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 * *
"물론입니다. 후지로는 예전에 저를 죽이려고 했고, 지구를 시엠브레 제국에 팔아넘기려고 했던 자입니다. 게다가 후지로가 일본에 있다고 하면 저는 재외공관을 설치하러 떠날 수도 없습니다. 또다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게 놔둘 순 없으니까요."
"흔쾌히 도움을 약속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MI6에 이 사실을 바로 알리겠습니다. 앞으로의 우리 계획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비밀이라고 하시더니, MI6 출신이셨군요."
"관례상 기밀이라고 한번 말했을 뿐, 사실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그곳을 떠나 지구방위위원회에 몸담고 있고요."
"아깐 진짜 기밀인 줄 알았는데. 두 번은 물어볼 걸 그랬군요."
가벼운 농담에 인자한 미소를 지은 칸 위원장이 가방에서 큼직한 태블릿을 하나 꺼냈다.
잠시 조작한 후 책상 위에 올려놓은 태블릿엔 웬 섬 사진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일본 도쿄 남쪽 하치조코섬입니다. 겉으로는 무인도로 알려졌지만, 여기가 바로 쇼인 결사대의 비밀 본거지입니다. 이미 몇 년 전 우리 대원을 보내 지하에 꽤 큰 규모의 비밀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었죠."
"지구에 돌아온 후지로가 아직 어디에서도 목격되지 않은 걸 보면 이곳에 숨어 있을 확률이 높겠네요. 쇼인 결사대에서 준비해 준 배를 타고 대만에서 이곳으로 바로 이동한 모양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 대표님, 선량하고 힘이 센 부자 사업가인 줄로만 알았더니 통찰력이 어지간한 전문 요원들 못지않군요."
"어렸을 때 꿈이 비밀 요원이었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씩 꿈꾸는 직업이죠. 김 대표님만 원하시면 제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하지만 오늘도 결재할 서류가 산더미입니다."
"하하.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김 대표님은 이미 더 큰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어쨌든 저는 MI6에 얘기해 이 섬을 다시 한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이후에 세부 계획을 다시 논의해 보죠."
"네, 알겠습니다. 저희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좀 알아보고 있을게요."
"김 대표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우리 편에 서 계시니 정말 든든하군요."
그때, 나를 찾아 헤맨 건지 저 멀리 스테노가 두리번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은 강렬한 핑크색 원피스에, 어깨 위에는 꽝이를 올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스테노가 환하게 웃으며 회의실 쪽으로 걸어왔다.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칸 위원장이 말했다.
"저분이 그 메두사군요."
"정확히 메두사는 아닙니다만, 어떻게 아셨죠? 아! 나이아가라 폭포 사건 때 알게 되셨겠네요. 사람들이 많은 데서 변신을 해버렸으니. 하지만 배에서 직접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죽었을 텐데……."
"그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두사가 아니었습니까?"
마침 스테노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에게 결코 노크란 없었다.
"어차피 알고 계시니 정식으로 소개하죠. 메두사의 큰언니 스테노입니다. 취미는 여행이에요."
"수호! 여기서 뭐 해? 한참 찾았잖아."
"애옹―"
스테노와 꽝이가 한마디씩 하는 사이 칸 위원장이 고대 그리스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테노 양."
"어? 너도 말이 통하는 인간이네?"
"인사만 겨우 할 줄 압니다."
고대 그리스어를 할 줄 알다니. 이 사람 도대체 뭐야.
"그래. 억양이 좀 어색하긴 하다. 어쨌든 반가워. 말이 통하는 인간."
스테노가 환하게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칸 위원장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처음 얘기 들었을 때도 정말 놀랐었는데 실제로 보니 김 대표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군요."
"갑자기 뭐가 말인가요?"
"저런 장비를 거꾸로 스테노에게 씌울 생각을 하셨다니요."
"하하, 우연히 떠오른 생각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 고양이가 바로 적을 구분해 주는 그 고양이겠군요? 지금은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적어도 이곳은 안전한 모양입니다."
"도대체 모르시는 것이 없네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김 대표님은 최상급 주의 대상이라고요. 하하하."
"제가 MI6의 감시를 받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칸 위원장이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귓속말하는 손동작을 취하며 속삭였다.
"사실 이 회사에도 MI6의 사람이 있습니다."
"네? 여기도요?"
"물론이죠."
"당장 직원들 이력을 다시 확인해 봐야겠는데요?"
"소용없을 겁니다."
"…하하. 대단하군요."
"이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 회사라면, MI6 외에 다른 곳에서도 아마 사람을 심어 뒀을 겁니다."
"그거참 소름 돋는군요."
"하하하.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바쁘실 텐데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차 더 알게 되는 내용이 있으면 연락드리죠."
"뉴욕으로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먼길 오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돌아가실 땐 마법진으로 모셔다드리죠."
"그럼 제 출입국 내역이 엉망이 될 텐데요?"
"MI6에서 그런 건 못 바꿔주나요?"
"가능하죠. 하하하. 그럼 사양하지 않고 저도 워프 마법진을 한번 이용해 보겠습니다."
"여기 강화도에 맛있는 한정식집이 많습니다. 우선 그리로 가시죠."
"좋습니다."
* * *
다음 날, 하와이 오하우 섬 와이키키 해변.
저 앞에는 최수영과 스테노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나는 야자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칸 위원장이 추가로 보내준 파일. 쇼인 결사대의 그간 행적들에 관한 내용과 몇 년 전 입수했다는 하치조코섬 비밀 시설의 약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쇼인 결사대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애옹―"
물을 싫어하는 꽝이는 최수영과 스테노를 따라가지 않고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영 심심한지 애옹애옹 하며 자꾸 내 몸에 등을 비볐다.
"넌 도대체 고양이야, 강아지야? 뭐, 산책이라도 시켜줘?"
산책이란 말을 들은 꽝이의 귀가 쫑긋 섰다.
"에휴,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니까. 그래, 가자 산책."
"애오옹―"
해변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일어나 걷기 시작하자 꽝이가 어깨 위에 올라왔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와이키키 해변 풍경은 정말 평화로웠다.
그때, 갑자기 꽝이가 하악질을 시작했다.
꽝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오른쪽 대각선 길 건너에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청소년 서넛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그다지 위협이 될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꽝이, 왜 그래? 고장 났어?"
그래도 뭐가 있나 싶어 길 건너편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꽝이가 어느새 다시 털을 편안히 눕히고 내 목에 기대왔다.
한 번도 엉뚱한 데서 하악질을 한 적은 없었는데.
혹시 싶어 다시 감각을 끌어올려 봐도 주변 누구에게도 아무런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5분 정도 더 가니 푸드트럭 마켓이 나왔다.
갈릭새우와 파인애플 음료 세 개를 사서 원래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세 명이 먹을 걸 사다 보니 손이 모자라서 그냥 허공섭물로 간식을 들고 이동했다.
음료와 간식들이 공중에 둥둥 뜬 채 나를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나와 간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있던 곳에 도착하니 최수영과 스테노가 물에서 나와 있었다.
"오빠!"
최수영이 소리쳤다.
"짐을 그냥 두고 자리를 비우면 어떡해!"
허공섭물로 들고 온 간식거리를 테이블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최수영이 소리를 치든 말든 스테노는 갈릭새우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왜 그래, 수영아. 무슨 일 있어?"
"지갑이랑 휴대폰 다 사라졌잖아. 하와이에 소매치기랑 좀도둑 많은 거 몰랐어?"
"아……."
이제야 아까 꽝이가 하악질을 한 이유를 알아냈다. 아까 그 청소년 무리가 바로 좀도둑이었던 것이다. 우리 물건을 훔치기 위해 내가 멀리 떨어지길 기다리고 서 있었겠지.
괜스레 어깨 위의 꽝이를 한번 쓰다듬었다.
"꽝이야, 아까 고장 났냐고 물어봐서 미안해."
"애옹―"
"수영아, 누가 훔쳐 갔는지 알 것 같아. 가서 찾아올 게 조금만 기다려."
나는 그대로 몸을 공중으로 붕 띄운 채 와이키키 해변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적한 골목에 아까 그놈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쿵.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놈들의 앞에 내려섰다.
"야! 튀어!"
날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 놈 하나가 소리치자 다들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며 놈들을 하나씩 잡아 다시 한곳에 모아두었다.
잔뜩 겁을 먹은 좀도둑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열 살 조금 넘어 보이는 아이부터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놈들까지.
"내놔."
나름대로 용기 있는 놈이 나서서 앙칼지게 소리쳤다.
"뭘 내놔!"
딱!
놈의 머리통에 꿀밤을 한 대 날렸다. 살살 때린다고 했는데 금세 커다란 혹이 올라왔다.
"세 번 말 안 한다. 내놔."
공중에서 갑자기 떨어져선 순식간에 한 명씩 뒷덜미를 잡아끌고 이곳에 모아놓은 사내. 그리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운.
좀도둑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놈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우리 아지트에 있다."
"가서 가져와. 다른 사람들 것도 싹 다."
좀도둑이 옆의 허름한 집에 들어갔다가 큰 바구니를 들고 다시 나왔다. 안에는 오늘 훔친 것으로 보인 지갑이며 휴대폰, 귀중품들이 한가득하였다.
"바구니 옆에 다 모여. 사진 찍게."
좀도둑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맞고 설래, 그냥 설래."
결국 놈들은 훔친 물건 뒤에 주르륵 섰다. 나는 휴대폰으로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잘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오늘 안에 이거 다 주인 찾아서 돌려줘. 안 그러면 하와이 보안관부에 이 사진 보낸다."
바구니에서 우리 물건들을 모두 꺼낸 후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수영아, 물건 찾아왔어."
"금방 왔네?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간식 사 온 건?"
"스테노 언니가 다 먹었어."
셋이 충분히 먹을 만큼 사 왔었는데?
황당해서 스테노를 바라보자 그녀는 갑자기 콧노래를 부르며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인근에 유명하다는 시푸드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수영아."
"응?"
"꽝이 말이야. 정확히 나한테 적대적인 대상한테만 하악질을 하잖아?"
"그렇지. 아까도 좀도둑 보고 하악거렸다며. 아직도 꽝이 보다 둔한 우리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쳐 가고."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인데."
"뭐?"
"일본 헌터 우메오가 왜 갑자기 재외공관 사업에 지원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서 말이야. 기억하지? 뉴욕에서 우메오 보자마자 꽝이가 하악질 한 거."
"아! 맞아. 그냥 오빠한테 얻어맞고 아직도 무슨 복수 같은 걸 꿈꾸고 있는 줄 알았더니."
"복수는 무슨 복수. 혼자서 그게 가당키나 하겠어?"
"하지만 등 뒤에 쿠라타니 후지로가 있다면……."
"응. 나한테 복수할 마음을 품을 수 있겠지. 실제로 놈을 도와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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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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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금액 282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