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 * *
공병대는 튼튼한 외벽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져온 철골로 기본 뼈대를 만들고, 특수 개발한 고농축 시멘트와 이곳 행성의 흙을 섞어 단단한 벽을 쌓아 올렸다.
공룡들만 살던 세상에 종일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룡들은 낯선 소리에 놀란 탓인지 공사 중인 주둔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구에 있을 때보다 더 평화로웠다. 둘째 날 만난 말도 안 되는 몬스터 외에는 별다른 위협도 없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과 달리 하늘은 언제나 푸른색이었고, 산소 밀도가 높아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매일 새벽 최수영과 함께 내공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스테노와 함께 행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걸어서, 어느 날은 정민우 상병과 함께 차를 타고 주둔지 근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계곡 근처에 그늘막을 치고 쉬고 있는데 뒤에서 흉폭한 울음소리와 땅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니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인 것 같았다.
계곡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던 최수영이 말했다.
“오빠, 출동. 가서 채굴하고 와.”
“그래, 갔다 올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날렸다.
나를 발견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더 거친 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렸다.
스윽.
놈을 향해 마그네타 검을 살짝 긋자 검에서 쏘아져 나간 검기가 티라노사우루스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대형 공룡 하나를 잡을 때마다 채굴되는 코인은 10에서 20NXT 사이.
가벼운 칼질 한 번에 천억 원에 가까운 돈이 코인 지갑으로 들어왔다.
사실 이렇게 직접 채굴하지 않아도 메타디펜스에서 벌어들이는 돈만으로도 대대손손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적을 만날지 모르는 이 세상 속에서는 채굴을 멈출 수 없었다.
계곡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고 앉아 있는 건 내 피크닉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나선 김에 주변 공룡들을 싹 잡기로 했다.
무전기를 들어 최수영을 호출했다.
“최수영 나와라. 이상.”
- 왜 오빠. 이상.
“같이 채굴하자. 놀면 뭐 해. 이상.”
- 그럴까? 알았다. 그리로 가겠다. 이상.
무전기 너머로 스테노의 목소리도 들렸다.
- 나는 정민우와 피크닉을 마저 즐기겠다. 이상.
처음엔 사람을 좀 가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두세 번 만나는 사람은 죄다 친구로 삼으려고 드는 스테노였다.
며칠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말도 통하지 않는 정민우와 제법 살가운 사이가 되었다.
잠시 후 최수영이 내 옆에 와 섰다. 최수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기할까? 30분 동안 누가 더 많이 잡는지. 100코인 내기.”
100코인 내기라. 한판에 6천7백억 원짜리 내기를 제안하는 통 큰 여자였다.
“게임이 되겠어? 나 메타디펜스 김수호야.”
“나는 메타디펜스 최수영이거든? 어디 한번 해보자고.”
“애옹―”
꽝이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마치 심판을 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좋아, 해보자. 진짜 100코인 내기야. 자, 준비.”
최수영이 먼저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시작!”
기감을 넓혀 가까운 공룡에게 달려드는 나와는 달리, 최수영은 동쪽에 보이는 높은 언덕을 향해 뛰어갔다.
약한 놈은 1NXT부터 센 놈은 20NXT까지. 나름대로 채굴 효율을 고려하며 바로바로 다음 사냥 대상을 찾아 죽이고 있는데, 머리 위로 화살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화살 하나당 공룡 한 마리. 그것도 큰 놈부터. 게다가 어떤 화살은 한 번에 두세 마리씩.
몸놀림을 최대로 끌어올려 공룡들을 사냥해 보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밀집되어 있지 않은 이상 최수영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도 있지.
최수영은 언덕 위에 있으니 상관없고, 스테노와 정민우 상병만 조심하면 되었다.
뒤를 돌아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뒤, 그쪽만 빼고 검을 횡으로 크게 한 바퀴 돌렸다.
물론 검기를 있는 대로 길게 뺀 상태였다.
순식간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따라 주변의 모든 게 잘려 나갔다.
커다란 바위, 아름드리나무, 그 사이사이에 있던 크고 작은 공룡들. 그리고 최수영이 올라가 있던 언덕 밑동까지도.
최수영이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왼쪽으로 꺾고 두 팔을 슬쩍 들어 보인 후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김수호 씨. 이건 반칙 아닙니까?”
“위에서 그렇게 화살을 쏴대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뭡니까. 주변을 둘러보세요.”
반경 1킬로미터.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전부 내 어깨높이로 잘려 있었다.
“좀 심하긴 했네.”
“이게 뭐야.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이겨. 이제 주변에 화살 쏠 공룡도 하나도 안 남았어. 이 자연 파괴자.”
“지구도 아닌데 뭘.”
“어? 그건 또 그러네? 자연 파괴자라는 말은 취소. 하하핫. 어쨌든 내기는 내가 졌어. 100코인 보내 줄게.”
“그래도 초반에 화살로 엄청나게 쏴 죽이던데. 얼마 채굴됐는지 확인 안 해봐도 돼?”
“확인 같은 소리 하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시겠습니까? 김수호 씨.”
“알았어. 내기는 내기니까 그럼 100코인 보내.”
한바탕 사냥을 마친 최수영과 나는 다시 피크닉 장소로 갔다.
“사냥 잘하고 왔어? 아니지. 채굴이라고 했나? 암튼 잘하고 왔어? 금방 왔네.”
“응, 언니. 누가 이 근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금방 끝났어.”
“이제 돌아가자. 배고파.”
“언니 샌드위치 세 개나 먹었잖아?”
“그래도 이제 저녁 시간 됐으니까 배고파.”
“부럽다, 정말. 저렇게 먹는데 왜 살이 안 찌지?”
우리는 차를 타고 주둔지로 돌아갔다. 외출해 있던 오후 동안 외벽 공사가 꽤 많이 진척되었다.
로봇과 중장비들이 외벽 안팎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둔지로 들어가자 공병 부대의 대형 장비들이 이곳저곳에 땅을 파기 시작한 상태였다. 주둔지 안쪽 건물도 짓기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식사를 위해 간부 막사로 들어가자 박현준 대대장이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도 채굴 많이 하셨습니까?”
“오늘은 꽤 하고 왔네요.”
최수영이 거들었다.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대대장님, 이러다 여기 김수호 대표님이 아주 공룡 멸종시키고 떠나시겠어요.”
내기에서 졌다고 아직도 저러는 건가. 하긴, 6천7백억짜리 내기였으니까.
“하하하. 그것도 좋지 않습니까. 이곳에 불시착하게 될 지구인들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아예 육식 공룡을 다 멸종시키고 떠났다간 이곳 환경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그때, 구민혁 상황장교가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습니다. 하위 포식자일수록 멸종됐을 때 자연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상위 포식자는 없어져도 자연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는군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먹이사슬에서 아래에 있을수록 개체 수도 많고 그 영향력도 큰 법이다. 그리고 보통 상위 포식자로 갈수록 자연에 이로움을 주기보다는 파괴하는 일을 더 많이 일삼지 않나.
지구의 인간이나, 테라 행성의 불사인처럼.
박현준 대대장이 구민혁 상황장교를 가볍게 나무랐다.
“구 소령, 또 자연 보호 얘기인가. 하하. 식사 시간만이라도 좀 자제해 주지? 편하게 밥 좀 먹게 말이야.”
“네, 대대장님.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늘 반찬은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생선 요리군요!”
오늘의 메인 메뉴는 통조림으로 만든 고등어 조림이었다.
* * *
행성 087.
바다의 중심, 가장 깊은 곳.
바다의 님프, 세이렌 몇이 궁 안으러 헤엄쳐 들어갔다.
여성의 상반신을 가진 세이렌의 하반신에는 물고기 지느러미가 달려 있었고, 등 뒤에는 물새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세이렌들이 궁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거대한 알현실이 나타났다. 지붕도 없는 수중 건물에 화려하고 큰 기둥이 양옆으로 넓고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바닷속에다 지붕도 없는 왕궁에 왜 필요한지는 알 수 없는 기둥이었다.
기둥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매끈한 청동과 각종 보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하고 거대한 왕좌가 나왔다.
왕좌 위에는 푸른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왕이 앉아 있었다.
오른손에는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올림포스에서 제우스 다음가는 신이자, 바다의 왕. 포세이돈이었다.
“샅샅이 찾아보았느냐.”
“네, 포세이돈 님. 하지만 어디서도 따님의 모습을 찾지 못했습니다.”
콰앙!
포세이돈이 청동 의자의 손잡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다른 차원까지도 샅샅이 뒤져본 것이 확실하냐?”
“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세이렌 들이 몇 남았고, 애석하게도 저희는 찾지 못했습니다.”
“당장 너희들의 목을 분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지중해만큼 깊다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세이렌들이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도록 하겠다. 이곳 어디서도 카리브디스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요즘 자꾸 발생한다는 그 차원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말을 이어 가는 포세이돈의 미간에 점점 주름이 깊어지고 눈빛은 강렬해졌다.
“제우스에게 당해 그런 괴물이 된 것도 불쌍한데, 이젠 지중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니.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카리브디스.”
포세이돈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물의 신답게 그의 기운은 물을 밀어내거나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나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세이렌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올림포스의 신 중에서도 자식을 끔찍이 아끼기로 유명한 포세이돈이었다. 장녀가 실종되었으니 그의 분노는 엄청났다.
포세이돈은 세이렌들에게 전 차원을 모두 뒤져서라도 카리브디스가 어딨는지 확인해 오라 명했다.
그리고 두 달째 수시로 그녀를 못 찾았다는 소식을 전하러 왕궁에 들러야 하는 세이렌들은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바들바들 떨던 세이렌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따님은 불사의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옵소서.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도 살아계신 카리브디스 님이 아니십니까.”
포세이돈이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바들바들 떨며 겨우 입을 열었던 세이렌이 순식간에 포세이돈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니까, 찾아오란 말이다.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내가 너희 세이렌을 멸족시켜버릴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세이렌 하나가 급히 알현실로 헤엄쳐 들어왔다.
“포세이돈 님! 카리브디스 님을 찾았습니다!”
“그래? 어디냐 그곳이.”
“그런데…….”
세이렌은 잠시 말 꺼내기를 망설였다.
“…지구라는 곳에서 돌이 되셨습니다.”
“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꼭 세상 끝처럼 드넓고 높은 폭포 아래 돌이 된 채 잠드셨습니다.”
콰앙!
포세이돈이 쥐고 있던 청동 의자 팔걸이가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감히 어떤 놈이……! 가만, 돌이 되었다? 당장 서쪽 황금 사과 정원으로 가서 고르고네스 자매들이 거기 잘 있는지 확인하고 와라!”
다른 세이렌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고르고네스 자매 중 맞이인 스테노가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포세이돈이 방금 입을 연 세이렌을 무섭게 바라보았다.
무심코 포세이돈과 눈을 마주쳐버린 세이렌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포세이돈이 손을 한번 크게 휘저었다. 강한 물살에 휘말린 세이렌들이 모두 뒤로 밀려났다.
“당장. 스테노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라.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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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9,2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61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