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 *
내공 심법부터 검, 도, 권, 봉, 창, 궁법까지. 나름 종류별로 구분되어 쌓여 있었다.
심법과 무술 외에도 탄지공이나 장법 등 내공 운용술에 관한 내용까지도 담겨 있었다.
"이 비급서들은 두 분만 보라고 하시던가요?"
이번엔 이근수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천마 어르신의 말씀을 그대로 빌리자면, '너희 둘이 최우선으로 익히고. 그 후엔 김수호 그놈한테 맡겨서 알아서 하라고 해라. 그놈이라면 더 좋은 쪽으로 발전을 시키면 시켰지, 악용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근수의 대답에서 자동으로 천마의 육성이 지원되는 느낌이었다.
코끝이 간질간질한 게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눈물이 차오르는 건 겨우 막아볼 수 있었다.
"이건 모두 스캔해서 회사에서 보관할게요. 그래도 천마 어르신이 남긴 비급이니 외부로는 절대 유출하지 않을 계획이고, 신체 강화 상품을 구매한 디펜서들을 더욱더 강하게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을 좀 해서 교본을 만들어야겠어요."
"네. 대표님 뜻대로 하십시오."
"이근수 씨와 정성민 씨를 보니 앞으로 디펜서 조직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네요. 지금 아마 두 분은 N마켓에서 구매한 신체 강화 능력을 훨씬 상위하는 실력을 갖추게 되셨을 거예요. 그렇죠?"
"맞습니다. 이제 넉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 전과 비교하면 몸이 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지금은 넉 달 전의 제가 열 명이 나타나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둘은 천마가 직접 무공에 소질이 보인다고 뽑은 제자들이었다.
다른 디펜서들에게서는 이들만큼의 성취를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어쨌든 지금보다 나아질 것은 분명했다.
무림인들은 수십 년을 수련해야 쌓을 수 있다는 내공을, 이곳 지구에서는 넥시트코인만 있으면 구매할 수 있는 꼴이었으니까. 물론 터무니없이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신체 강화 상품 구매와 이 비급을 적절히 활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한 디펜서 부대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사람을 보내 연습장을 회수했다가, 스캔을 마치면 다시 이곳으로 돌려보내 드릴게요. 천마의 유지가 담긴 무공 비급이니 원본은 두 분이 나누어 가지세요."
계단을 올라오다가 두 직원에게 물었다.
"두 분은 어떤 무술을 익히실 계획인가요?"
"저는 도법입니다."
"저는 창법입니다."
바로 대답하는 걸 보니 이근수와 정성민이 익힐 무술은 천마가 죽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 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으로 천마가 직접 골라주었을 것이다.
천마와 장로들은 이미 어떤 무술을 쓰느냐 하는 단계를 아득히 넘어섰지만, 거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에 맞는 무술을 집중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경지에 오르게 되는 법.
"좋아요. 그럼 그 두 무술에 대한 연습장은 따로 빼두세요.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그건 왜 그러십니까?"
"지구에 있는 유일한 천마신교의 제자잖아요. 천마신교의 도법과 창법은 오로지 여기 계신 두 분만 익히시는 걸로 하죠. 나중에 따로 제자를 육성하실 때까지는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으십니다."
이근수와 정성민이 서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동시에 대답했다.
"존명!"
"존명이라니요. 낯간지럽게. 하늘에 있는 천마에게 대답하신 걸로 알아들을게요. 두 분은 꼭 지구에서 천마신교의 명맥을 이어주세요."
* * *
며칠 후, 늦은 오후.
미국 뉴욕주 허드슨강 하류.
"자네와 이렇게 낚시를 해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군."
리암 소령과 데이비드 준장이 간이의자에 앉은 채 허드슨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최소한의 수행원들만을 데리고 둘만이 아는 은밀한 장소를 찾았다.
리암이 갓 임관했을 때, 내부 부조리로 힘들어하던 그를 데이비드가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렇습니다. 제가 슈퍼 솔저로 차출된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슈퍼 솔저라. 하하하. 자네가 살아 있는 캡틴아메리카군 그래."
"하하하. 사령관님. 캡틴아메리카라니요. 만화 속에나 나오는 인물 아닙니까."
"뭐가 다른가? 어차피 이 세상도 만화 같아진 것을."
"그건 그렇습니다."
"재외공관을 성공적으로 설치하고 돌아오면 금방 대령이 되겠구만. 이러다 날 따라잡는 거 아닌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당연하지. 농담이네. 자네가 다녀올 때쯤 내 어깨 위에도 별이 하나는 더 늘어나 있지 않겠나? 하하하."
"하하하하."
강 뒤편 작은 숲속. 리암과 데이비드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 헌터 우메오였다.
한참을 더 동태를 살피던 우메오는 카타나를 꺼내 들고 땅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왼손에 든 종이를 보고 한참을 열심히 그린 도형을 재차 삼차 확인한 우메오는 가방에서 붉은색 마력석 하나를 꺼냈다.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우메오가 아무리 그대로 따라 그린다고 해도 마법진은 작동하지 않는다. 워프 마법진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마력석이 필요했다.
우메오는 마력석을 마법진이 시작되는 부분에 조심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되었습니다."
- 알았다.
휴대폰 너머로 후지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우메오가 그린 마법진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후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임무를 잘 해냈군. 제법이야."
"감사합니다."
"뒷정리를 할 자들은?"
"전문가들로 준비시켜 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후지로 님의 대결이 끝나면 바로 올 것입니다."
"여기서 마법진을 지키고 있어라."
"네!"
후지로가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불사인이다!"
후지로를 발견한 데이비드 준장의 수행원이 총을 겨누었다.
"신분을 밝혀라!"
"너희 미국 놈들을 무릎 꿇릴 사내이다."
"뭐 하는 놈이야? 당장 쏴라!"
탕! 타당!
수행원들이 후지로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제법 훈련된 군인들인 듯 총알은 정확히 후지로의 가슴과 머리에 명중했다.
팅, 팅!
하지만 후지로의 몸에 맞은 총알은 그대로 튕겨 나갈 뿐이었다.
"부대에 알… 크헉."
후지로의 카타나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휴대폰을 꺼내려던 수행원의 몸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강가에 앉아 있던 리암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소동이 난 것 같습니다."
"여기 캡틴아메리카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어서 가보세."
리암과 데이비드가 일어나 수행원들이 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리암이 도착했을 땐 이미 수행원들이 모두 죽은 상태였다.
리암이 후지로를 보며 외쳤다.
"넌 누구냐!"
"네놈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서 왔다. 마그네타 검끼리 부딪치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고."
"뭐야?"
리암이 허리춤에서 마그네타 검을 꺼냈다.
후지로는 천천히 투명 태블릿을 꺼내 리암을 비춰보았다.
[리암 제놀드]
[보유량 : 316NXT]
[구매 내역 : 마그네타 검(20,000NXT)
동시통역기(200NXT)
힘, 체력 강화 10단계(20,460NXT)
운동 신경 강화 7단계(2,540NXT)
내구도 강화 8단계(5,100NXT)]
"제법이군. 역시 대국의 군인이라 이건가."
후지로가 카타나를 집어넣고 마그네타 검을 꺼내 들었다.
자기에게 맞춘 카타나를 들고 있을 때와는 달리 장난감 검을 든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리암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마그네타 검? 너는 정체가 무엇이냐! 지구인인가?"
"알 거 없다. 너는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
리암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둘의 마그네타 검이 맞닿았다.
콰앙!
후지로의 몸이 뒤로 한참 밀려났다.
리암은 아예 수십 미터를 뒤로 날아가 버렸다.
후지로가 입을 열었다.
"역시. 이대로라면 서로 마그네타 검을 들고 싸우긴 힘들겠군."
후지로는 내심 실망한 듯 고개를 두어 번 휘저은 뒤 마그네타 검을 다시 검집에 밀어 넣었다.
"어차피 지구인을 죽여서는 채굴도 되지 않으니 이 검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후지로는 다시 기다란 카타나를 뽑아 들었다.
한참을 날아갔던 리암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다가왔다.
"일반 검으로 상대해 줄 테니 다시 들어와라."
리암의 마그네타 검이 이번엔 후지로의 하체를 노리고 베어 들어갔다.
평범한 카타나로 저 마그네타 검을 막았다가는 그대로 잘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후지로는 리암의 검을 막거나 피하는 대신 긴 다리를 쭉 뻗어 리암의 몸통을 걷어차 버렸다.
퍼억!
"느리군."
리암 역시 내구도를 8단계까지 강화한 상태. 후지로의 발길질 한 번에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다시 일어난 리암이 이번엔 검을 수직으로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 베기.
후지로의 칼에서도 푸른 빛의 검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리암의 마그네타 검과 부딪쳤다.
쾅.
리암의 마그네타 검은 후지로의 검기와 부딪쳤다. 마그네타 검은 실체가 없는 검기는 베어버리지 못했다.
후지로가 비릿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마법을 못 베어버리는 건 진작 알았는데. 검기도 못 베는군. 생각보다 쓸모없는 검이야."
후지로의 검기가 사방에서 리암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쾅, 콰앙.
리암이 마그네타 검을 이리저리 들어 후지로의 검기를 겨우겨우 막아내었다.
"하지만 네가 아닌 그 녀석이 들고 있는 마그네타 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후지로의 공세에 리암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검기에 스친 몸 여기저기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애초에 넌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이제 가라."
지금까지의 공격보다 몇 배는 빨라진 후지로의 공격을 리암은 막아내지 못했다.
후지로의 검기는 그대로 리암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타앙!
그때, 데이비드 준장의 총알이 후지로의 머리에 명중했다.
후지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후지로의 카타나가 번쩍하고 푸른 빛을 뿜었다.
다시 마법진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 후지로가 우메오에게 말했다.
"깨끗이 정리해라."
"네!"
* * *
사무실에 앉아 천마신교 무술 교본 스캔본을 확인하고 있는데 비서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네."
- 대표님, 지구방위위원회 위원장님 전화입니다.
"위원장님이 직접이요? 무슨 일이시지? 일단 전화 연결해 주세요."
- 네, 연결하겠습니다.
잠시 후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김수호 헌터님, 아무르 칸 위원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직접 전화를 주시고, 무슨 일이십니까?"
- 어제 리암 소령이 실종되었습니다.
"네? 리암 소령님이요?"
- 네. 미군 수색 결과 허드슨 강 하류에서 그의 마그네타 검만 겨우 발견했다고 합니다.
"검만요? 전투 흔적은요?"
- 없습니다. 그런데 리암 소령만 실종된 것이 아닙니다. 56연대 사령관 데이비드 준장과 그의 수행원 몇도 함께 실종되었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요? 그런데 왜 저에게 전화를 주신 겁니까? 미군에서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을 텐데요."
- 뭔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김수호 헌터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라울은 내구도 강화 상품을 8단계까지 구매한 헌터입니다. 총알도 그의 몸을 뚫을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을까요?
"그렇군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 그래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메일을 하나 보내드렸는데, 우선 이것 좀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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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2,208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82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