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111화 (111/200)

111화

* * *

메일함을 열자 지붕이 단칼에 썰려 나간 오두막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뭔가요?"

- 얼마 전 대만 타이루거 국립 공원입니다. 근처에 화이트 게이트가 생겼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지붕이 아주 날카롭게 잘려 나갔군요. 검기인 것 같은데."

- 그것보단, 왜 지붕을 잘랐을까요?

"글쎄요?"

- 불사인이 오두막 안에 있는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면, 큰 키 때문에 저 작은 문으로 들어갈 순 없었겠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에 뭘 뒤진 흔적이 있거든요. 그것도 굉장히 거칠게.

"그럼 위원장님은 저 때 불사인이 지구로 넘어왔고, 그게 지금 벌어지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 일단 제 추측은 그렇습니다. 대만에서는 해당 사건을 그리 중요하게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게이트에서 나타난 몬스터가 공원 관리인을 해친 걸로 수사가 마무리되었더군요. 그래서…….

위원장과 통화를 할수록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 따로 조사관을 보내보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족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근처 해안까지 드문드문 무겁고 거대한 발자국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해안이요?"

- 네. 망설임 없는 일직선상의 족적이었기 때문에 많이 지워져 있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정확히 그즈음부터 일본 '쇼인 결사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쇼인 결사대는 또 뭔가요? 혹시 이번 일본 쿠데타와 연관된 조직인가요? 지금 그 얘기를 하신다는 건, 그 조직이 이번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는 거겠죠?

-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쇼인 결사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정보 기관에서 주목하고 있는 일본 극우 비밀 결사 단체입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 알 것 같았다. 통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생각했던 위원장의 이미지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위원장님께서는 이 일들을 어떻게 다 아시는 건가요? 게다가 독립적인 사건들을 이미 하나로 묶어서 보고 계시네요?"

- 김수호 헌터님도 저를 제3국의 허수아비 위원장쯤으로 생각하고 계셨군요. 지구방위위원회가 열강이 이끄는 기관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정곡을 찔렸다.

"아,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 괜찮습니다. 그 의도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꼭 그래서 위원장이 된 건 아닙니다. 일단은 제가 세계 최고 수준 정보 기관의 수장이었다는 것만 알려드리죠.

당당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면 CIA, MI6, 모사드, KGB 중 하나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네. 몰라뵈었네요. 행사나 회의 때마다 워낙 인자한 표정으로 짧은 인사말을 담당하셨으니까요."

- 일단 만나 뵙고 더 얘기 나누시죠. 제가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한국으로 직접 오신다고요? 그런 큰일이라면 당장 지구방위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제 경험상, 이런 일은 여러 사람과 함께할수록 정보가 새어 나갈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곧 한국에서 뵙죠.

"네, 알겠습니다. 오실 때 연락하십시오."

의외였다. 지구방위위원회 위원장이 이런 인물이었다니.

이제야 좀 뜬금없었던 헌터 만찬 모임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갑자기 내 이름을 언급하며 재외공관 얘기를 꺼내더니, 그날이 헌터들의 뜻과 힘이 하나가 되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그저 인사치레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미 그때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대표실 문이 벌컥 열렸다. 최수영이었다.

"오빠."

"어, 수영아.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는데."

"뭔데? 나는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닌데. 하하핫."

최수영이 손님용 소파에 몸을 푹 파묻었다.

나도 책상에서 일어나 최수영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리암 소령이 실종됐대. 마그네타 검만 남겨두고."

최수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파에 푹 파묻혀 있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왜? 어쩌다가? 도대체 누가 리암 소령을 납치할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조금 전에 통화했는데, 지구방위위원회 위원장 말이야. 평범한 사람이 아니더라고."

"어떤 사람인데? 나는 그냥 순하고 착해 보이던데?"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무슨 정보 기관 수장이었다나 봐. 리암 소령 일로 곧 날 만나러 한국에 온대."

"와, 그냥 사람 좋은 아저씨는 아니었단 말이지? 그래서 리암 소령을 납치한 사람은 누구래?"

"납치인지 살해인지 뭐 지금은 모르지. 일단 위원장은 불사인을 의심하고 있어."

"불사인?"

"응. 얼마 전에 지구에 온 흔적이 발견됐대. 그런데 그 불사인들이 조용히 사라진 모양이야."

"사라져? 그 눈에 띄는 반짝반짝한 몸으로? 아무런 말썽도 피우지 않고?"

"그리고 위원장 말로는 일본에 무슨 극우 비밀 결사대가 급격하게 움직인 시기와 불사인이 나타난 시기가 일치한대."

"뭐야, 정보 기관 출신이라더니 정말 엄청난 정보력이네? 그럼 그 얘기를 종합해 보면……."

"불사인이 지구에 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말은 지구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테고. 그와 동시에 일본 비밀 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우리가 아는 한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쿠라타니 후지로?"

"맞아."

* * *

바로 다음 날, 칸 위원장에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헬리콥터로 인천공항까지 마중을 나갔다가 그와 함께 메타디펜스 본사로 돌아왔다.

"사진으로 보긴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본사 건물이 더 웅장하군요. 비상시엔 이 건물 전체에 보호 외벽이 둘러진단 말이죠?"

"네. 하하하. 언제 무슨 위협이 있을지 모르는 세상이니까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칸 위원장이 물었다.

"미팅은 어디서 진행하실 계획이십니까?"

"대표실로 모시겠습니다."

"아니요. 그냥 일반 직원들이 있는 층의 회의실을 이용하시죠. 즉흥적으로."

아무르 칸 위원장의 말대로 우리는 8층 마케팅 본부의 회의실 한 칸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전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8층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회의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던 칸 위원장이 말했다.

"여러모로 이렇게 하는 게 보안상 훨씬 안전합니다."

똑똑.

비서실 직원이 여기까지 따로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음, 좋은 커피군요."

커피 향을 음미하다가 입술을 조금 축인 칸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하루 더 조사해 보았는데, 리암 소령은 실종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주변 도로 CCTV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수색했지만, 납치의 흔적은 없어요."

"저희도 위원장님 얘기를 듣고 나니 좀 맞춰지는 퍼즐 조각이 있는데, 그 쇼인 결사대 얘기를 조금 더 해주시겠습니까?"

"김 대표님도 방향을 그쪽으로 잡으셨나 보군요."

"의심 가는 인물이 있긴 합니다."

칸 위원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이미 의심 가는 인물이 있으십니까? 역시 김 대표님과 상의하길 잘했군요. 쇼인 결사대는 말씀드린 대로 일본의 극우 단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단체는 아니지요. 역사가 이미 50년도 넘은 조직입니다. 철저히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고요."

"그런데 위원장님께서는 어떻게 그 결사대의 존재를 알고 계셨나요?"

"제가 정보 기관 수장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비밀 조직이라도 그렇게 오래 활동하면 한 번쯤은 그물에 걸려드는 법이죠."

"위원장님이 계셨던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 기관이 어딘지 궁금하군요."

"하하. 기밀입니다."

"어쨌든 그 쇼인 결사대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셨죠?"

"일본 쿠데타는 그 쇼인 결사대에서 일으킨 일입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큰 조직이었죠. 쿠데타 전에도 많은 수의 자위대 장교들이 결사대 소속이었고, 쿠데타 이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포섭되었습니다."

"그 쇼인 결사대의 대장이 누굽니까?"

"겉으로는 와노 토쿠겐 육상총대 사령관이고, 사실상 그보다 더 위에 해상자위대 자위함 사령관 이에즈미 히데나오가 있는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전임 대장은요?"

"전임 대장 역시 육상총대의 사령관 출신이었죠. 쿠라타니……."

"후지로요?"

"알고 계시는군요. 김 대표님과도 악연이 있는 인물이죠."

"제가 보기엔, 그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누가요? 설마, 쿠라타니 후지로?"

"네. 얼마 전에 시엠브레 제국 황제에게 그가 불사인이 되어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깜짝 놀라 커졌던 칸 위원장의 눈매가 금세 다시 날카로워졌다.

"맙소사. 이제 모든 퍼즐이 다 맞추어지는군요. 대만 오두막 사건부터 해서. 왜 이제야 김 대표님과 상의를 시작했는지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진작부터 상의했다면 리암 소령이 변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리암 소령은 살해당한 걸까요?"

"여러 정황상 누군가 살해 후 흔적을 지웠을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리암 소령을 그렇게 쉽게 살해할 정도라면, 역시 불사인이 되어 돌아온 후지로가 한 짓일 수 있겠군요."

"불사인이 되어 돌아왔을 뿐 아니라 코인 채굴도 했죠. 아주 많이요."

칸이 헛숨을 들이 삼켰다. 지금까지의 대화 중 가장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 생각까진 미처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다른 행성에서 마음만 먹었으면 엄청난 채굴을 할 수 있었겠군요."

"제가 듣기로는 일부러 전쟁에 자원해 채굴을 해온 모양입니다."

칸 위원장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어쩌면 김 대표님보다도 코인이 많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죠."

"재앙이로군요. 그런 자가 쇼인 결사대의 대장으로 돌아왔으니. 만에 하나 후지로가 정말 김 대표님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리고 그가 대일본제국의 쇼군이 된다면 세계정세에 큰 이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어째 나도 재앙 수준이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저랑 비슷한 수준이라면이요? 위원장님도 제가 그 정도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번 만찬 때 보니 지구방위원회의 분석은 그렇지 않던데요?"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정보와 실질적으로 갖추고 있는 정보는 항상 차이가 있는 법이죠. 사실 제가 속해 있던 조직에선, 김 대표님을 최상급 주의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석보다도 높은 등급입니다."

"제가요?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라, 무슨 짓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그럴 마음이 없네요."

"물론 저는 김 대표님이 요주의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김 대표만큼 강해졌을지 모르는 후지로가 쇼인 결사대의 대장으로 돌아왔다는 겁니다. 이건 좀 심각한 것 같습니다."

"후지로가 얼마나 강해져서 돌아왔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대책을 세워야겠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 김수호 대표님, 도와주시겠습니까?"

* * *

3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2,208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82조 8천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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