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 * *
조금 전 최수영이 여긴 꼭 쥬라기 공룡만 사는 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긴 했는데.
그래 봐야 백악기 공룡 정도 같이 산다는 얘기 아니었나?
이건 대충 봐도 공룡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크기가 엄청난데. 그리고 바닥에 이거, 진액 맞지? 행성 094 습지대에 사는 몬스터들 몸에서 나오는 거.”
“그런 것 같아. 게이트로 넘어왔나 봐?”
“어쩐지 주둔지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공룡이나 여기 동물들을 한 마리도 못 봤다 했어. 새로운 포식자가 나타나서 다 도망쳤나 보다.”
“오빠, 이거 발자국이 한 놈이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보고 있어. 최소 셋? 넷? 발자국이 이 정도 크기면 주둔지에도 위협이 될 수 있겠네. 어디로 갔는지 찾아봐야겠다.”
우리는 놈의 크고 묵직한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빠른 걸음으로 몇 킬로미터쯤 걸었을 때, 언덕 너머 거대한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졌다.
“저 앞에 있는 모양이야.”
“가보자.”
콰득. 콰드득.
몸길이가 10미터도 넘는 육식 공룡 한 마리가 행성 094의 거대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육식 공룡이라면 이 일대에서 최강의 포식자에 속했을 텐데, 지금은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새끼 사슴 같은 꼴이 되어 있었다.
육식 공룡을 잡아먹고 있는 몬스터는 머리통 크기만 족히 10미터는 돼 보였다.
카리브디스 외에는 저렇게 큰 몬스터는 처음 보았다.
거대한 도마뱀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거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인지 다리가 여섯 개였다.
등에는 이미 퇴화한 듯 볼품없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다 말라서 모양만 남은, 움직여질 것 같지도 않은 날개였다.
앞에는 몸통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머리가 달려 있었고, 길게 찢어진 입은 어지간한 공룡은 한입에 집어삼키고도 남을 크기였다.
그리고 그런 놈들이 여기저기 네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큰놈들이 어쩌다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지?”
“생긴 거 봐, 오빠. 아무 생각이 없게 생겼잖아.”
“가서 처리하고 올게. 저 정도 놈들이면 주둔지에도 위협이 되겠다. 가죽도 분명 두껍고 질길 거야. 힘도 셀 테고.”
천천히 검을 뽑아 들고 가장 가까운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검기를 뽑아낸 후 놈의 목을 향해 가볍게 마그네타 검을 휘둘렀다.
텅!
너무 가볍게 휘둘렀나.
검기가 놈의 가죽에 맞고 튕겨 나왔다.
다시 한번. 이번엔 더 강한 힘과 속도로 휘둘렀다.
콰앙!
검기가 놈의 목 가죽에 부딪치며 엄청난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기는 놈의 목을 잘라내지 못했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무심코 혼잣말을 하는 사이 온몸의 신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놈의 꼬리가 엄청난 속도로 나에게 휘둘러져 오고 있었다.
덩치만 큰 도마뱀인 줄 알았더니 엄청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예전 행성 여행 초기, 히드라의 브레스를 피하다가 갑자기 날아든 꼬리에 크게 한 방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얼른 몸을 높이 띄워 꼬리 공격을 피해 냈다.
공중에 몸을 띄운 채 그대로 대천흑룡을 준비했다.
콰과과과!
화난 검은 용이 몬스터를 향해 쏟아져 내려갔다.
샤샥.
“피해?”
정말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다리 여섯 개를 재빠르게 움직인 놈은 그 큰 몸으로도 대천흑룡을 피해 냈다.
놈이 서 있던 자리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애초에 저 큰 덩치를 보고 그리 빠르지 않을 거라 속단한 게 잘못이었다.
그사이 다른 세 놈도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빠! 도와줘?”
최수영의 외침이 들렸다.
“아니야! 거기 가만히 있어. 절대로 자극하지 마! 보통 놈들이 아니야! 나는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으니 괜찮…….”
아,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몬스터 두 마리가 말라비틀어져 흔적만 남아 보이던 날개를 파닥거리더니 그 육중한 몸을 공중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머리 셋 달린 용, 히드라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히드라는 그래도 커다랗고 힘 좋아 보이는 날개를 퍼덕인 탓에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그럴듯하게는 보였었는데.
저건 무슨, 저런 날개로 저 몸을 띄워 올리다니.
이건 너무 물리 법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공중에 떠 있는 내 발을 보았다.
사실 생각해 보니 날개도 없는 내가 떠 있는 것보단 저놈들이 날아오르는 게 덜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몬스터 중 한 놈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나에게 쏘아져 날아왔다.
입 안에는 수백 개의 이빨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인간 수십 명도 한 번에 삼킬 수 있을 만큼 크고 위협적인 주둥이였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속도.
하지만 당해 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놈에게 몸을 날렸다.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놈의 입에 들어가는 걸 굳이 피할 필요는 없었다.
길고 큰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내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몬스터가 거대한 입을 닫으려고 했다.
동시에 나도 마그네타 검을 머리 위로 크게 휘둘렀다.
마그네타 검이 놈의 입천장을 빠르고 강하게 베고 지나갔다.
콰지직!
순식간에 놈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머리 위로 실드를 펼쳤다. 갈라진 놈의 위턱에서 역겨운 분비물이 쏟아져 내렸다.
실드 마법을 쓸 수 없었더라면 아마 놈의 주둥이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어떻게든 밖에서 베어보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쿠웅!
거대한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진 몬스터의 시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옆에서 날갯짓하고 있던 다른 한 놈이 제법 놀랐는지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가야지.
놈에게 몸을 날렸다. 다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놈의 꼬리를 마그네타 검으로 베어버렸다.
그 와중에 놈은 몸의 방향을 틀었고, 몸통 쪽으로 방향을 향하지 못한 마그네타 검은 몬스터의 꼬리만을 대각선으로 길게 베어냈다.
분명히 몸통까지 같이 갈라버리려고 한 공격이었는데, 정말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몸을 틀어 피해 내다니.
나는 바로 검을 양손으로 잡고 달아나는 놈의 꽁무니를 향해 대천흑룡을 쏘아 보냈다.
콰과과! 콰앙!
대천흑룡에 제대로 맞은 몬스터가 땅으로 떨어졌다.
제대로 맞으면 저 큰 몸통이 완전히 터지거나 뚫려 나갈 줄 알았는데, 저걸 맞고도 몸통 절반 정도만 겨우 터져 나갔다.
가죽만 두꺼운 게 아니라 몸 안팎의 내구도 자체가 모두 높은 모양이었다.
땅에 남아 있던 두 놈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그네타 검의 묵빛 검기에도 베어지지 않는 가죽. 대천흑룡을 맞고도 절반밖에 터지지 않는 거대 몸통.
지구의 첫 재외공관을 충분히 위협할 만한 몬스터였다.
쐐액!
최수영의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마나를 싣든 소형 폭탄을 달든 저 두꺼운 가죽엔 별로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낮게 깔려 가던 최수영의 화살이 도망가던 몬스터 한 놈의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콰앙!
소형 폭탄이 터지며 달아나던 놈의 몸이 뒤집혔다. 일부러 이걸 노리고 화살을 쏜 모양이었다.
놈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금세 다시 똑바로 일어섰다.
하지만 그 짧은 틈이면 충분했다.
놈의 머리 바로 위까지 도착한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몸통과 머리를 분리해버렸다.
이제 한 놈 남았다.
마지막 몬스터는 이미 우리와 꽤 멀어져 도망가고 있었다.
굳이 놈의 약점을 꼽는다면, 몸집이 너무 커서 멀리 도망가도 다 보인다는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놈을 따라잡았고, 나를 향해 거침없이 휘두르는 꼬리를 먼저 잘라버린 후 곧이어 몸통도 반으로 갈랐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자 최수영과 스테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수영이 말했다.
“무지막지하게 크기만 한 놈들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그러게. 저렇게 단단하고 빠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게다가 저딴 날개로 하늘을 날다니. 행성 094에 저렇게 센 몬스터가 있었나?”
“전부 돌아본 건 아니니까 어디 있었을 수도 있지 뭐.”
“저런 몬스터들이 사는 지역은 마물들도 쉽게 어떻게 해보지 못했겠어.”
“귀마왕이 그래서 지구로 넘어오려고 했나? 저런 애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엔 메타디펜스의 김수호 님이 계셨지. 하하핫.”
“귀마왕을 물리친 건 내가 아니라 천마인데.”
“어쨌든.”
휴대폰을 들어 N마켓에 들어가 보자 480NXT가 채굴되어 있었다.
“한 마리당 120NXT이네. 크라브디스랑 싸웠을 때 말고는 제일 비싸.”
“저런 놈들 많이 나타나야 우리 코인 거지 오빠 다시 코인 재벌 될 텐데 말이야.”
“저 정도 놈들이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나타나는 건 좀 곤란하겠는데?”
그때, 어깨에 메어 둔 무전기에서 운전병 정민우 상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점심 식사 거의 준비되어 갑니다. 복귀 바랍니다. 이상.
송신 버튼을 누르고 답했다.
“곧 돌아갑니다. 이상.”
돌아가는 길엔 숲길을 따라가며 육식 공룡을 만나면 검기로 슥슥 베었다.
주둔지 사람들도 보호할 겸, 채굴도 할 겸.
주둔지에 돌아가자 쌀밥에 각종 반찬이 차려진 식판을 배식받을 수 있었다.
박현준 대대장의 권유로 제5 부대 간부 막사에서 함께 식사했다.
“식사가 생각보다 푸짐하군요. 식량은 얼마나 챙겨오신 건가요?”
“이런 고기반찬은 곧 떨어지겠지만, 쌀과 통조림류라면 넉넉히 챙겨왔습니다. 몇 달은 끄떡없습니다.”
“어쨌든 여정이 길어지면 곧 자급자족을 시작하긴 해야겠네요.”
“세 군데 행성엔 사람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들의 식량과 물물교환할 만한 것들이 꽤 있을 겁니다.”
“테라 행성은 일부 바닷가 도시의 해산물을 제외하고는 먹을 게 풍부하지 못하고, 그나마 무림과 그리스 신화 행성은 바꿔 먹을 게 풍족할 것 같네요.”
“테라 행성은 거의 다 돌이나 사막인 땅이라지요?”
“네. 숲이 있긴 한데 다 말라비틀어져 있죠.”
* * *
테라 행성, 시엠브레 제국.
대마법사 사무엘이 마법사의 탑 남쪽 숲을 거닐고 있었다.
“오랜만에 탑 밖에 나오는군.”
사무엘의 수제자이자 시엠브레 제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마법사, 데클란이 답했다.
“숲 복구 마법을 쓰고 세 번째 봄이 오니 이제야 제법 풍성해졌습니다. 첫해와 달리 따로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열매도 맺히고요.”
사무엘이 체리같이 생긴 과일을 하나 똑 따서 입에 넣었다.
“라트니아의 마법사 놈들이 제법 큰일을 해냈어.”
“저는 아직도 후지로의 손에 라트니아의 마법사들이 거의 다 죽게 된 게 조금 안타깝습니다. 몇 명은 우리 쪽으로 회유해 불사인으로 만들었다면 시엠브레의 마법 발전에 제법 도움이 됐을 텐데요.”
“너와 나의 성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를 이어 연구를 거듭한 그자들의 성과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더군.”
“네. 어쨌든 그자들의 성과로 이렇게 숲을 살려내지 않았습니까. 숲이 살아나니 동물도 덩달아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다섯 왕국의 연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더냐?”
“뜬소문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숲을 되살리는 마법을 독점한다고 해서 몬테넬의 주도로 다섯 왕국이 연합해 우리 제국을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인데, 애초에 지리상 연합이 쉽지도 않거니와 그들이 모두 연합한다고 해도 우리 제국의 병력을 결코 당해 낼 수 없을 겁니다.”
“어리석은 것들. 어쨌든 당분간은 다른 왕국에서 작위를 받으러 넘어오는 자들은 받지 말아야겠구나. 불사인을 만들어 줬다가 내부의 적이 될지 모르니.”
“왕궁에 얘기해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테라 행성에서 가장 비옥한 땅. 이곳 시엠브레만 영원히 번성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연금술을 완성했을 때부터 나머지 놈들은 다 들러리인 것을. 과한 욕심을 부리려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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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0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13조 4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