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 *
수백 대의 금속 마차로 무장한 군대가 저 아래에서 야영하고 있는 모습이 제갈문의 눈에 들어왔다.
각종 병법서에 통달한 제갈문은 한눈에 저 무리가 군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금속 마차의 방향, 사령부로 보이는 중앙의 천막. 잘 나누어진 부대 편성.
마차를 끌 말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지만, 바닥의 자국을 보니 저 마차들은 분명히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저, 저들이 당신들의 일행이오? 도대체 몇 명이나 넘어온 것이오?”
김수호가 대답했다.
“한 2천 명 정도요?”
“모두가 당신처럼 강할 리는 없을 테고. 그래도 다들 싸울 수 있는 무인이겠지요?”
“무인? 무인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대부분 잘 훈련받은 군인은 맞죠.”
제갈문의 예상이 맞았다. 저 아래 야영 중인 무리는 군대였다. 그것도 말이나 소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금속 마차를 가진.
“천산에 볼일이 있다고 하셨소? 김 소협과 같은 무위에 저 정도 군대라니. 혹 천마신교와 결전을 치르러 가시는 것이오?”
“하하. 아니에요. 거기 아는 분들이 계셔서요. 뭐 부탁할 게 있어서 갑니다.”
제갈문은 생각했다.
‘일단은 최대한 대화를 많이 섞어야 한다. 그 속에서 잠시나마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구실을 찾아야 해.’
“무슨 부탁인지 들어볼 수 있겠소?”
“주둔지 같은 걸 좀 만들려고 합니다. 천마신교에서 도와주기로 하였으니 그곳에 만들려고요.”
지구에서 넘어온 자들이 주둔지를 만든다…….
“차원 이동문에 빨려들어 이곳으로 넘어오는 지구인들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계획인 모양이군요.”
김수호가 제갈문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대충 설명해 드렸는데 금방 거기까지 생각해 내시네요? 뭐, 비슷합니다.”
“차원 이동문은 언제 어디 생길지 모르는데 천산은 너무 서북쪽 끝에 있지 않소이까. 중원 중앙부에 주둔지를 설치하는 게 낫지 않겠소?”
“그렇긴 한데, 누가 선뜻 우릴 받아주겠어요. 그리고 천마신교가 지켜주는 곳이라면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기도 하고요.”
“넘어오자마자 육십진법에 걸리셨으니 여기가 어딘지는 아직 모르시겠구려.”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딥니까?”
“호북이오. 중원의 가장 중심에 있는 땅이라고 볼 수 있지요. 어떻소? 차라리 여기에 주둔지를 만드는 게 낫지 않겠소이까?”
“호북성이라면… 그렇군요. 중앙이긴 하네요.”
“그렇소. 게다가 오대세가 중 하나인 우리 제갈세가가 위치한 땅이오. 또 서쪽 무당산엔 무당파가 있소. 우리와 썩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무당파의 도사들 역시 의와 협을 중요시하오.”
“무당파와 제갈세가라면 구파일방 오대세가에 들어가는 정파 세력이군요.”
“천마신교와 연이 있으시다더니 무림에 대해 좀 아시나 보오. 게다가 이곳 동쪽 안휘 땅에는 남궁세가가 있고, 북쪽 하남에는 소림사. 북서쪽 섬서에는 화산파와 종남파가 위치하고 있소. 무당산 너머 중경 땅에는 사천당가가 있고. 모두 협과 의를 중요시하고 약자를 보호할 줄 아는 명문 정파외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이유가……?”
“나 제갈문이 무림맹에 잘 이야기를 해볼 테니, 여기 호북땅에 주둔지를 만들어보시는 게 어떻소이까. 중원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지구인들이 서쪽 멀리 있는 천산을 찾아가는 것보다야 명문 정파들의 비호를 받으며 이곳 호북으로 찾아오는 것이 훨씬 안전하지 않겠소.”
* * *
겨우 천산에 주둔지를 만들겠다는 얘기밖에 안 해줬는데 제갈문은 우리가 온 목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 의심이 되었다.
분명 뭔가 얻고자 하는 바가 있을 텐데.
제갈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우리 제갈세가는 무당파와 사이가 좋지 않소이다. 물론 자금이나 세력은 우리 제갈세가가 월등하나, 무력에서 한참 밀리니 무당파의 눈치를 보고 지낼 수밖에.”
“그런데요?”
“그래서 여러분을 이곳 호북 땅에 모시고자 하오. 무당파의 견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무림 내에서 제갈세가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더 높여야 하기 때문이오.”
저 말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대화를 이끌어갈 줄은 아는 인물이었다.
내가 의중을 의심하는 것으로 보이자 묻기도 전에 바로 자신들의 처지를 밝히며 얻고자 하는 바를 알려주었다.
“이건 또 어떻소. 정파니 사파니 하는 것들은 우리 무림인들의 일. 지구인은 상관이 없으니 서쪽 땅 신장, 서장, 감숙, 청해에 떨어진 지구인들은 천마신교를 찾아가게 하고, 이쪽에 떨어진 지구인들은 제갈세가를 찾아오게 하면 더 낫지 않겠소?”
“굉장한 호의를 베풀어주시겠다는 말이긴 한데, 왠지 더 절실한 쪽은 그쪽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요.”
“…우리 무림인들도 그 차원 이동문 때문에 고민이 많소이다. 무림맹에 얘기해 지구인들이 이곳에서 편히 지낼 수 있게 하면, 반대로 지구에서도 우리 무림인들을 받아주면 되지 않겠소이까.”
“하지만 ‘제갈세가’에서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려고 하는 명분으로는 좀 약한데요.”
일부러 ‘제갈세가’에 약간 힘을 주어 말했다.
제갈문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소. 나는 제갈세가에서 지구인들을 위한 주둔지를 지원하겠다고 무림맹에 정식으로 요청할 계획이오. 그 후엔 제갈세가의 땅 안에 커다란 주둔지를 만들 수 있도록 돕겠소. 그럼 무당파가 함부로 우리 제갈세가에 쳐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오.”
“우릴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소이다. 하지만 전투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말은 아니오. 아예 전투가 벌어지지 않게 만들 방패로 삼겠다는 말이오. 무림맹의 허가를 받아 다른 차원 사람들이 머물 수 있게 한 곳에 무당파가 함부로 쳐들어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오.”
제갈문은 분명 자신의 시커먼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저리도 다급한 걸 보니 당장 우리를 제갈세가의 앞마당에 두지 못하면 무당파에게 화를 입을 상황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진법은 무당파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설치한 것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우리에게도 분명히 이득이 되는 일이었고, 어깨 위의 꽝이도 얌전했다.
이곳에 떨어진 지구인들이 험한 천산을 지나 천마신교에 가는 것보다는,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는 정파 무림인들의 도움을 받아 호북에 오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일단 진법을 해체하고 나서 이곳에 주둔할 사령관과 얘기해 보죠.”
“김 소협은 여기 머물지 않으시오?”
“저는 또 다른 행성에 가봐야 해서요.”
“아쉽군요.”
“전력이 필요해서요? 주둔지가 전투 방패막이는 아니라면서요?”
“김 소협 같은 분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 그렇소. 제갈세가에도 김 소협 같은… 아니오.”
드드드드.
땅이 울리고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기물을 없애갈수록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속도를 조금 더 높여야 할 것 같소. 얼마 지나지 않아 진법이 완전히 틀어질 거요.”
“제갈 노협, 조금 빠르게 달려도 기물들이 어디 있는지 다 아실 수 있습니까?”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설계한 진법이외다.”
“그럼 업히세요.”
“뭐요?”
“업혀요. 빨리빨리 해체해 버리고 끝내게.”
“수영아, 스테노. 주둔지로 가 있어. 이거 얼른 다 해체하고 올게.”
“알았어, 다녀와.”
“빨리 해체해. 여기 갇혀 있는 거 너무 싫어.”
두 여인을 주둔지로 돌려보낸 후 제갈문을 업고 빠르게 이동했다.
콰앙!
돌 언덕에 검기로 깊은 칼자국을 여러 개 낸 다음, 내력을 쏘아 보내자 돌 언덕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언덕은 앞에 흐르고 있는 개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제갈문이 감탄한 눈으로 완전히 막힌 개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소이다.”
“물이 흐르는 개울이 기관진법의 기물이라니. 신기하네요.”
“특히 이 구간 작업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소.”
“다음으로 가시죠.”
* * *
콰득.
허공섭물로 나무 하나를 뿌리째 뽑아 옆으로 던져두었다.
제갈문의 지시에 따라, 어떤 나무는 베어야 했고 어떤 나무는 지금처럼 뽑아버려야 했다.
드드드드.
다시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거센 바람은 함께 불어오지 않았다.
대신 산뜻한 봄바람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봄바람과 함께 주변의 마나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해체되었군요.”
“어떻게 아셨소이까?”
“주변 기운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런 것도 느끼실 수 있구려. 대단하시오, 김 소협.”
“자, 병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시죠. 거기서 다른 사람들과 주둔지에 관한 얘기도 좀 나눠보고요.”
제갈문과 함께 병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이제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거나 갑자기 풍경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빠!”
전술 차량 위에 앉아서 활을 닦고 있던 최수영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 옆의 스테노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제 기분 나쁜 게 사라졌어. 우리 풀려난 거지?”
“응. 여기 제갈문 노협 덕분이야. 아니지, 애초에 이분이 이런 걸 설치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갇힐 일도 없었으려나?”
제갈문이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법 안에 차원 이동문이 생길 줄, 그리고 이만한 병력이 나올 줄 누가 알 수 있었겠소. 잘 해결되었으니 그저 인연이라 생각합시다.”
사이가 틀어질 만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사전에 차단하는 제갈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죠. 우리를 가두려고 설치한 것도 아니고, 또 우리 때문에 이게 가동되어서 제갈세가도 굉장히 곤란해졌다면서요.”
“벌써 해가 중천이구려. 우리 중원에 남을 지휘관을 만나고 싶소. 괜찮다면 김 소협과 지휘관들을 세가로 초대하고 싶소만. 여기서 그리 멀지 않소.”
“제가 가서 얘기를 전하고 오겠습니다. 여기서 좀 기다리고 계세요.”
발밑의 마나의 흐름을 느껴보았다.
평소대로 마나를 운용하자,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대로 제2 부대 지휘관 막사를 향해 날아갔다.
프랑스 헌터 엘리엇과 사령관이 막사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 헌터님. 어찌 되었습니까?”
“진법이 해체되었습니다. 이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어요. 수색조는 모두 돌아오라고 하세요.”
“아, 그렇습니까. 김 헌터님이 직접 해체하신 겁니까?”
“제가 직접 하긴 했는데 이 진법을 직접 만든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직접 만든 사람이요? 우릴 함정에 빠뜨린 자를 잡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알지도 못하는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만든 건 아니라고 하네요. 어쨌든 그 사람이 사령관님을 초대했습니다.”
“초대요?”
“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가문인데, 가는 길이 멀고 험한 천산 보다는 중원의 중심부인 이곳에 주둔지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네요.”
“천산은 천마신교가 보호해 줘서 안전할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도 안전합니까?”
“뭐, 이곳 하북 땅도 주변에 명문 정파가 많으니 크게 위험할 것 같진 않아요.”
“어디로 초대를 한 겁니까?”
“집으로요.”
사령관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집이요?”
“사령관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반적인 집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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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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