 여기 근처 뷰 좋은데 안전 가옥으로 멋지게 지어줄까?"
"아니요. 성희가 자기까지 나가면 어머니가 외로우실 것 같다고 해서요. 여기서 같이 지낼까 합니다."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독립 독립 노래를 부르던 게 정작 시집가니까 엄마랑 산다고? 철들었네."
"형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2층 좀 싹 리모델링을 해서 신혼집으로 꾸며볼까 합니다."
"허락은 무슨 허락. 마음대로 해. 어머니랑 같이 지내준다면 나는 좋지."
"뭐든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허락은 무슨. 두 사람만 좋으면 되는 거지. 그나저나 큰일이네."
"네? 뭐가요?"
"수영이 말이야. 이 소식 들으면 섭섭해할 텐데."
"아……. 저희가 먼저 결혼해서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순서가 뭐가 중요하다고. 그냥 나도 수영이랑 만난 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그렇지. 어쨌든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
"그럼 형님도 이참에 최수영 이사님에게 청혼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에휴, 이제 또 곧 외계 행성에 나갈 텐데 청혼은 무슨."
"청혼한다고 바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프러포즈부터 미리 해 놓을 수도 있는 거지 않습니까. 약혼식 같은 걸 해도 되고요."
"그런가? 모르겠다. 술이나 마셔. 짠."
* * *
다음 날, 일본 하치조코섬.
하치조코섬은 도쿄도 이즈 제도 하치조섬에 딸린 작은 섬으로, 1969년 이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였다.
…적어도 일본 정부엔 그렇게 알려져 있다.
섬 중앙 넓은 들판. 주변에 비해 낮은 지형의 이 들판은 사방이 숲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리고 그 들판 가운데 1층짜리 작은 시멘트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주변에는 몇 대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저 멀리서 한 대의 차량이 건물을 향해 다가왔다.
잠시 후, 차에서는 네 명의 사람이 내렸다.
두 명은 군복을 입고 있었고 두 명은 평범한 정장 차림이었다.
가장 앞선 사람이 문 옆의 보안 장치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기계는 자동으로 다섯 개의 지문을 모두 스캔했다.
보안 장치의 수준으로 봐선 자동문이 열려야 할 것 같은데, 그저 철문의 잠금장치가 철컹 소리를 내며 풀렸다.
네 사람은 두꺼운 철문을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쪽 구석에 지하로 내려가는 널찍한 계단이 뚫려있을 뿐이었다.
계단을 따라 두 층 정도를 내려가자 널찍한 지하 공간이 나왔다.
지상에 있는 건물보다 수십 배는 큰 공간이었다.
파티션으로 공간이 몇 개로 나뉘어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일을 보고 있었다.
네 명의 사내는 중앙의 넓은 복도를 지나쳐갔다. 복도 끝에는 다시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자 또다시 넓은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커다란 테이블엔 십수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온몸이 번쩍거리는 거대한 불사인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스물 남짓한 불사인이 벽을 빙 둘러서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불사인, 쿠라타니 후지로가 말했다.
"히데나오 해장님. 오셨습니까."
"후지로 육장님. 불사인이 되었다더니 정말이로군요."
"어서 앉으시지요. 이제 다 온 것 같습니다."
후지로와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은 사내는 해상자위대 자위함대 사령관 이에즈미 히데나오였다.
모두 자리에 앉자 후지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1946년 11월 2일을 잊지 않았다! 대일본제국은 부활한다!"
나머지 인물들이 모두 일어서 후창했다.
"대일본제국 만세!"
모두 자리에 앉자 후지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쇼인 결사대'는 그동안 대일본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소.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나 결사대장 후지로가 돌아왔고, 이제는 우리가 이 지하 밖으로 나갈 순간이 왔소이다."
몇몇 인물들이 결연에 찬 눈빛을 보였다.
"우리는 우선 이 약해빠진 일본을 바로잡을 것이고, 그 후엔 다시 세계를 손안에 쥐게 될 것이오."
후지로가 그의 후임으로 육상총대 사령관이 된 군인과 조금 전 인사를 나눈 해상 자위함대 사령관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준비는 되었습니까?"
육상총대 사령관이 큰 소리로 답했다.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었습니다!"
자위함대 사령관도 답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후지로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더 미룰 거 없이 쿠데타를 진행합시다. 무능한 일본 정부를 먼저 휘어잡은 뒤,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선포할 것이오."
그때 결사대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새로운 쿠데타 정부를 미국에서 인정해 줄까요?"
"미국이라."
후지로가 허리춤에서 검 하나를 뽑았다.
얇은 검신에 칠흑 같은 검은색. 지구에 와서 새로 구매한 마그네타 검이었다.
후지로가 조금 전 말을 꺼낸 사람에게 검을 겨누었다.
푹.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방금 질문한 결사대원의 목을 그대로 통과했다.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테이블 위에 마그네타 검을 푹 꽂은 후지로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깟 핵폭탄 두 방 맞았다고 아직도 미국 놈들에게 벌벌 기다니. 새 시대엔 저런 나약한 자들은 필요 없소이다!"
후지로가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쳤다.
"나 후지로가 있는 한! 미국이든 러시아든 모두 우리 대일본제국의 발아래 있게 될 것이오!"
* * *
쿠데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육상총대 특수부대에 의해 총리 관저가 하루 만에 점령당했고,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가 도쿄도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으나 이미 많은 수의 자위대 간부들이 쇼인 결사대 소속이거나 그들에게 포섭당한 상태였다.
쿠데타 과정에서 군, 민간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쿠데타 정부를 지지했다.
쿠데타 시작 닷새 만에 일본 정부는 자위대에게 완전히 넘어갔고, 군부 정치가 시작되었다.
쇼인 결사대의 뜻에 반하는 자위대 간부들은 모두 숙청되었다. 육상총대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 전체의 육상자위대가 새로운 군부 정부의 밑으로 들어갔다.
해상자위대는 이미 쇼인 결사대의 수중에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공자위대까지 새 정부에 굴복했다.
새 정부는 육, 해, 공 자위대 조직을 개편하며 육상총대를 모든 자위대의 총사령부로 삼았다.
하나로 통일된 자위대는 새로운 깃발을 사용했다.
욱일승천기였다.
불과 보름 만에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었다.
새로운 군사 정권의 쇼군은 현 육상총대 사령관 와노 토쿠겐이 맡았다. 물론 임시직이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쿠라타니 후지로는 아직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전히 무인도 하치조코섬에서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하치조코섬 비밀 기지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후지로의 집무실.
3년 전, 테라 행성과의 협상이 불발될 시에 불사인을 잡아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지하 감옥. 지금은 후지로를 비롯한 불사인들의 거처 및 집무실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다.
똑똑.
두꺼운 강철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일등육좌 츠네키 유이토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후지로가 지구에 와서 처음 통화한 인물. 후지로의 최측근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이었다.
"와노 도쿠겐 임시 쇼군이 지금 막 취임식을 마쳤습니다."
후지로가 정면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보고 있다."
스크린에는 와노 도쿠겐의 쇼군 취임식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후지로 결사대장님, 언제 전면으로 나서실 계획이십니까? 일정을 알려주시면 전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등장을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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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1,836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80조 3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