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 * *
한국 시간 오후 다섯 시.
출정이 결정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뉴욕 기준, 오전 여덟 시 출정. 블랙 게이트 위치 : 뉴저지주 메이플우드]
시차를 계산해 보니 네 시간 후였다.
급히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최수영과 스테노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담담해 보이는 최수영과는 달리 스테노는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곧 출발이라며? 신난다. 지구 여행도 재밌었는데 또 새로운 행성들이라니. 처음부터 바로 내가 살던 곳으로 가면 안 되는데. 수호랑 수영이랑 실컷 돌아다니다 가야 하는데.”
“살던 곳에 가도 동생 데리고 다시 여행 떠날 거라며.”
“그건 그런데, 너희랑 더 다니고 싶어서 그러지. 귀여운 커플.”
준비를 마친 우리 셋은 워프실로 향했다.
워프실엔 레온이 직접 나와 있었다. 레온 뿐만 아니라 이혁진 실장을 비롯한 각 부서의 관리자들, 그리고 새로 임명된 디펜서 팀장들도 나와 있었다.
“다섯 시 넘은 지가 언젠데 다들 퇴근 안 하시고 여기서 뭐 하세요. 특히 디펜서팀은 퇴근 후에도 언제 출동해야 할지 모르니 다섯 시엔 무조건 칼같이 숙소로 돌아가시라고 했잖아요.”
이혁진 실장이 말했다.
“대표님 배웅하러 모였죠. 잘 아시면서 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잘 다녀오십시오.”
이근수 디펜서 1팀 팀장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 대표님과 함께 일한다는 데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녀오시는 동안 여기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그래 왔듯 잘 지켜낼 것이고, 더욱 성장해 있겠습니다.”
천마에게 무공만 배운 줄 알았더니 낯간지러운 말투까지 배운 이근수였다.
3팀 팀장 민지훈도 거들었다.
“팀원들도 모두 배웅하러 나온다는 걸 너무 복잡스러울 것 같아 겨우 숙소로 돌려보냈습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하하, 빠르면 반년도 안 돼서 돌아올 수도 있어요. 너무 이렇게 아주 보내는 것처럼 인사하지 마세요.”
뉴욕으로 가는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레온이 가동을 시작했다.
“레온이 너는 할 말 없어?”
“울 것 같아서요. 그냥 안 할래요. 빨리 가요.”
“알았어. 하하. 갔다 올게.”
밝은 빛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혁진 실장을 보며 외쳤다.
“매제! 성희 잘 부탁해.”
“예! 형님!”
* * *
뉴욕주 방위군 56여단에 준비된 마법진에 도착했다.
부대 안은 이미 출정 준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괜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는 한국군이 배치된 제5 부대와 함께 이동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물론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나면 전면에 나서야겠지만, 일단은 한국군과 함께 움직일 계획이었다.
한국군 대대 막사로 가자 마찬가지로 출동 준비가 한창이었다.
저 멀리 장교 몇 명과 걸어오고 있는 박현준 대대장이 보였다.
올해 나이 마흔. 이제 막 중령이 된 장교로 이번 파병 대대의 총지휘를 맡았다.
작고 동안인 얼굴과는 대비되는 우람한 몸을 가진 인물.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군복 밖으로도 훤히 드러났다. 마흔 살인데도 몸에 군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박현준 대대장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김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드디어 출정이군요. 대대장님.”
“미군 사이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함께 가시면서 지켜봐 주시죠.”
“제5 부대로 편성되었으니 가장 긴 일정이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행성은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는 뜻 같죠? 하하하.”
“김 대표님이 계신 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부대와 함께 이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세 분 탑승하실 차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미국 시각으로 오전 여덟 시 정각, 대규모 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동 효율성을 위해 최소 병력으로 구성한다고 했지만 다 모이니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다섯 개 부대는 전차대대, 공병대대,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포함해 각 400명 내외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섯 개 행성에 재외공관을 설치하기 위해 총 2,000여 명이 떠나는 대규모 이동이었다.
우리는 가장 후미의 제5 부대를 따라 이동했다. 신형 LTV(소형 전술차) 한 대가 우리 세 명의 이동을 위해 배정되었다.
얼핏 보면 미국의 험비같이 생겼지만,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신형 전술 차량이었다.
모든 유리는 30밀리미터 두께의 방탄유리로 제작되었고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철판이 차량 전체에 둘러져 있었다.
“수영아, 그래도 레온이랑 셋이 돌아다닐 때보단 상황이 좀 낫네. 차도 있고.”
“그러게. 차도 타고 다니고 훨씬 낫다. 뒤에 짐칸도 넓어.”
전차들과 함께 이동하다 보니 쌩쌩 달릴 수가 없어 한참이 지나서야 메이플 우드에 있는 블랙 게이트에 도착했다.
우리 눈에 블랙 게이트가 보일 때쯤엔 이미 제1, 제2 부대는 게이트 안으로 진입한 후였다.
잠시 후 지휘관 차량을 시작으로 제5 부대도 게이트 진입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강한 압력에 짓눌리는 느낌과 사방에서 몸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번갈아 반복되기를 한참.
그리 크진 않지만 강철을 덧대 제법 무거운 LTV 차량은 공중에서 튀어나오지 않고 무사히 바닥을 통해 화이트 게이트로 빠져나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흔들림은 있었다.
흔들림이 멈춘 후, 앞유리로 밖을 바라보자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빼곡하고 높은 나무들. 익숙한 곳이었다.
행성 055.
쥬라기 시대 공룡들이 사는 행성.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산소 밀도가 훨씬 높아 모든 동식물이 지구보다 한참 컸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를 바라보며 운전병에게 물었다.
운전병은 올해 스물두 살이 된 청년으로,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이름은 정민우.
“창문을 좀 열 수 있나요? 여기 공기 진짜 상쾌한데.”
“환기는 시킬 수 있는데 창문은 안 열립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요. 정 상병도 그럼 최대한 환기해서 이곳 공기 좀 마셔보세요. 우리 셋은 차 지붕 위로 올라갈게요.”
나는 달리고 있는 LTV의 뒷문을 열어젖혔다.
정민우 상병이 난처한 목소리로 외쳤다.
“위험합니다!”
“괜찮아요. 이 행성엔 우리한테 위협이 될 존재는 아마 없을 거예요. 수영아, 스테노. 차 위로 올라가자.”
우리 셋은 LTV 위에 앉아 행성 055의 맑은 공기를 만끽했다.
스테노가 연거푸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수호, 여기 공기 너무 상쾌해. 숲도 나무도 다 엄청 커. 내가 있던 서쪽 숲이랑은 완전 다르네.”
“나무만 큰 게 아니라 동물들도 커. 히드라만큼 큰 동물도 나오는데 너무 놀라지 마. 머리도 하나고 순한 애니까.”
그때였다.
요란한 전차 소리에 놀란 브라키오사우루스 한 마리가 나무 위로 머리를 빼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스테노가 놀라 물었다.
“쟤, 쟤야?”
“응. 크기만 컸지, 순해.”
“그럼 쟤들은?”
스테노가 가리킨 곳에 랩터 열댓 마리가 우리 대열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탕, 타다당!
투두두두두!
앞서가던 전차 위의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새로운 사냥감 냄새를 맡고 힘차게 달려오던 벨로시랩터들은 가까이 와보지도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뭐야, 험상궂게 생겼는데 약하네?”
“쟤들이 약한 게 아니라 군인들 화력이 센 거지. 전차 부대잖아. 이 행성에선 아마 우리 대열에 큰 위협이 될 만한 건 없을 거야.”
다섯 개 부대의 긴 대열은 반나절 넘게 이동했다. 주둔지로 적당한 곳을 찾는 것 같았다.
대열의 맨 뒤에서 가다 보니 앞선 부대에서 설치한 표지판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주둔지 위치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부대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여러 개의 표지판이 세워졌다.
이렇게 계속 이동하다가 적당한 부지가 나타나면 주둔지 설치가 진행될 것이다.
높은 언덕을 하나 넘자, 저 아래 강가에 먼저 도착한 공병 부대가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지구의 첫 번째 재외공관이 설치될 장소였다.
큰 강을 끼고 주둔지 설치가 시작되었다. 방어와 식수 공급을 모두 원활히 하기 위한 위치 선정이었다.
멀리서 주둔지가 설치되는 모습을 바라보던 최수영이 물었다.
“첫 번째 재외공관은 수월하게 진행되네. 오빠, 그럼 우린 여기 얼마나 머무는 거지?”
“외벽이 세워지고 제1 부대 병력이 방어 준비를 마치면 바로 떠날 준비를 할 거야. 하지만 얼마나 머물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블랙 게이트를 또 찾아야 하니까?”
“응. 또 이만한 병력이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는 블랙 게이트가 언제 나타날지, 그걸 바로 찾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지. 그래도 레이더랑 군사 드론으로 수색을 할 테니 예전에 우리 셋이 돌아다니면서 찾을 때랑은 많이 다를 거야.”
“그래, 뭐. 한두 달 만에 돌아갈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 편히 기다리는 게 낫겠네.”
“응. 지루하면 스테노랑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채굴이나 좀 하면 되니까.”
최수영이 손뼉을 짝 치며 큰소리로 웃었다.
“아, 맞다. 오빠 이제 코인 거지지. 하하핫.”
“거지라니. 아직도 지금 시세로 10조 원어치는 넘어.”
“나는 100조도 넘게 있는데? 반 나눠 줄까?”
“반이나 준다고? 50조 원어치?”
“응. 지금 보내 줄게. 뭐 당장 쓸 데는 없어도 너무 많다가 갑자기 없으면 허전하잖아.”
“아니야, 괜찮아. 네가 잘 갖고 있어. 나도 다시 모으면 돼.”
“그래? 난 분명히 나눠준다고 했다. 후회 안 하지?”
“응. 나 말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안심돼. 혹시 모를 상황이 왔을 때 운동 신경이랑 내구도 한 단계씩 더 올릴 코인은 되잖아. 최소한 그만큼은 가지고 있어야 해.”
“그래, 알았어. 오늘은 차 오래 타서 피곤하니까 내일부터 채굴 좀 하러 가자. 우리 오빠 거지 돼서 불쌍하다.”
“거지 아니라니까!”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 일행 세 명은 주둔지를 빠져나왔다.
스테노는 언제나처럼 가벼운 차림이었고, 나는 어깨에 제법 큰 아날로그 무전기를 달고 나왔다. 비상시에 부대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무전기였다.
최수영은 당연히 등에 커다란 활을 메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레온이가 그러는데 여기 엄밀히 말하면 쥬라기 행성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래?”
“응. 그건 그냥 지구인들이 편하게 부르는 행성 이름이고. 레온이가 공부한 바로는 우리가 본 공룡들이 동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이 아니라나 봐.”
“그럴 수 있겠지.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도 아니고, 여기도 뭐 시스템의 설정 값에 따른 행성일 테니까.”
순간 최수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시스템 설정 값이라니……. 잊고 지내다가도 오빠랑 얘기하다 보면 한 번씩 불쑥불쑥 떠오르네.”
“뭐가?”
“진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메타버스일까? 그럼 난 도대체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최수영은 최수영이지.”
“오빠 말이 맞아. 이 생각은 너무 길게 하면 안 좋더라고. 하하핫. 메타버스 밖에 있는 내가 오빠랑 모르는 사이면 어떡해. 그건 너무 서글프잖아.”
“그럼 메타버스 밖을 안 나가면 되지 뭐. 여기가 뭐가 됐든 빨리 재외공관 다 설치하고 지구로 돌아가서 우리 결혼도 하고 하면 되지.”
스테노가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초대해 줄 거지? 결혼식.”
“스테노는 고향 행성 가서 동생 만나야지.”
“동생 만나서 이거 선글라스 전해 주고, 나 너희들 따라서 다시 지구 갈래. 뭐, 동생이 같이 가겠다면 걔도 데리고 가고. 아님 말고.”
“왜? 동생이랑 같이 여행 다닐 거라고 좋아했잖아. 고향 행성 구석구석 다 다닐 거라며.”
“그건 또 나중에 하면 돼. 난 너희랑 달리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 그보단 너희 둘 결혼식이 더 보고 싶어졌어. 내 평생 첫 친구들인데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니! 낭만적이야.”
그때 갑자기 최수영이 발걸음을 멈췄다.
“오빠, 이것도 공룡 발자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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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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