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 *
회의를 마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갈평과 함께 주둔지로 돌아오고 잠시 후, 부관 한 명이 우리에게 회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제갈세가의 영지 안에 주둔지를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잘됐군요. 애써 천산까지 갈 필요도 없고. 사실 천산엔 따로 주둔지를 안 만들어도 천마신교에서 지구인을 위한 거처 정도는 마련해 줄 거예요. 무림에 불시착한 지구인들은 이곳과 그곳 중 가까운 곳으로 가면 되겠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공병부대는 영지 안에 주둔지를 짓기 시작할 것이고, 나머지 부대는 담장 바깥에 임시로 머물 예정입니다.”
부관이 돌아간 후 제갈평에게 회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럼 전 바로 무림맹으로 떠나겠습니다.”
“혼자 괜찮겠어? 지금 무림맹은 어딘데?”
“섬서 북쪽이요.”
“같이 가주고 싶은데 오늘 무당파와의 충돌이 좀 걸리네. 나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
“네! 저도 김 소협이 여기 계신 게 더 마음이 놓여요. 세가에 들렀다가 무사 몇을 더 데리고 바로 떠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 * *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무당산은 대부분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당파로 들어가는 초입인 해검지(解劍池)와 해검각(解劍閣)을 지나면 다섯 개의 도관과 여덟 개의 궁이 절벽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지어져 있다.
건물의 배치는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가능한 곳까지는 오솔길과 가파른 계단으로 어찌어찌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자소궁(紫宵宮) 위쪽부터는 어지간한 경공술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발도 들일 수 없는 곳에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무당산의 중심, 가장 높은 봉우리 천주봉 최정상에는 태화궁(太和宮)이 자리하고 있다.
무위자연을 근간으로 하는 도교. 그리고 그 도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무당파.
그런데 태화궁의 가장 높은 곳에는 도교나 무당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각이 하나 우뚝 서 있다.
황금으로 만든 금전(金殿).
기와, 서까래, 대들보까지 모두 황금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제 막 떠오른 아침 햇빛을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금전에 부딪친 아침 햇살은 황금빛으로 바뀌어 태화궁 곳곳을 비추었다.
금전 중앙부.
도교의 창시자 진무대제(眞武大帝)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인의 표정이 묘했다.
귓불이 유독 크고 넓은 중년인의 얼굴과 하얀 의복에 황금빛 햇살이 내려앉았다.
얼굴을 비추는 금빛 햇살과는 대조적으로 중년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진무대제의 동상을 올려다보며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대제님. 이것이 도교의 뜻이 맞습니까. 이 금전은 도교의 이념으로 세상을 널리 밝히라는 뜻이지, 황금을 모아 무당파의 위세를 넓히라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무대제의 동상은 미동도 없이 천주봉 아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장문인과 몇몇 장로의 물욕과 권력욕이 날로 과해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다는 말입니까.”
여전히 미동도 없는 동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중년인의 뒤로 하얀 도복을 입은 노인 한 명이 다가왔다.
“장문인께서 돌아오셨네.”
“진 장로님. 그 말을 전하시려 예까지 올라오셨습니까.”
“내가 찾아오지 않으면 누가 자네에게 이 소식을 전하겠는가. 내려가서 장문인께 예를 갖춰야지.”
“진 장로님. 차기 장문인인 제가 후에 장문인이 되고 나면 말입니다.”
차기 장문인 하병룡.
이제 갓 오십이 넘은 많지 않은 나이지만, 무공 수위나 도사로서의 자세 모두 무당파 내에서 모범이 되는 인물.
장문인과 몇몇 급진파 장로들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김에도 다른 후보자들과의 격차가 너무 커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될 수밖에 없었다.
항상 겸손한 인물이었기에, 진휘강 장로는 그의 입에서 ‘차기 장문인’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놀란 눈으로 하병룡 차기 장문인을 바라보는 진휘강 장로는 현 장문인의 반대파로서, 하병룡을 누구보다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자네 입에서 ‘제가 장문인이 된다면’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
“이 금전을 모조리 해체하여 황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목조 건물로 지어 올린다면, 이 전각의 주인이신 진무대제 님께서 노하실까요?”
놀라 동그래졌던 진휘강 장로의 눈매에 다시 인자한 주름이 생겨났다.
“이 금전을 선물한 황실은 분노하겠지만, 진무대제 님께선 껄껄 웃고 넘어가 주실 걸세.”
“내려가시지요. 장문인께 예를 갖춰야겠습니다.”
“가세나.”
두 사람은 일말의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하병룡과 진휘강이 자소궁 대전 앞에 다다르자 대전 안에서 사내들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병룡이 장문인을 향해 예를 갖췄다.
“장문인, 오셨습니까.”
무당파 장문인 황운걸이 고개를 돌려 하병룡을 바라보았다.
“병룡 왔느냐?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 것이냐.”
“태화궁에 있는 바람에 장문인께서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늦게 전해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되기 전에는 제법 성실했었는데. 다음 장문인 자리가 네 것으로 생각하고 나니 이제 아예 허튼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냐?”
“무당의 제자가 태화궁에서 진무대제 님을 뵙는 것이 어찌 허튼 시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또 설교를 하려 드는구나. 여기 이 늙은이들이 직접 악의 소굴 전진교를 정화하고 돌아온 것이 보이지 않느냐? 너희 젊은것들이 해야 할 일임에도 어떤 놈은 실력이 부족해서, 또 어떤 놈은 허튼 시간이나 보내고 있어서 우리가 직접 나선 것이 아니냐. 쯧쯧.”
“전진교가 아무리 흑도 무리라 한들…….”
“듣기 싫다!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누릴 시간이니 내일 아침 회의에나 참석하도록 해라. 나가보아라.”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장문인.”
대전 밖으로 나선 하병룡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도사에게 승리의 기쁨이라니…….”
* * *
다음 날 아침, 무당산 자소궁 대전.
장문인 황운걸의 표정이 짙게 일그러졌다.
“무당산 아래 제갈세가로 향하는 길목에 대형 진법을 만들었다 이거지?”
며칠 전 엘리엇에게 일장을 날렸던 유기문 장로가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진법의 흔적이 있는 곳에 지구인들과 제갈세가의 공자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정도 규모의 진법이라면 굳이 증거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제갈세가 놈들이 꾸민 짓이 틀림없겠지.”
“헌데 함께 있던 지구인 중 한 놈의 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
“검은색 검기를 쏘아 보내는 자였는데, 그 위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제대로 붙었다 한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검은색 검기라……. 안 봐도 요사스러운 흑도 놈이로구나.”
장문인의 한마디. ‘흑도’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장문인을 따르는 급진파 장로들과 간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불길한 검은색 검기라니, 흑도가 확실하군요.”
“처단해야 합니다. 위중하진 않으나 유기문 장로가 가슴에 상처까지 입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엘리엇이라는 벽안의 지구인에게 당한 상처지만 유기문은 애써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다.
추후에 다른 누군가 엘리엇과 붙었을 때 쉽게 그를 꺾는다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황운걸 장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군거리던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제갈세가는 무공 수련보다는 요사스러운 함정을 만들기 위한 진법 연구에나 몰두하는 곳으로, 근래에 들어선 정파를 대표하는 오대세가 중 하나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호북의 패권을 위해 우리 무당파를 수시로 견제해 온 것도 모자라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거대한 진법까지 펼쳐냈다.”
대전 내의 모든 장로와 간부들이 황운걸 장문인의 입을 바라보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유기문 장로에게 상처를 입힌 지구인들도 마찬가지. 우리를 해하려 하는 제갈세가와 결탁한 데다가 범상치 않은 검은 기운까지 내뿜는다고 하니 백도의 선봉에 선 우리 무당파가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맞습니다!”
“제갈세가에게 당장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지구에서 온 흑도 놈들도 하루속히 처단해야 합니다!”
황운걸의 편에 선 장로와 간부들이 동조의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하병룡은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으나 자신이 지금 반기를 든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차기 장문인으로서 무당파의 대소사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회의 자리에 참석하게 하는 것뿐, 그에게 별다른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진중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 하병룡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때 황운걸이 하병룡을 불렀다.
“차기 장문인.”
갑자기 자신을 부른 이유를 의아해하면서도 하병룡은 예를 갖춰 대답했다.
“네. 장문인.”
“차기 장문인으로서 모범도 보일 겸, 그 실력을 다시 한번 여러 무당파 선후배들에게 증명할 겸. 그 검은 기운을 내뿜는다는 지구인은 네가 책임지고 제거하거라.”
“예?”
“요사스러운 검은 기운을 쏘아내는 자이다. 게다가 우리를 해하려는 제갈세가와 결탁하고 있지. 더 이유가 필요한가?”
“갑자기 왜 저에게…….”
“이놈! 그렇게 성실하고 선후배에게 모범이 되던 하병룡은 어디로 간 것이냐!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되고 나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냐?”
하병룡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슨 살수 집단에서나 내려올 법한 명령.
‘무당파를 상징하는 이 자소궁에서 이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자를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는구나.’
하병룡이 대답을 망설이자 황운걸은 그를 더욱 몰아세웠다.
“그 표정은 무어냐. 누가 살수처럼 몰래 가서 제거하기라도 하라더냐? 곧 제갈세가에 책임을 물으러 갈 터이니 너도 따라나서서 차기 장문인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말이다. 그것도 하기 싫으냐?”
“…….”
“그럼 뭐, 정식 비무라도 열어주랴? 그래, 네 놈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내 친히 합당한 무대를 열어주마. 그리하면 되겠지? 무당파의 장로에게 상처를 입힌 자다. 네가 직접 겨루어서 별 볼 일 없는 자라면 그냥 두고, 후환이 될 자라면 팔 한쪽 정도는 거두거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으냐? 무당파의 차기 장문인으로서.”
어쨌든 무당파 장로에게 상처를 입힌 자. 게다가 장문인이 정식 비무까지 열어준다니 하병룡도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좋다. 이제야 좀 차기 장문인답구나.”
그제야 장문인은 고개를 돌렸다.
“유 장로!”
“네, 장문인.”
“당장 제갈세가에 서신을 보내시오. 이번 진법 사건과 관련해, 서로의 잘잘못을 정식 비무 대결로 따져보자고 말이오. 물론 우리 장로에게 상처를 입힌 지구인들도 포함해서, 이 사건과 관련된 자들이 그날 빠짐없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무당파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른 방법으로 물을 것이라고 하시오.”
“일정은 언제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오래 끌 것 있소? 아, 그리고. 친선을 다지기 위한 비무는 아니니 대결에서 벌어지는 부상이나 사망에 대한 책임은 각자 지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도 넣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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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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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금액 61조 8천억 원]