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 출정 】
정령의 마법 주머니에서 일회용 마법진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회사 워프실로 연결된 마법진 돗자리였다.
조금 기다리자 숲으로 들어갔던 스테노가 돌아왔다.
여기저기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들판을 둘러본 스테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놨네. 이제 다 했어?”
“응, 가자. 불사인이고 뭐고 이 정도면 되살아나지 못할 거야.”
스테노에게 손짓하자 살포시 걸어와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마나를 운용하자 금세 밝은 빛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회사로 돌아와 최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오빠. 잘 끝났어? 이겼어?
“이겼지. 성희랑 이 실장님은 어때?”
- 조금 전에 깨어났어. 둘 다 괜찮대. 걱정하지 마.
“다행이다. 고마워, 수영아.”
- 그런데 후지로 채굴 엄청나게 했을 거라며. 그래도 우리 오빠한테는 안 되네?
“아슬아슬했어. 천마 할배가 안 도와줬으면 졌을 거야.”
- 뭐야, 겨우 이겼나 보네? 그러게 내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위험한데 혼자 다니지 말라고!
“알았어, 알았어.”
- 걱정시키지 말란 말이야. 어휴, 진짜. 조금 있다가 성희랑 이 실장님 데리고 돌아갈 테니까 기다려.
“응, 조심해서 와.”
한 시간 후 다들 강화도로 무사히 돌아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느 매체에서도 하치조코섬의 일에 대한 뉴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MI6에서 뒷정리를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성희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최수영이 물었다.
“오빠, 칸 위원장이 알려줘서 미리 알고 대비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성희 납치가 성공했다면 놈들이 어떻게 나왔을까?”
“성희 목숨을 가지고 날 협박했겠지. 아마 날 죽일 수 있는 판을 짜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빠 성격에 가족들을 나 몰라라 할 리도 없고.”
“어쨌든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야. 이제 그 쇼인 결사대 놈들은 어쩌려나? 후지로가 죽었어도 놈들은 여전히 일본을 장악하고 있긴 하니까.”
“혹시 우리 없는 동안 진짜 전쟁이라도 일으키면 어떡해? 재외공관 설치하러 가기 전에 결사대를 완전히 없애버려야 하나?”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면 주변국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쉽지 않을걸.”
“그럼 다행이고.”
“어쨌든 위험한 생각을 가진 놈들이니 어떻게 할지 직원들이랑 의논을 좀 해보자. 칸 위원장하고도 얘기해 보고.”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칸 위원장이었다.
“네, 위원장님.”
- 김 대표님. 하치조코섬을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 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화풀이를 좀 하고 왔죠.”
- 화풀이 같은 걸 하시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의외의 모습이군요.
“하하. 농담입니다. 불사인들이 재생 마법으로 되살아나지 못하게 확실히 뒤처리했을 뿐입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쇼인 결사대에 대한 다음 계획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아직은 없는데 왜 그러시죠?”
- 아, 제가 조금 전에 CIA와 MI6의 회담 내용을 전달받았거든요. 그래서 연락드렸습니다.
“회담 내용이 뭔데요?”
- 그건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제가 연락드린 이유는, 혹시 쇼인 결사대에 대한 무슨 계획이 있으시다면 그냥 실행하지 않으시는 게 낫겠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별 계획은 없지만, 그런데 왜죠?”
- 내일이 되면 아시게 될 겁니다. CIA와 MI6는 안 그래도 게이트 때문에 어지러운 이 시국에 국제 정세에 새로운 위협이 나타나는 걸 썩 내켜 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말씀해 주시기 곤란한 내용인 것 같은데 그래도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충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 역시 통찰력이 있으십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네, 뉴욕에서 뵐게요.”
전화를 끊자 최수영이 물었다.
“왜? 무슨 일이래?”
“쇼인 결사대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래.”
“왜? 자기들이 뭔데 그런 것까지 간섭이야?”
“느낌이 간섭하려고 말한 것 같지는 않아. 어쨌든 왜 그런지는 내일 알 수 있대.”
다음 날 아침 일찍, 와노 토쿠겐 육상총대 사령관이 자택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인은 자살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금은 TV에서 이에즈미 히데나오 자위함 사령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함께 뉴스를 보던 최수영이 말했다.
“칸 위원장, 무서운 사람이었네?”
“이미 현직에서 물러나 있는 위원장이 지시한 건 아닐 테고, 어제 CIA와 MI6가 회담을 했다고 하던데 이게 그 결과인가 봐.”
“쇼인 결사대는 곧 무너지겠다.”
“응. 군부 정치도 곧 막을 내리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잘됐다. 나쁜 놈들. 우리나라를 또 넘보다니.”
* * *
며칠 후. 모든 디펜서를 강당으로 모이게 했다.
단상 위에 오르자 내 뒤편 대형 스크린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띄워졌다.
화면에는 ‘디펜서 조직 및 훈련 계획 변경 안’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메타디펜스의 디펜서 여러분.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오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어 이 자리에 모이시게 했습니다.”
단상 옆 책상에서 노트북을 다루고 있는 비서실 직원에게 눈짓을 보내자 프레젠테이션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오늘부로, 디펜서 조직은 네 개 팀으로 재구성됩니다. 디펜서분들의 능력치나 상성을 잘 고려해 배치하였습니다.”
화면엔 네 개 팀 인원 배치가 띄워졌다.
“각 팀 팀장님으로는 이근수, 정성민, 민지훈, 유민철 팀장님이 새로 임명되었습니다.”
이근수와 정성민은 천마의 제자, 민지훈과 유민철은 마법 본부 디펜서 여섯 명 중 특히 뛰어난 두 명이었다.
“다음은, 변경된 훈련 계획입니다. 매일 아침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는 전원 내공 심법 훈련을 진행합니다. 교관은 이근수 팀장님입니다.”
간단히 내공 심법 대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코인으로 구매한 신체 강화 상품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훈련.
추가 코인 구매 없이도 몇 배의 신체 능력 강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여러 디펜서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지막으로, 아시다시피 저와 최수영 이사님은 재외공관 설치를 위해 당분간 지구를 떠나있을 예정입니다. 그동안 메타디펜스를 잘 부탁드립니다.”
강당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바로 마법 본부를 찾았다.
레온은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내 헛기침 소리에 반응했다.
“수호 형!”
“바쁘네, 레온이.”
“커리큘럼을 다시 점검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마법을 배우는 데 삼 년은 너무 짧아요.”
“중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라 어쩔 수 없었어. 일단 마법 아카데미는 자립형 사립고로 시작하고, 나중에 중학교까지 포함시켜 보자. 그리고 성적이 괜찮은 학생들은 어차피 마법 본부 직원으로 뽑아서 더 훈련 시킬 거잖아.”
“네, 알아요. 처음엔 몰랐는데 한국 교육에 대해 좀 알고 나니 마법 고등학교 설립 승인을 받아낸 형이 진짜 대단한 거였더라고요. 지금도 어떻게 승인을 받아낸 건지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날 좀 좋아해. 어쨌든 어렵게 따낸 거니까 잘 해내야 한다고. 내년 3월부터 신입생 받으려면 올해 잘 준비해야지. 건물도 거의 다 지어진 거 봤지?”
“건물이 생각보다 더 크고 화려하던데요? 그리고 회사로 벌써 입학 문의가 많이 온대요. 인터넷에도 반응이 뜨겁고요.”
“형이 그 전에 돌아와서 입학식에는 함께해야 할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저도 형이랑 다시 모험을 떠나고 싶었는데. 벌여 놓은 일이 너무 커져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게 되었네요.”
“대마법사의 길은 원래 그런 거야. 사무엘인가 그놈은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마법사의 탑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다며.”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떠날 준비는 다 끝났어요?”
“나랑 수영이야 뭐 준비랄 게 있나. 미국에 있는 군인들이 바쁘겠지. 아무튼 우리 없는 동안 마법 본부랑 마법 아카데미 잘 부탁해 레온아. 너만 믿는다.”
“알겠어요, 형. 다른 행성끼리도 워프 마법진이 작동하면 좋을 텐데. 형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네가 연구 좀 잘해 봐, 인마.”
“고민은 해봤었는데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어요. 헤헤.”
* * *
“그게 다 뭐야, 수영아?”
“옷.”
“캐리어가 몇 개야 도대체?”
“1년을 있을지 2년을 있을지 모르잖아. 어차피 오빠 정령의 마법 주머니에 다 넣으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오빠 아이템 중에 그게 제일 탐나. 마법 주머니.”
행성 여행이 막 시작됐을 무렵 최수영도 랜덤박스를 구매했지만, 그녀는 여섯 개의 아이템에 썩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행성 087에서 받은 투명 투구 같은 건 꽤 쓸 만해 보였는데, 최수영은 자기 눈에도 자기 몸이 안 보이는 게 너무 소름 돋는다며 사용을 꺼렸다.
그 투명 투구의 이름은 ‘저승의 왕 하데스의 투구’였다. 꽤 거창한 이름.
지금은 내 마법 주머니에 고이 들어있었다. 마지막으로 꺼내 본 게 언제였더라.
이 정령의 마법 주머니는 또 신기해서, 최수영이 직접 여기에 넣은 N마켓 아이템들은 주인이 멀리 떨어져도 자동으로 이동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 와, 그래도 캐리어 다섯 개는 너무했네.”
“오빠는? 짐 안 쌌어?”
“나도 백 팩 하나 채워서 정령의 마법 주머니에 넣어놨지.”
“더 챙겨. 지난번처럼 거적때기만 입고 돌아다닐 거야? 어차피 마법 주머니에 넣으면 되잖아.”
“그래, 알았어. 나도 캐리어 하나 더 싸야겠다.”
“화장품은? 많이 챙겼어?”
“그냥 올인원 하나…….”
“으휴. 테라 행성 가면 또 공기가 얼마나 건조할 텐데. 됐어. 화장품은 내 거 같이 쓰면 되니까. 보조배터리는? 많이 챙겼어? 휴대폰 꺼놔도 자연 방전되잖아.”
“공병 부대에서 주둔지에 쓸 태양광 패널을 꽤 많이 싣고 떠날 모양이야. 그리고 스테노 준다고 황동민 실장님이 개발하던 게 있는데, 챙겨 갔다가 꼭 필요할 땐 우리도 그걸 쓰면 될 것 같아.”
“그게 뭔데?”
“소형 태양광 발전기.”
“계산기에 붙어있는 그거? 그걸로 휴대폰 충전이 되겠어?”
“황 실장님 말로는 그거랑은 비교 불가라던데. 아무튼 가보자. 완성됐는지.”
기술개발실로 가자 황동민 실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실장님, 그 태양광 충천기는 완성이 됐나요?”
“네, 완성됐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황동민 실장을 따라가자 커다란 테이블 위에 펴다 만 돗자리 같은 게 놓여 있었다.
“고효율 태양광 패널입니다. 다 접으면 노트북보다 조금 두꺼운 정도인데, 펼치면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왜 펴다 만 모양인가요?”
“효율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태양이 있는 쪽을 향하게 세팅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한나절만 펼쳐놔도 휴대폰 정도는 몇 번이고 충전할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됩니다.”
“고생하셨어요. 되도록 생산을 좀 많이 해두세요. 아무래도 전자 제품이라 수명이 있을 테니까요. 스테노는 수명이 아주 길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온종일 바쁘게 회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더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되었다.
* * *
같은 시각, 미국 뉴저지 메이플 우드. 새벽 3시.
산책하긴 이른 시간. 아무도 없는 메모리얼 공원 한쪽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눈치 빠른 새들이 먼저 놀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검은색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블랙 게이트.
게이트는 빠른 속도로 크기를 키워 나갔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커진 게이트는 주변 사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빨아들이면서도 게이트는 계속 제 몸집을 키워갔다.
콰드득.
공원의 아름드리나무가 통째로 뽑혀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더 커진 게이트는 이제 공원 옆 노상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들까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크기를 키우는 화이트 게이트와는 달리 블랙 게이트는 빠른 확장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모리얼 공원 일대를 잡아먹을 듯한 블랙 게이트가 완성되었다.
지름이 30미터에 육박하는 A급 블랙 게이트였다.
* * *
4월 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498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10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